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0화 설원의 학살자 (1) >
마치 알프스 산맥을 넘어 로마로 진격한 전설적인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처럼 이안은 가파르기 그지없는 바위산을 빠르게 오르기 시작하였다.
이안을 등에 태운 채 거침없이 암벽을 타고 오르는 날렵한 할리.
물론 이안에게는 공중을 날 수 있는 핀과 같은 소환수들이 있었지만, 최대한 전략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비행은 포기하였다.
마군 진영에는 수많은 방어 타워들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 중에는 분명 대공 타워나 파수꾼 타워가 있을 테니 말이다.
편하게 움직이겠다고 하늘을 날았다가 발각되기라도 한다면, 공헌도 루팡은커녕 아무것도 못 해 보고 사망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타탓- 탓-!
이안이 할리와 함께 암벽을 타기 시작한 지 1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드디어 이안은, 마군 야영지를 코앞에서 내려다볼 수 있게 되었다.
‘흐음, 진영 후방이라 방어 병력이 없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가까이서 보니 보초병은 꼼꼼히 세워져 있군.’
적의 침입을 감지할 수 있도록 일정 간격을 두고 촘촘히 세워져 있는 마군 진영의 보초병들.
하지만 이안은 실망하지 않았다.
어쨌든 야영지 전방에 빽빽하게 세워져 있는 방어 타워들보다는, 허약해 보이는 마군 보초병들을 상대하는 게 훨씬 수월할 테니 말이었다.
‘좋았어. 오랜만에 정밀사격 실력 좀 발휘해 볼까?’
마군 정찰병들을 처치했을 때처럼 암벽 사이에 몸을 고정시킨 뒤, 화염장궁을 소환한 이안.
화르륵-!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보초병을 발견한 이안은 침착한 표정으로 그의 머리통을 향해 화살촉을 겨누기 시작하였다.
‘스무 발 전부 머리통에 정확히 꽂아주도록 하지.’
지금 이안이 하려는 기습은 정찰병들을 상대할 때와 무척이나 흡사해 보였지만, 사실 조금 다른 개념의 기습이었다.
일단 가장 큰 차이점을 꼽자면, 표적의 난이도가 다르다는 것.
종전의 표적이었던 정찰병들의 경우 전진기지의 터를 찾기 위해 부산히 움직이고 있었던 반면, 지금 이안이 겨누고 있는 보초병은 가만히 앉은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으니 말이다.
정찰병들을 겨눌 때는 그들의 움직임을 예측해 화살을 날려야 했지만, 이 가만히 앉아 있는 보초병을 상대로는 정조준이 가능한 것이다.
때문에 이안은, 정찰병들을 노릴 때보다 훨씬 더 먼 위치에 자리를 잡고 저격을 시도할 수 있었다.
‘역시 저격수의 꽃은 헤드샷이지.’
이안과 정찰병 사이의 거리는 대상의 눈코입이 겨우 구분될 정도로 멀었다.
평범한 궁수라면 저격에 성공하기만 해도 쾌감을 느낄, 그런 수준의 엄청난 장거리.
하지만 이안이 노리는 것은 정확히 보초병의 ‘머리’였고.
나아가 한 발의 화살도 아닌 스무 발 전부를 정수리에 꽂아 넣을 생각이었다.
표식의 도움 없이 화염시로 한 번에 쏘아 보낼 수 있는 모든 화살을 말이다.
“후우…….”
한 차례 길게 심호흡을 한 이안은, 화염장궁의 시위를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그리고 다음 순간.
“흐읍……!”
그대로 숨을 멈춘 이안은, 한 치 미동도 없는 자세로 활시위를 놓았다.
피잉-!
물론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피핑- 피피피핑-!
장궁의 손잡이를 쥔 왼 손은 한 치의 미동도 없었지만, 계속해서 새로운 불화살이 생성되는 이안의 오른손은 정신없이 움직여댔으니 말이다.
피피핑- 핑-!
정말 ‘부지불식간’에 스무 발의 화살을 전부 쏘아 보낸 이안!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안이 쏜 화살은 사실 열아홉 발이었다.
마지막 한 발은 그대로 시위에 건 채, 쏘아 보내지 않고 다음 녀석을 향해 조준하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감이었다.
