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뿍뿍이와 심연의 인장 -1 >
이안은 허탈감에 빠졌다.
‘아… 뿍뿍이 진화는 또 이렇게 멀어져 가는 건가….’
그리고 그의 뒤쪽에 둥실둥실 뜬 채로 두 눈을 꿈뻑이는 카카를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야, 카카.”
“왜 부르냐, 주인아.”
“이거 짝퉁이잖아!”
“무슨 말이냐?”
이안이 험악한(?) 표정으로 다그쳤다.
“네가 가져다 준 이 지도! 짝퉁이라고!”
이안의 말에, 카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리가 없긴! 내가 방금 지도 열어 봤는데, 여의주 위치는커녕 지명조차 제대로 표시되 있지 않은 이상한 지도였어.”
카카는 당황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음… 그게, 그럴 리가 없는데…. 분명 확실한 보물지도가 맞는데….”
카카는 작은 날개를 펄럭이며 이안의 앞으로 날아와 손을 내밀었다.
“나한테 한번 줘 봐라, 주인아. 내가 한번 확인 해 본다.”
“그러던가.”
릴슨은 기이한 두 주종(?)의 대화를 멍한 표정으로 구경하고 있었고, 카카는 이안에게 지도를 받아 들어 구석구석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카카가 이안에게 지도를 넘겨 주며 말했다.
“주인아.”
“응?”
“지도에 여의주의 위치가 표시되지 않는 이유를 알았다.”
이안의 두 눈이 살짝 커졌다.
“이유가 뭔데?”
“왜냐면, 여의보주는 이 시대의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물건이 아니라고?”
“그렇다. 그러니 이 지도에 표시될 리가 없지.”
이안은 어이가 없는 표정이 되었다.
‘아니, 이 시대의 물건이 아니면 대체 어떻게 구하라는 거야?’
그리고 당황스러운 부분은 또 있었다.
“그래, 이 시대의 물건이 아니라고 쳐. 그런데 저 지도는 여의주가 존재하던 시대에 만들어진 물건이잖아? 그럼 저 지도에 표시는 되어 있어야지.”
이안의 말에, 카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 지도는 평범한 지도가 아니다.”
“음?”
“지도의 주인이 어디에 있든 간에, 그가 밟고 있는 대륙의 지도를 보여주는, 신묘한 물건이지.”
당황하는 이안에게, 카카는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이 지도로 여의주를 찾아내려면, 일단 여의주가 존재했던 곳의 대륙으로 가야 해. 그럼 이 물건은 그 곳의 지도를 보여줄 것이고, 거기에는 여의주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겠지.”
“그래서 거기가 어딘데?”
“마우리아 제국.”
“….”
잠시간의 정적.
한 편, 둘의 옆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서 있던 릴슨의 태도가 조금 달라졌다.
처음에는 영혼 없는 표정으로 둘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지금은 무척이나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우리아 제국이라면… 수 천 년도 더 된 고대 제국의 이름인데…?’
릴슨은 클래스 특성상, 지금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유물들을 발굴하고 탐구해 왔다.
꼭 전설등급이 아니더라도 고대의 유물들 중에는 수천 년 전의 물건들이 많았고, 그런 유물들을 발굴하다 보면 당연히 카일란의 역사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된다.
그렇기에 그는 마우리아 제국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카카가 다시 말을 이었다.
“마우리아 제국은 천 년 전의 차원전쟁이 일어나기도 더 전 세대에 존재했던 고대의 제국이다.”
“그래서 뭐, 시간이동이라도 해서 그 곳으로 가야한다는 거야?”
카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전륜성왕이 통치했던 마우리아 제국으로 가서, 이 지도를 펼치면 분명 여의주를 찾을 수 있을 거다.”
그런데 그 순간, 카카의 마지막 말을 들은 이안의 뇌리에 하나, 스쳐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가만, 전륜성왕이라… 전륜성왕…!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 이름인데…?’
그리고 오래 걸리지 않아서, 이안은 전륜성왕이라는 이름을 어디서 들어봤는지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그래, 맞아! 이리엘이 구해오라고 했던 아이템도, 전륜성왕의 보물 중 하나였어!”
