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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218화 (244/1,027)

< (1). 반인반마 -2 >

*          *          *

레벨이 동일하다면, 단순한 실력차이에서 승패가 판가름 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아니었다.

특히 상대가 유저가 아닌 몬스터, 혹은 NPC일 경우.

능력치는 레벨에 정비례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단적인 예로, 이안이 키우고 있는 소환수들만 보더라도 그렇지 않은가?

같은 100레벨의 소환수가 두 마리 있다고 가정하자.

한 소환수는 희귀등급인 붉은 갈기 늑대이고, 다른 한 소환수는 전설등급인 소버린 펜리르일 때, 둘의 능력치 차이는 어림잡아도 두 배 이상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마족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족들 또한 동레벨이더라도 등급이 높을수록 능력치가 뛰어난 것이다.

이안의 상대로 나타나는 마족들은, 모두 188레벨로 동일하다.

하지만 능력치는 그렇지 않았다.

마족의 경우는 등급이 올라갈수록 그 능력치 차이가 더욱 현격해지기 때문에, 하급 마족과 상급마족의 능력치 차이가 동 레벨 기준 3배 가까이 벌어진다.

그렇기에 이안이 처음 악마의 심판을 시작했을 때 만났던 하급 마족들은, 이안조차도 당황할 정도로 손쉬운 상대였다.

거의 다섯 번 째 등장했던 녀석까지도, 10초 안에 잡아버릴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같은 하급마족 안에서도 점점 더 강력한 녀석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평마족이 등장하기 시작했을 때 부터는 이안도 마냥 여유를 부릴 수는 없었다.

그리고 상급마족을 상대하고 있는 지금.

이안은 정말 자신의 모든 능력을 쥐여 짜 내고 있었다.

‘능력치가 강력해지는 건 물론이고… AI수준도 등급이 높아질수록 향상되고 있어.’

가상현실게임에서 몬스터나 NPC의 AI란, 유저로 치면 ‘컨트롤 능력’ 이라고 할 수 있었다.

쉽게 말해 상대의 능력치와 컨트롤 능력이, 갈수록 좋아진다는 뜻이었다.

“빡빡이, 귀룡의 포효!”

이안은 상대 마족의 공격이 라이의 등을 파고들기 직전, 빡빡이의 스킬을 발동시켰다.

귀룡의 포효는 일시적으로 상대를 도발시키고, 움직임을 40%만큼 느려지게 만드는 CC기.

덕분에 마족의 움직임이 찰나지간 버벅 거렸고, 그 틈을 타 공중으로 도약한 라이가 마족의 하복부에 길다란 발톱을 쑤셔 박았다.

푸우욱-!

[크어어억!!]

그리고 괴성을 지르며 주저앉는 마족에게로, 카르세우스가 달려들었다.

[크롸롸롸롸-!!]

카르세우스는 커다란 입을 쩍 벌려 마족의 어깻죽지를 난폭하게 물어뜯었다.

[소환수 ‘카르세우스’가 ‘상급 마족의 영혼’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상급 마족의 영혼’의 생명력이 39877만큼 감소합니다.]

연달아 터진 치명적인 공격으로, 마족의 영혼은 갈피를 못 잡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거의 무방비 상태가 되어버린 마족의 영혼.

거기에 이안의 정령왕의 심판이 그대로 작렬하였다.

콰르릉-!

[‘정령왕의 심판’ 아이템의 고유능력인 ‘심판의 번개’가 발동합니다.]

이안의 창이 내리꽂힌 지점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여러 줄기의 번갯불이 연속해서 떨어져 내렸다.

쾅- 콰쾅-!

[‘상급 마족의 영혼’의 생명력이 9870만큼 감소합니다.]

[‘상급 마족의 영혼’의 생명력이 14210만큼 감소합니다.]

:

:

그것을 마지막으로, 마족의 몸이 회색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띠링-

[25번째 악마를 성공적으로 물리치셨습니다.]

이안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후욱- 후욱-”

그는 회색빛으로 변한 뒤 사라져가는 마족의 사체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 거의 한계까지 온 것 같아. 이번 전투에서는 핀도 잃었으니까.’

