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용의 대지 -2 >
이안이 카르세우스를 향해 물었다.
“카르세우스, 넌 전생에 대한 아무런 기억이 없는 거 아니었어?”
이안의 말에 카르세우스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확실히 대부분의 기억이 유실된 것은 맞다. 하지만 드래곤으로서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은 전부 가지고 있지.”
일리 있는 말이었기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그럼 용의 제단이 뭐 하는 곳인지도 알아?”
카르세우스가 대답했다.
“알고 있다. 용의 제단은….”
잠시 뜸을 들인 카르세우스가 말을 이었다.
“나와 같은 드래곤이, 용신에게 어떤 특별한 제물을 바쳐 새로운 권능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드래곤이 아닌 존재가 용신에게 제물을 바치면, 용신이 그의 소원을 하나 들어준다고도 하지. 그러고 보니 여의주가 왜 이 곳에 있는지도 알 것 같군.”
“음…?”
의아한 표정을 짓는 이안을 보며, 카르세우스가 피식 웃었다.
“아마 누군가가 용신에게 여의주를 바치고, 무언가를 얻어갔을 거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아마 드래곤은 아닐 확률이 높다. 여의주는 드래곤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보물이기 때문이지.”
이안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카르세우스의 말 중에 딱히 이해하기 힘든 것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는 동안, 카카의 표정이 무척이나 어두워졌다.
“카르세우스의 말이 맞다면… 일이 무척이나 어렵게 되어버렸다 주인아.”
“응?”
“여의주가 용신에게 바쳐진 제물이라면, 그것은 용의 제단 깊숙한 곳에 있는 비고에 숨겨져 있을 것이다. 그걸 얻기 위해서는 결국 몰래 슬쩍 해야 하는데… 그 깊숙한 곳에 있는 보물을 찾아내서 훔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위험을 감수해야만 할 거다.”
카르세우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카카의 말이 맞다, 주인아. 어쩌면 목숨을 걸어야 할 거다.”
이안이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다른 방법은 없는 거야? 용신에게 잠깐 빌려달라고 한다거나….”
카카가 빈정대며 말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주인아. 뿍뿍이가 여의주를 사용하는 순간, 여의주는 사라져 버릴 텐데… 어떻게 빌린다는 말이냐.”
“돈도 쓰면 사라지는데 잘만 빌리잖아….”
“여의주 다시 벌어서 갚게?”
“….”
이안은 잠시 생각에 잠겼고, 카카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이제 선택지는 두 개가 있다 주인아.”
“두 개?”
“그렇다.”
“뭔데. 말 해봐.”
카카가 이안의 눈 앞에 둥둥 떠오른 채 설명을 이어갔다.
“첫째로는 여의주를 포기하는 거다. 여의주를 포기하고 주병신보만을 가지고 돌아가는 거지. 주병신보만으로도 어쩌면 차원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으니까. 여의주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물건은 아니니, 다음 기회에 얻는 거다.”
“흐음… 둘째는?”
카카의 말이 곧바로 이어졌다.
“둘째야 당연히 목숨을 걸고 여의주를 훔치는 거다. 이쪽은 성공하기도 힘들 뿐더러, 성공하더라도 용신의 진노를 사게 되겠지.”
“용신이 진노하면 어떻게 되는데?”
이번에는 카르세우스가 대답했다.
“이건 내가 말해주도록 하지.”
이안과 카카의 시선이 다시 카르세우스를 향했고, 카르세우스가 입을 열었다.
“용의 제단은 용신이 내려 보낸 넷의 가디언이 지키고 있다. 아마 그들이 주인을 쫓아 올 거다.”
“가디언?”
“그렇다. 그들은 드래곤의 형상을 하고 있고, 각각 드래곤에 버금가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지(理智)를 가지고 있지 않을 뿐, 아마 가진 힘만을 논하면 각자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보다 훨씬 강력하겠지.”
“크음….”
이안은 순간 갈등했다.
지금 그의 전력으로, 카르세우스보다 훨씬 강력한 넷의 가디언을 상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얀쿤과 카이자르 등의 가신이 있었다면 어떻게 비벼볼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 그에게 가신은 없었다.
