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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마수 연성 (3)
이안이 이 ‘비밀’을 발견하게 된 것은, 정말 어마어마한 집념과 노가다의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이것은 과거 이안이 한창 마계를 활보하던 시절, 충복 2호인 카노엘을 착취하면서 벌어졌던 일이었다.
* * *
“야, 노엘아.”
“예, 형님.”
“훈이한테 소식 들었다.”
“무슨…… 소식요?”
카노엘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이안의 말을 듣자마자, 본능적으로 뭔가를 느낀 탓이었다.
‘혹시 이 형, 내가 소환마 전용 전설 등급 허리띠 먹었다는 얘길 듣기라도 한 건가?’
이래저래 이안에게 신세진 게 많았기 때문에 카노엘은 불안했다.
이안이 허리띠를 달라고 하는 순간, 꼼짝없이 조공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사실 허리띠를 팔면 얻을 수 있을 골드가 아까운 것은 아니었다.
재벌3세인 카노엘에게, 돈이란 무한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다만 이번에 카노엘이 먹은 허리띠는 돈으로도 구할 수 없는 희귀한 물건이었다.
때문에 카노엘이 긴장한 것이다.
하지만 그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이안의 말이 이어졌다.
“노엘이 너, 이번에 무한 노가다 퀘스트 받았다며?”
“아, 맞아요, 형. 로페른 퀘스트 드디어 받았어요.”
대답을 하는 카노엘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휴, 다행이야. 이안 형이 아직 득템 소식은 모르나 보군. 훈이 짜식이 그래도 의리 없는 녀석은 아니라니까.’
이안이 자신을 찾아온 목적이, 적어도 허리띠는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안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그 퀘스트 아마, ‘히포스’랑 ‘레이피온’ 포획하는 퀘스트였지?”
“어, 맞아요, 형. 형도 역시 이 퀘스트 클리어하셨군요?”
“물론.”
이안의 대답을 들은 카노엘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이안 형이 혹시 내 퀘스트를 도와주러 온 건 아닐까? 어쩌면 이 형, 생각보다 더 착한 형이었을지도 몰라.’
지금 카노엘이 진행 중이던 퀘스트는 마계의 소환술사 관련 퀘스트들 중에서 최고의 노가다를 자랑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대부분의 소환마 유저들이 필수적으로 진행하는 퀘스트이기도 헀다.
퀘스트의 보상이 난이도에 비해 짭짤했기 때문.
그것은 퀘스트 창을 잠시만 살펴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중급 마족 로페른의 내기 (히든)’
중급 마족이자 소환마인 로페른은 무척이나 자존심이 강한 마족이다.
그리고 뭘 하든 지기 싫어하는 성격을 가진 로페른은 ‘내기’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러던 어느 날, 로페른은 말실수를 하고 말았다.
소환마 친구인 마르텔에게, 자신이 삼백 마리의 히포스와 레이피온을 일주일 내로 포획할 수 있다고 말해 버린 것이다.
심지어 마르텔과 말싸움을 하던 로페른은 결국 그와 내기를 하기에 이르렀다.
로페른의 포획 실력은 사실 형편없다.
하지만 자존심이 강한 그는, 내기에 절대로 지고 싶지 않다.
하여 로페른은 당신이 각각 삼백 마리의 히포스와 레이피온을 포획해 주기를 바란다.
일주일 내로 총 육백 마리의 마수들을 포획하여, 로페른이 내기에서 이길 수 있도록 해 주자.
날짜에 맞춰 육백 마리의 마수들을 보여 주기만 한다면, 로페른은 내기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다.
퀘스트 난이도 : AAA
퀘스트 조건 : 로페른과의 친밀도 70 이상.
300레벨 이상의 소환마
제한 시간 : 일주일
*300마리의 히포스와 300마리의 레이피온을 포획하여 ‘마계 100구역 마수 농장’에 풀어 놓는다면, 퀘스트가 완료될 것입니다.
보상 : 통솔력 +150
‘포획의 달인’ 칭호 획득
중급 마수인 ‘히포스’와 ‘레이피온’을, 각각 300마리씩 포획해야 하는 희대의 노가다 퀘스트.
