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마력광산 -3 >
* * *
‘고르일족, 뭉크스족, 그리고 드워프족이라….’
카카가 말한 세 가지 종족 중, 이안이 들어본 종족은 드워프 뿐이었다.
사실 드워프야, 판타지 세계관을 가진 게임에서라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종족이었으니 이안이 모를 리 없었다.
“고르 일족이나 뭉크스족은 아마 찾기 쉬울 거다.”
“그래?”
“특히 고르 일족은 발에 치일 정도로 널려있지.”
카카의 말 대로였다.
노예목록을 쭉 훑다 보면, 한 페이지에 10개체 정도는 ‘고르’ 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종족이었던 것.
한 페이지에서 총 100개체의 노예목록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고르족은 정말 흔한 종족이었다.
이안은 고르 종족 중 하나의 정보창을 열어 읽어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얘들은 생긴게 골렘이랑 비슷하네. 미니 골렘 같은 느낌이군.”
카카가 대답했다.
“원래 고르 족은 골렘의 일종이다 주인아. 체력이 엄청난데다 이지(理智)가 없고, 먹는 것도 따로 없어 유지비조차 별로 들지 않지. 그야말로 노동을 위해 태어난 종족이라고 할 수 있다.”
“허얼, 뭐야. 어떻게 그런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거지?”
“글쎄. 이건 나도 확실하지 않은 건데… 고르족을 창조한 것이 거신족이라고 알고 있다.”
“으음?”
“고대의 거신족들이 자신들을 위해 일할 노예로서 만들어낸 것이, 바로 골렘들과 고르족 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렇군….”
아무리 게임 속이라고 해도 존재 자체가 너무 억지스러운 생명체라 생각했는데, 카카가 말해준 이야기 대로라면 어느정도 이해도 되었다.
‘역시 카일란의 세계관은 그냥 만들어진 게 하나도 없군.’
이안은 속으로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굳이 뭉크스나 드워프족을 찾아낼 필요가 있을까? 고르족이 채광사역노예로 부리기에는 최고인 것 같은데…?”
카카가 고개를 저었다.
“노동력만큼은 단연 고르족을 따라올 노예가 없을 것이다, 주인아. 하지만 모든 사역노예를 고르족만으로 채운다면, 아마 주인의 광산에서는 철광석이나 최하급 마정석, 최하급 마령석과 같은 하급 광물들만 쌓이겠지.”
“그게 무슨 말이야? 게다가 철광석은 채굴가능 목록에도 없던 광물인데?”
“마계의 거의 모든 광산에서 기본적으로 채굴 가능한 광물이 철광석이다. 따로 광산 스펙에 적혀있지 않더라도 철광석은 채굴이 가능한 광물일 거다.”
“그렇군….”
“그리고 고르족이 일을 잘 하기는 하지만, 이지가 없는 것이 문제다. 고르족은 아마 채광 중에 최상급 마령석이 발견되더라도, 그냥 파괴해 버릴 수도 있다.”
“….”
그렇다면 심각한 문제였다.
무려 현금가치 수천만원 짜리의 광물을 날려버릴 수 있는 노예를 고용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뭉크스족이 필요하다, 주인아.”
“그래? 뭉크스족은 어떤 역할이지?”
지금까지 5페이지도 넘는 노예목록을 확인했음에도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뭉크스족.
카카의 설명이 이어졌다.
“뭉크스족은 고르 일족과 역할이 완전 반대다, 주인아.”
“그래?”
카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뭉크스족의 역할은 광물을 직접 캐는 것 보다 탐색하는 데에 더 최적화되어있다. 고르 일족과 마찬가지로 이지가 존재하지 않는 생명체지만, 광물 냄새 하나만큼은 귀신같이 맡지.”
“오호…?”
“이들은 광물을 먹고 사는 종족이다. 그렇기에 광물 냄새를 귀신같이 맡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거다.”
이안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얘들이 광물 캐다가 지가 먹어버리면 어떡해?”
