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565화 (579/1,027)

=======================================

무모한 도전자 (3)

* * *

전투가 시작된 지 10분 정도가 지난 뒤.

랄프 일행은 완전히 패닉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15층의 고지를 눈앞에 두고 만난 도전자 NPC(?)의 AI 수준이, 말도 안 되게 높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 녀석은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놈인 건지, 10분 동안 싸웠음에도 아직 클래스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와 미친, 개발사에선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밸런스 붕괴 사기 캐릭을 만들어 놓은 거야?’

그드득 하고 한 차례 이를 간 랄프는, 신출귀몰하며 결투장을 누비는 괴인을 응시하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몇 분 더 버티지 못하고 전멸할 게 불 보듯 뻔했다.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해.’

사실 도전자의 전투능력이 압도적이었다면, 세 사람 모두 애초에 포기해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분명 도전자의 수치적 스팩 자체는, 세 사람을 압도하는 수준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것은 녀석의 공격을 맞았을 때 들어오는 대미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높게 쳐 줘도 초월 레벨 11~12정도일 텐데……. 대체 저 움직임은 뭐지?’

초월 레벨 11~12정도의 스팩은, 정령의 도장으로 치자면 11, 12층의 난이도랑 비슷하다.

그리고 그 정도는 이미, 여기 세 사람의 전력으로도 어렵지 않게 클리어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런데 저 미친놈은 뭔가 상식 밖의 영역에 있는 녀석이었다.

분명 검을 맞대어 보면 해 볼만 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막상 싸우기 시작하면 일방적으로 밀리니 말이다.

게다가 활부터 시작해서 창검까지 자유자재로 무기를 스왑하며 싸우는 모양새를 보고 있자면, 혼이 나가버릴 지경이었다.

‘후, 어떻게 해야 저 쥐새끼 같은 놈을 잡을 수 있을까?’

이제 20퍼센트대로 떨어져 버린 생명력 게이지를 확인한 랄프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이니스코와 체스크의 경우 아직 30~40퍼센트가량의 생명력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상대는 아직까지도 절반이 넘는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시작부터 깎여 있던 생명력을 생각하면 비등하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일 대 삼의 전투였던 것을 감안하면 수치스럽기 그지없는 결과인 것이다.

입술을 깨문 채, 다시 도전자를 응시하는 랄프.

다음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그리고 어둠으로 가려진 도전자의 입에서, 나직한 음성의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쯧, 삼대 일로 빌빌거리는 꼴이라니…….”

“이, 이자식이……!”

랄프는 분노했다.

유저 숫자가 천만단위가 넘는 미국 서버에서도 손에 꼽는 실력자인 그가 언제 이런 취급을 당해 봤겠는가.

심지어 NPC따위에게 말이다.

“놈, 죽어라!”

이미 약이 오를 대로 올라 있던 랄프는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어느덧 시뻘건 기운에 휩싸인 랄프의 신형이, 맹렬히 쇄도하기 시작했다.

* * *

“와, 이건 진짜 미친놈이네…….”

“확실히 멋지고 화려하기는 하네요.”

LB사의 카일란 모니터링실.

마케팅팀의 디자이너 박기훈과 김소영은, 본분도 잊은 채 넋을 잃고 스크린을 응시하는 중이었다.

영상을 뒤로 되돌려, 처음 전투가 시작된 시점부터 다시 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 소영 씨는 게임 안 해 봐서 그런지 이 감동을 제대로 못 느끼네.”

“감동……까지 해야 되는 거예요?”

“소영 씨 축구 좋아한다고 했지?”

“네. 남자 친구가 축구 광팬이라…….”

잠시 뜸을 들인 박기훈이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저 장면을 조금 과장해서 축구에 비유하자면……. 국제대회 A매치에서 박지석 선수가 호우두선수, 메이시 선수 제치고 해트트릭했다고 생각하면 돼.”

“에에, 그 정도예요?”

“그렇다니까. 물론 랄프나 체스크가 그 선수들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미국 서버 최상위권 랭커니까 말이야.”

화면 속의 이안은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처럼 날뛰고 있었다.

세 가지 무기를 번갈아 스왑하며, 미국 랭커 셋과 비등하게 전투하는 모습은 아무런 편집 없는 영상 자체만으로도 마치 액션영화를 연상케 하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압권은, 전투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영상에 집중하던 두 사람이,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앗!”

“어, 위험해!”

* * *

랄프의 공격을 가까스로 피해낸 뒤, 허공으로 도약하는 이안.

그리고 이안의 움직임을 따라 동시에 달려드는 세 사람.

작정을 하고 온 힘을 쏟아부은 세 사람의 공격이, 동시에 이안을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누가 보아도 피할 방법이 없는 공격이었다.

지면을 밟고 있으면 모르되, 허공에 뜬 채로는 방향을 바꿀 방법이 없으니 말이다.

외통수나 다름없는 상황이랄까.

그런데 다음 순간, 이안의 양손이 번쩍 치켜 올라갔다.

‘이쯤해서 슬슬 마무리해 볼까?’

