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592화 (605/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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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신병 (3)

* * *

전장 안에서 이안의 존재감은 점차적으로 커져 갔다.

처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병사 1에서 시작하여 운 좋게 장교를 처치한 신경 쓰이는 병사였다가.

3킬을 올리고 장교로 진급한 뒤에는 제법 위험해 보이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또다시 이안의 턴이 가까워 오자, 이제는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매번 상상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이안의 행보가, 무척이나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안에게 관심이 본격적으로 쏠리기 시작한 것은, 그가 ‘기마대’를 선택했을 때부터였다.

오직 ‘전진’만이 가능한 직책인 기마대.

그리고 지금 이안의 위치는 적진의 초입이었기에, 기마대를 선택한 순간 이미 적진으로 파고들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었다.

“크, 슈퍼신병 차례 곧 온다.”

“이번엔 어떻게 움직일까?”

“어떻게 움직이긴. 측방으로 더 이동해서 남아 있는 병사들 먼저 잡으려 하겠지. 병사들이 제일 만만하잖아?”

“하긴. 내가 저 친구여도 병사들 먼저 타깃팅하겠어. 2킬 더 올리고 장군 달고 싶을 테니 말이야.”

“에이, 그건 힘들걸?”

“왜?”

“지금 그쪽에 수비대장 있잖아. 아무리 저 녀석이라 해도, 수비대장까지 함께 상대하려고 하지는 않을 거야.”

관중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지금 이안의 포지션이, 어떻게 움직여도 위험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의견은, 결국 하나로 귀결되었다.

측방의 가장 외곽 쪽에 있는 병사 하나가, 수비대장의 수비 범위 바깥으로 벗어나 있었으니 말이다.

“결국 저쪽으로 움직이겠지?”

“그럴 거 같아. 병사 킬 따고, 다른 천군 유저들의 지원을 기다리겠지.”

하지만 잠시 후 이안의 차례가 돌아왔을 때.

-전투가 종료되었습니다.

-천군 진영의 기마대장, ‘이안’유저의 턴입니다.

모두들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

턴이 오자마자 한 치 망설임도 없이, 이안이 전방을 향해 성큼성큼 걸었기 때문이었다.

“저 미친놈, 뭐 하는 거야?!”

마군 진영의 ‘대장군’을 향해 점점 가까워지는 이안의 말.

마군 진영의 유저들은 숨죽여 그의 행보를 지켜보았고, 그것은 천군 유저들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앞으로 걸어 나가는 이안만이, 무척이나 평온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전방으로 한 칸 이동하였습니다.

-‘기마대의 질주’ 효과가 적용되어 공격력이 2퍼센트만큼 상승합니다.

-전방으로 한 칸 이동하였습니다.

-‘기마대의 질주’ 효과가 적용되어 공격력이…….

‘기마대의 질주’ 효과는 전장의 모든 유저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선 이안이 다섯 칸 앞에 있는 ‘보좌관’을 공격해야 한다는 것도 모두가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모든 유저들은, 그것이야말로 자살행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 4연속 전투를 벌인 이안이 동급의 직책인 보좌관을 상대로 이길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물론 이안은 한차례 진급하여 모든 생명력을 회복하였으며, 방금 전 왕차이와의 전투에서도 거의 생명력이 닳지 않았지만 다른 이들은 그런 사실을 알 턱이 없었다.

생명력이 회복되었다는 메시지는, 이안에게만 떠오른 것이었으니까.

척-!

마군 진영의 보좌관 앞에 서, 천천히 검을 빼어 든 이안.

-천군 진영의 기마대 ‘이안’ 유저가 마군 진영의 보좌관 ‘아레미스’ 유저를 공격합니다.

-‘이안’ 유저와 ‘아레미스’ 유저의 전투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 전투는, ‘신의 말판’ 전장의 커다란 분기점이 되었다.

* * *

대부분의 유저들은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이안의 이 한 수에는 무척이나 복잡한 수 싸움이 담겨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무대뽀처럼 보이는 행보일지 몰라도, 이안은 이 한 수를 결정하는 데까지 무척이나 공을 들여 머리를 굴렸으니 말이다.

‘이 전투에서, 최대한 압도적으로 이겨야 해.’

애초에 이안은, 보좌관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눈꼽 만큼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아직 숨겨 놓은 패가 많기도 했을 뿐더러, ‘기마대의 질주’ 효과로 인한 25퍼센트 공격력 상승 버프에 선공 버프까지 둘렀으니 말이다.

