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신분상승 -2 >
* * *
마우리아 제국의 공적치를 올려, 신분세탁(?)을 한다는 것.
처음부터 쉬워보이진 않는 얘기였다.
마우리아 제국이 있는 이 남섬부주 라는 맵 자체가, 워낙에 고레벨 위주로 구성되어있는 맵이었고, 무엇보다 시간이 너무도 촉박했기 때문이었다.
계급을 두 계단이나 올리는 데 필요한 공적치가 적을 리도 없었고, 공적치 자체도 쉽게 쌓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안은 지금까지 그 어느 때 보다도 눈에 불을 켜고 빡세게 사냥하고 있었다.
“주인아, 우리 반나절동안 올린 공적치가 몇 정도지?”
“글세. 잠시만.”
카카의 물음에 이안은 쌓여있는 공적치를 확인했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제 170포인트 정도 모았어.”
카이자르가 옆에서 빙글거리며 말했다.
“망했네. 이래서 어떻게 며칠 내로 승급을 하겠냐, 영주 놈아.”
수드라 계급인 이안이 바이샤가 되기 위해서는, 1천 포인트라는 공적치가 필요했다.
이안도 여기까지는 충분히 할 만 하다고 생각했다.
반나절 동안 170포인트 정도밖에 못 모으기는 했지만, 점점 적응될수록 사냥속도는 빨라질 것이고, 결국 한 2~3일 정도면 바이샤 까지는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크샤트리아 계급으로의 진급에 필요한 공적치가 문제였다.
‘5천 공적치는 정말 답이 없네.’
바이샤 계급에서 크샤트리아 계급으로 계급을 올리기 위해 필요한 공적치는, 무려 5천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이안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공적치 양이었다.
이안이 턱을 만지작거리며 카카에게 물었다.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카카?”
이안의 물음에, 카카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방법이 왜 없겠냐, 주인아. 물론 있지.”
이안이 눈을 크게 뜨고는 다시 물었다.
“뭔데? 빨리 얘기해봐. 지금 시간 촉박한 건 너도 잘 알잖아.”
카카가 대답했다.
“왜 항상 솔플을 하려고 하냐, 주인아. 파티사냥을 좀 해라.”
“음…?”
“파티사냥을 하면 경험치는 깎이겠지만, 공적치는 그와 관계 없이 사냥한 몬스터 숫자에 비례한다.”
“…?!”
이안이 대부분의 사냥을 혼자 하는 것은, 경험치 분배 방식이 아주 비효율적인 소환술사의 경험치 획득 시스템 때문이었다.
파티로 쪼개져 들어온 경험치를 다시 소환수들과 쪼개어 받게 되니, 파티사냥이 달가울 리가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얘기가 달랐다.
파티가 몇 명이든 몬스터만 많이 처치하면 공적치는 전부 먹게 될 것이었고, 그렇다면 강력한 인원이 많을수록 속도는 훨씬 빨라지게 될 것이었다.
공적치를 나눠먹지 않는다는 부분은, 파티사냥을 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미 이안의 가신들도, 이안과 똑같은, 최대 공적치량을 받아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야, 카카. 근데 여기서 파티 사냥을 어떻게 하냐. 누가 이 맵에 있어야 파티사냥을 하던 말던 하지.”
그에 카카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주인아, 갑자기 머리가 나빠지거나 한 건 아니지?”
“뭐?”
“그리퍼한테 받은 차원마력 충전기, 잊은 거냐?”
“…?!”
“심지어 저번에 충전기 받자마자 차원이동 구슬에 꼽아놓은 걸로 아는데…?”
이안은 멍한 표정이 되었다.
차원이동 구슬은 그야말로 까맣게 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그러네?”
차원이동 구슬은, 이안 한명을 차원이동 시켜주는 장비가 아니었다.
이안이 가 본 위치 중에 원하는 곳에 2분 동안 포탈을 열어주는 장비였던 것이다.
포탈이 열린다는 소리는, 다른 유저들도 그 포탈을 이용할 수 있다는 소리였고, 이안은 2분 동안 제한 없이 다른 유저들을 끌고 들어올 수 있었다.
그렇다면 마지막 남은 관문은, 차원이동 포탈을 여는 데 필요한 차원마력이 전부 충전되었냐는 것이었다.
‘지난번에 보니까, 한 10분에 1포인트 정도 차는 것 같던데… 충전은 다 되었으려나?’
10분에 1포인트면 하루에 150정도의 포인트가 찬다는 의미였다.
