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잊혀진 영혼의 무덤 -2 >
* * *
훈이가 당황해서 입을 쩍 벌렸다.
“뭐야? 대체 몇 마리야? 하나… 둘… 셋….”
이안이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열 일곱 마리네, 총.”
“….”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워진 이안이, 발록들의 면면을 찬찬히 훑었다.
‘뭐지? 아무리 군락이라고 해도 끽해야 5~6개체 정도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일반적으로 군락이란, 최소 50~60개체 이상의 같은 몬스터들이 모여있는 곳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렇다고해도, 그 모든 숫자가 한 자리에 전부 모여 있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 안에서도 적게는 3~4마리. 많게는 7~8마리 정도가 모여 총 50개체가 넘는 마수로 이루어진 군락을 이루게 되는 것이었으니까.
심지어 사령의 탑에서 매 층 군집해서 등장했던 전설의 마수들도, 한번에 7개체를 넘지는 않았었다.
그런 실정인데, 다른 전설마수도 아니고 무려 발록이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많이 등장할 것이라고는 당연히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구역 단위도 두 개 밖에 차이나지 않는데 갑자기 난이도가 몇 배는 올라간 느낌이랄까?
그런데 그 때, 훈이가 이안을 툭툭 치며 불렀다.
“이안형, 근데 저 발록들… 이름이 좀 이상한데?”
“응?”
훈이의 말에, 이안은 조금 앞으로 다가가 가장 가까운 곳을 움직이고 있는 발록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머리 위에 떠 있는 몬스터 네임을 확인했다.
[주니어 발록 / Lv 265]
“오호…?” 주니어 발록 이라는 마수 이름은, 이안조차도 듣도 보도 못한 것.
게다가 주니어라는 이름에 걸맞게 레벨도 확실히 낮지 않은가?
‘이 정도라면 해 볼 만 할 수도 있겠는데?’
이안은 찬찬히 나머지 발록들도 확인했다.
한 번에 시뻘건 발록이 십 수 마리가 등장해서, 레벨조차 확인해 보지 못하고 쫄았던 것이었다.
게다가 처음 발견했던 한 마리는 355레벨인 일반적인 발록이었기에, 새로 등장한 녀석들도 다 그럴 것이라 지레짐작한 것도 있었다.
‘264… 271… 252…. 새로 등장한 녀석들은 다 이 정도 레벨대군.’
카카를 통해 멀찍이 있는 발록까지 전부 다 확인한 이안은,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자, 이거… 이 정도라면 우리한테 승산이 없지는 않아. 한번 트라이해 볼 만 하다고.”
그에 훈이가 반문했다.
“아무리 레벨이 낮은 주니어발록인지 뭔지라고 해도… 숫자가 너무 많지 않아? 저 정도 숫자가 모여 있으면 최상급 마수들이라도 쉽지 않을 텐데….”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확실히 쉽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상황이 꼬이기 시작한다면… 분명 우리가 지겠지.”
‘영혼잠식’ 고유능력은 피아를 가리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만약 발록의 영혼잠식이, 생명력이 얼마 남지 않은 다른 발록에게 씌워진다면, 그 순간 다 죽어가던 발록이 무적이 될 것이며 더해서 전투력도 30%만큼 상승할 것이다.
게다가 영혼잠식의 지속시간도 30분이나 되었으니, 이만큼 답 없는 능력도 없었다.
이에 대한 대비책을 구상하던 이안이 문득 중얼거렸다.
“레벨이 낮은 주니어발록부터 집중공격해서 하나씩 끊어내야 해. 변수는 주니어발록이 일반 발록과 다른 고유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건데….”
그 때 옆에 있던 카노엘이 이안을 향해 말했다.
“형, 아마 주니어발록이라고 고유능력이 일반 발록과 다르지는 않을 거야.”
거의 단정적인 카노엘의 말에, 이안은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으응? 그걸 어떻게 알아? 어쨌든 몬스터 이름은 다르잖아? 혹시 주니어 발록을 만나보기라도 한 거야?”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혹시나 해서 물어본 이안.
카노엘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형, 혹시 스테라곤 이라는 소환수 알아?”
소환수라면 거의 대부분 알고 있는 이안은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알지. 중부대륙 남쪽지역에서 잡히는 영웅등급 소환수 아냐. 그건 왜?”
스테라곤은 제법 유명한 소환수였다.
드레이크와 비슷한 느낌의, 보급형 드래곤 소환수라고 해야 할까?
훌륭한 기동성과 공격력도 가지고 있었으며, 비행이 가능하고 외형도 나름 멋들어진 모습인 스테라곤은, 무척이나 인기가 많았다.
