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5화 3. 영웅의 협곡 (6) >
* * *
미니 맵에 푸른 빛깔의 점으로 표시되어 있는 ‘차원술사들의 제단’.
악령 증식을 활용하여 순식간에 7레벨을 달성한 이안은, 제단의 좌표를 향해 거의 직선상으로 이동하였다.
추가 파밍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지금 스펙으로 제단을 한번 공략해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차원술사들의 제단 공략 적정 레벨은 분명 4~6이었어. 내 레벨이면 혼자서도 충분히 비벼 볼 만할 거야.’
이안은 손에 들려 있는 단검을 한차례 슬쩍 보고는 씨익 웃었다.
지금 이안이 자신감 넘치게 제단으로 향할 수 있는 데에는, 레벨도 레벨이지만 이 단검의 영향이 무척이나 컸다.
-날카로운 서리 단검
분류 : 단검
등급 : 희귀(초월)
착용 제한 : 초월 3레벨 (영웅의 협곡)
공격력 : 145~160
내구도 : 75/75
옵션 : 힘 +5(초월)
민첩 +25(초월)
이동속도 +15퍼센트
치명타 확률 +20퍼센트
치명타 피해량 +45퍼센트
-고유 능력
서리 칼날의 표식
적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때마다 대상에게 ‘서리 칼날의 표식’을 각인시킵니다.
서리 칼날의 표식이 각인된 적은 5퍼센트만큼 움직임이 둔화됩니다.
*둔화 효과는, 최대 15회까지 중첩됩니다.
*표식이 5회 이상 중첩된 적을 공격할 시 공격력의 50퍼센트만큼의 위력을 지닌 냉기 피해를 추가로 입힙니다.
사나운 서리악령의 발톱으로 만들어진 단검입니다.
서릿발같이 차가운 기운이 응축되어 있으며, 무척이나 날카로운 예기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유저 ‘이안’ 에게 귀속된 아이템입니다.
다른 유저에게 양도하거나 팔 수 없으며 캐릭터가 죽더라도 드롭되지 않습니다.
*영웅의 협곡 전용 아이템입니다. 영웅의 협곡 안에서만 사용할 수 있으며, 전장이 종료되면 아이템은 사라집니다.
판매 가격 : 875 차원코인
물론 ‘단검’류의 무기는 이안이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던 종류의 장비이다.
때문에 너무 당연하게도 단검보다는 ‘보주’가 드롭되는 것이 이안에게 훨씬 더 이상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많은 종류의 장비들 중에 소환술사 전용 장비가 드롭될 확률은 낮을 수밖에 없었고, 이안은 이 단검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였다.
‘초반 장비치고 공격력도 상당히 준수하고, 무엇보다 옵션이 아주 마음에 드는군.’
최근에 죽창(?)을 활용하느라 조금 바뀌어 있긴 했지만, 이안의 원래 전투 스타일은 기동성을 바탕으로 적을 농락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이 서리 단검은 무척이나 이안에게 잘 맞는 아이템이었다.
‘무기에 이동속도가 붙어 있는 건 흔치 않지. 단검이라 치확 치피는 베이스로 깔려 있고, 고유 능력도 아주 적절해.’
무기에 붙어 있는 고유 능력을 활용해 적의 움직임을 둔화시키고, 약점을 정확히 공격하여 확정적으로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다.
이 깔끔한 시나리오를 머릿속으로 떠올린 이안은, 절로 흥이 나는 것을 느꼈다.
‘9레벨 찍으면, 약점 포착 스킬부터 활성화시켜야겠어. 어차피 찍으려 했던 스킬이지만, 단검 효율 극대화를 위해서라도 좀 빨리 활성화하는 게 좋겠군.’
이안은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그림을 그려 보면서 최대한 빠른 움직임으로 서쪽을 향해 계속 이동하였다.
물론 이동하는 중에 몬스터들도 지속적으로 등장하였지만, 이안의 단검이 두세 번 그어질 때마다 그대로 까만 잿빛이 될 수밖에 없었다.
계속해서 깊은 곳으로 들어가도 몬스터들의 레벨은 5를 채 넘지 않았기 때문에, 7레벨인 데다 희귀 무기까지 장착한 이안의 공격력을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경험치는 얼마 오르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이안은 지금 향상된 스펙을 가지고, ‘차원술사들의 제단’을 빨리 트라이해 보고 싶은 마음 뿐이었으니까.
* * *
“레비아 누나, 힐!”
