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기묘한 퀘스트 -2 >
* * *
처음 카데스를 찾았을 때만 해도, 훈이는 카데스에 대한 의심을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퀘스트가 진행되면 될수록 뭔가 이상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다른 부분에서는 몰라도, 카데스가 훈이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임모탈’에 대해 묘한 적의를 갖고 있다는 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훈이는 지금까지의 퀘스트들을 곰곰이 따져보기 시작했고, 멀리 갈 필요도 없이 금방 그 이유를 찾아낼 수 있었다.
과거 이안과 함께 마계에서 진행했던 퀘스트인 데이드몬의 서 퀘스트.
그 당시 사령의 탑에 봉인되어있던 리치 킹 샬리언을 풀어줬던 것이 떠오른 것이다.
그리고 데이드몬의 서 퀘스트는, 다름 아닌 카데스와 데이드몬 둘 사이의 ‘거래’에서 시작된 퀘스트였다.
‘샬리언이 봉인에서 풀려날 수 있도록 인도한 게 다름 아닌 카데스였던 거야. 애초에 샬리언이랑 한 통속이었던 거지. 그러니 적의감이 느껴질 수 밖에.’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훈이는 이러한 카데스의 태도와 카데스가 주는 가식적인(?) 퀘스트에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카일란의 인공지능이 보면 볼수록 대단하다 느낀 것이다.
유저에게 본심을 감추고 퀘스트를 주는 NPC라니.
아무 의심 없이 퀘스트를 진행했다가는, 정말 큰 코 다칠 뻔 한 훈이였다.
‘보자, 그렇다면……. 카데스는 왜 어둠의 신룡 루가릭스를 잠에서 깨우라 명령한 것일까?’
이안을 따르고 있는 전쟁의 신룡 카르세우스를 제외한 다른 신룡들은, 차원전쟁이 끝난 뒤 각자의 레어에서 깊은 잠에 들어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카데스는, 잠들어있는 어둠의 드래곤 ‘루가릭스’를 깨우라는 퀘스트를 줬다.
루가릭스가 훈이를 도와 샬리언의 야욕을 막을 것이라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카데스의 검은 속을 알아챈 이상,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건 너무도 확실한 사실이었다.
‘루가릭스로 하여금 내 통수를 치게 하려는 걸까? 아니, 내 통수라기보단 샬리언의 야욕을 저지하려는 인간계 유저들 전체에게 통수를 치려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여기서, 카데스의 이 검은 속셈을 역으로 이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훈이는 카데스에게서 받은 ‘카데스의 구슬’의 정보를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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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데스의 구슬 -
분류 - 잡화
등급 - 전설
어둠의 신 카데스가, 자신의 힘을 응축시켜 만든 어둠의 보주이다.
어둠의 힘을 가진 존재에게 사용하면, 대상에게 카데스의 명령과 함께 그의 힘이 일부 전해지게 된다.
* 1회성 아이템입니다.
* 유저에게 사용할 수 없는 아이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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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데스의 명령이 전해진다.’ 라…….”
훈이의 머리가 다시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 구슬을 신룡에게 전하는 순간 카데스의 명령이 신룡에게 전해지게 되고, 그건 아마도 샬리언을 도우라는 명령일 거야.’
그렇다면 첫 번째 확실한 명제는, 이 구슬을 절대로 루가릭스에게 전하면 안 된 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상황을 역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루가릭스를 다른 방법으로 깨워서 내 편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어둠의 신룡은 기본적으로, 당대의 어둠의 신을 대변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인간계에 직접적인 관여가 불가능한 신을 대신하여, 신의 뜻을 행하는 신의 사자와도 같은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임모탈의 힘을 계승한 훈이는, 한 가지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과거 루가릭스는, 임모탈이 어둠의 제국을 세우는 것을 도운 적이 있지.’
일전에 임모탈의 힘을 계승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던 사실.
당시에 임모탈과 카데스가 우호적인 관계였기 때문일 수도 있고, 카데스와 관련없는 별개의 일이기에 그랬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임모탈과 루가릭스가 무조건적인 적대관계가 아니었을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확실했다.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던 훈이가 두 눈을 번쩍 떴다.
훈이의 뇌리에 생각난 인물이 한 명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릴슨에게 한번 가 보자.’
로터스 길드 소속의 유저이자, 탐험가 클래스 랭킹 1위에 빛나는 릴슨.
그라면 분명 수많은 고대의 문서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지금의 상황에서 루가릭스를 구슬릴 방법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믿었다.
임모탈과 어둠의 신룡 간의 정확한 관계.
과거의 고서들을 뒤져서 그것을 파악하면 되는 것이다.
