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2화 2. 용족 드라코우 >
살짝 푸른 빛이 섞여 있는 적발에, 비슷한 색상의 눈동자를 가진 신비로운 분위기의 여인.
그녀와 눈이 마주친 이안은, 의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응? 넌 누군데?”
-난 아시라스. 자운紫雲의 수호자다.
이어서 어리둥절한 표정이 된 이안이, 카노엘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노엘아, 쟤 누군지 알아?”
그에 멋쩍은 표정이 된 카노엘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이안을 향해 말했다.
“오늘 처음 보기는 하는데……. 누군지는 알 것 같네요.”
“음?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제 소환수인 카시라스가 자운룡이거든요.”
“……?”
“제 생각에 아마 저 친구가 카시라스가 말했던 쌍둥이 누이인 것 같네요.”
아직도 궁금증이 전부 풀리지 않은 이안이 뭐라 입을 열려 하였으나, 그의 말은 이어질 수 없었다.
카노엘의 뒤에 서 있던 적발의 남자가 불쑥 튀어나오며 입을 열었으니 말이다.
-아시라스, 자운곡紫雲谷을 지키고 있어야 할 네가 이곳에는 어쩐 일인가.
-곡주谷)께서 깨어나셨다.
-……그게 정말인가?
-그래. 해서 네게도 알려 주기 위해 온 것이다.
-흐음……. 그렇군.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무척이나 진지한 표정으로 나누는 두 남매.
이안은 그런 그들을 힐끔 보며, 카노엘의 귀에 대고 수근 거렸다.
카노엘은 어쩐지, 살짝 불안한 표정이었다.
“쟤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제가 진행 중인 퀘스트 관련된 이야기 같은데요.”
“음……?”
“제가 지금 용린패 라는 걸 구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그걸 구해서 자운곡주에게 가져다 주는 퀘스트를 진행 중이었는데…….”
“흐음?”
“원래 그게 시간제한이 없는 퀘스트였는데, 자운곡주가 깨어났으니 이제 시간제한이 생기겠네요.”
“뭔가 안타깝게 됐군.”
“…….”
“그런데 쟤들은 쌍둥이 남매라면서, 뭐 저렇게 삭막한 말투로 가오 잡으면서 대화하는 거냐?”
“몰라요, 형…….”
퀘스트의 변동으로 인해 심히 우울한 표정이 된 카노엘과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두 드래곤.
하지만 그 내용이 이안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것이었으니, 그는 아시라스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야, 빨간 머리. 아까 나한테 하던 말이나 이어서 해 봐.”
-건방진 인간이로군. 무슨 말을 해 보라는 것인가.
“내가 드라코우를 상대하기 힘들 거라며?”
-그렇다.
“그 이유도 같이 알려 줘야 할 것 아니야.”
이안의 말에 아시라스는 귀찮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였다.
-그 이유야 너무 뻔한 것 아닌가.
“……?”
-드라코우는 강하고, 그대는 약하다.
“내가 약하다는 근거는?”
그에 아시라스는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이 용천에 머무는 용족들 중 중간자의 위격조차 얻지 못한 자가 상대할 수 있을만한 종족은 없다, 건방진 인간이여.
카일란을 플레이하면서, 정말 오랜만에 들어 보는 NPC의 무시 발언.
그에 이안은 살짝 발끈하였지만, 이 와중에도 그의 머릿속은 빠릿빠릿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저 거만한 녀석을 살살 긁어서, 정보를 좀 더 캐 봐야겠어.’
이안은 아시라스를 자극하기 위해 더욱 거드름을 피우며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이 근방에 있다는 드라코우들의 초월 레벨이 몇이나 되는데? 끽해야 한 40레벨 정도 아니겠어?”
-으음?
“그 정도는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지.”
이안의 말을 들은 아시라스는 적잖이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중간자의 위격을 얻지 못한 인간 중 초월 10레벨을 넘긴 인간도 거의 없다고 알고 있는데, 40레벨 운운하는 이안의 패기를 접하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이안이 말한 드라코우들의 레벨이 거의 정확히 맞아떨어졌으니, 더욱 놀란 것.
