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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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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BC는 게임 방송 채널 중에도 선두주자 라고 할 수 있는 방송국이다.
대부분의 게임 방송 시청자들이 방송을 보고 싶을 때 가장 먼저 틀어 보는 채널이 바로 YTBC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리고 라오렌에게 전화온 리포터인 임은영은, YTBC에서도 가장 유명한 인물이었다.
게임 방송계의 연예인이랄까.
‘바, 방금 임은영이라고 했지? 지금 루시아가 나한테 전화를 한 거야?’
임은영은 사실 본명보다 ‘루시아’라는 아이디로 훨씬 유명한 리포터였다.
YTBC 카일란 방송을 초창기부터 이끌어 온 리포터인 데다 빼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어 제법 두터운 팬층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라오렌 또한 그녀의 열렬한 팬이었다.
“큼, 크흠.”
빠르게 목소리를 가다듬은 라오렌이, 스마트폰에 대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 안녕하세요. 제가 라오렌이 맞습니다. 한데 임은영씨라면…… YTBC의 간판 리포터 루시아 님이 맞으신지요?”
한마디 한마디 이어 갈 때마다 쿵덕거리는 라오렌의 심장.
그리고 이어진 그녀의 목소리에 라오렌은 흡사 심장이 떨어지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아, 네. 맞아요. 제가 리포터 루시아예요. 보통 제 아이디는 기억하셔도 본명들은 잘 모르시던데……. 호호, 알아봐 주시니 감사하네요.
쿵-.
심장이 떨어진다는 게 바로 이런 기분일까.
라오렌은 잠시 동안 머릿속이 하얘지는 듯한 착각을 느꼈고, 이어서 루시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기요, 라오렌 님? 제 목소리 안 들리시나요?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라오렌이 황급히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목소리 잘 들립니다.”
-갑자기 아무 말 없으시기에 끊어진 줄 알았네요.
“하, 하핫. 제가 지금 잠시 뭐 좀 하느라……. 그런데 YTBC에서 어쩐 일로 제게 연락을 주신 건지요?”
-아, 그게 말이죠.
겨우 정신을 추스른 라오렌과 루시아의 대화는 제법 길게 이어졌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대화가 이어질수록 라오렌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고 있었다.
* * *
“아, 그러니까…… 이안 형한테는 방금 허락을 받으셨다는 거죠?”
-네, 맞아요. 이미 협상은 다 끝났고요. 라오렌 님만 오케이 사인 보내면 바로 진행될 거예요.
하나 남은 사탕을 바닥에 떨어뜨린 초등학생의 표정이 이러할까.
어느새 라오렌의 두 눈에는 초점이 사라졌으며, 온몸은 축 처지기 시작했다.
처음의 황홀하던 표정이 전화가 끝날 쯤이 되자 오간 데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럼 잘 부탁드릴게요, 라오렌 님.
“아, 네. 그럼……. 지금 바로 YTBC 채널로 송출되는 건가요?”
-바로 당장은 어려울 것 같고, 아마 1시간쯤 뒤부터 가능할 것 같아요.
“그, 그렇군요.”
반면, 라오렌과 다르게 무척이나 해맑은 목소리로 재잘거리는 루시아.
-우리 잘해 봐요, 라오렌 님. 최고 시청률 한번 만들어 보자고요.
“노력……해 보겠습니다.”
-지금 광고주들이 아주 난리가 났어요. 라오렌 님 개인 방송 따 오기만 하면 곧바로 최고가 제시한다고요.
“아, 그런가요?”
-모르긴 몰라도 아마 광고 수익만 수십억 나올 것 같아요.
“시, 십억이라고요?”
-노노, 그냥 십억이 아니고 수십억이에요. 이안 님이랑 정산 비율을 어떻게 설정하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최저 비율로 계약하셨어도 라오렌 님 몫으로 몇 억은 돌아갈걸요?
“…….”
-아, 부러워요 라오렌 님. 저야 이거 성공해 봐야 보너스 받는 게 전부지만, 라오렌 님은 이 한 방으로 제 연봉만큼 벌어 가시겠어요.
“어……. 그게…… 으음…….”
라오렌은 거의 울먹거리기 일보직전이었다.
‘오늘 아침으로 회귀할 방법 없을까?’
사실 이안이 제시했던 3:7의 정산 비율도, 그렇게 나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유명 랭커들이 BJ와 계약하는 경우, 종종 찾아볼 수 있는 비율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평소에 45퍼센트 정도의 수익을 정산 받던 유명 BJ인 라오렌으로서는 30퍼센트가 무척이나 아쉽게 느껴졌다.
