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3화 2. 용족 드라코우 (2) >
* * *
초월 레벨은 일반 레벨과 다르다.
일반 레벨이야 50레벨 이전의 구간까지 순식간에 레벨 업이 가능했지만, 초월 레벨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아무리 최초발견 두 배 버프에 온갖 서포팅을 받으면서 레벨 업을 한다 해도, 나흘 동안 올릴 수 있는 레벨에는 한계가 있는 것.
카시라스가 돌아왔을 때 이안의 레벨은, 30조차 달성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현재 이안의 초월 레벨은 거의 30레벨에 근접한 29레벨 정도라고 할 수 있었다.
“야, 빨간 머리.”
이안의 부름에, 카시라스와 아시라스가 동시에 돌아본다.
그리고 그것을 본 카노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입을 열었다.
“형, 둘 다 빨간 머리잖아요.”
“아, 그렇지.”
뒷머리를 긁적이는 이안을 보며, 카시라스와 아시라스는 둘 다 무척이나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 인간이군.”
“건방진 인간. 내 이름은 빨간 머리가 아니라 아시라스다.”
살짝 인상을 쓰며 입을 여는 아시라스를 향해, 이안이 핀잔을 주었다.
“그럼 뒤는 왜 돌아본 건데?”
“그, 그건…….”
생각지 못했던 반격에 당황하여 말을 더듬는 아시라스.
그런 그녀를 본 이안이, 피식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어쨌든 아시라스.”
“말해 보라, 인간.”
“그 ‘용린패’라는 게, 태초의 평원에 있을 거라고 했잖아.”
“그랬지.”
“그런데 지금 보니까 태초의 평원이 좀 넓은 게 아닌 것 같은데, 그냥 무턱대고 찾을 수는 없을 거 아냐?”
이안의 물음에, 카노엘 또한 귀를 쫑긋하며 이어질 아시라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일단 태초의 평원으로 갈 생각만 했지,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생각해 놓은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때, 이안의 눈앞에 생각지도 못했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용린패를 찾아서’ 퀘스트가 생성됩니다.
“……?”
메시지를 본 이안은 당황하였다.
분명 카노엘이 공유해 줬던 퀘스트는 진행할 수 없다는 메시지와 함께 소멸하였는데, 뜬금없이 같은 이름을 가진 퀘스트가 생성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퀘스트 창을 확인한 순간, 이안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퀘스트의 이름은 비슷할지언정, 내용도 틀리고 보상은 완전히 다른 별개의 퀘스트였으니 말이다.
-용린패를 찾아서(에픽)(히든)
*강력한 용족 ‘드라코우’들과의 일전을 준비하던 당신은 우연히 ‘자운’을 수호하는 수호룡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당신이 자운곡주의 신물인 용린패 회수를 돕길 원하고 있다.
*용린패는 자운곡주의 신물이자 상징이다. 때문에 전대 자운곡주가 소멸하면서 함께 사라진 용린패를 즉위식 전까지 찾아내야만, 새 자운곡주가 즉위할 수 있게 된다.
새 자운곡주가 곡谷의 주인으로 즉위할 수 있도록, 카시라스와 아시라스를 도와 용린패를 찾아보자.
만약 용린패를 찾아내는 데 성공한다면, 자운곡주 ‘로야크’로부터 적지 않은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퀘스트 난이도 : A-
퀘스트 조건 : 초월 레벨 25 이상.
‘잃어버린 용린패(에픽)(히든)’ 퀘스트 공유.
한 마리 이상 ‘전설’등급 이상의 드래곤을 보유한 소환술사.
한 마리 이상의 자운의 수호룡과의 조우.
제한 시간 : 1일
보상 : 알 수 없음.
퀘스트 창을 빠르게 스캔한 이안은 갑자기 퀘스트가 왜 생성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사이에 초월 레벨이 올라서 조건이 충족된 거네.’
두 드래곤 남매와 처음 만났을 때 이안의 초월 레벨은 20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자운곡에 다녀온 사이 25레벨을 훌쩍 넘겼고, 덕분에 모든 조건이 충족되어 퀘스트가 생성된 것이다.