1천포인트를 모아야 차원간의 포탈을 여는 것이 가능했으니, 거의 일주일 정도가 지난 지금이면 대충 포인트가 다 모였을 것도 같았다.
이안은 서둘러 ‘차원의 구슬’의 충전량을 확인해 보았다.
[차원의 구슬 / 충전량 - 957/1000(95.7%)]
“음….”
이안은 서둘러 풀 차징이 될 때 까지 남은 시간을 계산해 보았다.
‘한 일고여덟 시간 정도만 있으면 풀 차징이 되겠어.’
지금이라도 차원의 구슬을 생각해 낸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이안은 데리고 올 인물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았다.
‘지금 한창 차원전쟁중일 테니까 길드원들을 너무 많이 빼 올 수는 없어. 가장 효율적으로 사냥을 도와줄 수 있는 서너명만 데리고 오면 돼.’
어차피 어중간한 유저라면 평균레벨 300정도인 이 남섬부주에서 도움 자체가 안 될 것이었다.
그리고 이안이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레미르님이라면 확실히 큰 도움이 되겠지.’
가장 최근에 손발을 맞춰 보았던 레미르였다.
* * *
[이안 : 안녕하세요, 레미르님.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중부대륙의 차원전쟁의 현장.
마족들과 마수들이 득실거리는 전장의 한복판에서 열심히 마법을 캐스팅하던 레미르는, 뜬금없이 떠오른 한 줄의 메시지에 당황해서, 캐스팅 중이던 마법을 취소할 뻔 했다.
‘뭐야, 이 뜬금없는 메시지는?’
이안이라는 아이디를 보자마자, 레미르는 여러 가지 미묘한(?) 감정이 동시에 떠올랐다.
황당함, 반가움, 무서움, 어이없음 등….
어쨌든 전장의 뒤쪽으로 살짝 빠지면서, 레미르는 곧바로 답 메시지를 보냈다.
[레미르 : 오랜만이네요, 이안님. 어쩐 일이시죠?]
그리고 이안으로부터, 곧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이안 : 아, 다른 게 아니라 레미르님의 도움이 좀 필요해서요….]
레미르는 더욱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안이 자신에게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을 것 같지 않아보였기 때문이었다.
[레미르 : 도움요? 무슨 도움?]
[이안 : 제가 지금 좀 빡센 퀘스트를 하고 있는데요, 이게 마계 침략군을 저지시킬 수 있는 퀘스트예요.]
[레미르 : 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어요?]
[이안 : 그러니까… 이 퀘스트를 완성해서 몇 가지 아이템을 얻으면….]
이안은 레미르에게, 자신이 진행중인 퀘스트를 제법 자세하게 설명했다.
모든 것을 설명해 준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퀘스트를 완수하기만 하면 마계침략군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는 설명을 한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차원전쟁에 참여중인 레미르가 이안을 도와주러 전장에서 이탈할 명분이 생기는 것이었으니까.
설명을 다 들은 레미르는 묘한 표정이 되었다.
‘어쩐지… 초반에 잠깐 보인 뒤로 차원전쟁에 코빼기도 안 비치는 게 이상했어. 역시 어마어마한 퀘스트를 혼자 하고 있었네.’
레미르는 흥미가 동하는 것을 느꼈다.
[레미르 : 음… 대충 설명은 이해 했구요. 그래서 제가 이안님을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는 거죠?]
[이안 : 한 오일(?) 정도…? 저랑 좀 빡세게 사냥해 주시면 됩니다.]
[레미르 : 빡세게… 말이죠?]
[이안 : 네. 지난번보단 좀 더 빡세게…?]
여기까지 메시지를 확인한 순간.
레미르는 이안이 진행중인 퀘스트에 대한 흥미도가 한순간에 바닥까지 떨어지는 걸 느꼈다.
‘지난번 사냥보다 더 빡세게 할 거라고? 그게 사람으로서 가능한 거야?’
레미르가 답이 없자, 이안의 메시지가 다시 돌아왔다.
[이안 : 대신 획득 경험치나 템들은 지난번보다 더 좋을 거예요. 여기 필드 던전이 쌓여 있는데, 들어가기만 하면 죄다 최초발견인데다, 저한테 필드 최초발견 버프도 아직 많이 남아있거든요. 파티원들한테 이 버프 전부 적용되는 거 아시죠?]
