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다시 또 노가다 -3 >
* * *
이안은 시세치가 아니다.
오히려 제법 정확하게 시세를 판별하는 눈을 가졌다.
최근에야 유캐스트 영상이나 로터스 영지에서 나오는 수익만 가지고도 충분한 돈이 벌리지만, 과거에는 드랍 되는 아이템들을 팔아 생활비를 충당했던 터라, 시세를 모를 래야 모를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가 판단했을 때.
키에클리크의 가치는 아무리 높게 쳐 줘야 5~6천만 골드였다.
그것도 정말 후하게 쳐 줬을 때의 얘기였다.
‘한 200레벨 이상의 마수면 몰라도…. 1레벨이 어떻게 이렇게 비싸게 팔린 거지?’
기본적으로 현재 경매장에 형성되어있는 소환수들의 시세는, 레벨에 따라 그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만약 이안의 키에클리크가 250레벨이 넘는 녀석이었더라면 1억5천만 골드에 팔린 것도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었다.
당장 전설등급에 290레벨이 넘는 라이의 경우, 경매장에 올리면 3억 골드는 가볍게 넘는 가격에 낙찰 받을 자신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안이 등록한 키에클리크의 레벨은 1레벨일 뿐.
생각했던 시세에 비해 훨씬 비싸게 팔렸지만, 이안은 그 이유를 전혀 알 수 없었다.
‘좋기는 한데….’
뭔가 찜찜한 기분.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 * *
24시간 전, 러블리안 까페 채팅방.
밀리안 : 로렌님, 정말 이번에 골든 서머너즈 팀 전체가 로터스에 편입할 수 있는 거 맞아요?
로렌 : 예, 이미 헤르스님과 얘기가 끝난 상황이구요, 아마 이번 로터스 영지전 일정 다 끝나면 바로 진행 될 것 같네요.
밀리안 : 오오…! 전 아직 250레벨도 못 찍었는데…! 사랑합니다, 로렌님.
로렌 : 후후, 모든 것은 전부 이안느님의 은덕이죠. 그동안 러블리안에서 불철주야 활동한 저희 공로를 이안느님께서 알아주신 것이랄까….
쉐이프 : 크, 이제 로터스가 카일란 1위 길드로 부상하게 될 테니, 저희도 1위 길드 길드원이 되는 건가요?
로렌 : 훗, 그런 셈이죠. 다만 그때까지 240레벨도 못 찍는다면 가입이 취소될 수도 있어요.
밀리안 : 그 정도는 걱정 않으셔도 될 겁니다! 우리 골든 서머너즈 최저레벨이 지금 237이니까요.
골든 서머너즈의 로터스 길드 합병과 관련된 평화로운(?) 얘기가 오가던 채팅창에, 한 유저가 던진 스크린샷 하나가 커다란 파장을 불러오기 시작했다.
(‘코크’님이 채팅방에 접속하셨습니다.)
코크 : 저기, 님들! 제가 시세치라 그런데, 소환수 시세 좀 여쭤볼 수 있을까요? 정확히는 마수요.
로렌 : 오, 코크님 오셨네요. 요즘 레벨 업 한다고 까페 채팅방엔 잘 안 오시더니. 제가 시세 한번 봐 드릴게요.
코크 : 넵, 잠시요. (스크린 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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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에클리크 -
레벨 : 1
분류 : 마수 (어둠의 마수)
등급 : 전설
성격 : 소심한
:
(중략)
:
마수 연성술사인 유저 ‘이안’에 의해 탄생한 마수이다.
전설의 마수인 샤켈리크와 흡사한 외모를 가지고 있으나, 부리와 발톱은 더 날카롭고 강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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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안 : 헐! 전설등급 마수? 아직 마수는 전설등급이 풀렸다는 얘길 들은 적이 없는데… 이거 경매장에 올라와 있는 건가요?
코크 : 네, 밀리안님. 1분 전에 올라왔는데, 상한가 없는 자유 경매로 되어 있더라고요. 얼마에 낙찰해야할지 감이 잘 안 와서… 일단 500만 골드 걸어놓고 여쭤보려고 채팅방으로 왔어요.