중급 마수의 경우 포획하는 데 제법 정성을 들여야 했기 때문에, 이것은 일반 유저들 기준 일주일동안 포획만 해야 클리어할 수 있는 극한의 퀘스트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클리어하는 이유는 무려 150이나 되는 통솔력 스텟 보상 때문.
카노엘은 두 눈을 반짝이며, 이안을 향해 입을 열었다.
“형, 혹시 스킬 숙련도 올릴 겸 제 퀘스트 도와주러 오신건가요?”
두 눈 한가득 기대에 찬 카노엘의 해맑은 표정.
그리고 이안은 그 기대에 부응하는 대답을 내어 놓았다.
“물론. 이 형님이 퀘스트 좀 도와주려고 왔노라.”
“오, 오옷!”
카노엘은 정말 감격했다.
그 누구보다 포획 스킬의 숙련도가 높은 데다 마수 포획의 달인이라 할 수 있는 이안이 합류한다면, 이 퀘스트를 하루 만에도 클리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혀, 형님!”
이에 카노엘은 감격에 겨워 말을 잇지 못했다.
이안은 카노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 노엘아, 어서 움직여 보자꾸나.”
“예, 형님, 그럼 제가 75구역과 78구역 중 어딜 맡는 게 좋을까요?”
마계 75구역은 ‘히포스의 둥지’ 던전이 있는 맵이었으며, 78구역은 ‘레이피온의 동굴’ 던전이 있는 맵이었다.
때문에 각자 다른 맵으로 가자는 카노엘의 제안은, 최고의 효율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안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내가 레이피온을 잡으러 갈게. 네가 히포스를 잡으러 가도록.”
“그, 그래도 괜찮을까요?”
“물론!”
같은 중급의 마수이기는 했지만, 히포스보다 레이피온의 레벨이 훨씬 높다.
당연히 레벨이 높은 레이피온 쪽이 포획 난이도도 훨씬 높을 수밖에 없는 것.
카노엘은 더욱 감격하고 말았다.
‘아, 역시 이안 형님! 동생을 위해 이런 희생 정신이라니……. 앞으로 더욱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하지만 그 감격어린 카노엘의 그 표정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색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노엘아, 조건이 하나 있다.”
“……!”
긴장한 나머지 마른침을 한 차례 꿀꺽 삼키는 노엘.
그리고 이안의 말이, 천천히 이어졌다.
“퀘스트 끝나면, 포획한 마수들은 전부 내가 가져간다. 오케이?”
로페른 퀘스트의 끝은 농장에 모아 둔 마수들을 마르텔이 확인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퀘스트가 끝난 뒤, 포획했던 마수들은 다시 되돌려 받을 수 있었다.
이안이 원하는 것은, 바로 이 육백 마리의 마수들이었다.
“하, 하하, 형님, 형님께서 ‘고작’ 중급 마수들 데려다가 어디에 쓰시려고요?”
사실 카노엘은 그 답을 알고 있었다.
육백 마리나 되는 마수들을 이안이 어디에 쓰겠는가.
‘히든 클래스도 가지고 계시니, 죄다 마수 연성에 사용하시겠지.’
카노엘도 사실 이 퀘스트가 끝나면, 포획한 마수들을 데리고 세르비안의 연구소로 향할 계획이었다.
육백 마리나 되는 마수들을 연성하다 보면, 최상급 이상의 마수 한 마리 정도는 건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안의 대답은, 카노엘이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내가 중급마수 육백 마리로 뭘 하겠어? 마수 연성하지. 아무튼, 콜?”
카노엘은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 *
노가다의 제왕 이안과 함께한 로페른 퀘스트는, 정말 하루도 채 지나기 전에 클리어되었다.
퀘스트가 끝나자 보상을 준 로페른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마계 100구역의 마수 농장에는 이안과 카노엘만이 남아 있었다.
“자, 이제 실험을 시작해 볼까?”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육백 마리의 마수들을 둘러보는 이안.