미친 듯한 연사로 쏘아 보낸 열아홉 발의 화살이 목표한 정찰병의 머리에 전부 다 틀어박힐 것이라는 자신감.
모든 화살이 틀어박힌다면 최소 표식이 세 번은 터질 것이었고.
심지어 그것이 헤드샷이라면, 이안이 겪어 본 평범한 정예병의 수준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폭발적인 딜이 들어갈 것이었다.
이안은 첫 번째 목표가 사망하는 즉시 다음 타깃을 바로 노리기 위해, 마지막 한 발을 남긴 것이다.
어쨌든 이안이 시선을 옮긴 것과 별개로 허공을 가로지르며 빠르게 쏘아지는 스무 발의 불화살!
마치 누가 줄을 세워 놓기라도 한 듯 허공에서 동일한 포물선을 그리며 줄 지어 쇄도하는 열아홉 발의 불화살은 그 자체만으로도 입이 쩍 벌어질 만한 기예였다.
쐐애액-!
그리고 다음 순간, 이안의 눈앞에 요란하게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띠링-!
-고유 능력 ‘지옥의 화염시’를 발동하였습니다.
-‘야영지 보초병 휴렌트’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지옥불’ 표식이 생성됩니다.
-‘야영지 보초병 휴렌트’의 생명력이 1,475만큼 감소합니다!
-‘야영지 보초병 휴렌트’의 생명력이 1,501만큼 감소합니다!
-‘야영지 보초병 휴렌트’의 생명력이 1,399만큼 감소합니다!
……중략……
-‘지옥불’ 표식이 최대치로 중첩되어 표식이 강력한 폭발을 일으킵니다.
-‘야영지 보초병 휴렌트’의 생명력이 2,725만큼 감소합니다!
-‘지옥의 화염시’ 고유 능력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초기화됩니다.
-‘야영지 보초병 휴렌트’의 생명력이 1,427만큼 감소합니다!
……중략……
-마군 진영의 ‘정예병’등급 보초병을 처치하셨습니다.
-공헌도가 400만큼 상승합니다.
카일란에서 적을 공격할 시 ‘치명타’가 발동하는 것에는 얼마나 약점을 정확히 공격했느냐가 가장 큰 영향을 주게 되어 있다.
물론 장비나 스킬에 붙어 있는 ‘치명타 확률’도 영향이 있었지만, 그것은 어느 정도 확률을 보정해 주는 것일 뿐.
때문에 약점 중에서도 가장 확실한 약점인 ‘머리’에 화살이 꽂힌다면, 아무런 치명타 확률 보정 없이도 95퍼센트 이상의 확률로 ‘치명적인 피해’가 발동한다.
이미 장비와 고유 능력 등으로 기본 치명타 확률만 40퍼센트 가깝게 세팅되어 있는 이안 같은 경우, 무조건 치명타가 발동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같은 치명타라 하더라도 어떤 약점을 공격했느냐에 따라 대미지 증폭률에 차이가 있는데, 이 역시 머리를 공격했을 때 가장 피해량이 크게 증폭되도록 되어 있다.
팔이나 다리에 있는 약점의 경우 치명타 발동 시 데미지 증폭률이 1.5~1.8배 정도라면, 머리의 약점에 공격을 성공하면 세 배도 넘는 대미지 증폭률이 적용되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 이안의 눈앞에 떠오른 폭발적인 딜량과 특별한 스킬을 추가로 발동시키지 않았음에도 정예병 등급의 마군이 즉사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자, 놈들이 몰려오기 전에……. 딱 다섯 놈만 잡고 시작하자.’
핑- 피피핑-!
표식이 폭발하며 스무 발의 화살이 다시 채워지자, 이안은 미리 조준해 두었던 다음 대상을 향해 또다시 거침없이 활시위를 당겨 대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여지없이 이안의 공헌도는 차곡차곡 쌓여 갔다.
-마군 진영의 ‘정예병’등급 보초병을 처치하셨습니다.
-공헌도가 400만큼 상승합니다.
-마군 진영의 ‘정예병’등급 보초병을 처치하셨습니다.
-공헌도가 400만큼 상승합니다.
‘크으, 내 손으로 하긴 했지만 지려 버리는군.’
