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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307화 (330/1,027)

< (8). 전멸전 -2 (13권 완) >

*          *          *

푸른 바람줄기는, 협곡을 굽이굽이 타고, 전장의 중심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마족들과 인간들이 대립하는 그 사이에 내려앉은 푸른 바람결은, 그 자리를 빙빙 맴돌며 천천히 어떠한 형상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저건 또 뭐지…?”

정적 속에 누군가의 작은 중얼거림이 새어나왔고, 그것은 모두의 궁금증을 대변하고 있었다.

전세가 이미 기울 대로 기울어서인지, 유저들은 작금의 상황도 잊은 채 신비로운 기운을 머금고 있는 푸른 바람에 시선을 모았다.

그리고 그 때.

모두의 귓가에, 알 수 없는 이의 웅혼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여의주의 주인 된 자는, 가진 바 용맹(勇猛)이 무릇 백수(百獸)의 왕인 범(虎)과 같아야 하며….]

그리고 그 목소리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다른 유저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표정을 하고 있던 이안의 두 눈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뭐지…? 어디선가 들어본 듯 한 이 목소리….’

이안은 기억을 쥐어짜 내기 시작했다.

지금 들리는 웅혼한 목소리는, 분명 이안의 뇌리 안에 강렬하게 남아있는 목소리임이 분명했다.

‘여의주’라는 첫마디가 울려 퍼지는 순간, 온 몸이 찌릿해 지는 듯 한 느낌을 받았으니까.

그리고 이안은, 어렵지 않게 목소리의 주인공을 생각해 낼 수 있었다.

‘이 목소리는 분명, 용신… 세카이토…?!’

사실 그냥 음성만을 듣고 기억해 내려 했더라면, 이안이 세카이토를 이렇게 빨리 생각해 내는 것은 힘들었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여의주라는 단어와 그의 강렬한 목소리가 매칭되면서, 단번에 그가 떠오른 것이었다.

이안의 두 눈이 순간 기대감으로 차올랐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그 정체모를 파란 소용돌이에 고정되었다.

의문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 기개는 태산(泰山)과 같고, 뜻(意)은 올곧은 대나무(竹)와 같아야 하노라.]

휘이잉-!

가볍게 불어온 바람은 조금씩 거칠게 휘몰아치기 시작했고, 그 파란 기운이 천천히 이안의 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꿀꺽-

이안은 마른침을 삼켰다.

‘됐어…! 된 거라고!’

이안의 얼굴에 희열이 번져 나갔다.

용신이 자신의 능력을 ‘인정’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여의주의 봉인 해제.

그것은 곧 어비스 드래곤의 탄생을 의미했고, 어비스 드래곤의 등장은….

‘차원전쟁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겠지. 물론 인간계의 승리로 말이야.’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그 자세한 내막은 이안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단지 지금까지의 정황을 생각했을 때 도출된 결론이었을 뿐.

하지만 그것은 나중 문제였다.

지금 용신의 등장은, 새카만 어둠 속에 내려온 한 줄기 빛과 같은 것이었으니까.

쿠르릉-

이안의 앞에 멈춰 선 파란 소용돌이는, 점차 그 기세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안의 눈 앞에, 낯익은 은발의 소년이 나타났다.

‘세카이토…!’

이안은 입을 열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용신 세카이토가 등장한 순간, AI가 또다시 이안의 전신을 지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안은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퀘스트가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이안, 그대의 능력은 사실 내 기준에 미치지 못하였다.]

나직한 어조로 말하는 용신과 눈을 마주치며,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세카이토. 제 부족한 재주가 지고한 존재인 용신의 눈에 찰 리 없다는 것은….”

계속해서 세카이토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여의주의 주인에게 알량한 힘보다 더욱 필요한 것은, 바로 굳은 심지와 의기(義氣).]

세카이토가 이안의 두 눈을 지긋이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을 떼었다.

[그대는 인간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강인한 용맹과 기개를 지녔도다.]

이안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감사합니다, 용신이시여….”

세카이토가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 이안을 향해 뻗었다.

