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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610화 (623/1,027)

< 610화 요새 방어전 (3) >

* * *

여기저기서 곡괭이질 소리가 울려 퍼지는 광산의 깊은 심처.

그 안에서도 가장 깊숙한 밀실에 한 남자가 끊임없이 곡괭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깡- 깡- 까앙-!

동굴의 천정부에 박혀 있는 조명이 반사되며, 황금빛 광채를 번쩍번쩍 뿜어내는 남자의 곡괭이!

그리고 능숙한 움직임으로 연신 곡괭이를 찍는 남자의 곁에는 거북이 한 마리가 머리만 쑥 내민 채 엎어져 있었다.

아니, 사실 머리를 내민 것 같지는 않았다.

애초에 녀석의 머리는 등껍질에 과연 들어갈지 의문스러운 정도로 컸으니까.

깡- 깡- 깡-!

남자의 청량한 곡괭이 소리가 적막 속에서 규칙적으로 울려 퍼진다.

하지만 자세히 들어 보면 곡괭이 소리 말고 다른 소리도 들어 볼 수 있었다.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이기는 했지만, 거북과 남자는 은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뿍뿍아, 훈이 저 녀석이 무슨 꿍꿍이인지 알아냈다는 거야?”

“그렇다뿍. 거북의 직감은 정확하다뿍.”

깡- 깡- 까강-!

“흠, 30분 만에 뿍뿍이에게 계획을 들키다니……. 역시 훈이 녀석, 너무 단순하단 말이지.”

“아니다뿍!”

“……?”

“훈이가 단순한 게 아니라 내가 똑똑한 거다뿍.”

“그, 그럴지도…….”

깡- 깡- 깡-!

남자와 거북이의 정체는, 당연히 이안과 뿍뿍이.

뿍뿍이와 대화를 나누는 이안의 표정은 무척이나 흥미진진해 보였다.

대화를 나누는 내내 양쪽 광대가 조금씩 씰룩거리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뿍뿍이가 알아냈다는 훈이의 꿍꿍이가 더욱 궁금해진 이안.

그는 곡괭이질마저도 멈춘 뒤 뿍뿍이를 재촉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그래서, 빨리 알아낸 거나 풀어 봐. 뜸 들이지 말고.”

“자꾸 재촉하면, 안 알려 주는 수가 있뿍!”

제법 지능 지수가 높아진 것인지, 뿍뿍이는 무려 이안에게 협박 비슷한 것을 시도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뿍뿍이의 머리꼭대기에는 항상 이안이 앉아 있었다.

“그럼 말하지 말든가.”

“뿍?”

“어차피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리는 거 다 알고 있거든.”

“뿌뿍……!”

정말 듣지 않아도 된다는 듯, 내려 두었던 곡괭이를 들어 다시 채굴을 시작하는 이안.

깡- 깡- 깡-.

뿍뿍이는 이안이 얄미웠지만, 뭐라 반론을 제기할 수는 없었다.

이안의 말이, 너무도 완벽한 팩트였으니 말이다.

오히려 이안이 다시 묵묵한 표정으로 곡괭이질을 시작하자 뿍뿍이는 더욱 안달이 났다.

“뿌, 뿍뿍!”

그리고 잠시 후.

우물거리며 고민하던 뿍뿍이는, 결국 못 이기는 척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뿍. 절대로 근질거리는 것은 아니지만, 주인이 궁금해하는 것 같으니 얘기해주도록 하겠뿍.”

하지만 이안으로부터 돌아오는 것은 묵묵한 곡괭이질뿐.

깡- 깡- 깡-!

그리고 뿍뿍이가 더욱 안달이 나기 시작할 때쯤, 이안의 곡괭이질이 다시 멈춰졌다.

“그래, 뭐. 들어는 줄게. 한번 얘기해 봐.”

순식간에 갑을 관계가 바뀌어 버린 뿍뿍이와 이안!

뿍뿍이는 뭔가 억울한 표정이 된 채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뿍뿍이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무척이나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뿍……. 그러니까 훈이는 아무래도…….”

“아무래도……?”

“사랑에 빠진 것 같뿍.”

“응? 뭐라고?”

“사랑에 빠진 것 같다고 했뿍.”

생각지도 못했던 전개에 당황한 이안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다시 물었다.

“훈이가 사랑에 빠졌다고? 대체 누구랑? 어떻게?”

이안은 너무 놀란 나머지 표정 관리에 실패해 버렸다.

그리고 이안이 자신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 같자 뿍뿍이는 무척이나 흡족한 표정이 되었다.