카카가 씨익 웃으며 맞장구쳤다.
“그렇다, 주인아. 확실히 우리 주인은 기억력 하나는 좋은 것 같단 말이지.”
이안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해답이 있었어…! 이리엘과 그리퍼는 전륜왕의 보물 중 하나인 주병신보를 얻어 와야 한댔고… 그것을 얻으려면 당연히 전륜왕이 있다는 마우리아제국으로 이동해야겠지.’
모든 준비를 마치고 그리퍼의 마탑에 찾아가면, 그가 마우리아 제국으로 갈 수 있는 포탈을 열어 줄 것이었다.
이안이 카카를 응시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아, 카카. 그럼 지금 당장 그리퍼를 찾아가야겠어.”
카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해가 빨라. 주인은 답답하지 않아서 좋다.”
그리고 이안의 말이 이어졌다.
“전륜성왕을 찾아가서 뿍뿍이를 진화시키고, 주병신보인지 뭐시긴지 그걸 가져와서 마계 몬스터들을 모조리 박살내 버리면 게임 끝이겠군!”
“그렇지!”
카카가 이안에게 물었다.
“주인아, 그럼 지금 바로 동부 대륙에 있는 차원의 마탑으로 가는 거냐?”
이안이 고개를 저었다.
“그 전에 할 일이 하나 있다.”
카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할 일?”
이안의 시선이 슬쩍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곳에는, 뿍뿍이가 엉금엉금 기어 다니고 있었다.
“뿍뿍이 줄 ‘심연의 인장’부터 찾아야지.”
“뿍…?”
고개를 갸웃 하며 이안을 올려다 보는 뿍뿍이.
그와 동시에, 이번에는 카카와 이안의 시선이 릴슨에게로 돌아갔다.
“저기, 릴슨님.”
이안의 부름에, 멍한 표정으로 서 있던 릴슨이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네, 네?”
“혹시… ‘심연의 인장’이라는 아이템에 대해서 아세요?”
“심연의… 인장이요?”
* * *
이안은 심연의 인장에 대한 단서를 많이 가지고 있지 않았다.
뿍뿍이가 심연의 인장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뿍뿍이가 아는 것은 인장의 생김새에 정도?
오히려 빡빡이로부터 약간의 정보를 얻었는데, 그것마저도 별로 도움은 되지 않았다.
[심연의 인장은 물과 냉기의 기운을 담고 있는 물건이다 주인. 그것을 지니고 있으면 모든 한기(寒氣)에 면역이 되고, 마법사의 경우에는 수속성과 빙계 마법의 위력이 10% 가량 증가한다고 알려져 있다.]
[와… 그거 마법사들한테 팔면 겁나 비싸겠는데? 특히 빙계 마법사인 피올란님 같은 사람이 보면 완전 환장하겠군.]
[주변에 빙계 마법사가 있다면 보여주지 않는 것이 좋을 거다, 주인.]
[왜?]
[만약 내가 빙계 마법사인데, 주인이 심연의 인장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면, 아마 암살 시도를 하고 싶을 것 같다.]
[….]
빡빡이와의 대화를 잠깐 떠올린 이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인장의 생김새에 대해 릴슨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뿍뿍이게게 들은 내용이었다.
“심연의 인장은, 영롱한 푸른 빛을 띄는, 물방울 모양의 보석입니다.”
무척이나 간결한 외형묘사.
하지만 이 짤막한 설명을 듣자 마자, 릴슨이 움찔 했다.
“물방울 모양의 푸른 보석이라면….”
릴슨은 돌연 인벤토리를 뒤지기 시작했고, 그에 이안은 기대에 찬 표정이 되었다.
‘뭐지? 랭킹1위의 탐험가라더니, 설마 심연의 인장을 가지고 있는 건가?’
그리고 잠시 후, 릴슨은 정말 이안의 설명과 비슷하게 생긴 물건을 하나 꺼내어 들었다.
성인 남성의 엄지손가락 만 한, 물방울 모양의 영롱한 보석.
