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뿍뿍이와 심연의 인장 -2 >
* * *
결과적으로 릴슨의 정보는 확실한 것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안은 그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직감 상 그 물건은 분명히 심연의 인장이 맞아.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생산직업 한 분야의 랭킹 1위 유저이니 길드에 받아 줄 가치는 충분히 있고.’
헤르스에게 얘기해 릴슨을 길드원으로 받아 준 이안은, 곧바로 심연의 호수를 향해 움직였다.
“여긴… 정말 오랜만에 오는군.”
이안의 중얼거림에, 옆에 있던 뿍뿍이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렇뿍. 정말 오랜만이다뿍.”
심연의 호수는 그야말로 추억의 장소였다.
라이를 제외하면 이안과 가장 오랜 시간 함께 한 소환수인 뿍뿍이와 떡대를 처음 만난 곳이었으니.
이안과 릴슨이 정박해 있던 배에 오르자, 뿍뿍이는 호수를 향해 쪼르르 기어갔다.
풍덩-!
그리고 심연의 호수에 몸을 담근 뿍뿍이는 신이 나서 이리 저리 헤엄치기 시작했다.
“역시 여기는 내 고향이다뿍. 이 시원하고 맑은 물이 그리웠뿍!”
정말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나게 헤엄치는 뿍뿍이를 보며 이안은 기분좋은 미소를 지었다.
“저 녀석, 미트볼 먹을 때 말고 저렇게 좋아하는 표정은 처음 보는데….”
이안의 옆에 타고 있던 라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렇다, 주인. 뿍뿍이가 미트볼 말고 좋아하는 것이 있을 줄 몰랐다.”
라이 또한 심연의 호수에는 두 번 째 오는 것이었기 때문에, 감회가 새로운 듯 했다.
여기가 일반적인 사냥터라면 아무리 오랜만에 온다고 해도 그러려니 하겠지만, 심연의 호수가 가진 경치가 무척이나 아름다웠기 때문에, 이안 또한 기분 좋은 표정이 되었다.
‘크으, 공기 맑고, 물 좋고…! 이런 완벽한 가상현실 게임이 있는데, 해외여행 같은 것은 대체 왜 가는지 몰라. 세계 어딜 가도 이보다 멋진 풍경은 찾기 힘들 것 같은데 말이지.’
결국 기승전 카일란 게임 찬양으로 끝나는 이안의 사고방식.
어쨌든 삼십분 여 정도가 지난 끝에, 이안의 일행은 심연의 호수 중앙에 있는 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배에서 내리자 마자, 릴슨이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자, 이쪽으로 오시죠, 이안님.”
그런데 이안은, 릴슨이 안내하는 방향에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음…? 릴슨님, 그 방향은 중앙 마탑 쪽으로 가는 방향이 아니라, 북부 해안가 쪽으로 가는 방향인데요?”
릴슨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맞아요.”
“에… 릴슨님께선 비밀던전이 분명 마탑 뒤쪽이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
릴슨이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설명했다.
“네, 위치 자체는 마탑 바로 뒤에 붙어있는 던전이 맞는데,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들어갈 수가 없는 곳이에요. 아마 저랑 제 친구 말고는 아무도 던전을 발견하지 못했을 겁니다.”
이안은 조금 미심쩍었지만, 일단 릴슨이 안내하는 대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흐으음….”
이안의 일행이 지나는 길은, 심연의 섬에서도 가장 몬스터들이 많기로 유명한 사냥터.
하지만 어쩐 일인지, 몬스터들이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릴슨이 의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으음…? 왜 여기 몬스터가 하나도 없는 거지?”
그 말에 이안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여기 몬스터들 레벨을 생각해 보세요. 전투능력에 장애있는 카카랑 싸워도 못 이길 쪼랩들 투성인데, 우리랑 싸우려 들겠어요? 슬슬 피하지.”
이안의 말에 옆에서 날고 있던 카카가 이안을 째려봤지만, 이안은 어깨를 으쓱 할 뿐이었다.
그리고 릴슨은 고개를 갸웃 거렸다.
“음…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들어보는데….”
사실 이안의 가설(?)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원래 아무리 레벨차이가 많이 나는 일행이 지나가더라도 몬스터들이 피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안에게서는 드래곤인 카르세우스의 기운이 풍겨져 나갔고, 퍼져 나가는 용의 기운이 몬스터들을 달아나게 만든 것이었다.
레벨차이가 100 이상 나는 드래곤의 기운이 느껴지면, 몬스터들이 자리를 피하도록 설계되어 있던 것.