“하나씩 물어봐라뿍. 그렇게 여러 개 물어보면 헷갈린다뿍.”

뿍뿍이의 말에 흥분을 가라앉힌 이안이 천천히 질문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일단 상대가 누군데?”

“훈이가 사랑에 빠진 여자는 료이카라는 누나다뿍.”

“료이카라면……. 훈이 옆에서 채광 중인 그 검정 단발머리?”

“그렇다뿍.”

“헐…….”

이안은 눈치가 빠르다.

그리고 예전과 달리, 이제 연애고자 타이틀은 벗어 던진 지 오래다.

때문에 여기까지 들은 설명만으로도, 어떻게 된 상황인지 대번에 유추가 가능하였다.

‘이거 갈수록 재밌어지는데?’

예전 생각이 나는 건지(?) 점점 더 훈이의 러브스토리에 흥미를 붙이는 이안.

이안은 계속해서 뿍뿍이에게 질문 공세를 퍼부었고, 뿍뿍이는 마치 무용담을 늘어놓듯 자랑하기 시작했다.

“그 료이카라는 여자, 예뻐?”

“주인도 아까 봤잖뿍.”

“제대로 안 봤지.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좀 자세히 보는 건데!”

“료이카 누나 이쁘다뿍. 눈도 크고, 예뿍이처럼 볼도 빵빵하다뿍.”

“흠, 그러고 보니 귀여웠던 것 같기도…….”

“……! 하린 누나한테 이를 거다뿍!”

“……이건 못 들은 걸로 해 주면 안 될까.”

“생각해 보겠뿍.”

주거니 받거니 티격태격하며, 신이 나서 대화를 나누는 뿍뿍이와 이안.

“그나저나 이런 얘기들은 어떻게 엿들은 거야? 그 큰 머리를 달고 어디 숨기도 힘들었을 텐데.”

“내가 두 사람 근처에서 낮잠 자는 척하면서 다 들었뿍.”

“오, 너 제법 똑똑해졌다?”

“내가 실눈 뜨고 봤는데, 훈이는 막 얼굴도 빨개지고 그랬뿍.”

“오호?”

“아무래도 주인한테 마력석을 받아가서, 그 예쁜 누나한테 주려는 게 분명하다뿍.”

“맞아, 확실해.”

원래 남의 연애사를 듣는 것은 강 건너 불구경만큼이나 재밌는 법.

게다가 그 대상이 중2병 말기 환자인 훈이라면. 재미는 한 층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뿍뿍아.”

“뿍!”

“물론 정황상 네 말이 맞는 것 같긴 하지만…….”

“뿍……?”

“어떻게 삼십 분도 안 되서 확신해 버린 거야? 그냥 두 사람이 친한 것 뿐일 수도 있잖아?”

이안이 궁금한 표정으로 묻자, 뿍뿍이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훈이가 료이카를 좋아한다는 건 마약 미트볼이 맛있다는 것 만큼이나 확실한 사실이었지만, 어떤 부분에서 그런 확신을 얻었는지 떠올리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잠시 후.

“……!”

뭔가를 깨달은 뿍뿍이가,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예뿍이를 만났을 때의 내 표정…….”

“응?”

“훈이의 얼굴에서 그 표정을 봤다뿍.”

* * *

“광석이 이런 모양일 땐, 여기부터 파시는 게 좋아요, 료이카 님.”

“아, 그렇구나……!”

“이쯤 됐을 땐 곡괭이질 멈추고, 살살 손으로 꺼내는 게 좋구요.”

“와아, 역시 훈이님은 대단해요.”

“후후, 별말씀을요.”

광산의 한쪽 구석에서 꽁냥거리는 훈이와 료이카.

물론 훈이의 일방적인 설레임인지 아니면 쌍방통행인지는 알 수는 없었지만, 겉으로 보기에 둘의 그림은 나쁘지 않아 보였다.

‘오호, 훈이, 이 녀석. 이 신성한 일터에서 연애질을 한단 말이지?’

훈이의 표정은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언데드 군단을 소환해 놓고 왕 놀이를 할 때보다도, 더욱 신나 보이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아쉽겠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광산 데이트를 더 하고 싶겠지만……. 시간이 이제 다 되었다, 훈아.’

멀찍이서 두 사람을 지켜보던 이안은, 그들을 지나쳐 어디론가 천천히 향했다.

이제 차원의 숲 맵이 닫히기까지 30분도 채 남지 않았으니, 지금까지 모인 광물들을 정산할 시간이었다.