[그리하여, 나 세카이토는…. 기꺼이 그대에게 나의 힘을 빌려주도록 하겠노라.]

그에 이안이 어떤 대답을 하려는 순간, 마왕 하르세인이 당황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용신이시여, 그대는 위대한 일족의 아버지이자, 한 차원계를 책임지는 수호자. 그대가 이렇게 현세의 일에 관여하는 것은 태초의 인과율(因果律)을 어기는 것이 아닌가!]

하르세인의 외침에, 세카이토의 시선이 살짝 돌아갔다.

그리고 그의 말이 이어졌다.

[걱정 말라. 이 세카이토가 인과율을 어기는 우를 범할 리 없지 않은가. 나는 단지 이 인간이 갖고 있던 용족의 권능 중 하나를 허(許)해주기 위해 잠시 이곳에 현신했을 뿐.]

그러자 하르세인의 굳어졌던 표정이 풀어졌다.

하르세인은 용신이 직접 인간계의 편에 서서 싸울 것이라 오해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아니라면, 이안이 용신에게 어떤 힘을 받는다 한들 한낱 인간 따위가 마왕의 권능을 당해낼 수 있을 리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

하지만 하르세인은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용신이 직접적인 관여를 하지 않겠다 선언했지만, 그가 돌아가기 전 까지는 경거망동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었으니까.

어찌되었든 하르세인의 오해(?)를 풀어 준 세카이토는, 다시 이안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푸른 빛줄기가 모여 작은 구체를 만들었고, 그것이 이안의 품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이안의 눈 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용신 ‘세카이토’에게 자격을 인정받았습니다.]

[‘여의주’아이템에 걸려 있던 봉인이 해제됩니다.]

[봉인되어있던 능력이 해제되어, 매력과 통솔력 능력치가 15%만큼 상승합니다.]

[봉인되어 있던 능력이 해제되어, 이제부터 모든 마법 피해를 17%만큼 무효화시키게 됩니다.]

:

:

이안의 AI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세카이토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제게 허락해 주신 이 능력. 세카이토님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의(義)에 어긋나지 않게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세카이토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그래, 그것이면 되었다.]

말을 마친 세카이토의 신형이, 천천히 옅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완전히 사라진 순간, 하르세인이 비릿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이안에게 다가왔다.

[이제 장난질은 끝났는가, 인간.]

하르세인의 말에 이안은 뭔가 대답을 하려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이안의 몸은 AI가 움직이고 있었다.

이안이. 정확히 말하자면 이안의 AI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하르세인의 말에 대꾸했다.

“하하, 장난질이라…. 잠시 후 그대들을 소멸시키고 이 전쟁을 종결시킬 ‘이것’이 장난이라면, 그것은 너무 슬픈 얘기가 아닌가.”

[그게 무슨 …!]

하르세인이 뭐라 대꾸하려던 그 순간.

이안이 품 속에서 여의주를 꺼내어 들었다.

그리고 이안의 손에 들린 여의주에서, 강렬한 오색 빛의 광채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안의 말이 이어졌다.

“이제 모든 맹약의 조건이 전부 갖춰졌다.”

이안의 시선이 뿍뿍이에게로 향했다.

“심연의 힘이여… 깨어나라…!!”

협곡 전체가 울릴 정도로 강렬한 외침.

작은 인간의 체구에서 흘러나온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만큼 웅혼하고 힘있는 목소리가 울려퍼지더니, 뿍뿍이의 온 몸이 여의주의 광채에 휘감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난 번, AI가 아닌 이안이 직접 뿍뿍이에게 여의주를 사용했을 때와는 또 다른 강렬한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하르세인과 다른 마왕들은, 순간 기겁한 표정이 되었다.

[아니, 이… 이럴 수가…?!]

[그럴 리가! 심연의 주인이 봉인된 지 아직 100년도 채 지나지 않았거늘!]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로다!]

마왕들은 경악했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눈부신 광채에 휘감긴 뿍뿍이의 체구는 빠르게 커지기 시작했다.

우득- 우드득-!