훈이는 빠르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루가릭스를 찾아 깨우라는 카데스의 퀘스트야 시간제한이 없었지만, 샬리언을 처치하라는 ‘사령의 군주’전직 퀘스트는 ‘60일’ 이라는 시간제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중, 벌써 1/3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가 버렸으니, 여유부릴 시간 따위는 없었다.
훈이는 얼른 채팅창을 열어, 릴슨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훈이 : 릴슨형, 지금 어디야?]
* * *
“엇, 저 사람은?”
“응? 누굴 본건데?”
“레비아님. 레비아님이야 분명!”
“어……? 그러네?”
‘사령의 군장’ 레이드에 참여하기 위해 중부대륙으로 돌아온 이안과 헤르스의 파티.
레이드 보스가 등장했다는 협곡으로 움직이던 도중, 헤르스가 레비아를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이안의 파티는, 잽싸게 레비아를 향해 다가갔다.
사제 랭킹 1위인 그녀를 파티에 받을 수만 있다면, 레이드가 훨씬 더 편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와, 레비아님 정말 오랜만이네.”
“그러게요. 그나저나 레비아님 등에 생긴 날개는 뭐죠? 너무 예쁘다.”
“헐! 한정판 코스튬 같은 건가? 저런 간지템을 팔았다는 얘긴 들어본 적이 없는데.”
로터스 길드의 파티원들이 웅성이는 사이, 레비아의 일행 또한 이안을 발견했는지 시선을 돌렸다.
레비아는 활짝 웃으며 이안에게 다가왔다.
“오랜만이에요, 이안님. 그동안 잘 지내신거죠?”
이안이 멋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저야 늘 잘 지내죠.”
그리고 레비아의 일행을 슬쩍 응시한 이안이 다시 말을 이었다.
“레비아님도 혹시 레이드 가시는 중인가요……?”
레비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정확히는 더 중요한 목적이 있지만, 일단은 레이드 가는 게 맞아요.”
그에 이안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되물었다.
“다른 목적이요? 그게 어떤 거죠?”
레비아는 순순히 대답해 주었다.
“사령의 군장이 막고 있는 곳을 뚫어야, 리치 킹 샬리언이 있는 마탑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리거든요.”
그녀의 대답에, 이안의 두 눈이 살짝 커졌다.
* * *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YTBC의 기자, 효민입니다.]
한국대학교 후문에 자리 잡은 한 치킨 집.
아직 오후4시 반 밖에 되지 않은 제법 이른 시간이었지만, 벌써 남은 자리가 별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손님들이 빼곡하게 들어 차 있었다.
주말임을 감안하더라도 평소와는 확연히 다른 상황.
치킨집 주인은 신이 나서 알바들을 들볶고 있었다.
“유진아 빨리 닭 튀겨라! 철호 너는 뭐해! 지금 앉아있을 시간 없어! 저쪽 창가 테이블 가서 주문 받고 와야지!”
그리고 무척이나 분주한 주방 못지않게, 들어앉은 손님들 또한 시끌벅적했다.
정신이 없을 정도의 소란스러움.
하지만 하나 공통점이 있다면, 모든 손님들의 시선이 치킨집의 벽에 걸려있는 대형 벽걸이 TV에 향해 있다는 점이었다.
“이야, 최초로 등장한 신화등급이라더니 확실히 괴물이긴 하네.”
“그러니까 말이야. 방금 320레벨짜리 준 랭커 기사 하나 순삭 당한 거 봤어?”
“응. 봤지. 진짜 미쳤다. 쿨도 짧아 보이는 논 타겟 스킬 한방에 그대로 아웃이네.”
“그건 그 기사 놈 컨이 후져서 그런 거긴 한데, 그래도 진짜 엄청나다.”
치킨집에 모여 있는 손님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카일란이었고, 그 중에서도 오늘 낮에 등장한 레이드 보스라는 ‘사령의 군주’에 대한 것이었다.
“으, 나도 치킨 뜯으러 올 게 아니라 저기 가서 어떻게든 숟가락 얹었어야 하나?”
“아서라 인마. 200레벨도 못 찍은 녀석이 무슨 숟가락이야. 넌 유피르 협곡 가보기도 전에 끔살이야.”
“하긴. 중부대륙 북쪽지역은 등장하는 몬스터가 기본 300레벨이니….”
TV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쉴 새 없이 재잘거리는 손님들.
그리고 화면 안의 기자 또한, 계속해서 상황에 대한 설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화면의 한쪽에는 작은 보조화면으로 캐스터 하인스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고, 기자와 하인스의 대화형식으로 레이드가 생중계되고 있었다.