“자, 이제 시간이 다 된 것 같은데, 다들 광물은 충분히 모으셨습니까?”

“앗, 잠시만요, 이안 님!”

“이것까지만……!”

다급한 랭커들의 외침에, 이안은 기분 좋은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크으, 다들 열심히군.’

자신에게 조공할 광물을 저렇게도 열심히 채굴하니, 흡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제 시간이 얼마 없어요. 다들 빨리 오세요! 얼른 정산하시고 퀘스트 완료하러 요새 가셔야죠!”

이안이 재촉하며 맵 가운데의 공터로 걸어 나오자, 여기저기서 채굴 중이던 랭커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다들 5시간에 육박하는 긴 시간 동안 채굴에 집중해서인지, 무척이나 초췌한 몰골이었다.

‘후후, 이렇게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노예들이라니……. 관리하기가 너무 편하잖아?’

이안은 싱글벙글 웃으며, 공터 한편의 바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만약 이안의 기대만큼 랭커들이 채굴을 해 냈다면, 이안의 인벤토리에 있는 마력석들은 거의 다 소진이 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광물들을 가지고 난 제작 노가다를 시작하면 되겠지.’

기분이 좋아서인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는 이안.

가장 먼저 이안과의 정산을 시작한 것은 다크서클이 턱밑까지 내려와 있는 요나스였다.

“자, 요나스 님부터. 채굴 얼마나 하셨습니까?”

“으음, 잠시만요. 일단 강화석은 열아홉 개고, 합성석은 일곱 개. 마법석은 다섯 개군요.”

“흠, 이러면 원래 마력석 일곱 개까지 가능하지만, 특별히 강화석 열아홉 개를 마력석 네 개로 교환해 드리도록 하지요.”

“오오, 정말입니까?”

“네. 수고하셨는데 그 정도 서비스는 드려야죠.”

“가, 감사합니다. 그럼 총 마력석 여덟 개 주시는 거 맞죠?”

“당연합니다.”

“크흑……!”

선심 쓰는 고용주의 앞에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1번 노예 요나스였다.

그리고 요나스에 이어서, 다른 랭커들의 정산도 차례차례 진행되었다.

“강화석 열다섯 개, 합성석 네 개 마법석 여덟 개……. 세이플 님도 정확히 마력석 일곱 개 가능하겠군요.”

“전 서비스 없나요?”

“숫자가 너무 딱 맞아서…….”

“쩝.”

아쉬워하며 정산소(?)를 나서는 2번 노예부터 시작해서…….

“리아스 님은 총 다섯 개. 좀 더 분발하시지 그러셨어요.”

“그, 채광이라는게……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클리어 조건은 충족하신 거죠?”

“물론입니다.”

“다행이군요.”

세심한 고용주의 배려에 감동하는 5번 노예까지.

“흑흑, 이렇게까지 신경 써 주시다니…….”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다렸던 두 명의 노예가 이안의 앞에 나타났다.

료이카를 발견한 이안의 두 눈이 장난기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자, 료이카 님 맞으시죠?”

쭈뼛쭈뼛 다가오는 료이카를 향해, 웃으며 말을 거는 이안.

‘이 친구가 우리 훈이의 그녀라는 말이지.’

료이카와 눈이 마주친 이안은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훈이보다야 성숙(?)하기는 했지만, 이안의 눈에는 마찬가지로 어린애일 뿐이었으니 말이다.

‘뭔가 훈이랑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다음 순간.

어떻게 훈이를 놀려 주면 좋을지 궁리하던 이안의 머릿속은, 한순간에 백지 상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안의 앞에 선 료이카의 첫마디가, 첩보요원(?)이었던 뿍뿍이조차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었으니 말이다.

“이안 님, 팬이에요!”

“예……?”

“제 이름을 기억해 주시다니……! 정말 감동이예요!”

“……?”

료이카의 뜻밖의 반응에 당황한 이안은, 그대로 자리에서 굳어 벙 찐 표정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당황한 것은 이안의 옆에 앉아 있던 뿍뿍이도 마찬가지.

“뿍?”

하지만 이안과 뿍뿍이가 당황했다면, 거의 절망적인 표정이 된 사람도 하나 있었다.

“이, 이럴 수가…….”

료이카의 환심을 사기 위해 짠돌이 이안에게 아쉬운 소리까지 해 가며, 마력석을 확보했던 훈이.

훈이의 인생 13년 만에 찾아온 첫 연애전선이 처음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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