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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닉스 길들이기 (3)
띠링-!
-‘엘리카 왕성 지하’ 던전에 입장하였습니다.
-던전을 최초로 발견하였습니다.
-지금부터 24시간 동안, 던전에서 획득하는 모든 경험치가 두 배로 적용됩니다.
-지금부터 24시간 동안, 던전 보스에게서 아이템을 획득할 확률이 100퍼센트만큼 증가합니다.
-지정된 적을 처치할 시, 경험치를 1,000퍼센트만큼 추가로 획득합니다. (지정된 적 : 경비병, 경비대장, 어둠의 심령술사, 꼭두각시 레무스)
결계를 통과하여 들어선 곳은, 어두컴컴한 왕성의 지하였다.
그리고 눈앞에 떠오른 ‘최초 발견’ 메시지를 보며, 이안은 흡족한 표정이 되었다.
최초 발견으로 인해 기본적으로 적용되는 두 배의 경험치도 만족스러웠지만, 그 아래 나타나 있는 처음 보는 콘텐츠가 무척이나 마음에 든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보너스가 붙는 건 처음 보는데……. 지정된 적이라는 게 퀘스트와 관련된 몬스터들을 얘기하는 건가?’
기본적으로 두 배의 경험치가 적용된 상태에서 1,000퍼센트 의 추가 경험치가 지급된다 함은, 곧 스무 배의 경험치를 의미했다.
경비병을 한 녀석만 처치해도, 한 번에 스무 명을 처치한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미친 듯한 보너스 경험치가 책정되어 있는 것을 보면, 경비병의 숫자가 많거나 처치하기 쉽지는 않을 테지만 말이다.
‘이 던전 클리어하는 동안 잘하면 400레벨 찍을 수 있겠어.’
399레벨에서 400레벨이 되는 데 필요한 경험치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 이안은 다른 랭커들에게 레벨이 따라잡힌 상태였다.
때문에 얼른 400레벨을 찍고, 다시 훌쩍 달아나야만 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보너스 경험치는 꿀 같은 것이었다.
‘보자, 일단 이 구역에는 몬스터가 없는 것 같은데…….’
퀘스트가 퀘스트인 만큼, 조심스레 주변을 살피며 전진하는 이안.
그런 그의 뒤를 바싹 붙어 따라오던 레무스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통로 끝에 있는 두 개의 문 중 왼쪽 문을 열고 들어가면 된다.”
“알겠어.”
“내가 왕으로 있을 때는 비어 있던 방이지만, 이제는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니 조심하도록.”
레무스의 경고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당연히 몬스터가 득실거리겠지. 그렇지 않으면 여기가 던전이겠어?’
문의 앞에 도착한 이안은, 문을 열기 전에 먼저 루가릭스에게 오더를 내렸다.
“루가릭스, 다크 일루젼Dark Illusion 좀 띄워 줘.”
“알겠다, 이안.”
문의 안쪽에 일반적인 몬스터만 있다면 문제될 것이 없겠으나, 경비병들이 있을 것을 대비하여 만전을 기하는 것이었다.
이런 퀘스트에서는 정말 잠깐의 방심이 그대로 퀘스트 실패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우우웅-!
루가릭스의 손에서 칠흑같이 어두운 기운이 뿜어져 나오더니, 점점 일행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모든 일행의 몸이 그림자처럼 새카만 실루엣으로 변하였다.
-신룡 ‘루가릭스’가 ‘다크 일루젼’을 발동시켰습니다.
-‘루가릭스’를 중심으로 반경 5미터 안에 위치한 모든 파티원들이 인비저블Invisible 상태가 됩니다.
-레벨(500)이상의 강력한 흑마법사가 아니라면, ‘다크 일루젼’을 꿰뚫어볼 수 없습니다.
다크 일루젼은 전장에서 가끔 전략적으로 쓰이는 흑마법이었다.
상대의 진영보다 고레벨인 흑마법사를 보유하고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적진의 뒤로 침투하기에 이보다 좋은 마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디텍팅 타워가 도처에 깔려 있는 공성전에서는 무용지물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좋아, 이제 천천히 움직여 볼까?’
이안은 조심스레 철문 앞으로 다가가, 천천히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끼이익-!
그러자 듣기 거북한 마찰음과 함께, 낡은 철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리고 이안의 어깨 위에 앉아있던 카카가, 조금 열린 문틈 사이로 먼저 쑥 들어가 정찰을 시도했다.
이안에게 시야를 공유해 주기 위해서였다.
‘역시, 경비병들이 있군.’
카카의 시야를 통해 보이는 경비병은 총 세 명.
하지만 그들은 무언가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추측컨대 근무 중에 몰래 도망 나와 쉬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스르륵.
다크 일루젼으로 모습을 감춘 채 완벽히 문 안으로 들어온 이안은, 통로의 구조를 찬찬히 살폈다.