보석은 푸른 빛 이라기엔 좀 더 짙은 남색빛깔을 내뿜고 있었지만, 이안은 그것을 보자 마자 입이 쩍 벌어졌다.
“저, 저거…! 저거 맞냐, 뿍뿍아?”
“뿍?”
이안의 물음에, 뿍뿍이는 쪼르르 기어가 릴슨의 앞에 섰다.
그리고 릴슨의 손 위에 올려져 있는 파란 보석을 뚫어져라 응시하기 시작했다.
릴슨이 이안에게 말했다.
“이 보석의 이름은 ‘심연의 인장’이 아닙니다, 이안님. 하지만 비슷한 이름이기도 하고, 이안님의 묘사가 딱 이 물건을 말하는 것 같아서….”
이안이 물었다.
“으음…? 그럼 저 보석의 이름은 뭐죠?”
“‘심연의 파편’이라는 물건입니다. 오래 전 마법사 클래스인 친구의 퀘스트를 도와주러 심연의 마탑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얻은 물건이죠.”
그리고 릴슨의 그 대답에 맞혀, 뿍뿍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안에게 말했다.
“뿍, 이 물건은 아닌 것 같뿍. 주인아, 이 물건보다 좀 더 크고, 맑은 하늘빛을 띈 보석이어야 한다뿍.”
이안은 아쉬운 표정이 되었다.
‘에이, 좀 쉽게 풀리는 줄 알았더니, 역시나….’
그리퍼의 힘을 빌려 마우리아 제국에 가게 된다면, 분명 여의주를 얻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안은, 뿍뿍이의 1차 진화를 완성한 뒤 차원의 마탑으로 향하고 싶었다.
“으음… 아쉽네요. 심연의 인장이었더라면 제가 어떤 값을 치러서라도 구입하려고 했는데….”
이안의 중얼거림에, 솔깃한 표정이 된 릴슨이 물었다.
“이안님, 그 물건이 왜 필요하신 건데요?”
이안이 별 생각 없이 뿍뿍이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여기, 이 식충이를 진화시키는 데 필요한 물건이거든요.”
“뿍! 나 식충이 아니다뿍!”
그리고 그 말에, 릴슨이 입을 쩍 벌렸다.
“오 마이 갓! 뿍뿍이를 진화 시키신다구요?!”
오히려 놀란 것은 이안이었다.
“엥? 뿍뿍이를 아세요? 어떻게 이 녀석 이름을 아시는 거죠?”
뿍뿍이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말했다.
“뿍! 나를 어떻게 아는 거냐뿍!”
릴슨의 입에서 속사포처럼 말이 쏟아져 나왔다.
“이안님 소환수 파티의 마스코트인 뿍뿍이를 어떻게 모를 수 있겠습니까?! 저 뿍뿍이 팬인걸요.”
뿍뿍이의 동공이 흔들렸다.
“뿌뿍! 나 팬도 있었뿍…!”
릴슨은 쪼그려 앉아 뿍뿍이의 등껍질을 연신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 귀여운 거북이를 진화시키려고 하시다니…. 뿍뿍이도 진화하면 빡빡이처럼 우락부락해 지는 것 아닌가요?”
이안은 떨떠름한 표정이 되었다.
“아… 아마도…? 근데 빡빡이도 아세요?”
“네, 저 이안님 팬이라니까요? 당연히 이안님 소환수들은 다 알고 있죠. 이안님 전투 영상만 수십 번은 넘게 돌려 봤는걸요.”
릴슨이 뿍뿍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며 말했다.
“뿍뿍이는 진화시키지 않으시면 안 될까요, 이안님…?”
하지만 이안은 둘도 없이 단호했다.
“네.”
“…!”
“안 돼요. 저 녀석도 얼른 밥값 해야죠. 그동안 저 녀석이 먹은 미트볼이 몇 갠데.”
“….”
“그런데 제가 진화 시키고 싶으면 뭐 하나요, 심연의 인장이 없는데. 그걸 얻어야 진화시키든 말든 하죠.”
“그, 그렇군요.”
이안은 한숨을 푹 쉬며, 탁자 옆에 놓여있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 이거 참. 릴슨님도 모르시면 이거 어디서 정보를 얻어야 하지?”
