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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444화 (462/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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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임과의 재회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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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카메르와의 전투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안 일행은 이 퀘스트의 난이도가 어째서 쿼드라S 등급인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라카메르가 구사하는 스킬들이, 하나같이 괴랄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35분 안에 클리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함께 생겨났다.

라카메르의 생명력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으니 말이다.

얼마 전 프릴라니아 협곡에서 상대했던 칼리파의 원혼과 비교한다면, 그 반의 반조차 되지 않는 낮은 수준이었다.

다만 라카메르에게는 자체 회복능력이 있다는 게 문제였고, 그 부분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었다.

공략법만 정확히 찾아내면, 30분 안으로 충분히 처치할 수 있어 보이는 라카메르.

물론 공략법을 찾는 것이 쉬워 보이지는 않았다.

라카메르의 회복 능력은, 일반적인 리치메이지들과는 또 다른 형태의 회복 능력이었으니 말이다.

원래 리치메이지가 가진 회복 능력인 ‘영혼 흡수’는, 사망한 영혼을 흡수하여 본인, 혹은 소환물들을 회복시켜 주는 능력이다.

반면에 리치 위저드인 라카메르의 회복 능력은, 자신이 소환한 언데드에 한해 대상이 입는 모든 피해만큼을 곧바로 자신의 생명력으로 회복시킨다.

때문에 소환물을 공격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언데드들을 무시한 채 라카메르만 공격하자니 너무 아프고,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이안 일행으로서는 미칠 노릇이었다.

“이러면 광역기는 쓰지 말라는 소리잖아?”

“그러게, 생명력 다 까 놔도 광역기 한 번 잘못 쓰면 다시 가득 차 버리겠어.”

이안 일행의 머릿속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우선 첫 번째 방법은, 라카메르의 소환 모션을 미리 읽고 사전에 캐스팅을 전부 컷팅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한 번이라도 실수하여 소환을 방치할 시 원점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

그리고 두 번째 방법은, 아무리 많은 언데드가 소환되더라도 어떻게든 그들에게서 입는 피해량을 회복시키며 라카메르만 공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더욱 불가능에 가까운 방법이었다.

들어오는 피해를 버티는 것도 힘들 뿐더러, 라카메르를 보호하는 언데드들을 피해 정확히 논타깃 스킬들을 꽂아 넣는다는 것이 말이 안 되었으니 말이다.

소환된 언데드들이 라카메르의 앞을 막아서기 시작하면 그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라카메르를 공격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콰쾅 쾅-!

라카메르의 강력한 마력탄을 가까스로 막아 낸 훈이가, 볼멘소리로 투덜거렸다.

“어후, 한 5분은 지난 것 같은데 생명력이 그대로잖아?”

순간 모두의 시선이 라카메르의 생명력 게이지에 자동으로 쏠렸다.

훈이의 말은 사실이었다.

수많은 공격을 퍼부었음에도, 라카메르의 생명력은 조금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의기양양해진 라카메르가 칼칼한 목소리로 웃어대었다.

“클클, 네놈들은 절대로 나를 이길 수 없다. 적어도 이곳에서 만큼은 말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5분 동안 아무런 수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생명력을 깎을 수 없었을지언정 라카메르의 거의 모든 공격 패턴을 파악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언데드들의 공격에 침착하게 대응하며, 이안이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언데드 소환은 2분에 한 번 정도 하는 것 같고. 데스윙은 40초에 한 번. 스피릿 스톰은 다시 안 나오는 걸 보니 최소 5분이야.’

카일란에서는 보스의 난이도가 높을수록, AI의 랜덤성도 커지게 된다.

예를 들어 하급 보스 몬스터의 경우에는 정해진 스킬을 일정 간격, 순서대로 반복해서 쓰지만, 중급, 상급으로 올라갈수록 정형화된 패턴이 사라지는 것이다.

A스킬을 썼다가 C스킬을 쓰고. B스킬을 써야 할 타이밍에 또 A스킬을 사용할 수도 있는 것.

그래서 보스 공략에서는, 리더의 보스 스킬 체킹 능력이 무척이나 중요했다.

현재 보스가 쓸 수 있는 스킬이 뭔지 정확하게 안다면, 상당부분 예측이 가능해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방면에서 이안은 반론의 여지가 없는 최고의 리더라고 할 수 있었다.

해서 지금 라카메르가 발동시킬 스킬은…….

“데스 윙이다! 옆으로 퍼져!”

이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원형으로 모여 있던 파티원들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이어서 라카메르의 완드를 타고, 거대한 어둠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죽음의 날개여, 저들의 영혼에 안식을……!”

데스 윙은 그 이름처럼, 시커먼 날개의 형상을 띈 공격마법이었다.