이니스코의 소환수들까지 동시에 이안에게 쇄도하였지만, 이안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은 표정이었다.

대신 그의 한쪽 입꼬리만이 살짝 말려 올라가 있었다.

퍼펑- 펑- 펑-!

랄프 일행의 총 공세가 이안을 향해 작렬한다.

하지만 이안의 생명력 게이지는 멀쩡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안의 생명력은 종전보다 더 높게 차올라 있었다.

-‘수호자의 가호’를 발동하셨습니다!

-‘정령의 보호막’이 생성됩니다.

-‘정령의 보호막’이 도전자 ‘A(알 수 없음)’의 공격을 94.5퍼센트만큼 흡수하셨습니다!

-‘정령의 보호막’이 도전자 ‘C(알 수 없음)’의 공격을 82.48퍼센트만큼 흡수하셨습니다!

-‘정령의 보호막’이 도전자 ‘B(알 수 없음)’의 공격을 75.48퍼센트만큼 흡수하셨습니다!

-흡수하지 못한 충격으로 인해, 생명력이 15,783만큼 감소합니다.

-흡수에 성공한 피해량 33,850만큼의 생명력이 회복됩니다.

이안이 샬론으로부터 얻은 새로운 무기인, ‘수호자의 보주’ 아이템.

그 보주에 붙어 있는 고유 능력인 수호자의 가호가 발동한 것이다.

“……!”

“이, 이게 무슨……!”

물론 수호자의 가호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정령의 보호막’은 최초 피격 시 한 번만 발동하며, 30초라는 재사용 대기 시간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보호막이 생성되어 있는 1초 동안은, 피격되는 모든 공격을 흡수해 낸다.

물론 발동 시점에서 멀어질수록, 흡수율이 줄어들지만 말이다.

이안은 이 부분을 최대한 활용했다.

일부러 저들의 공격을 한 타이밍에 유도하여, 최대한 많은 공격을 받아 낸 것이다.

그렇다면 랄프 일행의 모든 공격이 보호막이 유지되는 1초 안에 전부 들어온 것일까?

물론 그것은 아니다.

때문에 이안은, 보호막이 사라지는 타이밍에 맞춰 다른 스킬을 발동시켰다.

-소환수 ‘엘카릭스’의 고유 능력 ‘드라고닉 배리어’가 발동합니다.

-일시적으로 모든 어그로가 해제됩니다.

-도전자 ‘???’로부터 피해를 입었습니다.

-드라고닉 베리어의 내구도가 25만큼 감소합니다.

-드라고닉 베리어의 내구도가 17만큼 감소합니다.

이안은 수호자의 가호를 발동시킴과 동시에 멀찍한 곳에 엘카릭스를 소환하였고, 이어서 엘카릭스의 고유 능력까지 연계하여 발동시켜 버렸다.

그리고 이것은, 피해를 최소화시키기 위한 이안의 스킬 연계였다.

만약 이안이 처음부터 드라고닉 배리어를 사용했더라면, 아마 절반의 피해조차 막지 못하고 배리어가 소멸되어 버렸을 것이다.

아마 그랬더라면, 이안은 못해도 3만 이상의 피해는 입었을 터.

여기는 중간계였고, 엘카릭스의 초월 레벨은 이제 갓 4레벨에 불과했으니, 아무리 괴랄한 스펙을 가진 드라고닉 배리어라 해도 아직은 약한 것이다.

하지만 ‘정령의 보호막’을 먼저 발동시켜, 최초에 들어온 가장 강한 공격들을 흡수해 내고 나니 배리어의 내구도는 오히려 남아 있었다.

남은 모든 공격들을 받아 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무슨 무적 실드라도 쓴 거야?”

“이거 버그잖아!”

랄프 삼인방은 당황한 나머지, 순간적으로 벙 찐 표정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반응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아직, 결투장 구석에 소환된 엘카릭스의 존재는커녕, 이안이 소환술사라는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하였으니 말이다.

이안의 스킬 매커니즘을 알 턱이 없는 그들로서는, 지금의 상황이 이해될 턱이 없었다.

이안은 씨익 웃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버그? 멍청하면 죽어야지……!’

허공에 떠올랐던 이안의 신형이, 다시 지면을 향해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다.

이어서 정령왕의 심판을 거꾸로 틀어쥔 이안이, 얼 빠진 삼인방을 향해 창극을 힘껏 내리 찍었다.

쾅- 콰드득-!

그리고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안의 창격에 맞아 쓰러진 그들의 머리 위로, 어마어마한 기의 폭풍이 휘몰아쳤으니 말이다.

콰아아아아-!

커다란 폭음과 함께, 순식간에 깎여 내려가는 랄프 일행의 생명력 게이지!

-소환수 ‘엘카릭스’가 드래곤 브레스를 발동합니다.

-소환수 ‘카르세우스’가 드래곤 브레스를 발동합니다.

-소환수 ‘뿍뿍이’가 드래곤 브레스를 발동합니다.