쉐이프 : 크으…! 고유능력 지리네요. 계수도 어마어마하고 광역딜링스킬에 광역 매즈기까지…. 아, 나는 언제 이런 소환수 한번 부려보나ㅠㅠ. 코크님, 이거 못해도 2천만 골드는 넘을 듯요ㅠ.
코크 : 아, 역시 그렇군요. 고유능력들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사고 싶었는데… 2천만 골드 이상은 무리….
밀리안 : 아 레벨이 좀 아쉽네. 한 200레벨만 됐어도 전재산 다 털어서 사보고 싶을 정도인데….
로렌 : 잠깐, 님들. 소환수 설명까지 꼼꼼하게 읽어보고 지금 얘기하시는 건가요?
밀리안 : 음? 왜요, 로렌님? 무슨 문제라도…?
로렌 : 다들 밑에서 마지막 설명부분 다시 읽어 보고 오시죠.
쉐이프 : …?! 유저 ‘이안’에 의해 탄생한 마수…?
밀리안 : 헐, 게다가 넘버링이 001인데요?
쉐이프 : 미친… 지렸다!
로렌 : 저 지금 바로 낙찰 받으러 갑니다. 코크님, 죄송하지만 저 녀석은 제가 사야겠어요.
코크 : 아… 넵. 뭐, 어차피 저야 천만 골드 넘어가면 여윳돈도 없어서 도전해 볼 수도 없어요. 로렌님께서 구입하세요.
쉐이프 : 로렌님, 여유 자금은 좀 있으세요? 저거 경쟁 붙으면 답 없이 비싸질 텐데;;
로렌 : 한 일억 정도 있어요. 급한 대로 아이템 몇개 더 팔아보고, 안되면 현금이라도 동원해야죠.
코크 : …? 갑자기 일억…?
밀리안 : 로렌님…! 꼭 낙찰받아 오세요! 화이팅!
로렌 : 그럼 저 가봅니다.
(‘로렌’님이 채팅방에서 퇴장하셨습니다.)
밀리안 : 크… 지렸다. 이안님이 이젠 마수도 제작하시다니…! 대체 마수제작은 어떻게 하는거지? 히든 퀘스트라도 있는 건가?
코크 : 그런데 밀리안님, 쉐이프님. 로렌님이 방금 일억골드 언급하셨는데, 아무리 좋아도 1레벨 마수가 그만큼 가치가 있는 건가요?
밀리안 : 하, 이 님…. 엄청 순진하시네. 이안 프리미엄 모르세요?
코크 : …네?
밀리안 : 코크님도 소환술사시니, 소환수 부적들 다 사용하시죠?
코크 : 그렇죠?
밀리안 : 지금 경매장 가보면 제일 비싼 부적템 전부 이안님이 제작하신 거잖아요.
코크 : 그거야… 많은 사람이 사용할 수록 아이템 효과가 올라가는 ‘고유문양’ 효과 때문이잖아요. 이안님이 제작하신 부적들이 다른 부적들보다 최소 1.5배는 뛰어나니….
쉐이프 : 그렇기는 한데, 그걸 감안하고도 가끔 어이없을 정도로 비싼 템 경매장에 올라오는 거 보신 적 없으세요?
코크 : 아…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100레벨 이하 저 레벨용인데다 희귀등급 밖에 안 되는 부적이 천만 골드에 낙찰된 걸 본 적이 있네요. 어떤 미친 놈이 샀나 했는데….
밀리안 : 크… 그게 바로 이안 프리미엄입니다, 코크님. 그 거 천 만원 정도였으면 아마 넘버링 200번 대 정도였었겠네요.
코크 : 넘버링? 그건 또 뭐죠?
카일란에서는 특정 유저에 의해 제작된 아이템의 경우, 경매장에 올라간 순서대로 제작자의 이름 옆에 넘버링이 붙게 된다.