반면에 당장 눈앞에 있던 5천 골드라는 현금이 너무 크게 느껴졌다.
5천만 골드라는 액수는 고작 30퍼센트의 정산 비율 가지고는 절대로 넘을 수 없을 거액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그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이 이런 대참사를 초래하고 말았다.
-전 그럼 방송 준비하러 가 볼게요. 잘 부탁드려요, 라오렌 님.
“아, 네,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루시아 님!”
루시아는 마지막까지 해맑은 목소리로 인사한 뒤 전화를 끊었다.
뚜- 뚜-.
전화가 끊어지자마자 라오렌은 반사적으로 이마를 턱 짚으며 울부짖었다.
“억! 억이라니! 으어억……!”
* * *
파죽지세.
로터스 왕국군의 기세는 그야말로 파죽지세라 할 수 있었다.
1시간도 걸리지 않고 자작령을 점령했던 첫 번째 공성전의 퍼포먼스는 단지 시작에 불과했던 것이다.
오히려 기세를 타기 시작하자 왕국군의 진격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핀을 탄 채 전장을 누비고 있는 로터스의 국왕, 이안이 있었다.
“뿍뿍이, 심연의 가호!”
“알겠뿍!”
“정문에서는 뿍뿍이 힐 받으면서 버티고, 헤르스 네가 측면 침투 해 줘!”
“오케이!”
“피올란 님, 좌표는 미리 전달받았죠?”
“그럼요.”
“C섹터에 관리실이 있어요. 마법병단 데리고 가서 거기 요격 좀 해 주세요.”
“맡겨만 주시죠, 폐하.”
전장에서 이안의 역할은, 언제나 그랬듯 전체적인 지휘와 통제였다.
더해서 판이 잘 짜이고 난 다음부터는, 이안 또한 전장에 직접 뛰어들어 활약하는 것이 일반적인 패턴이었다.
하지만 엘리카 왕국과의 전면전에서 이안은 지금까지와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무슨 전쟁의 신이라도 빙의한 듯 핀을 타고 허공에 떠오른 채 계속해서 오더만 쏟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항상 이안의 손에서 번쩍이던 정령왕의 심판조차, 인벤토리 안에 넣어 놓은 것인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소환해 둔 소환수들 정도만 컨트롤할 뿐이었다.
“2분 뒤에 서쪽 측면에 있는 성문 오픈이야. 클로반 형, 침투해서 정문 좀 따 줘. 카윈이가 뒤에서 엄호해 주고.”
“성문이 열릴 거라고?”
“응. 그렇다니까.”
“짜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무슨 예지력이라도 있는 거냐?”
“지금 전투병력 움직이는 거 보니까, 곧 그쪽에서 지원병력 빠져나올 차례야.”
“뭐?”
“일단 오더나 좀 따라 줘, 형. 설명은 나중에 실컷 해 줄 테니까!”
평소에 로터스의 길드원들은 이안의 오더라면 토 한번 달지 않고 그대로 수행한다.
이안에 대한 깊은 신뢰가 가장 큰 이유였지만, 사실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의 오더가 항상 합리적이고 깔끔했기 때문에 의문을 품을 여지조차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이안의 오더는 여전히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완벽했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오더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안의 오더를 길드원들이 이해할 수 없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어떻게 이해가 되겠어? 내부 정보 미리 다 빼돌려서 내리는 오더인데 말야.’
이안이 ‘꼭두각시 레무스’와 관련된 퀘스트에 대해 길드원들에게조차 언질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 말인 즉, 이안이 레무스로부터 엘리카 왕국 내부의 모든 정보들에 대해 전달받고 있다는 사실을 길드원들은 모른다는 말이었다.
그러니 모든 것을 예측하고 숨겨진 약점들을 파훼하는 이안의 오더가 일반적인 시각에서 이해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훈이, 그쪽으로 들어가면 안 돼.”
“왜? 저기 성곽 무너지고 있잖아. 언데드 먼저 투입하고 따라 들어가면 될 것 같은데?”
“함정이야. 그쪽에 트랩이 잔뜩 설치되어 있을 거라고.”
“에?”
“잔말 말고 이쪽으로 일단 내려와!”
“아, 알겠어, 형.”
그렇다면 이안은 어째서 자신이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길드원들에게마저 숨긴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 이 공성전이 실시간으로 게임 방송에 송출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로터스 길드와 적대 혹은 경쟁 관계에 있는 길드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엘리카 왕국에 길드원을 보내 로터스를 방해할 게 분명한 것이다.