그래서 중부대륙 남부에 있는 스테라곤의 둥지에, 스테라곤을 포획하거나 그 알을 채집하기 위한 파티가 항상 끊이지 않을 정도.
물론 영웅등급의 드래곤 타입인 만큼, 아무나 넘볼 수 있는 소환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170~190정도의 레벨대 소환술사라면 충분히 포획을 트라이해 볼 수 있는 수준이었고, 이제 그 정도 레벨을 달성한 소환술사들은 몇백 명은 되는 수준이었기에, 경매장에도 제법 많이 풀려있는 소환수이기도 했다.
카노엘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그거 잡으러 스테라곤 둥지 갔다가, 주니어 스테라곤을 만난 적이 있거든.”
“오…?”
흥미가 동하기 시작햇는지, 훈이도 카노엘의 옆에 다가와 귀기울여 듣기 시작했다.
“그런데 스테라곤의 고유능력을 그대로 다 가지고 있더라고. 다 성장한 스테라곤이랑 다른 점은, 고유능력의 계수들이 더 낮다는 정도?”
“그러니까… 발록도 비슷할 거다?”
“그렇지. 아마 주니어발록도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 주니어 스테라곤의 고유능력 계수는 전체적으로 일반 스테라곤보다 30~40%정도 낮았던 것 같아. 내가 일일이 포획해서 비교해 봤거든.”
이안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그렇다면 난이도가 생각했던 것 보다 더 낮아진다는 얘기였으니까.
“짜식, 가르친 보람이 있네. 역시 내 수제자야.”
이안의 칭찬에 신이 난 카노엘이 한 마디 덧붙였다.
“레벨 올려보면서 성장률 계수도 다 기록해서 데이터로 가지고 있어. 형도 줄까?”
이안은 진심으로 감탄한 표정이 되었다.
“크으… 우리 노엘이가 이제 제법 컸단 말이지.”
훈이는 질린 듯한 눈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으으, 형까지 왜 이래. 이안형한테 옮지 말라고…!”
이안이 눈을 가늘게 뜨며 대꾸했다.
“옮긴 뭘 옮아.”
“뭐겠어, 덕후기질이지.”
“덕후는 너 아니었냐?”
그런데 두 사람이 투닥거리는 와중에, 카노엘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그의 얘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던 것이다.
“잠깐, 알려줄 정보가 더 있어.”
그에 훈이와 이안의 시선이 동시에 다시 카노엘을 향했고, 그의 말이 이어졌다.
“‘주니어’ 개체에는 또 다른 특성이 있다고.”
이안은 살짝 흥분된(?) 표정으로 재촉했다.
“오, 그게 뭔데? 뭔가 또 있는 거야?”
훈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그래도 궁금하기는 했는지, 이어질 카노엘의 말을 가만히 기다렸다.
그리고 카노엘은, 잠시 뜸을 들인 뒤 입을 열었다.
“구체적으로 정확히는 모르는데, 주니어 개체들은 모체(母體)랑 연결이 되어 있는 것 같더라고.”
“연결…?”
“우선 확실한 몇 가지만 말해주면, 모체가 되는 성체의 주변에서 일정 범위 이상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한다는 점. 그리고 주니어 개체의 사망에 모체가 무척이나 민감하다는 점.”
“민감하다는 건 무슨 말이야.”
“마치 부모와 자식관계같다는 거야. 주니어 개체를 죽이려고 하면, 모체가 자기 목숨을 걸어서라도 막더라고.”
“오호…?”
카노엘로부터 뜻 밖의 정보들을 접한 이안은, 머릿속에서 구상해 놓았던 전략들을 빠르게 수정했다.
그리고 훈이와 카노엘에게 오더를 내리기 시작했다.
“자, 이 정도면 확실히 이길 수 있겠어.”
훈이가 눈을 빛내며 물어봤다.
“승률은?”
“한… 93.3%?”
“뭐야, 생각보다 낮은데?”
“변수가 좀 있어서 그래. 그래도 베히모스 때 보단 높잖아?”
누가 본다면 농담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두 사람의 대화였지만, 둘의 표정은 무척이나 진지했다.
이안의 입에서 나온 승률이라는 게 밑도 끝도 없이 만들어진 수치가 아니라는 것을, 훈이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93.3%라는 수치를 낮다고 얘기한 이유는, 이안은 대부분의 경우에 99.9%라고 얘기하곤 했기 때문.
베히모스와의 전투때는 70%대의 승률을 점쳤던 이안이었다.