이는 아이템 세부정보에 들어가면 확인할 수 있는 숫자로 성능과는 무관한 수치인데, 네임드 제작자가 제작한 아이템의 경우 이 숫자가 낮을수록 가격이 비싸지는 경우가 있다.
현실에서의 ‘명품’과 비슷한 개념.
유저들의 ‘수집욕’을 자극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그리고 현재로서는, 이안만큼 프리미엄이 많이 붙는 유저가 거의 없었다.
코크 : 아… 그래서….
밀리안 : 로렌님이 이안표 제작템 수집광이거든요. 이안 프리미엄으로 재태크해서 꿀도 좀 빠셨고….
쉐이프 : 근데 뭐, 로렌님이야 원래 금수저니까….
아이템을 구입하는 데 있어 ‘가성비’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이안.
그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던 것이다.
차후에 이안도 이런 사실을 알게 되고, 좀 더 체계적으로 장사하지 못한 것에 대해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되지만….
그것은 조금 더 훗날의 이야기였다.
* * *
마계 25구역.
오랜만에 마력광산에 도착한 이안은,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역노예들을 보며 뿌듯한 표정이 되었다.
‘크으, 좋아 좋아. 오늘 광산레벨을 하나 더 올리면 이제 전설등급 마령석도 채집할 수 있겠어!’
현재 마력광산의 광산레벨은 4레벨.
5레벨로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서는 1억골드가 필요했지만, 키에클리크가 운좋게(?) 비싼 가격에 팔린 덕에 여윳돈이 생긴 것이다.
정말 돈 먹는 하마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을 잡아먹는 광산 컨텐츠!
하지만 이안은 전혀 돈이 아깝지 않았다.
광산에서 쏟아져 나오는 광물들의 가치는, 벌써부터 어마어마했으니까.
한 3~4개월 정도만 광산을 돌리면, 이안이 투자한 4억 골드 정도는 전부 회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관리사무소에 들어간 이안이, 망설임 없이 광산증축을 감행했다.
“광산 레벨을 5레벨까지 증축한다.”
띠링 -!
[광산 증축에 필요한 비용 : 101500000골드]
[정말 증축하시겠습니까? ( Y/N )]
“응.”
[마력광산의 광산레벨이 4레벨에서 5레벨로 상승합니다.]
[광산에서 채칩 가능한 광물의 종류가 1종 증가합니다. (채집되기 전에는 어떤 광물인지 알 수 없습니다.)]
[광산에서 채집 가능한 광물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사역노예를 추가로 5명 더 고용할 수 있습니다.]
:
:
시스템 메시지들을 확인한 이안은 뿌듯한 표정이 되었다.
“좋아. 투자는 한번 할 때 팍팍 해야지.”
실시간으로 변해가는 광산의 모습에 만족한 이안은, 서둘러 또 어디론가 향했다.
만나야 할 인물이 한 명 있었기 때문.
이안이 광산에 오랜만에 온 이유는, 광산 증축 때문만이 아니었다.
까앙- 까앙-!
드르륵- 드르르륵-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노동의 하모니!
이안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광산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 곳에는, 땀을 삐질 삐질 흘리며 열심히 곡괭이를 놀리고 있는 드워프 ‘한’이 있었다.
“여, 한! 오랜만이야!”
진심으로 반가움이 담긴 이안의 부름에, 한이 곡괭이질을 멈추고 환하게 웃었다.
“이안! 정말 오랜만이오. 그동안 왜 이리 뜸했는가!”
한 차례 격한 포옹을 나눈 뒤 그동안의 채광성과에 대해 보고받은 이안은, 우르크 한의 상세정보를 한번 확인해 보았다.
확인할 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르크 한의 계약일이 이제 만료될 때가 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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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세부정보-
노동력 - 65
손재주 - 105 (+15)
관찰력 - 82
지구력 - 52
충성도 - 42
분류 - 기간 제 노예
잔여계약기간 - 1일 17시간
* 계약기간이 정해져 있는 기간제 노예이다.
노예의 계약기간이 끝나고 나서도 계속 고용하고 싶다면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 재계약 협상을 다시 진행해야 한다.
