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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준비 (3)
* * *
샬리온은 강력했다.
당초에 이안이 예상했던 것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욕이 사라지거나 하는 것은 전혀 아니었다.
샬리온의 능력이 강하고 다양할수록, 이안의 투지는 더욱 불타올랐으니 말이다.
‘어디 한번, 끝까지 해보자고.’
이안의 시야에 수많은 정령들의 그림자가 가득 찼다.
샬리온의 고유 능력들 중 가장 까다로운 능력인 ‘정령 복제술’이 발동된 것이다.
웅, 우웅- 우우웅-!
몽환적인 느낌의 공명음이 연달아 울려 퍼지더니, 샬리온의 정령이 여럿으로 복제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듣도 보도 못한 종류의 엄청난 정령 마법.
하지만 조금 전에도 이 마법을 경험한 이안은 작게 한숨을 쉴 뿐이었다.
‘벌써 재사용 대기 시간이 돌아온 거야? 이건 뭐……. 차라리 듀플리케이션Duplication 마법이 상대하기 편하겠어.’
마법사들이 구사하는 고위 마법 중 하나인 듀플리케이션은 대상을 여럿으로 복제하는 마법이다.
하지만 듀플리케이션으로 복제된 복제품은 제대로 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능력치가 본판에 비해 떨어짐은 물론, 본체가 가진 고유능력들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적들과 싸우기보다는, 적들을 교란시키는 게 주목적인 마법인 것이다.
그러나 이 샬리온의 정령 마법은 달랐다.
듀플리케이션 마법보다 지속 시간은 훨씬 짧지만 훨씬 많은 숫자를 복제할 수 있으며, 복제된 정령들은 고유 능력까지 사용할 수 있었다.
듀플리케이션과 달리 이 정령복제술은, 순간적으로 강력한 전투력을 뽑아낼 수 있는 마법이라 할 수 있었다.
‘아까는 도망 다니기 바빴지만…….’
이안은 다가오는 정령들의 움직임에 집중하였다.
그리고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정면 돌파다!’
처음 이 정령 복제술이 발동되었을 때 이안이 할 수 있는 것은 복제된 정령들이 유지되는 동안 버텨 내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지난 경험으로,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복제 정령들이 유지되는 거의 3분이라는 시간 동안 도망만 다니다 보면, 힘들게 깎아 놓은 샬리온의 생명력이 어느새 전부 회복되어 버리기 때문이었다.
‘한번 승부수를 띄워 봐야겠어.’
정령들의 뒤편에 서서, 한껏 집중한 표정으로 그들을 조종 중인 샬리온.
30~40퍼센트 정도 남은 샬리온의 생명력 게이지를 한 차례 확인한 이안이, 정령들의 무리를 향해 뛰어들었다.
타탓-!
그러자 샬리온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맴돌았다.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지금까지의 전투를 통해, 이미 샬리온은 이안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 증거로 이안의 퀘스트 조건은 이미 충족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두 사람의 전투는 왜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했다.
조건이 충족됨과는 별개로, 일단 어느 방향으로든 전투가 끝나야 퀘스트가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이안이 이기거나 샬리온이 이기거나.
둘 중 하나가 되어야 퀘스트의 내용이 진행되는 것이다.
물론 ‘일반적인’ 경우라면, 샬리온이 이안을 이기면서 퀘스트가 이어지는 게 맞다.
애초에 샬리온은 초월 10레벨도 되지 않은 이안이 이길 만한 존재가 아니었으며, 심지어 지금 이안은 정령술과 아이템의 고유 능력을 제외한 모든 스킬을 봉인당한 상태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둘의 전투는 그야말로 막상막하였다.
때문에 샬리온은 혼란스러웠다.
‘정말 지상계의 인간이 맞는 것인가? 아니면 나조차도 파악하지 못한 더 대단한 존재라는 말인가!’
샬리온은 이를 악문 채, 필사적으로 정령들을 컨트롤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정령의 도장을 지키는 사범 중 가장 약체라고는 하나, 중간자의 위격조차 얻지 못한 존재에게 패배했다는 불명예는 용납할 수 없었으니까.
자신의 정령들과 맞부딪치는 이안을 응시하는 샬리온의 두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땅의 능력을 사용해서 뚫어 보려는 건가 본데……. 그걸 쓴다고 해도 버텨 내기는 힘들걸?’
척-!
샬리온은 들고 있던 지팡이를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그러자 그의 정령들의 머리 위로 황금빛 기운이 빨려 들어갔다.
