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듀오의 활약 -1 >
세르가스 영지의 내성.
방어전을 준비하고 있던 퓰리오스 길드의 길드마스터 유신은, 로터스에 이안이 등장했다는 비보에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후우,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는 영지전이라 여겼건만. 결국 이안이 등장했군.’
유신은 전사 클래스 랭킹 4위에 랭크되어있는 강자로, 특이하게도 너클을 주 무기로 사용하는 권법가였다.
그의 클래스는 무려 3티어의 히든 클래스인 무도가.
무도가는 카일란 내에서 ‘유신’만이 유일하게 가진 클래스였고, 그에 걸맞게 무척이나 강력했다.
거의 모든 스킬이 연계기로 이루어 져있는 무도가는, 컨트롤이 쉽지 않은 만큼 기술의 연계가 이어질 때 마다 파괴력의 상승폭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는 특징을 가진 클래스였다.
그러한 클래스를 가진 유신이다보니, 당연 그의 컨트롤은 수준급이었고, 다른 유저의 컨트롤 능력을 파악하는 눈 또한 탁월했다.
그리고 이안은, 그가 인정하는 몇 안 되는 피지컬 강자였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야, 그가 사기적인 소환수 빨로 강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유신은 자신이 피지컬로 이안에게 밀릴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유신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제 전투 시작까지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방금 전에 영지전 입장시간이 끝났으니… 한 2분 정도가 남았을 듯 합니다, 마스터.”
“그렇군. 기존에 회의했던 전략대로, 방어전선을 구축할 것이다.”
“예, 마스터.”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인 유신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아스펠과 하몬은 내가 데려가도록 하지.”
“예? 그들은 왜….”
유신이 굳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대답했다.
“두 사람을 데리고, 이안을 최 우선적으로 암살할 거다.”
“…!”
“이안만 잡을 수 있으면, 이 영지전. 무조건 이길 테니까.”
* * *
가까스로 영지전에 합류한 이안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역할을 점검하고 있었다.
본래는 여느때 처럼 전투의 전반적인 지휘를 맡아 할 예정이었으나, 너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그 역할을 피올란이 대신 하게 된 것이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이안에게 지휘권을 다시 넘기는 것은, 혼란만 가중될 뿐.
결국 이안의 역할은, 적 진영의 주요인물들을 제거하거나 집중마크하는 것이었다.
“흠, 전사 유신 이라면 들어본 적이 있어. 그가 퓰리오스 길드의 길마였단 말이지?”
이안의 물음에 헤르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 우리가 최대 난적으로 꼽은 열 명의 유저들 중에서도, 그 녀석이 가장 위험해.”
“왜지?”
“반 년이나 늦게 카일란을 시작했으면서도, 혼자 힘으로 지금의 퓰리오스 길드를 만들어낸 인물이야. 컨트롤은 샤크란에 비견될 정도로 뛰어나다 하고, 무엇보다 전략전술에 능한 인물이라는 평이 많아.”
“내 초기화시점보단 일찍 시작했네.”
“….”
이안의 말에 잠시 할 말을 잃었던 헤르스는, 곧 정신을 차리고 빠르게 다른 인물들에 대해 설명해 내려갔다.
아이디와 클래스. 그리고 특징적인 부분만 간략하게 설명해 주면, 기억력이 좋은 이안이 알아서 판단할 것이었다.
대략적인 내용은 며칠 전에 이미 한번 회의하기도 헀었으니까.
“네가 강력한 건 알지만, 결코 방심할 만한 인물들은 아니야, 진성아.”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난 고블린 한 마리 잡을 때도 방심 같은 거 안해.”
“그래, 어련하시겠어….”
“무튼, 저 열 놈만 전부 사냥하면 나머지는 알아서 할 수 있다 이거지?”
“열 명 전부도 필요 없어. 한 네다섯 정도만 딸 수 있어도 승산은 충분해.”
이안은 고개를 주억거렸고, 헤르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랭커 몇 명 정도는 붙여줄 수 있어. 어떻게 할까?”
그 물음에 반사적으로 필요없다고 하려던 이안은, 생각을 고쳐먹었다.
‘정령왕의 심판을 당장 쓸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서브무기로 싸워야 하는 상황에서 만용은 좋지 않지.’