‘저 녀석들을 무시하고 몰래 반대편 통로까지 이동하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겠군.’
세 경비병들의 레벨은 440정도.
결코 만만히 볼 수 있는 레벨도 아니었거니와, 함부로 덤벼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경비병이 소리를 지르거나 한 녀석이라도 이 공간을 빠져나간다면, 그대로 퀘스트를 실패해야 할 테니 말이다.
문득, 던전의 경험치 보상을 떠올린 이안이 한쪽 입꼬리를 슬쩍 말아 올렸다.
‘생각해 보면, 그런 미친 보너스 경험치를 거저 쥐여 줄 리 없는 게 당연하단 말이지.’
무려 ‘스무 배’라는 엄청난 보너스 경험치의 유혹.
이것은 결국, 유저들로 하여금 퀘스트의 난이도를 자체적으로 상승시키게 하려는 기획자들의 덫과 같은 것이었다.
지금 이안만 하더라도 다크 일루젼을 사용해 그냥 지나가면 간단할 구간에서 입맛을 다시고 있으니 말이다.
‘역시, 이걸 그냥 지나갈 수는 없겠어.’
소환수들과 헬라임에게 오더를 내린 이안은, 성큼성큼 경비병의 뒤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에 당황한 레무스가 다급한 표정으로 이안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
소리가 나면 경비병이 알아차릴 수 있었기에 입은 열지 않았으나, 표정만으로도 그의 심정을 알아차릴 수 있는 수준이었다.
사실 퀘스트의 주체인 레무스의 입장에서는, 경비병을 건드리려는 이안이 이해될 리 없는 게 당연했다.
이안은 씨익 웃어 준 뒤, 레무스의 아련한 눈빛을 가볍게 외면했다.
‘뭐, 퀘스트만 성공해 주면 될 것 아냐.’
이어서 이안이 내려두었던 오더대로, 소환수들의 스킬이 발동되기 시작했다.
시작은 ‘엘’의 마법이었다.
“사일런스Silence!”
마법의 이름 그대로, 적을 ‘침묵’시키는 하위 티어의 빛 속성 보조 마법.
평소 같았더라면 이 사일런스 마법은 경비병에게 시전해 봐야 아무 쓸모없는 스킬이라고 할 수 있었다.
창검을 휘둘러 공격하는 경비병들은 ‘침묵’상태에 빠진다고 해서 생기는 페널티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사일런스라는 마법 자체가 마법을 영창해야 하는 마법사 클래스들을 카운터 칠 때 사용하는 스킬이었던 것.
하지만 쥐도 새도 모르게 경비병들을 처치해야 하는 지금의 상황에서라면, 물리 딜러인 경비병들에게도 사일런스를 걸어 줘야만 했다.
-소환수 ‘엘카릭스’가 ‘사일런스’ 마법을 시전하였습니다.
-‘경비병’에게 약간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경비병’이 ‘침묵’ 상태에 빠집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흑마법사가 가진 최강의 디버프 스킬 중 하나인 ‘소울 커스Soul Curse 스킬이 발동되었다.’
-어둠의 신룡 ‘루가릭스’가 ‘소울 커스’ 마법을 시전하였습니다.
-‘경비병’의 마법 저항력이 85퍼센트만큼 감소합니다.
-‘경비병’의 물리 저항력이 55퍼센트만큼 감소합니다.
-‘경비병’의 어둠 저항력이 90퍼센트만큼 감소합니다.
거의 동시에 발동된 두 가지의 디버프 마법.
바닥에 앉은 채 히히덕거리던 경비병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헬라임’의 고유능력인 체인 다크펄스가 지척까지 다다랐을 때였다.
스하아아-!
여러 번 들어도 적응되지 않을 정도로 스산한 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항상 그랬듯, 어두운 기운이 훑고 지나간 자리에는 거대한 묵빛 대검이 떨어져 내렸다.
쾅- 쾅- 쾅-!
일정한 간격으로 정확히 세 번 울려 퍼지는 벼락같은 타격음.
다크 펄스와 연계되어 발동된 헬라임의 다크 비전은, 강력한 어둠의 저주에 걸린 경비병들을 순식간에 지워 버렸다.
“……!”
가장 적은 피해를 입은 한 녀석이 살아남아 도주를 시도하였으나, 그것을 그냥 두고 볼 이안이 아니었다.
촤아악-!
어느새 그의 뒤편에 나타난 이안이, 정령왕의 심판을 휘둘러 그대로 베어 버린 것이다.
쿵-!
새카만 연기를 피워 내며 힘없이 쓰러지는 경비병에 이어서 이안의 시야에 기분 좋은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띠링-!
-엘리카 왕성의 ‘경비병’을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지정된 적’을 처치하셨으므로, 1,000퍼센트만큼의 경험치가 추가로 지급됩니다.