기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이안의 광대가 씰룩거리기 시작하였다.
‘크으, 이게 웬 떡이냐. 에픽 히든 퀘를 이렇게 쉽게 획득하다니. 게다가 난이도도 낮잖아?’
보상은 알 수 없다 쓰여 있었으나, 퀘스트 내용 중에 ‘적지 않은 보상’이라는 문구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일반적으로 저런 문구가 존재하는 퀘스트 치고, 섭섭한 보상을 받아 본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원래 퀘스트의 주인인 카노엘이 받을 보상보다야 급이 떨어지겠지만 말이다.
‘노엘이 덕에 레벨도 많이 올리고, 이거 아주 꿀이군.’
흡족한 표정으로 퀘스트 창을 음미(?)하는 이안.
그런 그를 향해, 카시라스가 입을 열었다.
“아시라스 대신 내가 말해 주도록 하겠다.”
“경청하도록 하지.”
퀘스트 내용을 확인해서인지 한결 정중해진 이안의 말투에 고개를 갸웃한 카시라스가 천천히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처음에, 사라진 용린패가 이 소천小天의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 어렴풋이 짐작하였다. 용신께서 말씀하시길, ‘작은 하늘 아래 제왕의 힘이 숨겨져 있다’ 하셨으니 말이다.”
‘소천’이란, 용천 안에서 태초의 평원을 지나기 이전까지의 모든 맵들을 통칭하는 단어.
이에 대해 이미 카노엘에게 들은 이안은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그래서 노엘이랑 소천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닌 거였군.”
카시라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 하지만 곡주께서 깨어나신 지금, 좀 더 구체적인 단서를 얻을 수 있었지.”
“오호. 그게 뭔데?”
“용린패를 구하기 위해선, 그 완성품을 한 번에 찾아내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
카시라스의 말을 들은 이안과 카노엘의 눈이 동시에 확대되었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 아랑곳 않고 카시라스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용족들이 희귀하게 가지고 태어난다는 금린錦鱗. 이 세 종류의 금린을 모아서 ‘자운석紫雲石’에 부착해야, 비로소 용린패가 완성될 것이다.”
* * *
태초의 평원에 살고 있는 용족은 ‘드라코우’뿐이다.
그런데 카시라스의 말에 따르면, 세 종류의 금린을 모아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머지 두 종류의 금린. 그리고 ‘자운석’이라는 물건은 어디서 얻어야 하는 것일까?
그에 대한 답은 카노엘이 알고 있었다.
“형은 드라코우만 맡아서 진행해 줘. 나머지 두 종류 금린은 내가 충분히 구할 수 있을 것 같아.”
“어떻게?”
“고요의 바위산이랑 침묵의 과수원에 서식하는 용족에게서 금린을 얻을 수 있거든.”
“너 혼자 가능하겠어?”
“응. 거긴 초월 레벨 평균 15 정도인 구간이라, 나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
“그럼 자운석은 어쩔 건데?”
“그건 이미 이전 퀘스트 보상으로 받아서 인벤토리에 쟁여 뒀어.”
“좋아, 그럼 답 나왔네.”
“시간이 없으니까, 나눠서 움직이자고.”
“알겠어. 콜!”
이안이야 중간에 난입(?)한 상태였지만, 노엘은 이미 이 퀘스트를 한 달 가까이 진행 중이었다.
덕분에 이안의 입장에서는 복잡해 보였던 용린패 퀘스트가 간결하게 정리되었고 말이다.
‘뭐, 드라코우의 용린을 구하는 게 가장 어려워 보이는 일이기는 하지만, 어차피 포획도 해야 하니 못할 것도 없지, 뭐.’
하지만 모든 내용이 말끔하게 정리된 것처럼 보이는 지금, 이안에겐 아직 한 가지 의문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 퀘스트의 난이도가 왜 이리 낮게(?) 설정되어 있냐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다른 재료들을 노엘이가 쉽게 구할 수 있다고 해도 드라코우의 평균 레벨이 40인데, 어떻게 A-등급 난이도가 뜰 수 있는 거지?’