“훈아, 왼쪽 차원술사 좀 잡아 줘!”
“마지막이야! 유신, 어그로 좀!”
다급한 외침들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지는 높다란 첨탑.
빙글빙글 계단이 둘러 있는 높은 첨탑의 꼭대기에는, 로터스 길드 팀의 다섯 명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여기만 뚫으면 끝이야!”
“으, 레벨 좀 더 올리고 올 걸 그랬나. 생각보다 난이도가 높네.”
“그러게 다음에는 못해도 4레벨은 전부 찍고 트라이해야겠어. 이거 3레벨 섞인 상태로 왔더니 엄청 빡세네.”
차원술사들의 제단은, 아찔할 정도로 높은 첨탑의 모습을 한 건축물이었다.
그리고 이 제단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꼭대기에 있는 차원마석을 폭발시켜야 한다.
꽈배기같이 첨탑을 휘감으며 꼭대기까지 이어진 좁은 계단을 통해 탑을 올라야 하고 말이다.
“여기 너무 좁아서 차원 마력구 피하기가 어려우니까, 일단 어떻게든 위로 올라가 보자.”
“알겠어, 형!”
헤르스의 오더에 앞에 있던 밀랍병사를 밀쳐 낸 유신이 빠르게 계단을 뛰어올랐다.
이어서 그의 앞을 열어 주기 위해, 레미르와 훈이가 연달아 마법을 퍼부었다.
“파이어 스톰!”
“다크니스 윙!”
파이어 스톰과 다크니스 윙은, 완전히 다른 속성의 마법이지만 비슷한 효과를 가진 마법이기도 했다.
두 마법 모두 전방의 적들을 밀쳐내는 넉백 효과가 있는 마법이기 때문이다.
“휴우, 여기 클리어하려고 다크니스 윙 선택한 게 잘한 일인지 모르겠네.”
훈이의 중얼거림에, 옆쪽에 있던 레미르가 짧게 핀잔을 주었다.
“쓸데없이 플라이 마법까지 찍은 나보단 네가 낫잖아.”
“그건 그렇지만…….”
처음 이 탑을 발견했을 때, 레미르는 하늘을 날 수 있는 플라이 마법을 개방했었다.
첨탑의 꼭대기까지 플라이 마법으로 날아올라 차원 마석만 빠르게 폭파시킬 생각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 시도는 최악의 결과를 낳고 말았다.
레미르가 하늘로 떠오른 순간, 숲속의 곳곳에 포진되어 있던 대공포가 불을 뿜기 시작했으니까.
한 대만 맞아도 바로 즉사할 것 같은 어마어마한 포격 세례에, 레미르는 황급히 지상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고 말이다.
두 마법 딜러의 구시렁거림을 들은 헤르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입을 열었다.
“둘 다 쓸데없는 이야기하지 말고 전투에 집중해. 그런 건 일단 여기 클리어하고 나서 생각하자고.”
“쳇. 알겠어, 형.”
“그러도록 합죠, 마스터님.”
여하튼 그러한 슬픈(?) 상황과는 별개로 두 마법사가 시전 한 전방위 넉백 마법이 연달아 쏘아지자, 계단을 막고 있던 밀랍병사들이 추풍낙엽처럼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돌진 기술을 발동시킨 유신이 기다렸다는 듯 그 사이사이를 뚫고 계단을 뛰어올랐다.
타탓-!
물론 아슬아슬하게 떨어지지 않은 밀랍병사들도 간혹 있었지만, 그 정도는 유신의 주먹으로 충분히 커버가 가능하였다.
-고유 능력, 폭뢰권이 발동합니다.
퍽- 콰쾅- 쾅-!
경쾌한 타격음과 폭발음이 동시에 울려 퍼지며, 유신의 주먹에 맞은 밀랍병사가 계단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이어서 결국 꼭대기까지 근접한 유신의 신형이 금빛 물결에 휩싸이며 바람처럼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전사 클래스의 탑 티어 고유 능력 중 하나인 ‘순보’가 발동된 것이다.
쐐애액-!
이동 방향으로 연속해서 세 번 순간 이동 하듯 움직일 수 있는 스킬인 순보.
결국 순보를 발동시킨 유신은 탑의 꼭대기에 올라설 수 있었고, 그의 눈앞에 커다란 ‘차원 마석’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차원 마석 : 내구도 9,999/9,999
그리고 차원 마석의 무지막지한 내구도를 확인한 유신은 주먹을 내지르며 파티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다들 빨리 올라와! 이거 내구도가 9천이 넘는다고!”
