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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산의 오염된 광산 (1)
회의가 끝난 나지찬은 득달같이 모니터링실로 달려갔다.
회의 내용을 정리해 놓는 것도 물론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급한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일단 버그 여부부터 확인해야 돼!’
현재 카일란의 세계는 무척이나 중요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
지상계의 유저들이 하나둘 중간계로 넘어가고 있는, 쉽게 말해 과도기적 시기인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 시점에 치명적인 버그가 터져 버린다면, 정말 걷잡을 수 없는 밸런스 붕괴가 일어나고 말 것이다.
삐빅- 삑-!
사원증을 대고 모니터링실 안쪽으로 들어온 나지찬은, 안에 있던 사원들에게 허겁지겁 오더를 내렸다.
“이 대리, 1번 모니터링 컴퓨터 좀 비워 줘.”
“알겠습니다, 팀장님.”
“윤 주임은 한 달치 이안 플레이 데이터 좀 전송해 주고.”
“예, 팀장님!”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모니터링 팀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나지찬의 표정을 보니 제법 급한 일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위잉.
컴퓨터에 데이터를 전부 전송받은 나지찬은 우선 개발 팀과 연결된 분석표부터 확인했다.
그리고 일단은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일단 오류 코드가 뜨거나 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휴, 시스템 상의 오류나 버그가 있었던 건 아니네.’
모든 버그 중 가장 치명적인 것은 게임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니 시스템에 오류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최악의 상황은 면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개발팀에 문제가 없었다면, 기획팀 쪽의 실수였을 확률이 가장 높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기획 3팀의 팀장인 나지찬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돌아가리라.
‘제발 큰 문제는 아니었음 좋겠는데…….’
문제가 된 부분인, ‘정령산의 오염된 광산’ 퀘스트.
이 퀘스트의 기획에 나지찬이 직접 관여한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바로 파악이 불가능했다.
냉수를 한 잔 마신 나지찬은 스크린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어서 이안의 플레이 영상을 재생시킨 뒤 찬찬히 데이터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적어도 한나절 이상은 걸릴 작업이기 때문에, 조급한 마음은 갖지 않기로 했다.
‘그래. 일단 시스템 오류가 아닌 것만 해도 어디야.’
그리고 그렇게 모니터링실에 눌러앉은 나지찬은 모니터링팀이 전부 퇴근할 때까지도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 * *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해진 카일란 초기 시절.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소환술사’ 직업이 생겨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그 시절.
이안이 처음 ‘정령술’이라는 콘텐츠를 접하게 됐던 것은 ‘소환술사의 탑’이 생겨났을 시점이었다.
당시에도 소환술사 클래스 중에서는 압도적인 랭킹 1위였던 이안은 소환술사 직업의 탑에 처음 들어간 유저였고, 그 탑 안에서 정령술과 관련된 스킬 북을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안을 시발점으로 한참 소환술사들 사이에서 정령술이 유행했었다.
변변한 공격 스킬 하나 없이 다른 클래스들의 무기를 사용하여 전투해야 했던 소환술사들에게, 정령술은 무척이나 매력적인 콘텐츠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반년 정도가 지나자 정령술은 거의 사장되고 말았다.
유저들의 레벨이 오를수록 정령술의 효율성은 계속해서 떨어졌으니 말이다.
당시 정령술은 뭔가 많이 부족한 콘텐츠였다.
‘진짜 카일란 기획 팀에서 이 콘텐츠를 왜 만들었나 싶을 정도였지.’
우선 당시의 정령술은 오로지 소환술사가 정령 마법을 쓰기 위한 매개체일 뿐이었다.
소환된 정령에게 전투력 자체가 없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정령이 진화할 수 있는 최대 등급도 중급 정령이 한계였으니, 갈수록 메리트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심지어 정령 마법의 위력을 결정하는 가장 비중 높은 요소인 ‘소환 마력’스텟을 올릴 방법도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쉽게 말해 유저가 성장할수록 정령술도 더욱 강해져야 하는 것인데, 정령 마법의 위력을 향상시킬 방법이 마땅치 않았으니 버려진 것이다.
이안 또한 그때는, 정령술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렸었다.
-소환술사 50~100레벨 초반까지의 구간을, 좀 수월하게 플레이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게릴라성 콘텐츠.
하지만 정령계에 입성하고 ‘제대로 된 정령술’을 접하기 시작하자, 이안은 그때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상계에서 접할 수 있었던 정령 콘텐츠가 왜 그렇게 한정되었어야만 하는지에 대한 이유도 깨달을 수 있었다.
정령술은 애초에, 중간계가 열리고 난 뒤의 콘텐츠였던 것이다.
이안이 이렇게 생각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한 문장에 담겨 있었다.