흥미로운 표정이 된 아시라스는, 이안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정확히 맞췄다, 인간.
“으음?”
-드라코우들의 초월 레벨은 평균 40레벨 정도.
“……!”
-대체 중간자의 위격조차 얻지 못한 인간이 어떻게 초월 40레벨대의 용족들을 상대한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패기 하나는 인정해 줄 만하군.
그리고 아시라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안은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물론 그녀가 눈치챌 정도로 티 나게 당황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뭐……? 정말 초월 40레벨이 넘는다고?’
사실 이안이 초월 40레벨 운운한 것은, 살짝 허세 섞인 발언이었다.
이안은 드라코우들의 레벨이 높아 봐야 30레벨 안팎일 거라고 예상했으니 말이다.
지금의 스펙으로 30레벨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허세를 부려 보았던 것이었는데, 40레벨이라는 수치는 이안으로서도 당황할 수밖에 없는 수준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사실 가장 당황한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카노엘이었다.
이안의 초월 레벨이 20인 것 조차 아직 모르는 카노엘은 그야말로 혼란에 빠져 버린 것이다.
“형, 정말 가능한 거…… 맞아요?”
* * *
이안과 카노엘을 남겨 둔 채, 카시라스와 아시라스는 자운곡으로 떠났다.
깨어난 자운곡주를 영접하기 위해, 자운곡에 다녀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카노엘의 말에 의하면, 카시라스가 돌아오는 순간 그의 히든 퀘스트가 다시 시작될 것이라 하였다.
얼마가 될지는 모르지만, 제한시간도 덤으로 생길 것이고 말이다.
“큰일 났어요, 형.”
“뭐가 큰일 나?”
“용린패 구하려면 저도 태초의 평원으로 가야 하는데, 드라코우들 초월 레벨이 40레벨이라잖아요.”
“그랬지.”
“시간이라도 많으면 용사의 마을부터 졸업하고 돌아오겠는데, 그럴 시간은 도저히 안 나올 것 같거든요.”
“빨간 머리들 돌아오는 데 얼마나 걸리는데?”
“그 의식이라는 게 제법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아무리 오래 걸려도 일주일 내로는 돌아 올 거예요.”
“확실히 용사의 마을 뛰어들기엔 부족한 시간이네.”
“망한 거죠, 뭐. 퀘스트 포기해야 되게 생겼잖아요. 으, 중간자 위격 얻은 다음에 도전했어야 하는 퀘스트였는데…… 크흑.”
카노엘의 초월 레벨은 10이다.
아무리 노력한다 하더라도, 40레벨대라는 드라코우들이 득실거리는 태초의 평원에 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초조한 표정인 카노엘과 달리, 이안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심드렁한 얼굴로 대답하였다.
“그거 중요한 퀘냐, 노엘아.”
“당연하죠, 형. 클래스 티어 올려 주는 퀘스트라니까요?”
“그럼 깨면 되지.”
“……?”
“형만 믿고 따라와.”
“네? 저 지금 카시라스도 없는데, 어쩌시려고요?”
“어허, 형 못 믿냐?”
“믿습니다.”
이안의 자신감의 근거가 어디서 나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카노엘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지금껏 이안이 한다고 해서 못한 것이 없고, 된다고 해서 안 된 것이 없었으니.
이안 덕에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카노엘로서는 그의 말이 거의 진리였으니 말이다.
“크흠.”
한차례 헛기침을 한 이안이, 다시 카노엘을 불렀다.
“노엘아.”
“예, 형님.”
“일단 나한테 정보 하나만 던져 줘 봐.”
“무슨…… 정보요?”
“너 지금까지 용천 돌아다니면서, 쟁여 뒀던 던전 같은 거 있었을 거 아냐.”
“……!”
“그중에 제일 알짜 같은 놈으로다가, 하나 던져 줘 봐.”
카노엘은 아직 용사 계급이 되지 않았다.
아니, 용사 계급은커녕 용사의 마을에 입성조차 한 전적이 없다.