레미르의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200레벨이 넘어간 이후, 레벨업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레미르에게 이안의 말은 너무 달콤하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레미르 : 으음… 그… 혹시 제가 좀 생각해 볼 시간은 없는 거죠?]
[이안 : 한 일곱 시간 정도 생각해 보실 시간은 있습니다만…. 못 오시면 미리 얘기 해 주세요. 한 셋에서 다섯 정도 부를 건데, 레미르님이 오시냐에 따라서 계획이 좀 바뀌거든요.]
레미르는 선택장애에 빠지고 말았다.
그녀의 입장에서 이안의 제안은, 거의 악마의 유혹에 비견할 수준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획득하게 될 막대한 경험치와 아이템들을 생각하자, 레미르의 뇌는 점점 과거를 미화하기 시작했다.
‘좀 힘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체계적인 팀플을 할 기회가 또 어디 있겠어. 내 컨트롤 실력도 많이 향상되고 말이야.’
레미르는 자신도 모르게 자아를 설득시키고 있었다.
‘심지어 사냥이 재밌었던 것도 같아. 아무래도 이번에는 이안님을 좀 도와줘야겠어.’
마음이 기울어 버린 레미르가, 또다시 후회할 수 밖에 없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레미르 : 알겠어요, 이안님. 그럼 제가 몇시까지 어디로 가면 되는 거죠?]
[이안 : 앞으로 정확히 일곱 시간 뒤에, 파이로 영지 영주성 앞 공터에 계시면 됩니다.]
[레미르 : 아, 옙….]
이안의 협박에 가까운 한 마디가 더 이어졌다.
[이안 : 지금 일단 접속 종료하시고, 여서일곱시간 정도 푹 주무시고 오시는 게 좋을 거에요. 저도 그럴 예정이거든요.]
[레미르 : ….]
레미르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나왔다.
“후우….”
레미르는 망설임 없이 전투에서 빠져나와 접속을 종료했다.
어차피 중부대륙의 전선에는 강자들이 무척이나 많았고, 레미르 한명 빠진다고 크게 티가 날 정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녀를 찾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 * *
“아, 이 형놈은 또 무슨 짓을 벌이려고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겁을 주는 거야?”
간지훈이는, 그동안 북부대륙의 차원전쟁 전선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이안이 자리를 비운 뒤 북부대륙 전선은 급속도로 밀려내려오기 시작했고, 헤르스가 훈이에게 부탁하여 북부대륙을 막아달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훈이는, 이안의 메시지를 받자마자 다른 로터스 길드의 랭커들에게 자신의 포지션을 넘기고 이안에게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이안으로부터 들은 퀘스트의 내용이, 북부대륙의 전투보다 최소 3배 이상 흥미로웠기 때문이었다.
“발람, 너 혹시 마우리아 제국이라는 곳에 대해 아는 거 있어?”
훈이의 물음에, 데스나이트 발람이 훈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발람은 그동안 제법 성장이 있었는지, 갑주부터 시작해서 많은 부분이 훨씬 멋있어진 모습이었다.
“정확히는 모르겠다, 주군. 하지만 고대의 제국 이름 중에 그런 제국이 있었다는 정도는 기억나는 것도 같다.”
발람은 데스나이트였다.
그리고 데스나이트들은 ‘전생’을 가지고 있다.
발람 또한 오래 전 종횡무진 활약했던 한 인간영웅의 전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 기억을 끌어오는 것이었다.
“그렇군, 흐흐… 재밌을 것 같지 않냐?”
훈이의 말에 발람이 대답했다.
“흥미로울 것 같기는 하다. 마족들과의 전투도 재밌었지만… 이안이라는 인간에 비하면 흥미가 많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훈이의 입 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갔다.
“이안 형이랑 사냥하면 1~2업 정도는 확실히 보장된단 말이지….”
카노엘도 데려올 까 했었지만, 카노엘마저 빠진다면 북부대륙의 전선이 너무 휘청할 것 같았기에, 그는 전선에 남기로 했다.
이안도 그게 좋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카노엘도 어느새 제법 성장해서, 어지간한 랭커 급의 활약은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한 일곱 시간 정도 남았네. 눈 좀 붙여야 겠다, 발람.”
훈이의 말에 발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주군.”
발람의 대답을 들은 훈이의 신형이, 허공에서 희미해지더니 천천히 사라졌다.
로그아웃을 한 것이었다.
그렇게 이안은,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 효율의 파티를 구상하여 한 명씩 지옥문(?)으로 초대하기 시작했다.
< (5). 신분상승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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