위이잉-!
이어서 이안의 시야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도장 사범 ‘샬리온’이 정령 마법 ‘바람의 영혼’을 발동하였습니다.
-일정 시간 동안 ‘엘티카’정령의 속성이 ‘바람’으로 변환됩니다.
-일정 시간 동안, ‘엘런’정령의 속성이 ‘바람’으로 변환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순간, 이안의 동공은 크게 확대되었다.
‘젠장!’
샬리온이 예상했던 것처럼, 이안은 땅의 능력을 활용해 정령들의 협공을 버텨 내려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샬리온이 부리는 소환수들은 대부분이 ‘물’속성을 가진 녀석들이었으니, 물 속성에 강한 땅 속성 방어 버프를 두르면 어지간한 공격은 전부 버텨 낼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완벽히 역전되었다.
샬리온이 ‘바람의 영혼’ 마법을 사용함으로 인해, 정령들의 속성이 오히려 땅 속성에 강한 바람 속성으로 변환되었으니까.
그리고 문제는 하나가 더 있었다.
방금 전에 불 속성의 가면 정령이 지나간 탓에, 불의 능력을 발동시킬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화염 폭발을 일으키기 위해선 20초를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
심지어 이안은 이미 정령들을 향해 도약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욱더 상황은 급박하였다.
머리를 빠르게 굴린 이안은 땅의 정령을 흘려보낸 뒤 ‘바람’의 능력을 발동시켰다.
-‘정령의 능력’을 사용합니다.
바람의 능력으로 소환할 수 있는 회오리바람은 마치 떡대의 어비스 홀 같은 광역 CC스킬이다.
-‘가면의 정령’이 소멸합니다.
어비스 홀과 달리 적에게 피해를 입힐 수는 없지만, 제법 긴 시간 동안 적들을 ‘무방비’ 상태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
콰아아아-!
샬리온의 정령들이 회오리 안으로 빨려 들어가자, 이안은 다급히 허리를 틀었다.
그리고 관성을 이겨 내기 위해 역방향으로 ‘블러드 스플릿’을 발동시켰다.
쐐애액-!
덕분에 허공을 가르고 지나간 블러드 스플릿은 아무에게도 피해를 입힐 수 없었다.
하지만 이안의 스킬 운용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블러드 리벤지’ 아이템을 해제합니다.
-‘수호자의 보주’ 아이템을 착용하였습니다.
화르륵-!
블러드 리벤지의 발동이 끝나자마자 이안은 장비를 스왑하였다.
그리고 몸을 다 가누기도 전에, ‘지옥의 화염시’를 발동시켰다.
-정령마법, ‘지옥의 화염시’를 발동합니다.
화르륵-!
이안의 손에 다시 들린 화염의 장궁이, 연신 불을 뿜어 대기 시작했다.
물론 화살의 목적지는 샬리온의 정령들이었으며, 단 한 발도 빗나갈 일은 없었다.
저 강렬한 회오리바람이 잦아들지 않는 한은 말이다.
피핑- 피피핑-!
-강력한 회오리바람이 일어납니다.
이안은 그야말로 미친 듯이 활시위를 당겼다.
명중률에 대한 걱정이 없으니, 연사 속도는 더욱 빨라질 수 있었다.
‘무방비 상태가 끝나기 전에, 표식을 터뜨려야 해……!’
강렬했던 회오리바람이 잦아들수록, 이안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회오리가 사라지기 전에 표식을 폭발시켜야 방어력을 무시한 강력한 대미지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안의 계산대로라면, 녀석들은 표식 폭발을 버텨 낼 수 없을 것이다.
속성 상성이 좋지 않은 데다 방어력까지 무시당하니, 아마 어마어마한 대미지가 들어갈 것이다.
이안과 마그비가 쏘아 낸 화염의 화살들이, 순식간에 장내를 빨갛게 수놓았다.
이어서 다음 순간.
펑- 퍼펑- 펑-!
-‘지옥불’ 표식의 중첩이 Maximum이 되었습니다.
-표식이 강력한 폭발을 일으킵니다.
-‘지옥불’ 표식의 중첩이 Maximum이 되었습니다.
-표식이 강력한 폭발을 일으킵니다.
이안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엄청난 대미지가 폭발하였다.
-샬리온의 정령 ‘엘리카’에게 치명적인 화염 피해를 입혔습니다.
-상성관계로 인해, 더욱 강력한 피해가 발생합니다.