‘샤크란이 직접 엘리카에 잠입해서 레무스의 목을 따 버릴지도 모를 일이지.’
때문에 이안은 ‘그냥’ 알고 있는 정보로 인해 내리는 오더들을 그럴싸한 이유를 담아 포장하기 시작했다.
물론 길드원들의 입장에서는 대부분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뜬금없는 오더들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흐르고,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영지를 점령하기 시작하자 길드원들 중 그 누구도 이안의 명령에 토를 달지 않았다.
이안의 오더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여전했지만, 이해하기를 그냥 포기해 버린 것이다.
어쨌든 시키는 대로만 하면 거짓말처럼 방어선이 무너져 버리니 의문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승승장구중인 로터스의 길드원들은 그저 이안에게 무한히 감탄할 뿐이었다.
“키야! 진짜 엄청난데? 거기 매복이 있을 거라는 건 대체 어떻게 안 거야?”
“와, 역시 이안 님! 대박!”
“진짜 방금은 소름 돋았다.”
그리고 이러한 전개는 이안조차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포장되어 방송을 통해 퍼져 나가고 있었다.
* * *
-이건 한 수, 아니, 두 세수는 앞을 내다봐야만 할 수 있는 오더인 듯.
-진짜 돌았다. 저기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는 거지?
-와, 저는 지원군 성안에서 빠져나올 타이밍 예측해서 기병들 밀어 넣는 오더 보고 식겁했어요.
-ㅇㅇ 나도. 진짜 그거 대박이었지.
-사실 그거 엄청 위험한 도박수였는데, 그게 정확히 맞아 들어갈 줄은 생각도 못했음.
-크으, 이래서 이안 빠들이 그렇게 쉴 새 없이 이안을 빨아 대는 거구나. 오늘만큼은 리얼 인정이다. 이건 사람이 할 수 있는 플레이가 아니야.
-동감요. 나도 원래 이안 팬 아니었는데, 오늘부터 팬 해야겠음.
-엥? 아직도 이안 팬이 아닌 카일란 유저가 존재했나요?
-이안 팬들이 너무 많아서 응원할 다른 랭커들 좀 찾아보려 했었거든요. 샤크란이라든가 레미르라든가. 그런데 그럴 수가 없네요.
-왜요?
-오늘 플레이 보니까……. 이건 대체제가 없네요, 정말.
완벽한 타이밍에 적재적소에 뿌려지는 이안의 오더는 평소에도 시청자들로 하여금 소름이 돋게 만드는 하나의 콘텐츠이자 퍼포먼스였다.
이안이 내리는 오더를 하나하나 해설하는 것만으로도, 라오렌은 쉽게 쉽게 방송 분량을 뽑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라오렌의 게임 이해도가 뛰어나기에 그러한 해설이 가능했던 것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오늘은 라오렌조차도 해설이 불가능한 방송이었다.
라오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쉴 새 없이 놀라고 감탄하는 것뿐이었다.
“어, 와이번 나이트들이 갑자기 왜 하강하는 걸까요?”
“여기 라토토 영지는 백작령이기 때문에, 아마 잠시 후 지원대대가 튀어나올 겁니다. 백작령부터는 내성으로 이어지는 통로에 보급부대가……? 어? 보급부대 어디 갔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송이 재미없는 것은 아니었다.
-ㅋㅋㅋ 라오렌, 쟤 오늘 삽 엄청 푸는 듯.
-그러게요.ㅋㅋ 아니, 해설을 해야지 해설하다 말고 자꾸 우리한테 물어보면 어쩌자는 건데 ㅋㅋ
-라오렌 눈썰미 저질인 듯. 바로 2분 전에 마법병단이 지원부대 쓸어갔는데, 그것도 못 본건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당황하는 라오렌을 보는 것 또한 재밌는 콘텐츠가 되어 버린 것이다.
어쨌든 로터스 왕국군은 거침없이 엘리카 영지들을 점령해 나갔고, 그에 비례하여 시청자의 숫자는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다.
카일란을 플레이중인 유저들조차 이안의 방송을 보기 위해 로그아웃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정도였다.
그렇게 15시간 정도가 지나, 아침 10시에 시작되었던 방송이 새벽 1시 경이 되었을 무렵…….
쿵-!
“전군 돌격-!”
“어둠에 물든 엘리카 왕국을 처단하라!”
“이제 남은 것은 왕성뿐이다! 전원 돌격!”
마침내 엘리카 왕국의 총 19개 영지 중 남아 있는 것은 단 하나.
왕성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