물론 유신 혼자서도 몇 분 정도 주먹질을 하다 보면 파괴할 수 있는 수준의 내구도기는 했지만, 지금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
넉백 기술로 아래층에 떨어뜨린 밀랍병사들과 차원술사들이 올라오기 전에, 빨리 파괴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만약 차원 마석이 파괴되기 전에 포위된다면 적잖이 난감한 상황에 봉착하게 될 것이니까.
그런데 유신이 파티원들을 향해 소리친 바로 그 순간.
띠링-!
당황스러운 내용을 담은 시스템 메시지가 모두의 눈앞에 떠올랐다.
-조건이 일부 충족되었습니다.
-남아 있는 차원술사들의 제단 : 1/2
-차원술사들의 제단을 전부 파괴하면, 승리의 협곡을 막고 있던 결계가 오픈됩니다.
분명히 아직 차원 마석이 멀쩡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제단을 파괴했을 때 떠오를 법한 메시지가 파티원들의 눈앞에 떠오른 것이다.
“뭐야? 유신 형, 벌써 파괴한 거야?”
계단을 오르던 훈이의 외침에 유신이 어이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다시 소리쳤다.
“그럴 리가 없잖아, 인마! 이거 내구도가 거의 1만이라고!”
“그럼 이 메시지는 대체 뭔데?”
“몰라. 조건이 충족되었다잖아. 차원 마석 발견해서 생성된 메시지인가 보지.”
“그, 그런가?”
어찌됐든 메시지에 대해 더 길게 생각해 볼 시간은 없었기 때문에, 헤르스를 비롯한 일행은 빠르게 차원 마석을 향해 내달렸다.
그리고 모든 공격 마법과 고유 능력을 동원하여, 차원 마석을 두들기기 시작하였다.
퍼펑- 펑-!
콰아앙-!
-차원 마석의 내구도가 382만큼 감소합니다.
-차원 마석의 내구도가 199만큼 감소합니다.
-차원 마석의 내구도가…….
……후략……
그리고 그렇게 1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건방진 침입자 놈들! 감히 마석을 부수려 하다니!”
일행을 뒤따라 계단을 올라온 차원술사들의 격노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이미 차원 마석의 내구도는 바닥까지 깎여 있었다.
“안타깝지만, 이미 다 부쉈다고.”
차원술사를 조롱하며, 마지막 공격 마법을 캐스팅하는 훈이.
이어서 다음 순간.
콰아앙-!
훈이가 캐스팅한 어둠 마법이 발동됨과 동시에, 견고하기 그지없던 차원 마석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쩌적- 쩍- 쩌엉-!
수십 갈래 조각으로 부서지며, 그 사이사이로 보랏빛 광채를 뿜어내는 거대한 차원 마석.
이어서 일행을 포위하던 수많은 밀랍병사들과 차원술사들은, 그 광채와 함께 허공으로 증발하기 시작하였다.
“크아악- 원통하다!”
“침입자에게 마석을 내어 주다니……!”
그리고 깔끔하게 퀘스트가 마무리된 것을 확인한 헤르스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 내며 인벤토리를 오픈하였다.
정신없이 싸우느라 어떤 아이템들을 획득했는지조차 아직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인벤토리의 첫 번째 아이템을 채 확인하기도 전.
우르릉- 쿠르르릉-!
요란한 진동 소리와 함께 일행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차원 마석이 파괴되어 ‘차원술사들의 제단’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마석이 사라지고 생성된 워프 포털에 입장하여, 제단에서 피신해야 합니다.
-제단이 무너지기까지 남은 시간 : 7초
-시간 내에 피신하지 못한다면 높은 확률로 사망할 수 있습니다.
메시지가 떠오르자마자, 헤르스와 일행들은 정신없이 포털을 향해 뛰어들었다.
힘겹게 퀘스트를 클리어해 놓고 허무하게 죽어서는 안 되니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긴박하게 이동하느라 정신이 없던 것인지, 이어서 떠오른 다음 메시지를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차원술사들의 제단’이 성공적으로 파괴되었습니다!
-남아 있는 차원술사들의 제단 : 0/2
-모든 ‘차원술사들의 제단’을 성공적으로 파괴하셨습니다!
-승리의 협곡을 막고 있던 결계가 오픈됩니다.
-결계가 사라진 자리에 차원 마수 ‘오르크’가 소환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