한 차례 허공으로 솟구쳐 오른 뒤, 빠르게 하강하며 직선상의 모든 대상을 베어버리는 강력한 공격기술.

처음 이 스킬이 시전되었을 때 유신이 피하지 못했었는데, 단 한방에 빈사상태까지 가서 당황했던 스킬이었다.

콰콰콰쾅-!

지면에 거대한 구덩이를 만들며 이안 파티의 사이를 지나가는 죽음의 날개.

완벽하게 데스윙을 피해 낸 이안 파티는, 반격을 위해 다시 진영을 구축하였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 이안의 머릿속을 번개같이 스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잠깐 방어진형으로 대기!”

오더를 내린 이안이 지면을 박차고 올랐다.

타탓-!

그리고 파티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데스나이트를 무자비하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쾅- 콰쾅-!

그에 훈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 하는 거야, 형? 조금 깎아 뒀던 생명력이 다시 차잖아!”

하지만 이안은 그에 대한 대꾸를 하는 대신 데스나이트를 계속해서 공격했다.

그리고 잠시 후, 데스나이트의 생명력을 아주 조금 남겨 놓은 채 이안이 파티로 복귀했다.

옆에서 날아드는 화살을 실드로 막아 낸 레미르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뭘 하는 거야? 갔으면 죽이든가. 왜 살려 두고 오는데?”

그에 이안의 간결한 대답이 이어졌다.

“실험해야 할 게 하나 있어.”

“이 와중에 그게 무슨……?”

레미르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이안은 그에 아랑곳 않고, 오더를 내리기 시작했다.

생각한 것을 전부 설명하는 것보다는 행동으로 보여 주는 것이 훨씬 빠를 것이기 때문이었다.

“누나, 파이어 블레스트로 리치 메이지 한 대 때려 봐.”

“아, 알았어.”

이어서 레미르의 스태프에서 거대한 화염의 구체가 생성된다.

그리고 유신과 맞싸우고 있던 라카메르는, 파이어 블레스트를 미처 피하지 못하였다.

콰쾅- 콰콰쾅-!

랭킹1위 화염법사의 공격마법답게, 어마어마한 위력을 자랑하는 파이어 블레스트.

깎여 나가는 라카메르의 생명력을 확인한 이안이 재빨리 그 숫자를 기억했다.

‘48만 3천 정도가 깎였군. 그렇다면……!’

숫자를 속으로 한 번 되새긴 이안이, 크르르를 향해 오더를 내렸다.

“크르르, 파괴광선!”

그러자 허공으로 도약한 크르르가 포효하며 쩍 하고 입을 벌렸다.

“크르르 크아아오!”

콰쾅- 콰콰쾅-!

어마어마한 기세를 내뿜으며 전면으로 뿜어져 나가는 크르르의 파괴광선.

그리고 그 파괴광선은, 이안이 실컷 생명력을 깎아 놓은 데스나이트에게로 쇄도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유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훈아, 쟤 뭐 하는 거냐?”

유신이 당황한 표정으로 훈이에게 물었지만 훈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하였다.

“나도 몰라. 저 형 이상한 짓 하는 거 한두 번 봐?”

그리고 유신은 그 답변에 쉽게 수긍하고 말았다.

“흠, 그건 그렇군.”

물론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여자들은, 더욱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쟤들도 제정신은 아닌 것 같아요, 레비아 님.”

“그, 그러게요.”

생명력이 거의 소진되어 1만도 채 남지 않은 데스나이트에게 크르르의 강력한 공격 스킬을 소모해 버린 이안의 기행.

이는 조금이라도 딜을 더 넣어야 하는 지금의 상황에서 어이없는 행동처럼 보였지만, 이안이 아무 생각 없이 이런 짓을 벌일 리는 없었다.

파괴광선이 직격되어 데스 나이트가 사망하는 순간, 이안의 시선은 라카메르의 생명력을 향해 있었다.

‘47만 2천……!’

그리고 라카메르의 생명력 게이지를 확인한 순간, 이안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됐다, 됐어!”

정신없이 언데드들을 상대하는 와중에도 궁금했는지 훈이가 재빨리 되물었다.

“뭐가 됐는데?”

그에 이안이 씨익 웃으며 대꾸했다.

“그야 당연히, 파훼법을 찾았다는 말이지.”

* * *

“회의 끝! 수고하셨습니다!”

“수고는 개뿔. 이제부터 수고할 예정인데.”

“휴우, 그러게 말이에요.”

“진짜 그 미친 자식은 답이 없어. 요즘 좀 잠잠하다 싶더니…….”

“으……. 정말 이렇게 크고 아름다운 엿을 선물하다니. 잊지 않겠다, 이안!”