어느새 소환된 이안의 소환수들이 이안의 주변으로 모인 랄프 일행을 향해 모든 공격을 퍼부었고, 랄프 일행은 완벽히 무방비 상태로 그 공격들을 몸으로 받아 내고 말았다.

-도전자 ‘C(알 수 없음)’를 처치하셨습니다.

-도전자 ‘A(알 수 없음)’를 처치하셨습니다.

-도전자 ‘B(알 수 없음)’를 처치하셨습니다.

랄프 일행은 영문조차 모른 채, 그대로 결투장에서 아웃되었다.

* * *

“캬아……!”

“크, 이거지!”

모니터링실 여기저기에서 울려 퍼지는 짧은 탄성들.

이안의 전투가 워낙 요란스러워서인지, 장내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어느새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전투가 끝나자, 그들은 신이 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와, 시바 저거 미국 서버 랭커들 맞아?”

“크으, 국뽕에 취한다. 이 영상 공개되는 순간 논란 종결이네.”

“무슨 논란?”

“너 최근에 커뮤니티 안 들어가 봤냐? 요즘 툭 하면 나오는 떡밥이 세계 랭커 순위야.”

“아하.”

“안 그래도 거기서 누가 이안을 랄프랑 동급으로 비교하던데, 이 영상 대댓으로 달아주고 싶은 심정이네.”

그리고 그들 중에는, 기획3 팀의 팀장인 나지찬과 김지연 주임도 포함되어 있었다.

“와, 역시 이안은 이안이네요.”

“김 주임은 뭐 새삼스럽게 또 그러시나.”

“볼 때마다 새로워서 그래요. 이런저런 어드벤티지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미국 랭커 3인을 저렇게 압도적으로 이길 줄은 몰랐어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한 번 탄식을 내뱉는 김지연.

하지만 나지찬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음? 컨트롤 차이가 압도적이긴 했지만, 사실 전투 자체를 압도적으로 이긴 건 아니잖아?”

“네에?”

“사실 마지막 한 수는 이안도 도박했던 거였어. 만약 여기서 저 바보 같은 세 놈이 미끼를 덥석 물지 않았더라면,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지 알 수 없다고.”

“음? 어째서 그렇죠? 이안은 그때까지 소환수조차 소환하지 않은 상태였던 걸요?”

그리고 나지찬과 김지연의 대화가 이어지자, 소란스럽던 모니터링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카일란의 개발사인 LB사 내에서도, 나지찬만큼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난 인물은 흔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안이 마지막까지 소환수를 소환하지 않았던 이유가, 본인의 능력을 과신해서라고 생각해?”

“그……게 아니었나요?”

“당연하지.”

나지찬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영상이 떠 있는 스크린을 가리키며, 다시 말을 이었다.

“저기 이안 소환수들 레벨, 혹시 보여?”

“어, 그러고 보니……. 4레벨 3레벨 5레벨……. 평균 4레벨정도 되어 보이네요.”

“그렇지.”

“이안은 9레벨이나 되는데……. 소환수들 레벨이 왜 이렇게 낮은 거죠?”

“그야 이안이, 정령을 키우기 위해서 한동안 소환수 레벨업을 미뤄 뒀으니까.”

“아하!”

생각지 못했던 사실을 깨달은 장내의 인원들은, 저마다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지찬의 이야기에는, 이안의 전투에 정신 팔려 캐치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예리하게 담겨 있었다.

“반면에 이니스코의 소환수들 평균 레벨은 6레벨이야. 심지어 그리핀킹은 7레벨이고. 거기다 랄프랑 체스크도 7레벨이야.”

“그, 그러네요.”

“이 상황에서 소환수들을 처음부터 소환했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

씨익 웃으며 던진 나지찬의 물음.

그리고 잠시 후, 김지연의 입이 다시 천천히 열렸다.

“소환수들 먼저 하나씩 따로따로 잘렸겠네요.”

“그렇지. 게다가 탱커인 빡빡이의 레벨이 가장 낮아서, 더욱 소환수 운용이 힘들었을 거야.”

“아하……!”

“그래서 이안은, 마지막까지 소환수들을 아껴 뒀던 거지.”

나지찬 덕에 전투의 핵심을 깨달은 장내의 인원들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주억거렸다.

해설들 들은 뒤 이안의 플레이를 다시 떠올려 보니, 이안의 설계가 더욱 피부로 와 닿는 느낌이었다.

나지찬과 김지연의 대화가 끝나자, 모니터링실은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안이 또 한 번 만들어 낸 역대급 전투 영상을 돌려 보면서, 저마다 의견을 나누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스크린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킨 나지찬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이안의 플레이를 지켜보았다.

‘그래 이안, 이번 영웅들의 전쟁에서 세계 랭킹 1위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보여 주자고.’

스크린 속의 이안을 바라보는 나지찬의 뇌리에, 순간적으로 몇몇 유저들의 아이디가 스쳐 지나갔다.

누구보다 게임 이해도가 높다고 자부하는 나지찬이 보기에도, 이안과 비견할 만한 수준의 능력을 가진 몇몇 플레이어들이 있었다.

이안과 그들이 만날 날을 떠올리자, 나지찬은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