-경험치를 78,752,500만큼 획득하였습니다.
한 녀석 당 거의 8천만에 가까운 경험치를 획득한 이안.
일개 경비병을 잡았다고는 믿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경험치량에, 이안의 양쪽 입꼬리가 귀 밑까지 걸려 올라갔다.
* * *
엘리카 왕성의 지하는, 생각보다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비상시 대피 및 왕성의 방어를 목적으로 설계된 것인지, 레무스의 안내 없이는 적잖이 헤매었으리라 생각될 만큼 길이 어지러웠던 것이다.
그리고 이안은 이 구조물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게 왕성 증축 옵션에 있던 지하벙커인가 보네.’
이렇게 최전방에서 구르고 있기는 하지만, 이안 또한 일국의 ‘왕’인 신분이었다.
때문에 왕성 증축에 관련된 콘텐츠들을 대부분 알고 있었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보류해 두었는데……. 다음 달에 세금이 걷히면 예산을 책정해 봐야겠어.’
일반적인 성이 그렇듯 엘리카 왕성 또한 넓은 범위에 둘러진 외성의 안쪽에 다시 내성이 존재하는 구조였다.
그리고 이 지하벙커는 외성이 뚫렸을 때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방어시설이었다.
외성과 내성 사이를 적군이 쉽게 지날 수 없도록 지하에서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방어 구조물.
만약 이안이 지하뇌옥으로부터 시작된 퀘스트들을 진행하지 않았더라면, 로터스의 군대들이 직접 이 방어시설을 뚫어야 했을 터였다.
아무리 로터스의 군대가 강력하다고 하더라도,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이러한 방어시설을 마주했더라면 제법 큰 피해가 있었으리라.
어쨌든 왕성의 지하를 통과하는 중에 약간의 수확을 얻은 이안은 다시 퀘스트 진행에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왕성 지하’ 던전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몬스터들은 300레벨대의 언데드들로 허약하기 그지없었지만, 간간히 등장하는 경비병들 때문에 한 시도 긴장을 놓쳐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450레벨이 훌쩍 넘어가는 ‘경비대장’의 경우, 처치하는 데 제법 애를 먹어야 했다.
경비대장의 전투 클래스가 탱커인 ‘기사’에 가까웠기 때문에, 경비병들을 처치할 때처럼 순식간에 해치우기 힘들었던 것이다.
최대한 빠르게 처치하기 위해 디버프란 디버프를 있는 대로 발랐음에도, 경비병을 처치할 때에 비해 세 배 이상의 공격을 퍼부어야 했다.
게다가 경비대장은 보통 경비병들의 엄호를 받고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처치 난이도로 따지면 열 배는 까다로운 느낌이었다.
콰앙-!
경비대장의 등짝에 창극을 꽂아 넣은 이안이, 낮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이 짜증나는 놈은 좀 안 나왔으면 좋겠네.”
상대하기는 훨씬 까다로운 반면, 주는 경험치는 일반 경비병들의 한 배 반밖에 되지 않는 경비대장.
이안으로서는 피하고 싶은 적인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이안이 투덜거리는 것과 별개로, 퀘스트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좋아, 적응이 되니 공략 속도도 점점 빨라지는 것 같고.’
기대했던 것에는 조금 못 미치지만, 경험치도 제법 쏠쏠히 얻고 있었다.
몬스터의 숫자가 일반 던전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음에도, 경험치 버프량이 워낙 큰 탓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왕성의 지하를 쑤시고 다녔을까?
레무스를 따라 움직이던 이안 일행의 앞에, 뻥 뚫린 높은 공간이 나타났다.
지상은 물론, 왕의 내성까지 이어진 듯 보이는 높다란 계단실.
이안이 레무스를 향해 물었다.
“이 계단으로 올라가면 되는 건가?”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던 레무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 이 계단을 타고 맨 위층까지 올라가면 된다. 여기부터가 본격적인 왕성의 내부라고 할 수 있지.”
“그렇군.”
간결하게 대답한 이안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 레무스가 그의 앞을 막으며 고개를 저었다.
“잠깐!”
“음? 왜 그러지?”
“그냥 올라가면 그대로 고슴도치가 되어 버리고 말 테니까.”
이안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다시 물었다.
“함정이라도 설치되어 있는 거야?”
레무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다. 이 계단실에는 기관장치가 설치되어 있지.”
이어서 레무스는, 손가락을 뻗어 계단실의 반대편에 있는 커다란 철문을 가리켰다.
“저기 저 문 안쪽에, 기관의 작동을 멈출 수 있는 관리실이 있다.”
“그래? 그럼 저 안으로 들어가야겠네.”
이안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가던 걸음을 돌려 철문을 향했다.
그리고 그 순간, 이안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강력한 어둠의 기운이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