왜냐면 시험의 관문에 들어설 때 가신들은 들어올 수 없었고, 이안은 가신들을 데려올 겨를 없이 이동 마법진을 통해 황성을 거쳐 곧바로 용의 대지로 이동했기 때문이었다.
‘어떡하지, 이대로 포기해야 하나…?’
그런데 그 때, 카르세우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 부분은 걱정할 것 없다.”
“음…? 어째서?”
이안의 반문에, 카르세우스가 뿍뿍이를 슬쩍 응시하며 대답했다.
“여의주를 훔치는 데 실패한다면 그들의 손에 죽게 되겠지만, 여의주만 성공적으로 확보한다면… 뿍뿍이가 어비스 드래곤이 될 테니까.”
“에…?”
이안이 뿍뿍이를 힐끗 보았고, 뿍뿍이도 고개를 갸웃 하며 이안을 마주보았다.
“뿍?”
카르세우스의 말이 이어졌다.
“어비스 드래곤은… 일반적인 드래곤이 아니다. 드래곤으로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권능을 손에 넣은… 완전체라 할 수 있지. 어비스 드래곤의 힘이 더해진다면, 용신의 가디언들이라 하더라도 싸워볼 만 하다.”
이안은 뿍뿍이를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보았다.
‘뿍뿍이가 현재 전설 등급이니까… 어비스 드래곤이 된다면 아마도 신화등급이 되겠지.’
‘신화등급’이라는 말은 이안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래, 영웅등급과 전설등급에 어마어마한 격차가 존재했듯, 신화등급이라면 완전히 격이 다른 힘을 가지고 있을 거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안의 선택은 굳어질 수 밖에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뿍뿍이를 진화시키고 싶어진 것이다.
이안이 카르세우스를 향해 물었다.
“그런데 카르세우스, 가디언들은 그렇다치고, 용신이라는 어마어마한 존재가 쫓아올 일은 없는 거야?”
그에 카카와 카르세우스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카카가 말했다.
“주인아, 신이라는 존재는 함부로 피조물들의 세계에 관여할 수 없다.”
“왜?”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그들이 세상사에 관여하기 시작한다면… 거의 모든 차원계가 난장판이 되어 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신의 관여가 가능했다면, 주인이 이렇게 고생할 일도 없었겠지.”
“어째서?”
“인간계를 관장하는 다섯 신이 마계의 침공을 좌시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들의 힘이라면 마계의 침공 정도는 손쉽게 저지할 수 있을 테지. 하지만 그들이 끼어든다면 마계를 관장하는 마신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그럼 정말 파멸만이 남는 거다.”
“으음… 그렇군.”
대략적인 상황을 이해한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고, 카카가 이안을 향해 확인 차 다시 한번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냐 주인아.”
이안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이미 답은 알고 있잖아?”
카르세우스가 피식 웃으며 자신의 대도(大刀)를 만지작거렸다.
그는 인간형으로 폴리모프해 있을 때, 매번 다른 종류의 무기를 다루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이래서 주인을 좋아한다. 강력한 적과 싸우는 것이야 말로, 심장을 뛰게 하는 일이지.”
카르세우스의 말에, 카카가 빈정댔다.
“너 주인이랑 사냥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잖아.”
카르세우스가 발끈하며 대답했다.
“아니다! 내가 싫어하는 건 단순한 반복전투일 뿐이다. 새로운 강력한 적을 만나 전투하는 것은 즐겁다. 단지… 단순 노가다가 피곤할 뿐이지.”
반박할 수 없는 카르세우스의 말에, 이안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 뭐… 어쨌든 그럼 여의주를 슬쩍 하러 가볼까?”
이안은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지도를 살피기 시작했다.
이제 용의 제단에 몰래 잠입할 루트를 찾을 차례였다.
* * *
3일 동안 랭커들을 모니터링 하여 밸런스에 관련한 보고서를 짜야 하는 나지찬은, 아예 모니터링실에 군것질거리까지 가져다 놓고 살림을 차린 상태였다.