뿍뿍이의 전신에 있는 모든 관절과 뼈들이, 마치 재조립 되기라도 하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안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뿍뿍이의 상태창을 확인해 보았다.

[진화 중]

이 세 글자를 확인한 순간 더욱 빠르게 뛰기 시작한 이안의 심장.

뿍뿍이의 등에 붙어있던 작은 날개는 점점 더 커져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했고, 비교적 짧은 목과 둥글둥글했던 머리는 날렵하고 용맹한 드래곤의 그것으로 탈바꿈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유저들은, 그저 멍한 표정으로 뿍뿍이의 진화를 지켜볼 뿐이었다.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할 수 없었다.

오늘, 그것도 반나절 만에 너무 어마어마한 일들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유저들은 이제 더 이상 놀랄 힘도 없었다.

[아아… 정말 심연의 권능이 벌써 깨어난 것이란 말인가….]

[오늘을 위해 3천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왔거늘….]

마왕들의 나직한 읊조림이 이안의 귀에 슬쩍 슬쩍 들려왔다.

원래 이안의 몸 안에 들어가 있었다면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였지만, 지금 이안은 제 3의 공간에서 그들을 관조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안은, 마왕들의 중얼거림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후후, 이렇게 극적일 수가 있나. 정말 이보다 완벽한 타이밍은 없을 거야. 사랑해요 용신님!!’

그런데 그 때.

진화중이던 뿍뿍이의 날개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펄럭- 펄럭-!

뿍뿍이의 신형은 점점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으며, 그와 동시에 온 몸에는, 신비한 푸른 빛을 띈 용의 비늘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기존의 몸집보다 거의 십 수 배 이상은 거대한 어비스 드래곤의 위용.

조금 특이한 점은, 얼굴의 양 옆에 물갈퀴같이 생긴 뾰족하고 거대한 지느러미가 돋아 있다는 점이었다.

‘멋지다…!’

이안은 황홀한 눈빛이 되어 뿍뿍이를 응시했고, 잠시 후 진화가 끝난 뿍뿍이가 커다랗게 포효했다.

“캬아아오!”

그리고 이안의 눈 앞에,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시스템 메시지가 연이어 떠오르기 시작했다.

띠링-!

[소환수 ‘뿍뿍이(귀룡)’가 ‘어비스 드래곤’으로 진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최초로 ‘전설’등급의 소환수를 진화시켜 ‘신화’등급의 소환수를 획득했습니다.]

[‘전설의 테이머’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명성을 50만 만큼 획득합니다.]

:

:

진화를 마친 뿍뿍이가, 거대한 날개를 크게 펼치며 바닥에 내려앉았다.

쿠웅-!

그리고 뿍뿍이의 입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3천년 전의 패전을 잊었는가, 마왕이여. 또 다시 인간계에 발을 들이다니… 어리석구나…!]

심연의 아득한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듯한 분노가 담긴 어비스 드래곤의 목소리.

뿍뿍이와 눈이 마주친 하르세인이, 자신의 무기를 고쳐잡으며 긴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전쟁과 정복은 우리 마족의 본능. 우리는 그동안 오늘만을 기다리며 힘을 키워왔다.]

어비스 드래곤이 대답했다.

[하지만 심연의 힘은 또 다시 깨어났고, 3천년 전과 마찬가지로 그대들은 절망해야만 할 것이다.]

하르세인이 씨익 웃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발이 떨어지자, 다른 마왕들도 한걸음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글쎄. 그대의 힘이 아무리 강대하다고 하더라도, 그대는 단지 차원의 중재자일 뿐. 오대신의 힘이 당도하기 전에 네 놈을 먼저 소멸시켜 버린다면 이 전쟁은 우리의 승리가 될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겠지. 중재자의 힘 없이 신이 현세에 권능을 발현할 수는 없을 테니까.]

[후후, 잘 알고 있군.]

어비스 드래곤.

뿍뿍이가 여유 넘치는 표정으로 마왕들을 향해 한 마디 덧붙였다.

[다만, 그것이 가능하다면 말이지.]

< (8). 전멸전 -2 (13권 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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