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518화 (534/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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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계 입성 (2)

* * *

이안이 놀란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두 스텟 설명의 가장 아래쪽에 쓰여 있는, 한 줄의 간결한 문구.

‘정령술’의 숙련도가 높아질수록, 해당 능력치가 강해진다는 부분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어? 이런 설명은 원래 없었는데…….’

사실 정령 마력과 소환 마력은 올릴 방법이 거의 없는 능력치였다.

두 능력치를 올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소환술사의 탑’에 등재되어 있는 몇몇 직업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것뿐.

한데 오랜만에 확인한 스텟의 설명 창에는 두 스텟을 상승시킬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 쓰여 있었다.

‘정령술……의 숙련도를 올리라고?’

이안은 더욱 어이없는 표정이 되어 버렸다.

그는 지금까지 ‘정령술’이라는 개념이 있는지조차 몰랐으니 말이다.

물론 ‘정령을 활용한 전투’ 자체를 ‘정령술’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는 하지만, 게임 시스템 내에 그런 개념이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대체 뭘까? 정령계 퀘스트를 진행하다 보면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있으려나?’

지금 짐작할 수 있는 건, 이 두 스텟의 설명창이 바뀐 시점이 ‘정령계’를 발견하고 난 이후일 것이라는 정도.

‘정령술이라……. 일단 그걸 배울 방법부터 찾아야겠군.’

생각이 정리된 이안은, 쉴 새 없이 몰아치던 사냥을 중지시켰다.

“얘들아, 사냥 중지! 모여!”

그러자 맵 곳곳에 흩어져 ‘오염된 정령’을 학살하던 이안의 소환수들이 후다닥 이안의 곁으로 돌아왔다.

“주인, 무슨 일이냐뿍. 아직 사냥 시작한지 한 시간도 안 지났다뿍.”

“크릉, 뭔가 불안하다. 주인이 이렇게 일찍 사냥 접는 건 본 적이 없다.”

꾸룩- 꾸루룩-!

소환수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불신(?)에 차 있었다.

한 번 시작하면 최소 반나절은 이어지는 사냥 지옥이 너무 금방 끝났기 때문이다.

불안해하는 소환수들을 한차례 둘러본 이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 지금부터 미션을 주겠다.”

“뿌뿍?”

“무슨 미션요, 아빠?”

이안은 창대를 들어 드넓은 ‘순록의 숲’ 맵의 전역을 휙 하고 가리켰다.

“이 맵 안에 ‘서리동굴’이라는 던전이 있다고 하거든?”

꿀꺽.

조용한 가운데 누군가의 침 삼키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안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지금부터 30분 주겠다. 30분 내로 ‘서리동굴’의 입구를 찾아, 좌표를 찍어 오도록.”

“……!”

“그리고 가장 먼저 서리동굴을 찾은 친구에게는 2시간짜리 자유 사냥 열외권을 주겠다.”

이안이 말한 ‘자유 사냥’이란, 특별한 퀘스트가 없을 때 항상 해 왔던 ‘사냥 노가다’를 의미했다.

심지어 이안이 로그아웃해 있을 때도 진행해야 하는 게 이 ‘자유 사냥’이었으니, 이것은 소환수들에게 있어 엄청난 특혜라고 할 수 있었다.

“두, 두 시간이나?”

“뿍! 내가 찾을 거다뿍!”

“뿍뿍이, 넌 느려서 안 될걸?”

꾸루룩- 꾸꾹!

때문에 이안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 앞에 모여 있던 소환수들은 일제히 사방으로 흩어졌다.

* * *

“이 바보야, 너 때문에 이 언니가 이렇게 고생해야겠니?”

“우쒸, 바람의 평원 난이도가 그렇게 높을 줄 몰랐지!”

“어우. 역시 그냥 ‘순록의 숲’부터 가는 게 옳은 판단이었는데…….”

새하얀 은발에 에메랄드빛의 헐렁한 로브.

그리고 로브만큼이나 푸른 빛깔을 띤 그린드래곤의 위에 탄 쌍둥이 자매는 연신 투덜거리며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좌표는 알고 가는 거지, 바네사?”

“그럼! 당연하지. 이 언니가 날 뭘로 보고……!”

“뭐로 보긴, 뭐로 봐. 길치로 보지.”