[여러분, 저기 보이시나요?! 무려 450레벨의 신화등급 레이드 보스의 위용입니다! 하지만 사실 레이드를 제대로 뛰어 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이 레이드 보스의 강력함이 잘 와 닿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요. 하인스님, 간결하게 설명 부탁드려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효민씨. 제가 아주 간결하게 설명해 드리지요. 지금 저 ‘사령의 군장’의 실질적인 전투력은, 일반 던전에서 등장하는 보스였을 경우 500레벨은 훌쩍 넘길 수 있는 수준이라 보시면 됩니다.]
[와, 정말 어마어마하군요.]
[그렇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아마 인간종족의 모든 랭커유저들이 전부 모여야 상대가 가능한 녀석이 아닐까 싶군요.]
[그 정도일까요? 하지만 랭커들이 일반 레이드 보스를 잡기 위해 과연 이 곳 까지 모여 줄지….]
화면을 시청하던 손님들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두런두런 얘기하기 시작했다.
“랭커가 뭐가 아쉬워서 레이드를 뛰러 오겠어. 그 시간에 차라리 신규 던전 한번 도는 게 더 이득일 텐데 말이야.”
“그러게. 레이드 보스는 좀 현실적인 레벨로 젠 시켜야 잡힐 텐데, LB사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괴물을 뿌린 거지?”
“이러다가 지난번에 북부대륙에 떴던 400레벨짜리 설인처럼 일주일동안 안 잡히는 거 아닐까요?”
“일주일 안에라도 잡히면 다행이라고 봅니다.”
손님들의 대화는, 사실상 충분히 설득력 있는 것이었다.
지금 화면에 보이는 수많은 유저들은, 사령의 군장이라는 레이드 보스에게 맥도 못 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300레벨 이상의 준 랭커 급 유저들이 어찌어찌 딜을 넣고는 있었지만, 빼곡한 보스의 생명력 게이지를 기준으로 보면 개미 발자국 수준으로 미미하다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몰려드는 유저들을 도륙하는 ‘사령의 군장’의 위용은, 정말 압도적인 것이었다.
[크아아아! 미천한 인간들이여, 너희들의 영혼을 모두 거두어 나의 군대로 만들어주마!]
쿠쿵- 쿠쿠쿵-!
사령의 군장이 쥐고 있는 거대한 도끼창이 한 번 휘둘러질 때 마다 수 많은 유저들이 튕겨져 나갔으며, 그의 왼손에서 보랏빛 섬광이 뿜어져 나올 때 마다 수많은 언데드들이 소환되었다.
그는 마치, 흑마법사와 죽음의 기사를 섞어놓은 듯 한 느낌의 보스 몬스터였다.
[리치 킹, 샬리언님을 위하여!]
[어둠의 제국을 위하여!]
심지어 생성되는 언데드들조차,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일반 등급의 스켈레톤마저도 350레벨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수준.
게다가 가끔 소환되는 400레벨 전설 등급의 데스 나이트는, 그 존재 하나만으로도 보스에 가까운 위용을 풍기고 있었다.
“어휴, 저래서는 숟가락 올리기도 힘들겠는데?”
“그러니까 말이야. 목숨은 부지하고 있어야 기여도가 인정 될 텐데, 죄다 몰살이네 몰살이야.”
“크크, 역시 치킨이나 뜯으러 오길 잘했어. 쓸 데 없이 숟가락 얹어보려고 무리했으면 레벨다운 되서 경험치 손해나 봤을 거야 분명.”
혀를 차며 치킨을 뜯는 손님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상미 자체는 뛰어났기에, 손님들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계속해서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비관적인 상황에 대해 설명 중이던 기자 ‘효린’의 목소리 톤이, 갑자기 올라가기 시작했다.
[카메라! 카메라! 저기 저 쪽 비춰주세요!]
[왜 그러시죠, 효린씨?]
[게이트에 갑자기 랭커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빨리요!]
그리고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스크린은 효린이 아닌 유피르 협곡으로 들어오는 게이트를 비췄다.
이어서 효민과 하인스의 흥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저기 맨 앞에 들어온 전사 유저! 샤크란입니다! 분명해요!]
[뒤쪽에는 레미르도 있군요! 엇! 벨리언트 길드의 마스터 로이첸도 보입니다!]
[이야, 이정도면 할 만 하겠는데요? 시청자 여러분들께서도 이름 한 번 정도는 들어보셨을 법 한 랭커들이, 열 명도 넘게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그들로 끝이 아니었다.
이어서 푸른빛으로 빛나는 게이트.
그리고 눈부신 빛이 퍼져 나가면서 등장한 일단의 무리가 비춰지자, 치킨집이 터져나갈 듯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이안! 이안이다!”
“레비아도 있어!”
“로터스 길드다……!!”
< (6). 기묘한 퀘스트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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