다만 문제는, 전투가 끝난 뒤였다.

이안이 보좌관을 처치하고 나면, 그 두 칸 옆에 버티고 있는 대장군의 공격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이안은, 대장군을 상대로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일까?

‘쉽게 져 줄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아직은 위험해.’

이안은 적어도 이번 턴에, 대장군의 공격을 받을 생각은 없었다.

아무리 소환수를 전부 꺼내고 숨겨 놓았던 패들을 꺼내어도, 선공 버프까지 받은 대장군을 이기는 건 쉽지 않았다.

이안의 계획은, 대장군이 자신을 ‘공격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 * *

사무실의 모니터로 전장을 관전하던 나지찬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이안의 한 수를 깨닫고는, 온몸에 소름이 돋은 것이다.

‘이 미친놈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처음 이안이 보좌관을 향해 돌진할 때, 나지찬은 두 눈을 의심했었다.

물론 다른 유저들처럼 이안이 보좌관을 이길 수 없으리라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나지찬은 이안이 두르고 있는 아이템들의 상태를 잘 알고 있었고, 때문에 이안이 얼마나 강력한지도 인지하고 있었으니.

이안이 보좌관을 어렵지 않게 이길 것이라는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다만 나지찬이 당황한 이유는, 이안이 보좌관의 바로 옆에 있는 대장군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다음 턴에 대장군이 이안을 잡아먹을 것인데, 이안이 너무 기초적인 실수를 한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을 확장시켜 보자, 이안이 어떤 수를 둔 것인지 하나씩 깨달을 수 있었다.

‘하나, 둘, 셋……. 정확히 열 칸이야. 이안은 여기까지 생각하고 움직인 게 분명해……!’

이안의 뒤쪽에는, 천군 진영의 ‘돌격대장’이 버티고 있었다.

바로 뒤는 당연히 아니었지만, 정확히 대각선상으로 열 칸 뒤에 돌격대장이 서 있었던 것이다.

이 상황에서 이안이 보좌관을 처치하고, 그런 이안을 다시 대장군이 처치한다면 대장군은 당연히 돌격대장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게 된다.

이안을 처치하고 그 자리에 서게 될 테니 말이다.

게다가 이안의 자리에 선 대장군은, 아무 보좌관의 도움도 받을 수 없게 된다.

우측 보좌관은 이안이 처치했으니 도울 수 없는 게 당연했고, 대장군이 우측으로 세 칸 이동함으로 인해 좌측 보좌관과 멀어지게 되니 말이다.

때문에 대장군이 이안을 공격하려면, 이안에게 거의 피해 없이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만 한다.

만약 이안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를 입는다면, 천군 돌격대장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곧바로 달려들 테니까.

‘아니, 이 자식은 대체 뇌 구조가 어떻게 생겨먹은 거지? 현장에서 직접 전투하면서 여기까지 생각이 가능하다고?’

나지찬은 대장군이 이안을 공격하지 못하리라 확신했다.

대장군이 아니라 다른 직책이어도 공격하지 못했을 상황인데, 하물며 사망하는 순간 전투 자체에서 패배하게되는 ‘대장군’임에야 더욱 보수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지찬은 이안의 다음 수까지 볼 수 있었다.

‘하, 이 미친놈, 보좌관 잡고 반대편으로 워프할 생각까지 하고 있는 거였어.’

대장군은 이안에게 덤빌 수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안은 다음 턴까지 어떤 공격도 받지 않을 것이다.

근처에 마군 전력이 의무대장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다음 턴이 돌아온 이안은 유유히 전장을 빠져나갈 것이다.

기마대의 특수능력을 활용하여 마군 진영의 최후방 타일을 밟고 천군진영으로 워프할 수 있으니까.

“돌았다. 진짜 돌았어……!”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에 있던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은 나지찬.

그러자 그의 옆에 있던 김지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조했다.

“역시 이안은 미친 것 같아요.”

김지연의 말을 들은 나지찬이, 고개를 살짝 갸우뚱하며 되물었다.

“김 주임, 이안이 뭘 하려는 건지 설마 이해한 거야?”

김지연의 게임 이해도는, 기획팀에서도 낮은 편이었다.

때문에 몇 수 앞을 내다보는 이안의 움직임을 이해했다는 말이, 비현실적으로(?) 들린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다음 말을 들은 순간, 나지찬은 헛웃음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당연하죠. 팀장님은 제가 바보인 줄 아세요?”