그런데 그 때, 쭈뼛거리고 있던 릴슨이 조심스레 다시 입을 열었다.
“저… 이안님?”
“네?”
“만약 제가 심연의 인장을 찾는 데 도움을 드린다면, 제 부탁 하나 들어주실 수 있나요?”
“…!”
릴슨의 그 말에, 기다렸다는 듯 이안이 벌떡 일어났다.
“물론이죠! 제가 들어드릴 수 있는 부탁이라면 뭐든 들어드립니다!”
사실 이안은 릴슨이 심연의 인장에 대한 정보를 알 것이라고 어느 정도 확신하고 있었다.
비록 그 근거는 무척이나 부실했지만.
‘저렇게 비슷하게 생긴 보석을 가지고 있는데, 심연의 인장도 어디 있는지 당연히 알지 않겠어? 이름까지 심연의 파편 인데 말이야.’
이안의 사고방식은, 때로는 무척이나 단순했다.
하지만 그 단순한 직감이 제법 정확할 때가 많은 편이었다.
“으음… 그렇다면…!”
릴슨이 이안의 앞으로 불쑥 다가와 그의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저, 로터스 길드에 좀 넣어 주세요! 가능… 할까요…?”
릴슨은 어린아이처럼 두 눈을 반짝였다.
최근들어 솔로플레이만 계속해온 이안은 크게 인지하고 있지 못했지만, 로터스 길드는 많은 유저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이제 레벨이 100 정도인 릴슨이 일반적인 루트로는 절대로 가입할 수 없는 인기길드인 로터스 길드!
쑥쓰러운 듯 말하는 릴슨을 보며, 이안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생각지 못 했던 조건이었지만, 그 정도야 이안의 재량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길드 마스터님께 릴슨님을 추천해 드리도록 하죠.”
“오오…!”
이안이 눈을 가늘게 뜨며 릴슨을 압박(?)했다.
“그러니까 이제 얼른 심연의 인장에 대한 정보를 주시죠…!”
그리고 그 압박에, 릴슨은 천천히 입을 열시 시작했다.
“사실 이 심연의 파편은, 정확히 말하자면 심연의 마탑에서 얻은 물건이 아니에요.”
“음…?”
“심연의 마탑 바로 뒤쪽에 작은 비밀던전이 있는데, 제가 친구 퀘스트를 도와주다가 그곳을 발견했거든요.”
이안은 릴슨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고, 그의 설명이 천천히 이어졌다.
“그 던전을 발견한 저는 하루 종일 열심히 사냥했죠. 평소에 탐험하느라 사냥을 잘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던전 최초발견 버프가 있을 때 최대한 많이 경험치를 쌓아 놔야 했거든요. 그렇잖아요?”
이안은 그다지 동의할 수 없었지만, 딴지를 걸지는 않았다.
‘사냥이란 평소에도 열심히 하고 경험치 버프가 있을 땐 두 배로 열심히 해야지….’
이안의 심중이 어찌됐든, 릴슨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렇게 던전 깊숙이 들어가며 열심히 사냥을 하다보니, 마침내 최하층까지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전, 이 심연의 파편 이라는 아름다운 보석이 여기 저기 널브러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죠. 제 기억으론, 이렇게 생긴 보석이 최소 삼사 백 개는 쌓여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보석들을 발견한 릴슨은, 당연히 그것들을 죄다 인벤토리에 집어넣기 시작했고, 그 보석들을 수거(?)하던 도중, 그것들과 비교도 할 수 없이 아름답고 커다란 물방울 모양의 보석을 발견했다고 했다.
“하지만 저는 그 물건을 만질 수도 없었어요. 그것은 엄청나게 강력한 어떤 기운에 둘러쌓여 있었거든요.”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이안이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그 보석이 심연의 인장 이었나요?”
릴슨이 어깨를 으쓱 하며 대답했다.
“그건 저도 모르죠. 저는 멀찍이서 그 보석을 구경한 게 전부였기 때문에, 보석의 정보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안이 두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이거다! 이건, 심연의 인장이 분명해!’
< (6). 뿍뿍이와 심연의 인장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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