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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술이란? (1)
이안은 유명하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한국에서만의 일이 아니다.
세계 각국의 카일란 팬들 중에는 이안의 팬이 수없이 많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온도 차이’라는 것은 분명히 존재했다.
한국에선 카일란 유저가 이안을 모른다면 간첩 취급을 받겠지만, 해외 서버에선 그 정도는 아닌 것이다.
적어도 해외 유저들 중에서는 이안을 아는 사람보단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사라와 바네사는 후자에 속하는 유저들이었다.
특히 바네사의 경우 독불장군에 가까운 성격이었기 때문에 다른 유저들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이안을 그저 잘 알려지지 않은 소환술사 랭커 정도로 판단하고 있었다.
“이안, 우리가 캐리해 줄 테니까 걱정 말라고!”
“그래. 바네사가 좀 모자라 보여도……. 소환술사 중에서는 최고니까 믿어도 될 거야.”
띠링-!
-유저 ‘바네사’가 파티에 초대합니다.
-현재 파티원 : 바네사 외 1명
-초대를 수락하시겠습니까? (Y/N)
피식 웃은 이안은 흔쾌히 바네사의 파티 초대를 수락하였다.
이 쌍둥이 자매가 적극적으로 나올수록, 부려먹기는 더 편해질 것이었으니까.
특히 독일 서버의 소환술사 랭킹 1위라는 바네사에게는 묘한 호승심도 생겼다.
‘소환술사 중에선 최고라……. 뭐, 이제부터 보면 알겠지.’
독일 서버의 경우, 한국 서버보다 3~4개월 정도 늦게 오픈한 서버이다.
그 말인 즉, 후발 클래스인 소환술사의 경우 한국 서버와 시작점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다.
바네사의 상태(?)를 보면, 그 서버의 수준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었다.
예뿍이를 향해 시선을 돌린 이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아. 이 친구들이랑 함께 도전하도록 하겠어.”
그러자 예뿍이가 짧은 목을 아래위로 끄덕이며 밝게 웃었다.
“그럼, 행운을 빌겠뿍.”
우우웅-!
예뿍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안의 앞에 파란 마법진이 펼쳐졌다.
이어서 세 사람은,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띠링-!
-‘판의 첫 번째 관문’ 던전에 입장하셨습니다.
-첫 번째 시험이 시작됩니다.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떠오르는 두 줄의 시스템 메시지.
새로운 공간에 들어온 세 사람은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시험에 대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 세 사람의 앞에 새하얀 빛의 구체가 하나씩 생성되었다.
“어라?”
“……?”
이안 일행은, 각자 자신 앞에 떠오른 구체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 빛의 구체는 옆으로 넓게 펴졌고, 각각 네 개의 그림자로 나뉘어 이안 일행의 앞에 떠올랐다.
놀랍게도 그것은, 각각 다른 형상을 띄고 있었다.
이어서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추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띠링-!
-친구가 될 정령을 선택하세요.
-실프/운디네/샐러맨더/노움.
-정령의 그림자에 손을 대면, 해당 정령의 정보 창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한 번 선택한 정령은 변경하실 수 없습니다.
-선택하신 정령과 함께 모든 관문을 통과해야 하니, 신중히 선택하시길 바랍니다.
-제한 시간 : 358/360초
“음……?”
메시지를 전부 읽은 것인지 사라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그리고 놀란 것은 이안도 마찬가지였다.
그 또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전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이안은 흥미가 동하기 시작했다.
‘소환수랑 정령을 일체 소환할 수 없다더니……. 이 때문이었나?’
이안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아직 구체적인 시험의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지금까지의 정황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유추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본래 가지고 있던 소환수와 정령을 일체 사용할 수 없고, 주어진 정령으로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라…….’
‘판’의 관문이 가진 역할은, 소환술사 유저에게 ‘정령술’을 습득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게다가 관문을 통과할 때 함께할 정령까지 임의로 지정해주는 것이라면, 이안은 이 관문의 역할이 정령술에 대한 이해도와 정령의 운용능력을 시험하는 것일 것이라 추측할 수 있었다.
‘키워 놓은 다른 소환수를 가지고 관문을 통과해 버린다면, 정령 운용 능력을 시험할 수 없을 테니 말이야.’
빠르게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해 본 이안은 바네사를 한 번 응시해 보았다.
그녀 역시 이안과 마찬가지로 네 마리의 정령 앞에서 고민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
사라의 앞에 떠오른 네 개의 그림자를 발견한 이안은, 더욱 흥미로운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 클래스인 사라의 앞에 떠올라 있는 것은, 정령이 아닌 ‘완드wand’의 형태를 띠고 있었으니 말이다.
사라의 앞으로 다가간 이안이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사라, 시스템 메시지 공유 좀 해 줄 수 있어?”
그에 지팡이의 정보를 확인하고 있던 사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론이야. 잠시만.”
그리고 파티 채팅 창에, 사라의 개인 시스템 메시지가 주르륵 떠올랐다.
-사용하실 무기를 선택하세요.
-바람의 지팡이/물의 지팡이/불의 지팡이/땅의 지팡이.
-무기의 그림자에 손을 대면, 해당 무기의 정보 창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한 번 선택한 무기는 변경하실 수 없습니다.
-선택하신 무기를 사용하여 모든 관문을 통과해야 하니, 신중히 선택하시길 바랍니다.
-제한 시간 : 321/360초
“오호!”
사라의 메시지까지 확인한 이안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조금 더 관문에 대한 윤곽이 잡힌 것이다.
