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534화 (549/1,027)

========================================

기계문명의 발견 (6)

* * *

돌풍의 협곡 던전에 등장하는 정령들은, 총 세 가지 종류로 나뉜다.

먼저 외형부터 설명하자면, 세 녀석 모두 귀엽기 그지없었다.

한 녀석은 뾰족한 귀를 가진 요정 같은 생김새였는데, 자신의 몸집보다도 훨씬 큰 장궁을 메고 있는 궁사의 모습이었다.

또 한 녀석은 작은 망치와 방패를 양손에 쥐고 있는, 짜리몽땅한 난쟁이의 모습.

마지막 녀석은, 앞의 두 녀석에 비해 덩치가 훨씬 큰, 코끼리를 닮은 녀석이었다.

그리고 그 중 두 종류가 ‘어비스’속성을 가진 정령들인데, 작고 귀여운 두 녀석이 바로 그들이었다.

이들은 둘 다 무지막지한 공격력을 자랑하지만 탱킹 능력은 무척이나 약했다.

활을 든 녀석은 원거리 딜러였으며, 망치를 든 녀석은 근거리 딜러인 것이다.

‘이 녀석들만 있었다면 상대하기 정말 수월했을 텐데…….’

이안의 시선이 빠르게 전장을 스캔했다.

동굴 여기저기 포진하여, 강력한 투사체를 날려 대는 열댓 마리의 어비스 정령.

그리고 그들의 중심에 있는, 커다랗고 새하얀 녀석.

빠르게 적들의 위치를 파악한 이안의 시선이 길목에 버티고 서 있는 코끼리 같은 녀석을 향했다.

녀석은 바로 ‘마법형 탱커’의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 ‘시온’속성의 정령이었다.

‘어떻게든 저 고깃덩이를 먼저 치워야 하는데…….’

시온의 정령은 곳곳에 포진해 있는 어비스 정령들과 다르게, 전장의 중심을 지키는 단 한 마리뿐이었다.

하지만 존재감만큼은 어비스 정령들보다 더욱 큰 것이, 바로 이 돼지 같은 녀석이기도 했다.

이 녀석이 구사하는 새하얀 실드가 가장 큰 골칫덩이였으니 말이다.

시온의 정령이 보호막을 이용해 어비스 속성의 딜러들을 보호해 주니, 정령 하나하나를 처치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녀석을 먼저 타깃팅하자니, 수많은 심연의 정령들이 화살을 뿌려 댄다.

그 한 발 한 발이 좀 아픈 수준이 아니어서, 몇 대만 맞아도 빈사 상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게다가 시온 정령의 탱킹 능력도 상당해서, 바네사와 사라의 딜만으로는 순식간에 삭제하는 것이 쉽지 않다.

‘결국 좀 위험하더라도 내가 들어가야겠어.’

전방에 우르르 몰려나와 망치를 휘두르는 난쟁이 정령들을 향해 이안의 검이 빠르게 움직였다.

쐐액- 쐐애액!

이어서 그의 시선이, 뒤편에 있는 뮤엘을 향해 슬쩍 움직였다.

‘아직까지 다 믿을 순 없지만, 계속해서 실력을 숨기는 것도 무리야.’

지금까지처럼 탱커의 역할만 해서는 퀘스트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

그렇게 판단한 이안은 좀 더 공격적으로 움직이기로 했다.

까강- 깡-!

난쟁이들의 망치를 막아 낸 이안의 방패가 푸르게 빛나기 시작했다.

‘귀룡의 분노’ 스텍이 거의 다 채워져 가는 것.

마지막으로 허공에서 날아든 화살 한 발을 막아 낸 이안이, 전방을 향해 힘차게 도약했다.

-‘귀룡의 분노’ 능력이 발동합니다.

-공격력이 0.5퍼센트만큼 상승합니다.

-‘귀룡의 분노’ 능력이 발동합니다.

-공격력이 0.5퍼센트만큼 상승합니다.

-‘귀룡의 분노’ 능력이 발동합니다.

-‘무적’ 상태가 되었습니다.

* * *

뮤엘이 이안 일행에 합류한 이유는 간단했다.