“우쒸……!”

티격태격하는 두 자매의 대화가 시끄러웠던지, 그들을 태운 드래곤이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걱정 마라, 사라. 주인은 믿을 수 없겠지만, 내가 좌표를 알고 있.

“뭐, 그렇다면……. 믿어도 되겠네.”

“뭐라고? 코르투스, 너까지 정말 이럴 거야?!”

정겨운(?) 대화와는 별개로, 드래곤의 비행 속도는 무척이나 빠른 편이었다.

때문에 잠시 후, 자매는 목적지였던 순록의 숲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읏- 차!”

순록의 숲 입구에 도착한 자매는 드래곤 코르투스의 등 위에서 내려왔다.

여기까지는 뻥 뚫린 평원이었기에 코르투스를 타고 편하게 날아왔지만, 이제부터는 그럴 수 없기 때문이었다.

순록의 숲은 하늘에서 땅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나무가 우거진 울창한 숲이었고, 그들은 순록의 숲 어딘가에 있는 ‘서리동굴’을 찾아야 했으니 말이다.

“언니, 내가 이쪽으로 움직일 테니까, 언니가 북서쪽 길로 가 볼래?”

“좋아, 바네사. 그럼 찾고 나서 좌표 공유하자고.”

순록의 숲에 도착한 둘은 각자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등장 몬스터의 평균 레벨이 초월 5레벨 정도였던 바람의 평원과는 달리, 순록의 숲에 등장하는 정령들의 레벨은 높아봐야 3 정도였으니, 따로 움직여도 큰 부담이 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잠시 후, 반대편으로 움직이던 두 사람은 다시 모이게 되었다.

-바네사 : 언니! 언니!

바네사의 촐싹 맞은 메시지에, 사라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지? 얘가 서리동굴을 벌써 찾은 건가?’

헤어진 지 아직 3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메시지가 오니, 당황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화가 이어질수록, 사라는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라 : 뭐야, 바네사. 벌써 찾은 거야?

-바네사 : 아니, 그건 아닌데.

-사라 : 그럼 왜 메시지 보낸 건데?

-바네사 : 순록의 숲 안에, 우리 말고 누군가 있는 것 같아.

-사라 : ……?

-바네사 : 동쪽으로 움직일수록, 소멸한 정령의 흔적이 많아지고 있어.

-사라 : 바네사, 거기서 움직이지 말고 기다려! 내가 곧바로 그쪽으로 갈 테니까.

-바네사 : 알겠어, 언니.

1:1메시지 창을 끈 사라는, 곧바로 완드를 치켜들며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동생인 바네사와는 다르게 마법사 클래스인 그녀는, 좌표만 있다면 텔레포트 마법을 이용해 어디든지 이동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텔레포트를 사용해 던전 안이나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지금 두 사람은 같은 맵에 있었으니 문제될 것이 없었다.

슈우웅-!

새하얀 빛에 휩싸인 사라의 신형이, 허공에 부서지며 순식간에 사라졌다.

* * *

띠링-!

-‘서리동굴’ 던전에 입장하셨습니다.

-서리 동굴의 한기로 인해 체온이 급격히 내려갑니다.

-‘냉기 저항’이 10만큼 감소합니다.

-‘냉기’속성 공격의 위력이 5퍼센트만큼 증가합니다.

서리동굴에 입장한 이안의 눈앞에 서너 줄의 간결한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걸 확인한 이안의 두 눈에 이채가 어렸다.

‘역시 여기도 최초 발견이 아니군.’

이안은 한국 서버의 랭킹 1위 유저이다.

그리고 LB사에서 공개하지 않기에 정확히 알 수는 없겠지만, 전 세계의 모든 서버를 통틀어도 절대로 꿇리지 않는 최상위 랭커일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 서버가 아닌 다른 서버에는 각 서버마다 이안과 비견될 랭커들이 두셋 정도는 존재할 것이다.

한국 서버와 서버가 동시에 열린 나라들은 물론이요, 조금 늦게 서버가 열린 나라들조차 이제 격차를 거의 메웠으니 말이다.

때문에 ‘중간계’ 콘텐츠를 타국 서버와 공유한다는 게 사실이라면, 정령계에 이미 여럿의 유저가 들어와 있다 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이안은 400레벨이 된 지 거의 세 달 만에 이곳에 입성했으니 말이다.