“……?”

“이안 지금 보좌관이랑 자폭하려는 거잖아요.”

“으음……?”

“어차피 기마대는 앞으로밖에 못 움직이니까, 도망칠 수도 없죠. 그러니까 보좌관이라도 제거하고 장렬히 전사하려는 거잖아요. 보좌관 하나만 없어져도, 대장군 공략하기 두 배는 쉬워지니까요.”

“하, 하하……. 김 주임 많이 늘었는데?”

나름 머리를 굴려 본 듯, 자신만만하게 의견을 피력하는 김지연.

그리고 그런 김지연의 예측은 충분히 그럴싸했다.

확실히 평소에 알던 그녀의 수준을 넘어선, 나름 고차원적인 분석이었으니까.

하지만 나지찬은, 이안이 그렇게 이타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안은 결코 천군의 승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리 없는 인물인 것이다.

피식 웃은 나지찬은, 김지연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자, 김 주임.”

“예?”

“우리 그럼, 오랜만에 내기 한 번 할까?”

“무슨 내기요?”

“내기? 뭔데요? 팀장님, 저도 해요!”

“나도!”

‘내기’라는 나지찬의 말에, 기획 3팀의 팀원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모니터링이라는 단순노동에 지쳐 있는 기획 팀원들에게, ‘내기’ 라는 단어는 활력을 불어넣기 충분했으니까.

그리고 사람들이 모이자, 나지찬은 스크린을 응시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상황에서, 이안은 어떻게 될까?”

“……?”

“네?”

어리둥절한 표정이 된 팀원들을 향해 나지찬이 말을 이어갔다.

“여기 김 주임은, 이안이 보좌관을 처치하고 전사할 거라고 했어.”

“저도 들었어요. 제법 설득력 있던데요?”

“맞아요.”

잠시 뜸을 들인 나지찬이, 다시 입을 떼었다.

“하지만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하거든.”

“……?”

나지찬의 얘기가 흥미로웠는지, 조용히 그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3팀의 팀원들.

잠시 뜸을 들인 나지찬은, 씨익 미소를 베어 물며 말을 이었다.

“보좌관을 처치한 이안은, 아마 살아서 나갈 거야. 그리고 다음 턴이나 그다음 턴쯤 해서 장군으로 진급할 거고.”

* * *

전장은 조용했다.

아니, 조용함을 넘어 무서울 정도의 적막에 휩싸여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바로 모두의 눈앞에 떠올라 있는 몇 줄의 시스템 메시지 때문이었다.

-마군 보좌관, ‘아레미스’유저의 생명력이 전부 소진되었습니다.

-천군 기마대, ‘이안’유저가 승리하였습니다.

-‘아레미스’유저가 전장 바깥으로 소환됩니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이안이 승리했다.

아니, 승리한 것을 넘어, 말도 안 되는 광경을 연출하였다.

“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혹시 버그 유전가?”

“이거 뭐야……. 무섭잖아.”

전투가 시작된 지 정확히 3분.

마군의 보좌관 아레미스를 처치하는 데, 이안이 소요한 시간은 단 3분이었다.

그리고 말이 3분이지, 관객들이 체감한 시간은 더욱 짧았다.

아레미스는 정말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해 보지 못하고 사망해 버렸으니까.

히이잉-!

바늘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릴 것 같은 어두운 적막 속에, 스산한 말 울음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거대한 묵빛 날개를 양 옆으로 쫙 펼친 채, 사뿐히 바닥에 내려앉는 한 마리의 소환수.

탓.

이어서 말의 위에 올라 있던 한 그림자가, 가볍게 바닥에 내려섰다.

그리고 그 그림자는, 허공을 향해 손을 뻗어 올렸다.

“소환 해제.”

그러자 그의 주변에 서 있던 그림자들이 그의 손을 향해 빨려 들어갔다.

한 마리 사나운 늑대부터 시작하여, 흉포한 날개를 가진 드래곤까지.

마지막으로 그를 태우고 있던 한 마리 말까지 그 안으로 빨려들자, 전장은 다시 침묵 속에 잠겨들었다.

그리고 그 ‘고요’ 속에서, 이안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는, 마군 진영의 대장군을 향한 것이었다.

“한 발자국만 앞으로 나와 봐.”

이어서 이안의 입가에, 자신만만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 순간, 이 게임은 끝날 거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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