랄프를 포함한 세 명이 심연의 계곡을 빠져나가고 나면, 최강의 생존 스킬인 ‘미로의 축복’ 고유 능력을 이용해 이안 일행을 탈출시켜 줄 생각이었던 것이다.

물론 미로의 축복을 쓴다고 해서, 이안 일행이 계곡을 건널 수는 없다.

마지막 동굴에 있는 ‘괴물’ 녀석을 처치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반대로 되돌아가 어비스 게이트 밖으로 빠져나가게 해 줄 수는 있다.

그렇게 하면 최소한 이안 일행이 사망 페널티는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그 정도만 해내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충분히 한 거야. 죄책감 가질 필요 없겠지.’

뮤엘 본인이야 퀘스트에 실패하게 되겠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생각이었다.

한 번 실패하면 더 이상 도전할 수 없는 서리동굴의 퀘스트 같은 것도 아니고, 차후에 다시 클리어하면 그만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안 파티에 합류한 지금 뮤엘은 뭔가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 어어?’

동굴에 들어선 이안 일행의 전력이 뭔가 달라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뮤엘 님, 빨리 따라오세요! 벌써 1분 지났다고요!”

“아, 알겠어요, 이안 님.”

이안의 오더를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바네사와 사라.

세 사람의 전력은 분명 지금까지 뮤엘이 봐 왔던 수준과 달랐던 것이다.

‘뭐야, 갑자기 왜 이렇게 잘해?’

최상위 사제 랭커인 뮤엘이 보기에도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컨트롤을 보여 주는 바네사와 지금까지 쓰지 않던 고위 마법들을 난사하는 사라.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놀라움을 선사한 것은 다름아닌 이안이었다.

‘방패 막기’ 실력 하나로 랭커가 된 줄 알았던 특이한 기사 클래스 이안이 갑자기 저돌적으로 전장을 휘젓기 시작한 것이다.

‘이게, 기, 기사 맞아?’

방패는 그야말로 거들 뿐.

지금까지 완벽히 탱커의 역할만 하고 있었던 이안이, 붉게 빛나는 핏빛 검을 휘두르며 미친 듯이 딜을 넣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기사 클래스라기보다 차라리 전사 클래스에 가까운 위용이었다.

우우웅-!

낮은 공명음이 울리더니, 이안의 주변에 황금빛 보호막이 펼쳐진다.

이어서 이안은 순식간에 무기를 스왑Swap하였다.

‘또 뭘 하려는 거야?’

갑자기 방패와 검을 집어넣더니, 한 자루의 장창을 꺼내 든 이안.

뮤엘은 힐 하느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이안의 움직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느 것 하나 상식적인 부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단신으로 저길 들어간다고?’

그녀는 저 황금빛 보호막이 얼마나 강력한 방어력을 지녔는지 모른다.

하지만 달랑 창 한 자루만을 들고 심연의 정령들 사이에 뛰어드는 것이 자살행위라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이안이 빠른 어조로 오더를 내렸다.

“바네사, 좌측 어그로 좀 끌어 줘!”

“알겠어, 이안!”

“사라, 광역 슬로우 좀!”

“오케이!”

위이잉-!

이안이 오더한 스킬들이 동시에 발동되며, 그 순간 이안의 신형이 적진 한가운데를 파고들었다.

그러자 정령들의 공격이 일제히 이안을 향해 쏟아졌다.

쐐애애액-!

단숨에 게임 아웃되어 버릴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

그런데 그때, 이안의 신형이 둘로 쪼개어졌다.

그러면서 둘의 사이로 투사체들이 허망하게 지나가 버렸다.

‘분……신술?’

뮤엘은 경악했다.

기사 클래스가 분신을 소환하는 경우는 지금껏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컨트롤은 또 어떠한가.

분신술을 발동시킨 타이밍이 조금이라도 어긋났다면, 분명 적잖은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이어서 둘로 쪼개어진 이안은, 분신의 잔영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동시에 창을 투척하였다.

콰아앙-!

황금빛 뇌전을 뿜어내며 날아가, 오염된 정령의 몸통을 정확히 꿰뚫는 두 자루의 장창.