심지어 그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2일째 집에 가지 않고 있었다.
그 이유는 업무에 대한 사명감 같은 것이 아니었다.
단지 모니터링이 너무 재밌었기 때문.
“이거 너무 꿀잼이라 다른 걸 할 수가 없는데?”
밸런스 보고서를 만들어야 하는 나지찬은 최소 열 명 이상의 랭커 영상을 골고루 모니터링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열 시간도 넘게, 그의 눈은 이안의 영상이 나오는 모니터에만 박혀 있었다.
“어우, 저 멍청이들. QA팀 얼간이들인 것 같은데 감히 이안느님한테 덤비다니….”
그는 이안이 다섯 악마들과 혈전을 벌이는 장면부터, 용의 대지에 도착하는 장면까지.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안이 용의 대지에 도착한 순간, 나지찬은 더욱 흥미진진한 표정이 되었다.
“뭐야, 이 미친놈 설마 용의 제단에 들어가려는 거야?”
원래 기획팀의 기획의도는, 인간계 진영의 유저들 중 누군가가 마우리아 제국에서 주병신보를 얻어 마족들과의 균형을 맞추는 것 까지였다.
그리고 여의주와 관련된 퀘스트는 별개였다.
여의주를 얻어 어비스 드래곤을 만들어내는 것은, 소환술사 전용 퀘스트였고, 지금 시점에 클리어 되어서는 안 되는 퀘스트였다.
카일란의 시나리오 기획 상, 어비스 드래곤이 등장하는 순간, 차원전쟁이 그대로 끝나버리게 되기 때문이었다.
나지찬은 오징어를 길게 뜯어 질겅질겅 씹으며 중얼거렸다.
“정말 이안이 여기서 여의주까지 얻을 수 있을까? 그럼 진짜 기획팀 물 제대로 먹는 건데.”
마족과 인간의 전쟁구도는, 최소 반년 이상 우려먹을 계획으로 기획된 시나리오였다.
만약 여기서 어비스 드래곤이 탄생되고, 이안이 전쟁을 종말 시켜 버린다면… LB사의 모든 기획팀과 개발팀은 최소 한달 간 집에 가는 것을 포기해야할 지도 몰랐다.
마치 제 3자라도 되는 듯 흥미롭게 이안을 지켜보는 나지찬.
그런데 그 때, 그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지이잉-
그것은 김의환 대리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김대리 : 보고서 작성은 잘 되 가냐? 밸런스는 좀 어때?]
그에 나지찬은 피식 웃으며 메시지를 찍기 시작했다.
[나지찬 : 밸런스야 뭐 기가 막히죠. 기획팀에서 얼마나 고심을 해서 만들어 놓은 밸런슨데요.]
메시지는 곧바로 돌아왔다.
[김대리 : 오… 역시 그렇지? 이대로 가면 괜찮겠지?]
나지찬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장을 보냈다.
[나지찬 : 이안만 어떻게 암살하면 밸런스 딱 맞을 것 같슴다. 얘만 빼면 진짜 밸런스 기가 막힐 것 같아요.]
[김대리 : ….]
김대리의 메시지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지찬의 시선이 다시 모니터를 향했다.
‘이건 게임 밸런스가 안 맞는 게 아니라, 저 놈이 미친 놈 인 거지.’
보고서는 이미 첫날에 전부 작성해 둔 상태였다.
어차피 이안을 밸런싱 보고서에 염두해 두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이안 하나가 너무 강하다고 해서 마족을 지금보다 더 강하게 만든다면, 아마 인간 종족의 유저들은 전부 게임을 접고 싶어질 테니까.
그렇기 때문에 나지찬에게 있어서 남은 2일은, 이안의 영상을 관람하는 시간이었다.
와그작-
감자칩을 꺼내서 맛깔나게 씹어 먹은 나지찬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는 이편이 좀 더 재밌는 것 같은데…. 이런 변수 메이커가 하나쯤은 있어 줘야 기획하는 재미가 있지.”
다른 기획팀이 들었다면 기겁했을만한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한 나지찬은, 이안의 영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1). 용의 대지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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