다시한번 정령왕의 심판을 쓸 수 없음이 아쉬워진 이안은, 한 차례 입맛을 다셨다.
“쩝.”
그리고 망설임 없이 한 인물을 지목햇다.
“훈이, 훈이를 붙여줘.”
“음…? 훈이?”
헤르스는 훈이가 강력함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이안만큼 자세히 알지는 못했지만, 그간 훈이와 파티사냥을 여러 번 해본 만큼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안의 선택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훈이가 강하다고는 해도, 흑마법사의 특성 상 너랑 같이 다니는 것 보다는 후방지원 겸 딜러를 담당하는 게 더 낫지 않겠어? 아무래도 요인 암살에는 별로….”
이안이 헤르스의 말을 끊었다.
“암살? 소환술사가 무슨 암살이야.”
“…?”
그리고 의아한 표정을 짓는 헤르스를 향해 씨익 웃으며 한 마디 덧붙였다.
“나 믿고 훈이 붙여 줘.”
* * *
[이제 20초 뒤, 영지전이 시작됩니다. 각 진영의 출전인원은 전투 준비를 마무리해 주시길 바라며….]
널따란 사막의 한복판에 세워져 있는 웅장한 영지성.
그리고 전장의 하늘에 둘러있는 구름 위에는, 수 많은 유저들이 올라앉아 전장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최근 카일란 유저들을 열광하게 하고 있는 영지전 직관 시스템.
영상을 통해 보는 것도 물론 재밌었지만, 이렇게 눈 앞에서 보는 맛을 따라갈 수는 없었으므로, 수 많은 유저들이 자리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15, 14, 13 ….]
계속해서 들려오는 카운트다운에 맞춰, 유저들의 함성소리 또한 커져가고 있었다.
“와아아!! 로터스, 오늘도 이기자!”
“외쳐! 이안갓!”
“피올란누님 사랑해요!!”
그리고 당연한 얘기겠지만, 로터스 진영 뒤편의 유저들은 로터스 길드의 팬들이 대부분.
그렇기에 응원 또한 로터스에 대한 응원이 9할 이상이었다.
이안은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커다란 응원을 들으며 저벅 저벅 걸음을 옮겼고, 그 뒤를 훈이가 따랐다.
“형, 선두로 나서게?”
“물론.”
“헤르스 형이 요인암살을 맡겼잖아. 암살을 하려면 후방에 있다가 전투가 시작된 다음에 숨어들어가는 게 좋지 않을까?”
그 말에 이안이 피식 웃으며 뒤쪽을 응시했다.
“암살은 몰래 죽이는 게 암살이잖아.”
“그렇지?”
“저렇게 많은 관중이 나만 보고 있는데, 애초에 그게 되겠어? 은신스킬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그러네.”
이안의 말은 일견 건방져(?)보일 수도 있었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안의 인지도 자체가 워낙 높기도 했고, 오랜만에 등장한 만큼 그의 전투를 구경하고 싶은 유저들이 더욱 많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카일란의 시스템은 관중석에서 전장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도록 막고 있었지만, 소리만은 예외였다.
영지전이라는 컨텐츠를 E-스포츠화 시키고 싶었던 카일란의 운영진들이, 응원소리만큼은 전장에 들리도록 만들어놨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모든 관심이 이안에게 집중되어있으니, 이안이 은밀히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를 않았다.
“어쨌든 내 임무는 그 열 놈만 다 잡으면 되는 거잖아, 그지?”
“그렇지.”
이안이 돌연, 비장한(?) 표정으로 훈이를 불렀다.
“훈아.”
“으응…?”
“퓨전클래스의 힘을 한번 제대로 보여주자고.”
“…!”
“우주최강 흑마법사와 내가 힘을 합쳤으면, 길드 하나 정돈 가뿐히 쓸어버려야지 않겠어?”
“우주최강…!”
우우우웅-!
훈이의 주변으로 칠흑빛의 마나가 강렬하게 피어오른다.
훈이의 감정이 고조되면서, 자연스레 어둠의 마나가 차올랐기 때문.
이안의 대사가 훈이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탓이다.
이안은 어느새 훈이의 성격을 200%파악해버린 듯 했다.
[이제부터 로터스 길드와 퓰리오스 길드의 영지전이 시작됩니다.]