뮤엘은 입이 쩍 벌어지고 말았다.

“아…….”

그녀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탄성이 흘러나왔다.

지금 이안이 보여주고 있는 플레이는, 전사 랭킹 2위인 랄프조차도 어지간해서는 흉내 내기 힘든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랄프 님이 랭킹 2위 치고 컨이 좀 떨어지긴 하지만…….’

하지만 그녀의 놀라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뮤엘 님, 보호막 좀 부탁해요!”

“아, 알겠어요!”

이안의 오더에, 뮤엘은 빠르게 보호막을 발동시켰다.

그 사이, 이안은 어느새 새로운 무기들을 꺼내 들고 있었다.

그가 다시 꺼낸 무기는 조금 전 스왑하였던 붉은 검과 푸른 방패.

이번에는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이제 뮤엘은 기대되기 시작했다.

‘창은 나중에 회수하려는 건가?’

그리고 이안은, 뮤엘의 기대에 ‘완벽히’ 부응하였다.

* * *

‘귀룡의 분노’ 고유 능력의 무적 효과와 뮤엘의 보호막에 힘입어 이안은 성공적으로 코끼리 녀석의 바로 앞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진짜 살얼음판 같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수많은 화살들이 이안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고, 조금이라도 실수하는 순간 고슴도치가 되어 게임 아웃될 것이기 때문이다.

‘전방에 셋. 측후방에 둘……!’

미리 활쟁이들의 위치를 파악해 둔 이안이, 양 손을 펼치며 고유능력을 발동시켰다.

“귀룡의 혼!”

그러자 이안과 이안의 분신이 든 방패가 파랗게 빛나기 시작했다.

우우웅-!

이어서 총 여섯 개의 푸른 방패의 형상이 이안의 주변을 차례로 감쌌다.

그리고 그 위로 화살 세례가 쏟아져 내렸다.

쉬식- 쉬쉬쉭!

방패를 소환한 이안은 제 위치에 잘 소환되었는지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대신, 생각해 두었던 다음 스텝step을 향해 움직일 뿐이었다.

타탓-!

이안은 전방에 버티고 있는 커다란 시온의 정령을 향해 내달렸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이안의 분신 또한, 이안과 동시에 똑같이 움직였다.

휘익.

오른손에 들고 있던 방패를 허공에 집어던진 이안이, 블러드 리벤지를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이어서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정령왕의 심판 두 자루를, 하나씩 컨트롤하기 시작했다.

분신을 만들어 내는 능력, 서먼 인카네이션과 무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능력인 바이탈리티 웨폰.

두 스킬의 시너지가 극대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후읍!”

시온 정령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킨 이안이, 정신을 극도로 집중하기 시작했다.

서먼 인카네이션과 바이탈리티 웨폰을 동시에 발동시키면, 컨트롤 난이도가 미친 듯이 올라가기 때문이었다.

물론 분신과 무기들을 하나하나 컨트롤하지 않고 AI에 맡겨둔다면, 사실 난이도라고 할 것이 없다.

분신은 물론, 생명이 부여된 에고 웨폰은 또한 기본적인 인공지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둬도 어느 정도는 알아서 활약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인공지능의 수준이 지극히 낮기 때문에, 컨트롤이 필요한 것이다.

‘적당히 컨트롤과 인공지능을 섞어야 해.’

정령왕의 심판에 타깃을 설정한 이안이 방패를 움직여 방어 위치를 지정하였다.

그러자 네 개의 무구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쏟아지는 화살들을 막아내는 귀룡의 방패와 궁수들을 향해 쏘아지는 정령왕의 심판.

당황한 시온의 정령이 서둘러 실드를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이 이안이 기다렸던 상황이었다.

실드가 빠져야만 녀석을 삭제하는 것이 가능했으니 말이다.

‘지금……!’

이안과 이안의 분신이 동시에 녀석을 향해 뛰어들었다.

둘의 손에 들린 붉은 검이, 동시에 핏빛 안개를 뿜어내었다.

스하아아-!

섬뜩한 소리를 내며, 검신 가득히 피를 머금은 두 자루의 검.

이어서 두 구의 핏빛 그림자가, 하얀 도화지 위를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