때문에 지금은 아무리 사냥을 뛰어도 경험치가 오르지 않는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히든 던전을 발견했다 해도 퀘스트와 관련되지 않은 곳이라면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었다.
나중에 초월 레벨을 올릴 수 있게 되었을 때, 다시 찾아오기 위해서 말이다.
‘아마 지금껏 돌아다니면서 제법 많은 던전을 발견했을 테고……. 대부분 좌표만 찍어 두고 전부 스킵했겠지.’
그리고 그러한 이안의 예측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이, 있기는 한데…….”
“그런데?”
“지금 레벨 업도 할 수 없는데, 최초 입장 보상이 아깝잖아요.”
그에 이안은 손가락을 까딱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넌 레벨 업 할 수 없겠지만, 난 할 수 있어.”
“네? 형, 중간자 위격 아직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건 그런데, 레벨 업은 가능한 상황이야.”
“……!”
“쟁여 뒀던 던전들 싹 공유해 주면, 형이 책임지고 그 퀘스트 클리어해 준다.”
이안의 말이 끝나자, 카노엘의 얼굴에 수심이 깃들었다.
지금 그에게 있어서 이 퀘스트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쟁여 놓은 던전들이 아까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대부분 드래곤 테이머 클래스 관련 히든 퀘스트 덕에 찾아낼 수 있었던 유니크한 던전들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결국, 카노엘에게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히든 클래스인 ‘드래곤 테이머’의 티어 업 퀘스트는 이번에 놓치면 언제 또 찾아낼 수 있을지 기약이 없었으니 말이다.
하여 카노엘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겠어요, 형. 그럼 일단 ‘침묵의 과수원’부터 가시죠.”
“거기 평균 레벨 몇 정도 되는 맵인데?”
“대충 초월 레벨 13~16정도이니 사냥 난이도는 얼추 괜찮을 거예요.”
“놉, 거기 경험치 먹어 봐야, 간에 기별도 안 오겠다.”
“……?”
“평균 레벨 최소 23은 넘는 곳에서 시작하자.”
* * *
생각지도 못했던 영웅의 의식 난이도 상승으로 인해, 일주일 안에 졸업하려 했던 이안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이안이 뛰어나다 해도 40레벨대의 드라코우를 잡기 위해선 레벨 업에 또다시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본인의 레벨 업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비교적 많이 뒤쳐져 있는 소환수들의 레벨을 일정 수준 이상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전체적인 전투력을 끌어올리지 않는다면, 퀘스트 진행이 쉽지 않을 테니 말이었다.
‘소환수들 전부, 못해도 25레벨은 넘겨야 해.’
하여 거의 나흘 밤을 꼬박 새워 가며, 이안은 카노엘과 함께 용천의 던전들을 쉴 새 없이 공략해 나갔다.
카노엘의 역할은 거의 서포팅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녹초가 될 지경이었다.
띠링-!
-‘구슬픈 바람의 계곡’ 던전에 입장합니다.
-던전의 최초 발견자가 되셨습니다.
-앞으로 이틀 동안, 던전에서 획득하는 모든 경험치가 2배가 됩니다.
-앞으로 이틀 동안, 던전에서 아이템을 획득할 확률이 2배가 됩니다.
……중략……
-‘윈드 드레이크’를 성공적으로 처치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22레벨이 되었습니다.
……중략……
-레벨이 올랐습니다. 27레벨이 되었습니다.
-소환수 ‘카르세우스’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카르세우스’의 레벨이 23이 되었습니다.
-‘엘카릭스’의 레벨이 21이 되었습니다.
-‘까망이’의 레벨이 24가 되었습니다.
……후략……
정말 말 한마디 제대로 나누지 못할 정도로, 쉴 새 없이 경험치 파밍을 감행하는 이안.
“살려 줘라, 주인아.”
“크릉, 졸음이 쏟아지는군.”
“뿍, 싸우다가 잠들겠뿍.”
그리고 그렇게, 하루 정도가 더 지났을까?
자운곡으로 떠났던 카시리스가, 다시 카노엘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이어서 그는, 카노엘을 향해 청천벽력같은 말을 꺼내었다.
-주인, 아무래도 내일까지 용린패를 구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