카르세우스를 소환하지 않았음에도, 드래곤의 존재감은 하급 몬스터들을 공포에 떨게 하기 충분했다.
덕분에 이안 일행은 귀찮은 일 없이 계속해서 이동했고, 릴슨은 수 없이 여러 갈래로 이어지는 복잡한 길을, 능숙한 움직임으로 안내했다.
그렇게 20여분 정도 더 이동했을까?
이안의 일행 앞에 공터가 하나 나타났고, 그 안에는 세 개의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음? 이건 뭔가요?”
이안의 물음에, 릴슨이 오른 쪽에 있는 마법진으로 걸음을 옮기며 손짓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비밀던전으로 가기 위한 워프게이트에요.”
“음…?”
자신을 따라 들어오는 이안 일행을 한번 둘러본 릴슨은, 뭐라고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2,1,4,3,2,3,1,1,2,3,1….”
이안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던전으로 들어가기 위해 무슨 암호라도 외워야 하는 건가요?”
릴슨은 고개를 저으며 짧게 대답했다.
“아뇨. 따라오시면 곧 알게 되실 겁니다. 하지만 이제 말은 걸지 말아주세요. 외워놓은 것을 까먹으면 안 돼서 말이지요.”
“아, 알겠습니다.”
“그냥 계속해서 저만 따라오시면 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자 마자 마법진은 발동하기 시작했고, 일행은 어디론가 워프되었다.
위이잉-!
이안은 새로운 장소로 워프 되자 마자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음…? 뭐지? 이거 이번에는 마법진이 네 개나 있잖아?’
한편, 당황하는 이안과는 별개로 망설임 없이 다른 마법진을 향해 또다시 이동하는 릴슨.
“이쪽으로!”
그리고 몇 번이나 이러한 과정을 거친 이안은, 릴슨이 외운 이상한 숫자로 이루어진 주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아, 그 숫자가 마법진의 번호를 의미하는 거였어…!’
이안 일행은 계속해서 마법진을 바꿔가며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그리고 릴슨이 계속 외우던 숫자가, 타고 가야하는 마법진의 경로를 의미하는 것이었던 것이다.
이안은 릴슨을 다시 보았다.
‘와, 이 길을 대체 어떻게 찾아서 간 거지?’
굳이 해보고 싶지는 않았지만, 코흘리개 시절부터 지금까지 십 수년 게임만 해온 이안의 통밥을 굴려봤을 때. 잘못된 루트의 마법진을 타면, 이상한 함정이 발동되거나 몬스터를 만나게 되었으리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이안은, 순간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던전 탐지기 뿍뿍이에, 릴슨까지 있으면, 앞으로 더 많은 비밀던전을 찾아낼 수 있겠어…!’
이안은 시선을 슬쩍 돌려 릴슨을 응시했다.
‘그저 심연의 인장을 찾고 여의보도를 감정하기 위해 필요했던 존재’에서, ‘앞으로도 계속 데리고 다니고 싶은 탐나는 인재’ 정도로 릴슨의 가치가 격상되는 순간이었다.
“릴슨님, 이제 거의 다 된 건가요?”
릴슨이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안님. 앞으로 2 회 정도 더 이동하면 끝날 것 같네요.”
10회, 20회를 가뿐히 넘어가는 횟수를, 계속해서 마법진으로 이동한 끝에, 드디어 이안 일행은 목적지에 당도할 수 있었다.
휘이잉-
갑작스레 사방에서 불어오는 칼바람.
온 몸에 오한을 느낀 이안은,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다.
“으음…? 여긴…! 정말 마탑의 바로 뒤편에 있는 바위산의 봉우리네요?”
심연의 섬 정 중앙에는 무척이나 가파르고 높은 산이 있었다.
마탑은 그 중에서도 가장 높은 봉우리의 꼭대기에 우뚝 솟아 있었고, 이안 일행이 마법진을 타고 이동해 온 위치는, 그 바로 뒤편에 있는 봉우리의 꼭대기.
사방이 탁 트여 있는 절벽 위였다.
이안이 고개를 으쓱 하며 말했다.
“으음, 여기 위치를 알았으니, 다음에 와야 할 일이 있다면 굳이 힘들게 마법진을 타고 오지 않아도 되겠군요.”
릴슨이 물었다.
“음… 어째서죠? 여기로는 올라오는 길이 없는데….”
이안이 실소를 흘리며 대답했다.
“제게 그리핀이 한 마리 있는데, 그 녀석을 타고 올라오면 될 것 같거든요. 여기 다시 올 일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하지만 릴슨은 고개를 저었다.
“아, 여기는 그렇게 올 수 있는 장소가 아닙니다, 이안님.”