유령들에게 호언장담했던 대로, 마군진영 병사들의 뚝배기를 하나씩 터뜨리는 이안!
하지만 셋 정도가 저격당하고 나자 이안의 위치는 파악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안이 아무리 은밀하게 화살을 날려 보내도, 불화살이라는 특성상 쉽게 발각될 수밖에 없었으니까.
“저기 적이다!”
“천군 진영의 기습이다!”
하지만 이안을 발견한 마군의 병사들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방패병들을 앞세운 채 이안의 화살을 방어하며 천천히 다가설 뿐.
‘후후, 설마 내가 혼자 왔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하는 거지.’
불화살을 쏘아대는 이안의 뒤에 다른 천군의 병사들이 매복해 있을 것을 염려하여, 조심스레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이안의 입장에선 환영할 만한 것이었다.
물론 무방비 상태인 병사들을 저격할 때처럼 쉽게 뚝배기를 깨부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미친 듯이 활시위를 당기다 보면,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추가 킬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니 말이었다.
-‘지옥불’ 표식이 최대치로 중첩되어 표식이 강력한 폭발을 일으킵니다.
-‘야영지 보초병 롭스’의 생명력이 1,525만큼 감소합니다!
-마군 진영의 ‘정예병’등급 보초병을 처치하셨습니다.
-공헌도가 400만큼 상승합니다.
“방패병들은 화살을 최대한 막아 내라!”
“눈 먼 화살에 당하는 머저리에겐 마인의 자격이 없다!”
그리고 마군 병사들의 포위가 가까워질수록 이안의 활시위 당기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거의 2~3초에 한번 표식이 폭발할 정도로 미친 듯이 화염시를 뿌려 대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에 비례하여 이안의 정령력 게이지는 줄줄 녹아내리기 시작하였다.
-고유 능력 ‘지옥의 화염시’를 발동하여, 정령 마력이 100만큼 소모됩니다.
-……정령 마력이 100만큼 소모됩니다.
……후략…….
그리고 이안의 정령 마력이 전부 소진되기 직전.
띠링-!
이안의 눈앞에 기다렸던 또 하나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용맹을 증명하라!(히든)(에픽)’퀘스트의 조건을 일모두 달성하였습니다.(현재까지 처치한 마군병사 10/10)
-망령들에게 돌아가면 퀘스트가 완료됩니다.
“크으!”
메시지를 확인한 이안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새어나왔다.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퀘스트의 조건이 달성되어 버렸으니 마음이 더욱 편해진 것이다.
순식간에 추가된 2천 포인트의 공헌도는 덤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럼 이제 슬슬 시작해 볼까?’
거의 바닥까지 내려온 정령 마력의 게이지를 확인한 이안은 씨익 웃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이안의 시야에 우르르 몰려 암벽을 오르고 있는 마군의 병사들이 들어왔다.
마치 개미떼처럼, 다닥다닥 모여 이안을 향해 다가오는 수많은 마군 병사들!
살짝 무릎을 굽힌 이안은, 그대로 허공을 향해 뛰어올랐다.
“자, 파티 타임이다!”
높다랗게 솟아오른 바위 절벽 위에서 보란 듯이 아래를 향해 몸을 날리는 이안!
그리고 그와 동시에 천룡군장의 고유 능력 중 하나인 ‘천룡군장의 위엄’이 발동되었다.
-고유 능력 ‘천룡군장의 위엄’을 발동합니다.
-남아 있는 모든 정령 마력이 소모됩니다.
-남아 있는 생명력의 50퍼센트가 소모됩니다.
우우웅-!
암벽에서 떨어져 내리는 이안을 중심으로, 강렬히 퍼져나가는 푸른 빛깔의 파동!
이어서 이안을 포위한 모든 마군 병사들의 머리 위에 시퍼런 용의 형상이 떠올랐다.
-반경 50미터 내의 모든 적들이 10초간 침묵합니다(침묵효과가 지속되는 동안, 모든 종류의 액티브 스킬이 봉인됩니다).
-반경 50미터 내의 모든 적들의 마력이 전부 소멸합니다(10초 동안 마력을 회복할 수 없습니다).
이안이 날뛰기 위한 판이 본격적으로 깔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