*직업 스텟은 지상계와 중간계가 같은 비율로 상호 호환됩니다(비율 : 100:1).
이것은 카일란의 공식 커뮤니티에 명시되어 있는 중간계 콘텐츠 관련 설명글의 일부이다.
그렇다면 이 문장의 위쪽에는 어떤 내용이 명시되어 있을까?
*지상계의 전투 스텟은 중간계에서의 초월 전투 스텟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반면 초월 레벨과 초월 전투 스텟이 상승해도 지상계의 전투 스텟이 상승하지는 않습니다(무형적인 전투 능력이 상승하기는 하지만, 미미한 수준입니다).
이 설명에 의하면, 중간계에서의 레벨 업과 파밍으로 인한 전투 능력 상승은 인간계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쉽게 말해 초월 레벨을 아무리 열심히 올려도, 지상계에서의 스텟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반면에 직업 스텟은?
초월 직업 스텟 1을 올리면, 지상계의 직업 스텟 10이 그대로 상승한다.
그런데 정령술의 위력을 결정하는 두 가지 스텟이 모두, 소환술사의 직업 스텟에 포함되어 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지금 상황에선 정령술을 수련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성장이라는 거지.’
이안은 한동안 정령술을 성장시키는 데 올인하기 위해, 소환수들을 전부 소환 해제하였다.
소환수를 컨트롤할 시간에 정령 마법을 한 번이라도 더 시전해야, 정령술의 숙련도와 정령들의 정령력이 조금이라도 빠르게 차오를 테니 말이다.
소환수들의 초월 레벨은 어차피 10까지 올리면 더 올릴 수 없지만, 정령은 계속해서 성장시킬 수 있으니, 이안의 선택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서둘러 프뉴마 마을을 빠져나온 이안은 성소의 북쪽을 향해 이동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푸른빛으로 일렁이는 게이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저기가 정령산으로 연결되는 입구인가?’
이안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게이트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자 게이트의 양옆에 서 있던 NPC들이 이안을 향해 다가왔다.
그들 또한, 염소의 형상을 한 특이한 생김새를 가진 경비병들이었다.
“잠깐. 이곳은 아무나 지나갈 수 없네.”
“예?”
“정령산에는 위험한 기계몬스터들이 많거든.”
경비병들이 이안을 막아섰지만 이안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이미 샬론으로부터 언질을 들었기 때문이다.
“샬론 님께 오염된 광산을 조사하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이안의 말을 들은 두 명의 경비병들은, 동시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
“그게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샬론 님께 확인해 보셔도 좋습니다.”
경비병들은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을 통제하라는 명을 내린 것이 바로 샬론이기 때문이었다.
중간자의 위격을 갖춘 자에게만 통행을 허락하라 한 것이 샬론이건만, 평범한 인간에게 정령산의 임무를 맡겼다니 의아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당황스러워도 그들은 샬론의 명을 어길 수 없었다.
이 정령의 성소에서만큼은, 수호자 샬론의 말이 곧 법이었으니 말이다.
“허, 거짓은 아닌 것 같은데…….”
“중간자도 아닌 인간에게 정령계의 임무를 맡기시다니…….”
이안의 아래위를 쭉 훑어본 두 NPC는 미덥지 못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샬론 님께서도 생각이 있으시겠지.”
“지나가시게, 친구. 다만 정말 조심해야 할 거야. 기계괴물들은 생각보다 강력하니 말이지.”
그들의 허락을 들은 이안은 씨익 웃으며 걸음을 떼었다.
‘위험한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할 문제라고, 친구들.’
이어서 이안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게이트 안쪽으로 들어섰다.
우우웅-!
* * *
까맣게 암전되었던 이안의 시야에 새하얀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리고 그 빛이 잦아들면서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수많은 시스템 메시지들이었다.
띠링-!
-‘정령산’에 입장하셨습니다.
-‘정령산’ 맵을 최초로 발견하셨습니다!
-명성이 30만 만큼 증가합니다.
-48시간 동안 ‘정령산’ 맵의 모든 몬스터들에게서 획득하는 보상이 두 배로 증가합니다(던전을 최초 발견한다면, 경험치 획득 보상이 중복 적용됩니다).
-정령 마력(초월)을 50만큼 영구적으로 획득합니다.
-소환 마력(초월)을 40만큼 영구적으로 획득합니다.
-24시간 동안 ‘정령술’의 숙련도가 한 배 반 만큼 빠르게 증가합니다.
-24시간 동안 ‘정령의 구원자’ 버프가 지속됩니다.
-정령의 구원자 : 정령 마력과 소환 마력 30퍼센트 증가.
……후략……
“워우!”
이안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렸다.
오랜만에 보는, 최상급의 최초 발견 버프였기 때문이다.