물론 전투불능 상태가 된 소환수도, 다음 마족이 등장할 때엔 되살아난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안은 노블레스등급의 마족이 상대로 나타난다면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고 있었다.

‘단계가 넘어갈 때 버프효과가 유지된다면… 희생버프 중첩으로 어떻게 해 볼 수도 있었을 텐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속으로 한 이안이 피식 웃었다.

매 전투가 끝날 때 마다 스킬의 재사용대기시간이 초기화되고 소환수들은 전부 살아나기 때문에, ‘희생’ 스킬을 매번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재사용 대기시간만 초기화되는 것이 아니라 버프 효과의 지속시간도 초기화되기 때문에, 버프효과를 중첩시킬 수는 없었다.

‘어쨌든 가는 데 까지는 가 봐야지.’

그나마 여기까지 온 것도 희생 스킬의 버프효과 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안은 자세를 잡고 다음 상대를 기다렸다.

“다음 전투를 진행하겠다.”

하지만 이어서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는, 이안이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메시지였다.

[악마의 시험을 모두 통과하셨습니다.]

[‘시험의 방’이 종료됩니다.]

[‘마계 100구역’으로 이동합니다.]

‘으으음…?’

메시지가 떠오름과 동시에 다시 어둡게 변하는 이안의 시야.

이안은 묘한 기분이 되었다.

‘뭐지? 악마의 순혈로 한 번에 노블레스 이상의 등급을 받는 건 불가능한 거였나?’

악마의 순혈로 가능한 최고수준의 마계등급을 받았다는 뿌듯함과 동시에, 노블레스등급의 마족을 상대해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동시에 떠올랐다.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어차피 마지막에 상대했던 놈이 거의 내 한계 수준으로 느껴졌으니까.’

사실 이안은 알 수 없었지만, 악마의 시험에서 노블레스 이상의 마족이 아예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마왕까지도 악마의 순혈을 통해 만날 수 있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이안이 가지고 있던 악마의 순혈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안의 악마의 순혈은, 상급마족인 얀쿤의 피로 만들어진 것이었고, 상급마족의 피로 만들어진 악마의 순혈이 그보다 상위 마족의 영혼을 불러올 수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이안이 한 번에 얻은 상급마족의 등급은, 유저가 처음 얻을 수 있는 마계등급의 한계치라고 봐도 무방했다.

노블레스나 마왕등급의 마계영혼을, 일반 유저가 이기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울뿐더러, 애초에 노블레스 이상의 등급을 가진 마족의 피를 얻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루트로 유저들이 얻을 수 있는 악마의 순혈은, 끽해야 평마족의 피로 만들어진 것일 것이었다.

어찌되었든 이안의 어두워졌던 시야는 다시 점점 밝아졌고, 그의 눈앞에 다시 분노의 도시 중앙광장의 풍경이 펼쳐졌다.

그리고 이안의 눈 앞에는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연이어서 떠오르기 시작했다.

[악마의 시험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셨습니다.]

[최종 돌파단계 : 25]

[유저 ‘이안’님의 마계등급이 ‘상급마족’으로 책정되셨습니다.]

[마계의 새로운 능력치인 ‘마기’를 15000만큼 추가로 부여받았습니다.]

[마계의 새로운 능력치인 ‘마기 발동률’을 3%만큼 추가로 부여받았습니다.]

[‘반인반마(半人半魔)가 되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최초로 ‘반인반마(半人半魔)’가 되셨습니다.]

[명성을 50만 만큼 획득합니다.]

[마기발동률이 영구적으로 2%만큼 증가합니다.]

[항마력이 영구적으로 5%만큼 증가합니다.]

“크으…!”

이안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얀쿤을 제외하고는 아직 한번 본 적 조차 없는 ‘상급마족’의 등급을 대번에 얻게 된 것이었다.

게다가 역시나 짭짤하기 그지없는 최초 달성보상!

‘그런데 얀쿤은 거의 5만에 가까운 마기를 보유하고 있다 했었는데… 왜 난 1만5천 밖에 부여받지 못한 거지?’