(단, 계약기간이 끝난 뒤에는 노예의 신분이 아니므로, 계약방법이 바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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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정보창을 확인한 이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우르크 한의 계약일자가 이제 이틀도 채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휴, 시간 맞춰서 잘 왔군.’
노예로서의 계약일이 만료될 때 까지 가신서약을 하지 않으면, 한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 수도 있었으니까.
‘온 김에 마법진 제작 좀 부탁하고, 가신서약도 해 버려야겠어. 친밀도는 충분하겠지.’
친밀도가 충분하지 않다면 한이 가신서약을 거부할 수도 있었지만, 이안은 그럴 리 없다고 확신했다.
이미 두 사람은 영혼의 교감(?)을 나눴기 때문이다.
이안은 미리 준비해 온 마법진 아이템과 보석들을 꺼내어 한에게 내밀었다.
“한,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오, 이안. 그대의 부탁이라면 얼마든지!”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었다.
“내가 제작해야 할 마법진이 하나 있는데 말이야, 손재주가 부족해서….”
마법진은 본래, 설계도와 재료만 있으면 누구나 생성할 수 있는 것이었다.
마법진의 설계도는 마법사만이 그릴 수 있는 것이었지만, 제작 자체는 클래스와 무관하게 가능하도록 되어있는 것.
하지만 손재주가 부족한 유저가 제작을 시도할 경우, 마법진의 등급이 높을 수록 실패할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게 된다.
물론 그동안의 제작노가다로 인해 이안의 손재주도 나쁘지 않은 편이었고 두세 번 안에는 마법진 제작을 성공시킬 자신이 있었지만, 재료가 워낙 비싸기 때문에 한 번도 실패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안에게 마법진을 받아 든 한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표정이 되었다.
“오오…! 이것은 고대 정령계의 마법진…!”
한이 한 번에 마법진을 알아보자, 이안의 두 눈에 이채가 어렸다.
“한, 할 수 있겠지?”
한이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지금이야 노예 신세지만, 한 때는 나도 최고의 장인이었소.”
이안은 피식 웃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미 네 정보 창 확인해서 다 알고 있거든!’
어쨌든 한시름 놓은 이안이, 다시 한번 한에게 강조해서 말했다.
“부탁해 한! 엄청나게 귀한 물건이니까.”
“맡겨만 주시오!”
한은 이안에게서 넘겨받은 재료들을 광산 구석에 조심스레 내려놓았고, 천천히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안은, 옆에서 숨 죽인 채 완성되어가는 마법진을 응시하고 있었다.
‘정령왕이라… 어떤 녀석이 나올까?’
정령왕은 그 이름만으로도 뭔가 강렬한 포스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안은 이 정령왕에 크게 기대를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오래 전에 얻어 아직까지도 중급 이상으로 진화시키지 못한 짹이.
레벨이 높아진 뒤로 활용도가 떨어져 거의 사용하고 있지 않은 짹이 덕분에, ‘정령’이라는 컨텐츠에 대해 그다지 기대감이 없었던 것이다.
‘짹이도 상급 최상급으로 진화가 됐으면 지금까지 잘 쓰고 있으려나…?’
이안이 짹이를 진화시키지 못한 이유는, 짹이를 사용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아무리 짹이를 진화시키기 위해 정령력을 채워보려 노력해도, 4999/5000이 된 이후 더 이상 정령력이 증가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자연스레 짹이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고, 최근에는 소환조차 잘 하지 않게 된 것.
게다가 이안이 보기에 정령이라는 컨텐츠 자체가, 정령력을 이용한 공격스킬에 의존하는 초반에 유용한 컨텐츠일 뿐이었다.
‘정령왕이란 녀석은 좀 달랐으면 좋겠는데….’
이안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눈을 빛내고 있던 그 때.
한의 손길이 닿은 마법진이 완성되어 그 위용을 드러내었다.
우우웅-!
그리고 마법진의 문양 위에 오색 빛깔의 광채가 넘실거리며, 복잡한 문양을 타고 은은하게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 (4). 다시 또 노가다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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