특히 신규 던전까지 발견했을 때 적용되는 중복 버프는, 그야말로 꿀 중의 꿀이라 할 수 있었다.
‘크으, 이제 오염된 광산만 찾으면 중복 버프까지 쪽쪽 빨 수 있겠는걸?’
신이 난 이안은 퀘스트 창에 명시되어 있는 좌표를 확인했다.
그리고 미니 맵을 열어 광산이 있을 위치를 체크해 보았다.
‘역시 샬론이 말했던 것처럼 멀리 있지는 않네.’
방향을 잡은 이안은 북쪽을 향해 걸음을 떼었다.
분명 이 정령산 필드에도 사냥할 몬스터들이 즐비하겠지만, 기왕 사냥하는 거면 중복 버프를 받은 채로 풀타임 뛰고 싶었으니 말이다.
“자, 아그비, 짹이, 이쪽으로 움직이자!”
정령들에게 오더를 내린 이안은, 걸음을 재촉하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끼긱- 끼기긱-!
울창한 숲속 어딘가에서, 듣기 거북한 기계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어서 이안의 앞에 나타난 것은 작은 원숭이의 모습을 한 수 많은 기계몬스터들이었다.
-드리오피테쿠스 : Lv. 11(초월)
* * *
“으, 김덜렁 이 자식, 역시 한번 사고 칠 줄 알았다니까…….”
모니터링실에서 죽치고 앉아있기를 10시간 째.
나지찬은 무척이나 다행히(?)도, 동이 트기 전에 어긋난 기획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지찬의 부하 직원 중 한 명인 김지연의 작품이었다.
“하, 내가 좀 더 꼼꼼히 체크했어야 됐는데…….”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지찬의 표정은 그렇게 어둡지 않았다.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버그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해졌기 때문이었다.
‘사실 지연이가 문제가 아니라 이안 놈이 문제인지도…….’
모니터링에 시간이 오래 걸린 것뿐이지 사실 문제가 생긴 이유는 무척이나 간단했다.
이안이 깨서는 안 되는 퀘스트를 깨 버린 게 문제였으니 말이다.
문제가 된 퀘스트는 당연히 기계파수꾼 처치 퀘스트.
이 퀘스트는 원래, 중간자가 되고 나서 클리어하라고 만들어 놓은 퀘스트였다.
기계파수꾼이라는 보스 몬스터를 초월 레벨 10이 넘지 않는 전력으로는 깰 수 없도록 설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래대로라면, 이안의 실력도 그 범주를 벗어날 수 없었다.
이안의 전투력이 대단하다고 해도, 한 자리 수의 초월 레벨로는 기계파수꾼의 괴랄한 회복 능력을 감당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아무리 보스 패턴을 전부 파악하여 모든 공격을 다 피한다 하더라도, 회복 속도보다 강력한 DPS가 나오지 않는다면 죽이는 게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어비스 드래곤’이라는 변수였다.
그렇지 않아도 스텟 깡패인 어비스 드래곤이 속성 강화를 받았고, 거기에 시온 속성을 유일하게 잡아먹는 것이 어비스 속성이었으니 말이다.
‘그냥 퀘스트 발동 조건을 중간자로 설정해 놨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을…….’
한숨을 푹 쉰 나지찬이 소파에 몸을 깊숙이 묻었다.
이안에게 셀 수 없이 당해 본 나지찬이었다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실수였다.
‘뭐, 별수 있나. 이안이 또 무슨 짓을 하는지 지켜보는 수밖에…….’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 퀘스트가 연계 퀘스트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안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정령산에 들어가기는 하였지만, 광산 퀘스트가 끝나고 나면 딱히 거기서 할 일이 없으니 말이다.
어차피 중간자가 되지 않으면 다른 퀘스트는 발동조차 되지 않을 것이고, 초월 레벨도 10 이상은 올릴 수 없으니 정령산의 깊숙한 곳까지는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이안이 아무리 미친놈이라 하더라도, 초월 레벨이 두 배 이상 차이 나는 몬스터들과 드잡이질을 벌이진 못할 테니까.
“으, 스트레스!”
벌떡 일어나 모니터링실 구석의 찬장을 연 나지찬은 숨겨 두었던 감자칩 한 봉지를 꺼내어 들었다.
이어서 봉지를 끌어안은 채 아예 소파에 누워 버렸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오랜만에 각 잡고 이안의 영상이나 구경해 볼 생각이었다.
피이잉-!
나지찬이 리모컨을 조작하자 스크린에 떠 있던 화면이 바뀌었다.
그리고 바뀐 화면에는 이안의 라이브 영상이 송출되기 시작했다.
나지찬은 언제 짜증냈냐는 듯 스크린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