“어쨌든 이제 움직여 보자고. 더 늦으면 내 다음 계획에 차질이 생기니까.”
이안의 마지막 말은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훈이와 카노엘은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작전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30분이 지났다.
* * *
[크아아아…! 감히 인간 따위가 고귀한 마령을 소멸시키다니!]
마룡 칼리파를 제외한다면, 발록은, 이안이 보아 온 마수들 중에 유일하게 의사표현을 할 줄 아는 지성체였다.
그리고 지금, 주니어 발록 몇 마리를 처치한 이안 일행은 진땀을 빼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노엘아. 저 자식 주니어 발록이 죽든 말든 신경 쓰지도 않잖아?”
“그, 그러게? 스테라곤이랑은 다르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신경 쓰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주니어 발록이 하나 죽을 때 마다, 분노에 떨며 전투력이 상승했으니까.
[주니어 발록의 사망으로 인해, 발록이 분노합니다.]
[발록의 모든 전투능력이 150분 동안 2%만큼 상승합니다.]
주니어 발록 한 마리가 죽을 때 마다, 2%씩 상승하는 발록의 전투능력.
이 2%라는 수치가 얼핏 보기에는 별 것 아닌 것 같았지만, 중첩되는 것이 문제였다.
지금까지 이안 일행이 처치하는 데 성공한 주니어 발록은 총 5마리.
덕분에 발록의 전투능력은 총 10%만큼 상승했고, 이는 발록에게 있어서, 마치 35레벨 정도가 상승한 것과 비슷한 효과였다.
발록의 레벨이 350대였으니까.
‘이제 슬슬 강해지는 게 체감되고 있어.’
원래 이안 일행의 전략은 단순한 것이었다.
주니어 발록을 집중적으로 공격해서, 주니어 발록을 지키려는 모체 발록에게 손쉽게 피해를 입히려는 전략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모체 발록은 주니어 발록이 사망하든 말든 지키려고 하지 않았다.
게다가 역으로 주니어 발록이 죽을 때 마다 더 강해지고 있으니, 총체적 난국이었던 것.
‘지금이야 10%정도니까 아직 할 만 한데… 이거 열여섯 마리 다 죽고 나면 총 32% 버프가 걸리는 거잖아?’
32%의 전투능력치라면, 112레벨에 준하는 수준.
이대로 주니어 발록들만을 죽이다가 마지막까지 발록이 살아남으면, 거의 450레벨이 넘는 발록을 상대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진짜 450레벨인 발록보다야 약하겠지만, 어쨌든 지금의 이안 일행에게 벅찰 만큼 강해지는 건 사실이었다.
“뿍뿍아, 물의 장막!”
촤아아-!
분노한 발록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 다발을 방어한 이안이, 소환수들을 컨트롤해서 또다시 진영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료의 사망에 움찔했던 주니어 발록들이, 다시 거칠게 공격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 전투에서 이기려면 어떻게든 모체를 먼저 사냥해야 하는데….’
하지만 그게 또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모체가 주니어 개체를 보호하기 위해 필사적이라는 소환수 스테라곤과는 달리, 이 발록이라는 녀석들은 주니어 발록들이 오히려 모체 발록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쉬웠다면 이안 일행이 아직까지 사냥하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 때.
이안의 뇌리에 괜찮은 생각이 떠올랐다.
‘잠깐…. 우리가 꼭 이 발록 성체를 잡을 필요가 있나?’
지금 이안 일행이 이 잊혀진 영혼의 무덤에 온 가장 큰 이유는, ‘발록의 심장’을 얻기 위한 것.
물론 사냥할 수 있다면야 발록의 성체까지 사냥하여 보상을 얻는 게 좋지만, 어렵다면 굳이 무리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이안은 발록들의 공격을 피하며 어디론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형! 갑자기 어디 가!”
“기다려봐, 일단 진형 유지하고!”
이안이 향한 곳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쓰러진 주니어 발록의 사체.
채앵-!
다가오는 주니어 발록 한 마리의 발톱을 창대로 쳐 낸 이안이, 발록 사체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띠링-
[‘용사 디카프의 반지’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발록의 작은 뿔’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중급 마정석x3’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상급 마령석’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흉포한 마수의 갑주’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
:
‘과연 발록’ 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한 번에 많은 고급아이템을 드랍하는 주니어 발록의 사체.
그 마지막에 떠오른 한 줄의 메시지에, 이안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발록의 심장조각 x2’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로써, 이안이 생각했던 음모(?)를 위한 마지막 한 조각의 퍼즐도, 완벽하게 맞춰지게 되었다.
< (5). 잊혀진 영혼의 무덤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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