“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이 공간 자체에 결계가 쳐져 있거든요. 아마 바깥에서는 이 봉우리가 아예 보이지도 않을 겁니다.”
“아하….”
깎아지듯 높은 바위산의 봉우리.
그리고 그 주변을 둘러 있는 좁은 길을 따라 천천히 걸은 일행은, 정상에 있는 거대한 석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석문의 앞에 다다른 릴슨이 이안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안님.”
사뭇 진지해진 그의 표정에, 이안 또한 긴장하며 되물었다.
“네?”
릴슨의 말이 이어졌다.
“이 석문을 열면, 던전을 지키는 문지기가 하나 있을 거예요. 지난 번에 저랑 친구가 여러 번 죽어가면서 트라이한 끝에 겨우 잡아 낸 녀석이거든요.”
“아….”
“물론 이안님이시라면 어렵지 않게 이기시겠지만, 그래도 들어가시기 전에 소환수는 전부 소환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지금 소환하고 계신 소환수가 뿍뿍이 밖에 없으니….”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릴슨에게 물었다.
“안쪽을 지키는 보스 몬스터가 어떤 녀석인데요?”
릴슨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레벨은 130도 넘고, 빙계 계열의 광역 스킬을 사용하는 거대한 골렘입니다. 몸빵도 장난 아니고, ‘어비스 홀’이라는 엄청난 메즈기도 사용하더라고요.”
“….”
이안은 순간 뿍뿍이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뿍뿍아.”
“뿍?”
“저 안에 있는 녀석, 혹시 떡대 사촌형 정도 되는 녀석 아닐까?”
뿍뿍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뿍, 그렇뿍. 왠지 그럴 것 같뿍.”
릴슨이 손뼉을 치며 대답했다.
“맞아요! 이안님이 사용하셨던 소환수인 떡대랑 흡사한 외형을 갖고 있어요. 덩치만 떡대보다 2배 쯤 큰 것 같네요.”
뿍뿍이가 한 마디 덧붙였다.
“떡대 아빠일지도 모른다뿍.”
“흐음….”
이안은 저벅 저벅 앞으로 걸어갔다.
“릴슨님.”
“예?”
“이 석문, 어떻게 하면 열리나요? 열어 주세요.”
그에 릴슨이 당황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네에? 열어달라구요?”
“넵.”
“이안님 아직 소환수들 소환 안 하셨잖아요. 아무리 이안님께서 강하다고 하셔도, 소환술사가 소환수도 없이 130레벨이 넘는 보스 몬스터를 잡는다는 건….”
그 말에 이안의 뒤에 둥둥 떠 있던 카카가 핀잔을 주었다.
“걱정 하지 마라. 그런 허접한 돌덩이 한 트럭 와도 주인놈 옷깃 하나 못 건드릴 거다.”
“음….”
이안이 어깨를 으쓱 했고, 릴슨은 조금 못 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던전 오픈 하겠습니다.”
“예, 그럽시다.”
“만약 조금 버겁다는 생각이 드시면, 바로 소환수들 소환하셔야 해요!”
릴슨의 말에 이안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릴슨은 천천히 석문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자신의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낸 릴슨은, 석문의 앞에 그것을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푸른 빛이 일렁이며 거대한 석문에서 굉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쿵- 쿠쿠쿵-!
조금씩 열리기 시작하는 석문.
그 사이로 환한 빛이 새어나오는 것을 보며, 이안 일행은 망설임 없이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때.
석실 안쪽에서 커다란 기계음 같은 것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감히… 누…가, 심연의 비동에 발을 들이려… 하는가…!!]
쿵- 쿠쿠쿵-!
석실을 온통 가득하게 메우기 시작한 새파란 빛!
그 빛들은 회오리 치기 시작하더니, 종래에는 거대한 하나의 형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한편, 무표정한 얼굴로 그 모양을 지켜보던 이안은, 정령왕의 심판을 꺼내어 들고는 그 앞으로 저벅 저벅 다가갔다.
그 모습을 본 릴슨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쳤다.
“이, 이안님! 안돼요! 아무리 이안님이라도 그것은 위험…!”
하지만 릴슨의 비명(?)은 끝까지 이어질 수 없었다.
서걱-!
뭔가 시원한 소리가 비동에 울려퍼짐과 동시에, 말을 하던 릴슨의 입이 쩍 벌어져 버린 것이었다.
“이… 이게….”
이안과 릴슨의 눈 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한 줄 울려퍼졌다.
[‘심연의 가디언’을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 (6). 뿍뿍이와 심연의 인장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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