-샬리온의 정령 ‘엘리카’의 생명력이 10,987만큼 감소합니다.
-샬리온의 정령 ‘엘리카’의 생명력이 9,788만큼 감소합니다.
그간 이안과 마그비는 지속적으로 성장해 왔다.
이안의 경우 초월레벨이 오름과 동시에 ‘정령술’의 숙련도도 많이 올랐으며, 마그비의 경우 계속해서 정령력이 증가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화염시의 표식 폭발로 입힐 수 있는 대미지는 3천~4천 정도가 최대치였다.
아니, 화염시 뿐만이 아니었다.
이안은 중간계로 넘어온 이후 한 틱에 1만이 넘는 대미지는 처음 띄워 보았다.
때문에 이안의 입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크으!”
‘방어력 무시에 상성이 겹치니까, 대미지가 진짜 우주로 가는구나!’
하지만 감탄만 하고 있을 상황은 아니었다.
성공적으로 전세를 역전시킨 이안은 곧바로 샬리온을 향해 뛰어나갔다.
타탓- 탓-!
그리고 그와 동시에 또다시 무기를 스왑하였다.
-‘수호자의 보주’ 아이템을 해제합니다.
-‘정령왕의 심판’ 아이템을 착용하였습니다.
이안이 파악하기로 지금의 샬리온은, 거의 대부분의 고유능력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일 것이었다.
정령 복제술이 너무도 빨리 파훼되어 버렸기 때문에, 다른 스킬들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돌아오지 않았을 터였다.
아마 샬리온이 지금 유일하게 쓸 수 있는 마법은 리플랙팅 실드Reflecting Shield뿐일 터.
때문에 이안은 정령왕의 심판을 꺼내어 들었다.
이어서 그것을, 샬리온을 향해 냅다 집어 던졌다.
쐐애애애액-!
공간을 찢어발기기라도 하는 듯, 강렬한 파공성과 함께 금빛 창이 쏘아져 나갔다.
황금빛 전류에 휩싸인 정령왕의 심판은, 마치 한 줄기 번개와도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샬리온은 이안의 변칙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
콰아앙!
커다란 폭발음이 울려 퍼지며, 샬리온의 신형이 뒤쪽으로 튕겨져 나갔다.
-도장사범 ‘샬리온’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샬리온’의 생명력이 2,398만큼 감소합니다.
-‘정령왕의 심판’ 아이템을 해제합니다.
-‘블러디 리벤지’ 아이템을 착용하였습니다.
그리고 튕겨 나가는 샬리온을 따라, 붉은 빛줄기가 쏘아져 들어왔다.
쐐애액-!
-고유 능력 ‘블러드 스플릿’을 사용하였습니다.
-도장 사범 ‘샬리온’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샬리온’의 생명력이 3,198만큼 감소합니다.
아마 이안이 처음부터 블러드 스플릿을 사용하였더라면,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리플랙팅 실드에 막혀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한 템포 빠르게 정령왕의 심판을 먼저 투척함으로써, 샬리온의 마법 운용을 파훼해 버렸다.
“크으윽-!”
이미 균형을 잃고 쓰러진 샬리온을 향해, 이안의 붉은 검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샬리온은 마지막으로 실드 마법을 발동시켜 보았으나 소용없었다.
콰쾅- 콰콰쾅-!
몇 번의 폭발음과 함께, 실드는 금세 벗겨져 버렸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 폭발음은 이 전투의 마지막을 알리는 소리이기도 했다.
띠링-!
-도장 사범 ‘샬리온’의 생명력이 10퍼센트 미만으로 떨어졌습니다.
-도장 사범 ‘샬리온’과의 결투에서 승리하였습니다.
-결투가 종료되었습니다.
-정령의 도장 15층을 성공적으로 클리어 하셨습니다.
-정령의 도장 15층을 최초로 클리어 하셨습니다.
-최초 클리어 보상이 적용됩니다.
-‘초월 장비 상자(Lv. 10~20)×2’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영웅 점수 30점을 획득하셨습니다.
이안의 시야를 수놓는 수많은 기분 좋은 시스템 메시지들.
-‘샬론의 심부름’ 퀘스트의 클리어 조건이 모두 충족되었습니다.
-‘샬론의 심부름’ 퀘스트의 숨겨진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대기실로 이동합니다.
마지막 메시지까지 확인한 이안은 자신도 모르게 양손을 꾸욱 하고 말아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