‘직업에 따른 무기까지 지정해 준 걸 보면, 소환술사의 경우 유저 캐릭터의 개입까지 막을 수도 있겠어.’
마법사인 사라는 무기를 지정해 주었지만, 소환술사인 이안과 바네사의 무기는 지정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안과 바네사는, 오로지 정령 컨트롤만으로 관문을 돌파해야 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눈앞에 떠올라 있는 네 마리 정령들을 슬쩍 응시한 이안이, 사라와 바네사를 불러 앉혔다.
“사라, 바네사.”
“응?”
“왜 불러?”
“우리 전략을 좀 짜야 할 것 같아.”
“……?”
“각자 정령이랑 무기의 정보 창을 확인해 보고, 조합을 맞춰서 선택하는 게 좋을 것 같단 말이야.”
이안의 말에, 사라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했다.
“이안의 말이 맞아. 확실히 조합을 짤 필요가 있어.”
하지만 바네사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저었다.
“조합? 하지만 난, 벌써 함께할 친구를 정해 버렸는걸?”
“에……?”
“뭐라고?”
바네사의 대답에, 이안과 사라의 시선이 동시에 그녀를 향했다.
이어서 바네사가 멋쩍은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난 샐러맨더가 보자마자 너무 마음에 들었거든.”
“하.”
“그래서 그냥……. 보자마자 이 친구를 선택해 버렸어.”
“…….”
바네사가 손짓하자, 한 마리의 도마뱀이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
온몸이 불길에 휩싸여 있는, 반원 모양의 커다란 눈을 가진 귀여운 도마뱀.
샐러맨더를 응시한 이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뭐,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이안의 말에, 사라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음? 어떻게 할 생각인데?”
이안이 피식 웃으며, 사라를 향해 대답했다.
“뭐 어쩌겠어. 바네사가 선택한 샐러맨더에, 우리 조합을 맞춰야지.”
“하긴…….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겠네. 휘유.”
이안과 사라의 시선이 다시 한 번 동시에 바네사를 향했다.
그에 바네사는 미안했는지 딴청을 피울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일행은 바네사에게 핀잔 줄 시간이 없었다.
이안과 사라의 대화가 다시 이어졌다.
“이제 남은 시간은 4분 정도.”
“정확히는 3분 50초야.”
“2분 뒤에 다시 얘기하자, 사라.”
“알겠어. 그 정도면 충분해.”
구체적으로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사라는 이안이 말한 2분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들었다.
이안이 말한 ‘2분’이란, 각자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의 구체적인 정보 창을 확인해 본 뒤, 남은 시간 동안 의논하여 조합을 짜 보자는 이야기였다.
이안은 먼저, 바네사가 선택했다는 정령인 ‘샐러맨더’의 정보 창부터 확인해 보았다.
-샐러맨더(화염의 정령)
정령력 : 0/200
속성 : 화염
등급 : 최하급 정령
소환 지속 시간 : 250분 (재소환 대기시간 : 300분)
공격력 : 135
방어력 : 75
민첩성 : 105
지능 : 155
생명력 : 2,980
고유 능력
*작은 불꽃 (재사용 대기 시간 25초)
-작은 불꽃을 소환하여, 반경 50센티미터범위에 마법 공격력의 250퍼센트만큼의 화염피해를 입힙니다.
불꽃은 20초 동안 지속되며, 피해를 입힌 대상이 하나 늘어날 때마다 지속 시간이 5초 증가합니다.
‘작은 불꽃’으로 적을 처치할 경우, 재사용 대기 시간이 5초 감소합니다.
*정령력이 Max가 되면 상위 정령으로 진화합니다.
(화염 속성을 필요로 하는 소환 마법을 사용할 때마다 일정량의 정령력이 차오릅니다.)
*소환술사의 소환 마력이 높을수록 정령의 소환 지속 시간이 길어집니다.
‘어, 최하급 정령?’
샐러맨더의 상태 창을 확인한 이안은, 곧바로 의아함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 소환술사의 탑에서 짹이를 얻었을 때가 생각난 것이다.
‘짹이는 처음 얻었을 때부터 하급 정령이었는데……. 하급 정령이 가장 낮은 등급이 아니었던 거야?’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샐러맨더의 능력치 중에 ‘지능’이 있다는 점이었다.
짹이에게는 ‘지능’이라는 스텟이 아예 없었으니 말이다.
‘무려 중급 정령인데도 말이지.’
하지만 이 의문은, 당장에 풀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때문에 이안은 곧바로 고유 능력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작은 불꽃이라……. 범위가 좀 좁기는 하지만 어쨌든 광역 스킬이네.’
많은 적에게 불꽃을 맞출수록 지속 시간이 증가하는 광역 공격 마법.
이런 조건부 광역 마법의 경우, 컨트롤에 따라 그 위력이 배 이상 차이날 수 있다.
게다가 처치 시 재사용 대기 시간 감소라는 부가 효과도 있으니, 잘만 사용하면 정말 강력한 공격 마법이 될 수 있는 스킬이었다.
샐러맨더에 대한 파악이 끝난 이안의 시선이 슬쩍 바네사를 향했다.
‘뭐, 나름 독일 서버 랭킹 1위라니까 컨트롤은 믿어 봐도 되겠지?’
샐러맨더의 정보 창을 끈 이안이 이제 나머지 세 마리의 정령을 훑어보았다.
이제 이안이 이 중 선택해야 할 정령은 샐러맨더의 고유 능력에 가장 잘 어울리는 스킬을 가진 정령이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