카카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일은 없다, 주인아. 하루에 최하급 마정석 10개 정도만 먹여주면, 더 이상의 광물은 욕심내지 않고 열심히 일할 거다.”
“그렇군….”
카카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도, 이안은 꼼꼼히 노예목록을 확인하며 페이지를 넘겼다.
그러던 그때.
“어어…?”
“왜 그러냐, 주인아.”
“여기, 드워프가 있는데?”
“뭐?”
놀란 표정으로 서둘러 정보창을 오픈하는 이안.
처음 카카가 사역노예에 대해 설명할 때, 드워프는 무척이나 희귀하다는 이야기를 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카카는 이안보다 더욱 놀란 표정이었다.
이안에게는 가볍게 말했을 뿐이었지만, 카카조차 사역노예로 등장한 드워프는 처음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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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르크 한 -
고용가 : 5195000골드 / 월
레벨 : 56
종족 : 아이언 드워프
성별 : 남 (男)
분류 : 노예
등급 : 유일
성격 : 호기심 많은
공격력 : 995
방어력 : 1450
민첩성 : 555
지 능 : 1876
생명력 : 17775 / 17775
고유능력 A (종족고유)(종족특화)(강화능력)
- 알 수 없음
고유능력 B (희귀능력)
- 알 수 없음
고유능력 C (종족고유)(희귀능력)(진화능력)
- 알 수 없음
평생을 광물과 함께 살아가는 드워프의 일족이다.
다른 드워프 일족과 마찬가지로 손재주가 뛰어나고 무언가를 제작하는 데 취미가 있지만, 희귀한 광물을 수집하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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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얼….”
이안의 입에서 헛바람이 새어나왔다.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정보 창 가장 위쪽에 쓰여 있는 드워프의 월급.
“야, 카카. 이거 좀 너무한 거 아니냐?”
“뭐가 말이냐, 주인아.”
“얘 월급이 노예 주제에 500만골드가 넘어.”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아니, 내가 알기로 제국의 기사들 월급도 500만골드가 안 되는데, 노예 주제에 이게 말이 되는 거냐.”
이안은 어이가 없었다.
500만 골드면, 현금 가치로도 5~600만원을 왔다 갔다 하는 수준.
‘게임 내 노예 월급이 무슨 어지간한 직장인 월급보다 쎄잖아?’
하지만 카카는 별로 놀라는 표정이 아니었다.
“500만 골드 투자해서 그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으면 된 거 아니냐 주인아.”
“그, 그렇지.”
“그리고 저 드워프는 아마, 일반적인 노예랑 케이스가 좀 많이 다를 거다.”
“으응…?”
“한번 세부정보를 더 열어 봐라, 주인아.”
“그러지 뭐.”
그리고 이안은, 정보창 가장 아래쪽에 있는 세부정보 창을 추가로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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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세부정보-
노동력 - 65
손재주 - 89
관찰력 - 82
지구력 - 52
충성도 - 42
분류 - 기간 제 노예
잔여계약기간 - 63일 21시간
* 계약기간이 정해져 있는 기간제 노예이다.
노예의 계약기간이 끝나고 나서도 계속 고용하고 싶다면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 재계약 협상을 다시 진행해야 한다.
(단, 계약기간이 끝난 뒤에는 노예의 신분이 아니므로, 계약방법이 바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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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정보를 다 읽은 이안은,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생각지 못한 내용이 쓰여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해하기 힘든 내용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기간제 노예라… 거기다가 계약기간이 끝나게 되면 노예의 신분이 아니라고?’
하지만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카카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이안은 카카에게 물어보았다.
“카카, 방금 확인했는데, 기간제 노예라는 게 정확히 뭐야?”
그에 카카가 곧바로 대답했다.
“기간제 노예는 말 그대로 계약기간이 정해져 있는 노예다 주인아.”
“그렇겠지?”