그리고 그의 옆에는, 녹초가 된 카노엘이 거의 기절한 것처럼 쓰러져 있었다.
“형, 형은 힘들지도 않아요? 아니, 힘든 걸 떠나서 지금 새벽 4시인데……. 안 졸려요?”
“응. 지금 설레서 잠도 안 온다, 야.”
“…….”
말을 잃은 카노엘은 벌떡 일어나 자리에 앉았다.
이대로 누워 있다가는 잠에 들어 자동 로그아웃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퀘스트가 완료되었으니 로그아웃되도 별 상관은 없었지만, 카노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 형이 대체 뭘 할지 너무 궁금하니까…….’
이 종잡을 수 없는 형이 육백 마리나 되는 중급 마수들을 연성하면, 대체 뭐가 만들어질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리고 카노엘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이안의 마수연성 쇼가 시작되었다.
우우웅-!
우웅- 우우웅-!
연달아 쉴 새 없이 울려 퍼지는 마수 연성으로 인한 공명음.
입까지 앙다문 채 집중하고 있는 이안을 카노엘은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흐음, 이번이 벌써 다섯 번째 연성이네. 그나저나 다섯 번의 중급 마수 연성 중 세 번이나 성공시키다니……. 마수 연성술사 클래스, 이거 너무 사기 같은데.’
카노엘은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올리며, 나름대로 이안의 연성 작업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근데 이 형 대체 뭘 하려는 거지? 벌써 연성을 열 번도 넘게 했는데……. 레시피를 단 한 번도 안 바꾸잖아?’
대부분의 소환마들이 마수를 연성할 때에는, 한 번 연성에 성공하고 나면 레시피를 바꾸는 것이 보통이었다.
어차피 같은 레시피로 계속 연성해봐야, 똑같은 마수가 만들어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안은 무려 똑같은 마수가 다섯 마리나 만들어질 때 까지, 레시피를 바꾸지 않고 있었다.
‘대체 뭘 하는 거지……?’
정상인(?)인 카노엘로서는,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이안의 기행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이안의 레시피가 드디어 바뀌었다.
베이스였던 레이피온을 보조 마수로 바꾸고, 보조 마수였던 히포스를 베이스 마수로 바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카노엘은 더욱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이 형, 혹시 공식 커뮤니티도 확인 안 한 건가? 거꾸로 연성하는 건 틀린 레시피일 텐데…….’
히포스와 레이피온의 합성 마수는 ‘레이카스’라는 상급 마수였다.
그리고 레이피온을 베이스로 마수를 연성하는 것이 유저들에게 잘 알려진 레시피였다.
히포스를 베이스로 넣고 레이피온을 보조로 집어넣는 마수연성은 아무도 성공한 적이 없다는 ‘틀린 레시피’이기 때문이다.
“하아암.”
이안의 기행을 지켜보던 카노엘은 눈물까지 찔끔 흘려가며 커다랗게 하품했다.
당최 뭘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으니 다시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다섯 번 중에 세 번이나 연성을 성공시키던 이안은, 벌써 열 번의 마수 연성을 연달아 실패하고 있었다.
‘레시피가 틀렸으니 아무리 이안 형이라도 어쩔 수 없지…….’
슬슬 졸음을 참는 데도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카노엘이 호기심을 버리고 잠을 택하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됐다!”
계속 실패만 반복하던 이안이 양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탄성을 내질렀다.
시도하지 말라고 만들어 놓은 ‘틀린 레시피’를 가지고, 결국 마수 연성에 성공한 것이다.
“오!”
다시 정신이 들기 시작한 카노엘은 쭐래쭐래 이안의 옆으로 다가갔다.
틀린 레시피를 가지고 억지로 만들어진 마수의 정체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잠이 다 달아나기도 전, 카노엘의 입에서 한숨이 푹 하고 새어 나왔다.
“아, 뭐예요, 형. 결국 레이카스잖아요.”
틀린 레시피를 가지고 겨우겨우 만들어 낸 마수가, 결국 지금까지 연성했던 마수와 똑같은 녀석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실망한 카노엘과는 다르게 이안은 전혀 실망하지 않은 표정이었다.