‘한가롭게 사냥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어. 정령계에 가장 빨리 들어온 놈이 언제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떻게든 놈을 따라잡아야지.’

물론 이안의 사냥은 ‘한가롭다’라고 표현할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단지 이안 본인만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짹- 째잭-!

어깨에 앉아 기분 좋게 재잘거리는 짹이를 보며, 이안이 피식 웃었다.

“고향에 돌아오니 기분 좋은 모양이구나.”

짹- 째재잭-!

“기계문명인지 뭔지, 지금부터 차근차근 때려잡아 보자고.”

째재잭-!

짹이와 결의를 다진 이안은, 진지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열 걸음을 떼기도 전, 이안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정령들의 친구 Ⅰ’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연계 퀘스트가 발동합니다.

- ‘정령들의 친구 Ⅱ(직업 퀘스트)

과거 순록의 숲에는 ‘라오쿤’이라는 숲지기가 살았다.

정령신의 권능 일부를 이어받은 라오쿤은 태초부터 존재했던 정령이며, 그의 임무는 정령계를 수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령계를 침략한 기계문명은 너무도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정령들은 패배하였고, 순록의 숲에서 끝까지 항전하던 라오쿤은 자신과 계약한 정령술사를 지키기 위해 신이 남긴 마지막 권능을 발현하였다.

감당할 수 없는 힘을 사용한 라오쿤은 소멸하였지만, 덕분에 ‘순록의 숲’에는 자연의 힘이 보존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서리동굴’이 바로 라오쿤이 신의 권능을 발현하며 생겨난 인위적인 빙하동굴이다.

서리동굴의 최하층에는 라오쿤의 정령술사 ‘판’의 유산이 남아 있다.

만약 당신이 판이 남긴 시험을 전부 통과한다면 그의 유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판의 시험을 통과하고 그의 유산을 얻어 기계문명으로 인해 고통받는 정령계를 돕도록 하자.

퀘스트 난이도 : C

퀘스트 조건 : 파티에 400레벨 이상의 소환술사 유저 포함.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정령술’ 스킬 습득(소환술사 클래스가 아닌 경우, 다른 보상을 획득합니다.), ???

이안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표정으로, 퀘스트의 내용을 쭉 읽어 내려갔다.

‘기계문명이라……. 뭔가 낯이 익다 했더니, 정령왕 엘리샤한테 들었던 단어였군.’

처음 이안에게 ‘정령계’라는 차원의 존재를 알려 준 NPC.

물의 정령왕 엘리샤를 떠올린 이안이 씨익 웃었다.

그녀로부터 느껴졌었던, 강력한 힘이 떠오른 탓이었다.

‘정령계 퀘를 전부 깨고 나면, 정령왕이라도 얻을 수 있게 되는 건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제법 긴 퀘스트 내용을 읽어 내려가는 이안.

그런데 잠시 후, 퀘스트 창의 마지막 부분을 확인한 이안의 두 눈이 커다랗게 확대되었다.

“정령술!”

스텟 설명 창에 쓰여 있던 ‘정령술’의 정체를 생각보다 일찍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신규 콘텐츠의 등장인가?’

던전에 진입하는 이안의 걸음걸이가 한층 더 빨라졌다.

소환술사 클래스의 새로운 콘텐츠는 정말 오랜만이었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최상층이어서 그런가? 몬스터가 왜 하나도 없는 거지?’

이안은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던전 곳곳을 주시하며 조심스레 이동하였다.

빨리 움직이는 것과 성급히 움직이는 것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뽀드득-!

또렷한 발자국 소리가 던전 안에 울려 퍼졌다.

서리동굴 안이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에 발소리가 제법 크게 난 것이다.

“……!”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안 일행의 시선은 일제히 소리가 난 곳을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이안은, 저도 모르게 헛바람을 들이켰다.

“헉……!”

소리가 난 바로 그곳에 너무도 낯익은 실루엣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토실토실하고 짧은 네 개의 다리.

그 위에 얹혀 있는 빵빵한 등껍질.

거기에 마지막으로, 무거워 보일 정도로 커다랗고 둥근 머리.

마치 재생되던 영상을 일시정지 시키기라도 한 듯, 이안 일행은 일제히 굳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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