기획 팀의 대회의실.

이안으로 인해 생성된 푸짐한 일거리 때문에 죽을상이 된 기획 팀 팀원이, 하나둘 문을 열고 본인의 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야근은 물론, 주말까지 반납해도 시간이 부족할 것만 같은 기가 막힌 상황.

모니터링실로 향하는 나지찬조차도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었다.

“후우, 눈에서 자꾸 땀이…….”

눈가에 맺히는 알 수 없는 액체를 걷어 내며, 나지찬은 모니터링실의 앞에 앉았다.

그가 맡은 역할은 이안을 모니터링하는 것이었으니까.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이안이 퀘스트를 클리어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를 예측하는 것이 나지찬의 임무라고 할 수 있었다.

핑-!

모니터가 켜지며, 이안의 영상이 천천히 오픈된다.

하지만 지금 모니터에서 나오는 영상은, 실시간 영상이 아니었다.

나지찬이 퇴근한 후, 이안의 던전 공략이 녹화된 녹화 파일이었던 것이다.

의자를 뒤로 쭉 젖혀 누운 나지찬은, 조금 쉬어 간다는 생각으로 이안의 영상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안의 퀘스트 클리어 시점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영상 하나도 놓치지 않고 봐야만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영상을 시청하던 나지찬의 얼굴에 곧 음흉한 미소가 어렸다.

“후후, 우리한테 빅엿을 주더니……. 자승자박이 따로 없군. 자, 이제 어떻게 할 거냐?”

일전에 나지찬은, 뮤란이 등장하는 것을 보고 이안의 퀘스트 성공을 확신했었다.

뮤란이 강력하기도 하지만, 원래대로라면 이안이 얻었어야 할 서머너 나이트의 고유 능력이 라카메르의 완벽한 카운터이기 때문이었다.

서머너 나이트의 고유 능력 중 하나인 서먼 벤 Summon Ban.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서먼 벤은 서머너 나이트의 고유능력이 아니었다.

모든 소환술사 클래스가 4티어로 상승할 때 얻을 수 있는 특별한 고유 능력이었으니 말이다.

서먼 벤은 말 그대로, 일정 시간 동안 대상의 모든 소환 능력을 봉쇄하는 스킬이다.

그야말로 소환술사의 카운터 격인 스킬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라카메르에게 이보다 더 치명적인 스킬은 없었다.

서먼 벤을 당해 언데드를 더 이상 소환할 수 없다면, 라카메르를 처치하는 것은 시간문제였으니 말이다.

뮤란에게 이 스킬이 있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틀린 짐작이었다.

애초에 ‘뮤란’이라는 영웅은, 소환술사 출신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뮤란은 자신의 진전을 잇는 이가 누가 되었든 자신의 능력들을 전이해 주는 역할을 하는 NPC일 뿐이었고, 때문에 소환술사의 스킬인 서먼 벤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만약 소환술사가 아닌 다른 클래스가 뮤란의 크리스XJF을 얻었더라면, 그는 다른 클래스로 전직하는 퀘스트를 주었을 테니 말이다.

어찌 되었든 지금 이안은 서머너 나이트가 아니다.

때문에 ‘서먼 벤’ 스킬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여 나지찬은, 이안 파티가 라카메르를 처치할 수 있는 확률을 아주 낮게 보고 있었다.

“크크, 이번에야말로 이안갓이 큰 실수를 했어. 대체 굴러 들어오는 떡을 왜 걷어 차가지고…….”

만약 이안이 헬라임부터 처치하는 선택을 했다면 확률이 조금은 올라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지찬은 이안이 헬라임을 그대로 둘 것이라고 정확히 예측하였다.

“역시! 내가 아는 이안이라면 이렇게 나와야지!”

영상이 진행될수록 전투는 더욱 흥미진진해졌다.

라카메르에게 고전하는 이안 파티를 볼수록, 어쩐지 나지찬은 통쾌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뇌옥 클리어에 실패한다면, 이안이 리치킹을 처치할 수 있을 확률도 대폭 낮아지게 된다.

그러다 보니 나지찬으로서는 라카메르의 선전이 기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크, 좋았어! 아주 박살을 내 버리라고!”

주먹까지 불끈 쥐며 라카메르를 응원하는 나지찬.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나지찬은 곧 격렬한 응원을 멈추고 말았다.

“쟤 왜 저러는 거지……?”

이안이 알 수 없는 행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뭘…… 하려는거야?”

기획자인 나지찬으로서도 짐작되지 않는 이안의 플레이였다.

그리고 잠시 후, 영상을 지켜보던 나지찬의 입이 쩍 하고 벌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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