오히려 실망은커녕 그의 표정에는 희열이 넘치고 있었다.
“후후,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다만 그 모습을 보는 카노엘은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행을 벌이면서, 이안은 정말 중요한 사실을 알아내었다.
“연성된 마수의 능력치 분포는, 1번 재료로 들어가는 마수의 능력치 분포에 따라 정해지는 거였어!”
지금 이안의 눈앞에는, 두 마리 레이카스의 능력치 창이 떠올라 있었다.
두 마리 모두 방금 연성해서 만들어진 마수였으며, 다만 둘 중 한 녀석은 비정상적인 레시피로 만들어진 녀석이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분명 같은 레벨의 같은 이름들 가진 두 마리의 마수가, 완벽히 다른 전투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부분이었다.
물론 카일란에서는 같은 레벨의 같은 개체라 하여도 다른 능력치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 다름의 범위는 그렇게 크지 않다.
특히 레벨이 1인 경우에는, 아무리 커 봐야 플러스마이너스 10퍼센트 정도의 차이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안의 눈앞에 있는 두 마리의 레이카스는, 일반적인 상식을 완전히 벗어나고 있었다.
두 녀석의 전투 능력을 자세히 살펴보면…….
-레이카스 : 공격력 : 17, 방어력 : 19, 민첩성 : 8, 지능 : 5
-레이카스 : 공격력 : 18, 방어력 : 9, 민첩성 : 16, 지능 : 4
전체 능력의 합은 엇비슷한데도 불구하고, 능력치 분포가 완벽하게 다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상한 결과가 나온 것은 당연히 연성 순서 때문이었다.
‘첫 번째 녀석은 레이피온이 베이스고 히포스가 서브로 들어간 녀석이지. 그리고 녀석의 능력치 분포를 보면, 완벽히 히포스의 스텟 구성을 따라갔어.’
레이피온은 사자의 형상을 한, 공격력과 민첩성에 특화된 날렵한 마수이다.
반면에 히포스는, 거대한 하마를 연상케 하는 딜탱형 마수였다.
‘그리고 두 녀석을 연성해서 만들어 낼 수 있는 레이카스는, 뚱뚱한 곰 같이 생긴 딜탱형 마수이지.’
반면에 두 번째 레이카스는 스텟 구성이 날렵한 공격형 마수인 ‘레이피온’을 빼다박았다.
둔해 빠진 레이카스의 외형은 그대로 가져왔지만, 스텟 구성만큼은 날렵한 레이피온을 따라온 것이다.
그리고 이 녀석을 연성할 때 재료로 들어간 마수는 히포스가 아닌 레이피온이었다.
‘이제 됐어. 이 시스템을 제대로 이용하면, 진짜 최강의 마수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거야……!’
카노엘을 열심히 착취한 덕에 이안은 결국 마수연성 시스템의 모든 구조를 알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 중, 가장 핵심이 되는 두 가지의 비밀은 이것이었다.
1. 연성된 마수의 전투 능력 총합은, 베이스가 되는 마수의 능력치를 기준으로 설정된다.
2. 연성된 마수의 전투 능력 분배는, 첫 번째 재료로 들어가는 마수의 능력치 분배 비율에 따라 설정된다.
이 두 가지 명제를 잘만 활용한다면, 이안은 그야말로 본인의 입맛에 맞는 완벽한 마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베이스가 될 마수는 최대한 깡스텟이 높은 녀석으로 데려다 놓고, 첫 번째 재료로 들어갈 마수의 스텟 비율을 가장 효율적으로 만들어 놓으면 되는 것이다.
물론 비율만 좋은 하급 마수를 재료로 넣을 수는 없다.
적어도 베이스가 될 마수와 첫 번째 재료가 될 마수만큼은, ‘전설’ 등급의 마수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야만 신화 등급 마수가 탄생하니 말이다.
“이론은 이제 완벽하고……. 이제 재료만 구하면 되겠군.”
이안이 귀하디귀한 베히모스를 무려 두 마리나 투자해서 ‘자이언트 베히모스’를 연성해 낸 이유.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