이안은 알 수 없었지만, 1만5천이라는 수치는, 평마족이 상급마족으로 승급하기 위해 보유해야 하는 최소한의 마기량이었다.

“읏차.”

자리에서 일어난 이안은 다시 열심히 걸음을 옮겼다.

‘이제 세라핌을 만난 다음, 세르비안에게 가서 히든클래스를 얻으면 되는 건가?’

이안은 앞으로의 계획을 정리하며, 분노의 도시 입구를 지키던 헤이스카를 향해 움직였다.

그런데 걸음을 옮기는 이안의 뒷모습에, 붉은 잔상이 남아 어지럽게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그것은 ‘상급마족’ 이상의 마계등급을 가져야만 나타나는 일종의 표식과도 같은 것이었다.

“쉴 틈이 없어요, 쉴 틈이!”

그리고 마계에 접속해 있는 모든 유저들의 시야에, 한 줄의 월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이안’ 유저가 최초로 ‘반인반마(半人半魔)’가 되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          *          *

헤이스카는 얀쿤을 만나고 돌아온 이안에게 더욱 극진한 예를 취했다.

얀쿤에게서 받은 증표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안 자체가 이제 상급마족의 위엄을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안은 이제 헤이스카에게 편히 하대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동문에서 좀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세라핌님의 저택이 있다는 거지?”

헤이스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안님. 아마 지붕이 뾰족뾰족하고 특이하게 생긴 저택이라, 찾기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오케이, 알겠어. 그럼 나중에 또 보자고.”

“옛.”

그렇게 돌아서서 다시 분노의 도시 안쪽으로 들어가려던 이안은, 뭔가 생각났는지 다시 헤이스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 참, 헤이스카.”

“말씀 하십쇼.”

“혹시 내 가신들은… 여전히 안으로 데리고 들어갈 수 없는 건가?”

헤이스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곤란할 것 같습니다, 이안님.”

이안이 입맛을 다셨다.

“쩝, 어쩔 수 없지 뭐.”

“죄송합니다.”

그리고 이안은 생각난 것이 하나 더 있었다.

“그리고 헤이스카, 혹시 노예 계약서 라는 아이템에 대해 알고 있어?”

이안의 말에 무표정하던 헤이스카의 표정이 살짝 놀란 표정이 되었다.

“노예 계약서요?”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어쩌다 보니 손에 넣었는데…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아이템인지 잘 모르겠어서 말이야. 중앙 광장에 있는 노예시장에 가서 그냥 사용하면 되는 건가?”

헤이스카가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노예 계약은 상급마족 이상의 마계등급을 가지고 있어야만 가능한 고위마족의 특권입니다. 그 노예 계약서는 그 특권을 1회에 한해 아무나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귀한 아이템이고요.”

이안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거기까지는 나도 알아. 그런데 어디서 어떻게 사용해야할 지를 모르겠어서 그래. 아까 지나오면서 노예시장을 한번 훑어 봤는데, 어떻게 생겨먹은 구조인지를 잘 모르겠더라고.”

헤이스카의 말이 이어졌다.

“으음…  저는 평마족이기 때문에 아직 한 번도 노예계약을 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상급마족이신 이안님께 크게 필요한 아이템은 아닐 것 같습니다. 경매장에서 팔아넘긴다면 엄청 비싼 값에 팔 수 있으니, 판매하시는 것도 한번쯤 생각해 보시는 게….”

하지만 이안은 아직 노예계약서를 팔아넘길 생각이 없었다.

‘이게 비싸게 팔리면 뭐 얼마나 비싸게 팔리겠어. 돈이야 영지랑 길드에서 나오는 것만 해도 차고 넘치는데….’

부르주아 영주의 여유로움!

“뭐 아무튼, 알겠어 헤이스카. 고마워.”

헤이스카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별 말씀을. 언제든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찾아오십시오. 아, 그리고… 노예계약에 관한 정보가 궁금하시다면, 세라핌님께 가시는 김에 여쭤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백 년이 넘게 노블레스 등급을 지켜내고 계신 세라핌 님 이라면, 못해도 수십 이상의 노예를 거느려 보셨을 테니까 말입니다.”

*          *          *

< (1). 반인반마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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