‘A-’라는 난이도는, 카일란에서 결코 쉽지 않은 난이도의 퀘스트를 의미하는 수치였다.
대부분의 유저들의 경우 A등급의 퀘스트부터는 대부분 고전하는 것이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S등급 난이도의 퀘스트만 진행해 왔던 이안의 입장에서는, 눈에 보이는 난이도에 비해 설정된 등급이 낮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증거로, 드라코우를 포획하라는 이안의 퀘스트의 난이도는 SS등급이지 않은가?
하지만 이안의 이 의문은 곧 어렵지 않게 해결되었다.
이안이 노엘과 헤어지려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으니 말이다.
띠링-!
-파티가 해제되었습니다.
-자운의 수호룡 ‘아시라스’가 파티에 합류합니다.
-‘용린패를 찾아서 (에픽)(히든)’ 퀘스트가 진행되는 동안 ‘아시라스’와의 파티가 유지됩니다.
-파티는 임의로 해제할 수 없으며, 다른 유저나 NPC가 파티에 합류할 수 없습니다.
이안은 자연스레 파티 창에 떠오른 아시라스의 정보를 볼 수밖에 없었고…….
“허억……!”
저도 모르게 입을 쩍 하고 벌릴 수밖에 없었다.
공개된 아시라스의 초월 레벨이 이안이 상상했던 수준을 훨씬 상회하였으니 말이었다.
-자운룡 아시라스 : Lv. 60(초월)
* * *
“인간, 자운紫雲의 주인께선, 용들을 다스리는 왕이자 어버이시다.”
“그런데?”
“하지만 그분께선 그리 자비롭지 않으시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곡주께서 내리신 임무를 가벼이 봤다면, 크게 후회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
“그대는 분명 드라코우를 상대할 수 있다 하였다.”
“그랬지.”
“만약 그 말이 거짓이라면, 큰 화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뜻이다.”
“걱정 마. 있다가 내 죽창 보고 깜짝 놀라지나 말라고.”
“죽창? 그런 저급한 무기를 쓴단 말인가.”
이안과 함께 태초의 평원을 향해 이동하던 아시리스는, 아직도 이안이 미덥지 않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사실 그녀의 반응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현재 30레벨도 채 되지 않는 이안의 초월 레벨은, 아시리스 레벨의 반토막밖에 되지 않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 퀘스트를 진행하기 위한 최소 조건이 초월 25레벨인 것이지, 그것이 적정 레벨인 것 또한 결코 아니었다.
원래 이 퀘스트는, 초월 35레벨 이상의 유저들이 진행하라고 만들어 놓은 퀘스트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이안은 아시라스의 퉁명스런 반응이 딱히 기분 나쁘지 않았다.
다만 이 순간에도 이안은 초월 60레벨이라는 이 괴물 같은 녀석을 어떻게 이용해 먹을 수 있을지 계속해서 궁리 중일 뿐이었다.
‘초월 60레벨이면 루가릭스보다도 레벨이 높은 거잖아? 아니, 루가릭스도 그동안 레벨이 올라 있으려나?’
아시리스의 쌍둥이 동생인 카시리스는 카노엘에게 테이밍되었기 때문에 제 힘을 발휘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방증으로, 카시리스의 초월 레벨은 10에 불과하다.
카노엘이 아직 중간자의 위격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시리스의 초월 레벨은 보다시피 어마어마했다.
‘이 친구를 어떻게 구슬려 먹어야 뽕을 뽑을 수 있을까?’
아시리스의 등에 타 백룡강을 건너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잔머리를 굴리는 이안.
그리고 카노엘과 헤어진 지 10여 분 정도가 지났을까?
다른 생각을 하느라 초점 없던 이안의 눈이 순간 번쩍 뜨여졌다.
널따란 강의 중심부에, 거대한 용오름이 솟아오르고 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