“아마 이 드워프의 경우에는, 전쟁노예 같은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이유로 고위마족과 노예계약을 하게 된 케이스인 것 같다.”
“으음… 그래서 계약기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본래의 신분을 찾는 거고?”
카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주인아.”
“으음….”
이안은 머릿속으로 정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노예 시스템도 생각보다 복잡하구나.’
그리고 그런 이안을 향해, 카카의 설명이 이어졌다.
“주인이 나를 낙찰받았던 노예경매장은, 말 그대로 노예를 거래해 소유권을 가져오는 경매장이다. 그리고 지금 주인이 보고 있는 이 노예시장은, 소유권을 사는 것이 아닌 주인이 있는 노예를 빌려오는 형식이지.”
“아하…?”
이안은 카카를 얻을 당시, 특별한 퀘스트를 클리어 해서 따로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었다.
그랬기에 노예에게 월급을 주는 방식을 이상하다고 생각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럼 내가 지불하게 될 노예의 월급은, 원래의 소유주에게로 돌아가는 돈이겠네?”
“그렇다.”
이안은 이제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그러니까 500만 골드나 필요한 거였구나. 하긴, 노예에게 500만 골드의 월급을 준다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기는 하지. 하지만 고용주에게 그 돈이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이해가 되네.’
그런데 그 때, 이안의 뇌리를 스쳐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그럼 혹시 카카도 그럼 원래부터 노예신분이 아니라, 어떤 이유에 의해서 노예가 된 건가? 계약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았으니 기간제 노예는 아닌 게 분명한데….’
귀여워서 크게 신경쓰고 있지는 않았지만, 노예 치고는 건방진 말투와 행동. 그리고 어마어마한 양의 지식으로 미루어 볼 때, 그것은 충분히 가능한 가정이었다.
사실 가정이라기 보단 거의 확신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안이 카카를 슬쩍 보며 말했다.
“야, 카카.”
“왜 그러냐, 주인.”
“그럼 나도 너를 이 노예시장에 등록할 수 있겠네?”
“…?!”
순간적으로 얼어붙는 카카의 표정.
이안은 카카에게 장난치는 것이 재밌었기에,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흐음, 그럼 우리 카카는 얼마 정도 책정하면 좋으려나…?”
이안의 장난에 카카는 완전히 울상이 되었다.
“주인아, 그러지 마라. 나는 딱히 쓸 데도 없어서 월급도 별로 받을 수 없을 거다.”
그 말에, 이안의 입에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사실 카카만큼 쓸모있는 노예가 또 어디 있을까?
컨텐츠를 개척하는 입장인 최고랭커 이안에게, 어지간한 정보는 죄다 가지고 있는 카카만큼 쓸모 있는 존재는 없는 것이다.
이안은 잠시 동안 카카와 주종간의 우애(?)를 나눈 뒤, 다시 드워프의 정보창을 꼼꼼하게 훑었다.
그리고 카카를 향해 물었다.
“그래서 결론은? 이 드워프를 고용하는 게 이득일까?”
카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다. 무조건 고용해야 한다, 주인아.”
“으음….”
“다만 아쉬운 것은, 계약일이 60일 정도 밖에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다. 60일이 지나서 노예에서 해방되고 나면, 드워프는 주인의 광산을 떠날 확률이 높지.”
“그렇군.”
이안은 인벤토리를 열어 남아있는 골드를 확인했다.
‘하아… 이 녀석 고용하고 나면 이제 진짜 빈털터리가 되는 거군.’
마계에서는 영지 금고에 있는 돈을 송금 받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한동안은 정말 빈털터리로 살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 뭐 카카 말을 한번 믿어 보자.’
잠시간의 고민 끝에, 이안은 결국 드워프를 고용하기로 했다.
띠링-
[5195000골드를 지불하셨습니다.]
[노예, ‘우르크 한’을 고용하셨습니다.]
[마력광산의 첫 번째 사역노예를 고용하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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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마력광산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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