[영지전의 방식은 ‘전멸전’입니다.]
[양 길드 중 한 쪽의 ‘유저’들이 전부 전멸하거나, 방어진영인 퓰리오스 길드의 내성이 함락되면 영지전은 끝나게 됩니다.]
[길드원 여러분의 건투를 바랍니다.]
그리고 할리의 등 위에 올라탄 이안이, 전장을 향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 * *
[이안! 이안입니다! 이안이 할리를 타고 전장을 누비는 모습을, 여러분은 정말 오랜만에 시청하고 계십니다!]
방 안에서 스피커를 크게 틀어놓고 인터넷 방송을 시청중인 한 남자.
부스럭- 부스럭- 아그작!
그는 키보드 옆에 놓인 감자칩을 집어먹으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확실히 오랜만이긴 하지. 이안의 영지전 영상을 보는 건 말이야.”
남자의 정체는 다름 아닌 나지찬.
카일란의 기획팀에 있어야 할 그가 대낮에 방구석에서 방송을 시청중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바로 오늘 반차를 썼기 때문!
평소에도 야근을 밥 먹듯 하는 그가 반차를 쓰면서까지 조퇴를 한 이유는, 이안이 영지전에 등장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LB사의 기획팀에서는, 아직까지도 이안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니터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정도를 미리 알아내는 것 쯤은 어렵지 않았다.
“이안느님이 영지전에 복귀하신 이 순간을 칙칙한 모니터링실에서 영접할 수는 없지.”
아그작-!
나지찬은 모니터에 거의 빨려 들어가기라도 할 듯, 영지전을 집중해서 시청하고 있었다.
거실에 있는 50인치짜리 tv를 놔두고 굳이 인터넷 방송을 시청하는 이유도 따로 있었다.
게임채널에서 영지전을 시청하게 되면, 카메라가 이안 뿐 아니라 많은 랭커유저를 돌아가면서 비춰주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자신이 이안의 팬클럽인 ‘러블리안’의 간부라는 이 인터넷 방송 BJ는, 수백만 골드를 호가하는 개인 수정구까지 활용하여 이안만을 고정적으로 보여준다.
이안의 세세한 컨트롤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 나지찬으로서는, 조금 답답하더라도 이 인터넷 방송이 훨씬 마음에 들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나지찬 뿐만이 아닌 듯 했다.
BJ이안술사
- [중계방송][생]로터스vs퓰리오스[이안위주]
* 방송공지 : 이안 안티는 1초만에 강퇴합니다.
* 127984명이 함께 시청하고 계십니다.
개인 BJ의 방송 치고는 놀랍도록 많은 시청자 숫자!
그리고 그에 걸맞게, 채팅창에는 읽어 내려가기 힘들 정도로 쉬임 없이 채팅이 올라오고 있었다.
- 캬아! 역시 이안 클라스! 저 거리에서 무빙샷으로 마법사를 맞추네.
- 그런데 님들, 이안님 왜 창 안 쓰고 활 씀? 그새 또 무기 바뀌었나요? 최근 영상 전부 다 봤는데 창만 쓰던데…!
- 그러게요. 이안느님 활 쓰는 거 진짜 오랜만인데.
- 그런게 다 뭐가 중요합니까! 우리 이안느님은 오늘도 혼탁하기 그지없는 중생들의 안구를 정화시켜 주시리라 믿습니다!
채팅창을 슬쩍 본 나지찬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후후,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지.”
이안이 퀘스트로 주 무기를 업그레이드 시켜버린 바람에, 레벨 제한이 걸려 정령왕의 심판을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까지도 알고 있는 나지찬.
하지만 유저의 개인정보에 대해 발설할 수 없는 LB사의 사내규정상 채팅창에 떠벌릴 수는 없었고, 나지찬은 다시 조용히 영상을 관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왠지 모를 우월감이 느껴졌다.
“크으, 나는 이안느님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연신 감자칩을 입에 털어 넣는 와중에도, 화면에 고정된 나지찬의 시선은 움직일 줄을 몰랐다.
나지찬의 한 쪽 입 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갔다.
“이안, 어서 퓨전클래스의 위용을 보여줘…!”
시간이 지날수록, 나지찬의 가슴이 두근두근 요동치기 시작했다.
< (2). 듀오의 활약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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