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5화 3. 협곡의 무법자 (2) >
* * *
자그마한 몸집에, 비교적 커다란 머리.
길쭉한 귀에 얄팍한 외모를 가진 고블린 한 마리가, 황금빛으로 빛나는 봇짐을 둘러멘 채 숲속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푸스럭-!
그리고 녀석의 작은 그림자를 발견한 이안은,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어, 저건 뭐지?’
한눈에 보기에도 평범한 몬스터와는 확연히 다른 외형을 가진 특별한 존재.
이안은 녀석을 향해 조심스레 다가가기 시작하였다.
‘혹시, 특별한 아이템을 드롭하는 희귀 몬스터인가?’
화염시를 소환하여 시위를 당긴 이안은, 야금야금 녀석을 향해 접근하였다.
만약 녀석이 도망갈 기미가 보이면, 곧 바로 불화살을 날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잠시 후, 녀석의 정보 창을 확인한 이안은 소환했던 화염시를 그대로 해제하였다.
그리고 섣불리 활시위를 당기지 않은 자신을 칭찬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우, 큰일 날 뻔했네.’
이어서 정보 창을 확인한 이안의 두 눈은, 흥미롭게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고블린 보부상
분류 : NPC
등급 : 희귀
영웅의 협곡을 떠돌아다니는 작은 고블린으로, 여러 가지 희귀한 물건을 취급하는 보부상이다.
자신의 몸집보다 커다란 녀석의 황금보따리에는, 쉽게 구할 수 없는 희귀한 아이템들이 많이 들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워낙 값비싼 장비만을 취급하는 상인이기에, 그에게 아이템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제법 많은 차원코인이 필요할 것이다.
*보부상을 공격할 시, 해당 전투가 끝날 때 까지 그에게서 아이템을 구입할 수 없습니다.
*보부상을 처치할 시, 그가 가지고 있는 장비들 중 하나를 랜덤으로 획득할 수 있습니다.
*고블린 보부상은 5분마다 한 번씩 랜덤한 위치에 모습을 드러내며, 5분이 지나지 않았더라도 그에게 아이템을 구입하는 순간 다른 장소로 이동합니다.
정보 창을 전부 읽은 이안은, 속으로 쾌재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이런 꿀 같은 콘텐츠가 있었을 줄이야……. 오늘은 운도 터지는 날이군.’
사실 고블린 보부상은, 이 영웅의 협곡에서 그렇게까지 희귀한 존재는 아니었다.
보통 한 경기가 끝날 때까지 적어도 두세 번. 많으면 너댓 번까지도 등장하는 녀석이었으니 말이었다.
다만 로터스 팀에서는 현재 맵을 휘젓고 다니는 인물이 거의 이안 혼자였으니, 이안의 눈앞에 나타난 것일 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안의 운이 좋은 것은 사실이었다.
이 고블린 보부상이 등장한 타이밍이, 그야말로 예술이었으니 말이다.
‘계속 쌓이는 차원코인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는데, 이렇게 돈 쓸 구멍을 만들어 주면 아주 땡큐지.’
영웅의 협곡에서 영웅들은 서로 코인을 교환하거나 주는 것이 불가능하다.
물론 귀속 아이템이 아닌 물건에 한해 대신 구매하여 주는 정도는 가능했지만, 어쨌든 코인 자체는 계정에 귀속되는 재화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지금 이안의 코인은, 두 시간이 다 되어가도록 쌓이기만 하고 있었다.
천군 진영의 군수물자 보급소를 업그레이드할 때에도, 전부 레미르와 훈이의 돈으로만 업그레이드를 했으니 말이었다.
이안은 지하 통로에 들어선 이후, 단 한 번도 본진에 돌아간 적이 없었으니까.
‘자, 지금까지 모인 코인이 거의 9만 코인인데……. 이걸로 과연 뭘 살 수 있으려나?’
생각지도 못했던 쇼핑 타임에 기분이 좋아진 이안은, 히죽히죽 웃으며 고블린을 향해 다가갔다.
이어서 이안을 발견한 고블린 보부상은,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갸웃하였다.
“키잉, 내가 좌표를 잘못 찍은 건가?”
의미를 알 수 없는 고블린의 중얼거림에, 이안이 반문하였다.
“그게 무슨 말이야, 친구. 넌 좌표를 아주 정확하게 잘 찾아왔다고.”
고블린은 계속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을 이었다.
“키힝? 아닌데, 그럴 리가 없는데. 난 분명히 마족 진영으로 좌표를 찍고 왔는데…….”
녀석의 말을 들은 이안은, 그의 중얼거림의 의미를 깨닫고는 피식 웃었다.
“여긴 마족 진영이 맞아, 친구.”
“그, 그래? 그런데 넌 분명 천군 진영의 용사인 것 같은데…….”
“그것도 맞아. 난 마족 진영으로 잠깐 놀러(?)온 천군 진영의 영웅이니까.”
고블린 보부상은 이안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가 생각하기에 지금 이 시점에 이안이 이곳에 있는 것은, 무척이나 신기한 일이었으니 말이었다.
“아직 마군 진영 최전방 타워는 전부 건재하던데, 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지?”
하지만 이안은 녀석의 질문에 계속해서 대답해 줄 생각이 없었다.
지금 그에겐, 한가하게 고블린과 대화할 시간 따위는 없었으니 말이다.
“그건 너무 복잡해서 지금 설명해 주기 힘들고…….”
“키힝.”
“얼른 나한테 물건이나 팔아 줬으면 좋겠어, 친구. 내가 지금 갈 길이 바빠서 말이야.”
이안의 이야기를 들은 고블린은 두 눈을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바로 차원코인이었고, 이안의 말은 지금 차원코인으로 자신의 물건들을 사겠다는 말이었으니 말이다.
“정말? 내 물건들을 사 줄 거야?”
“고럼고럼. 빨리 좀 보여줘 봐.”
“내 물건들은 귀한 것들이라, 한두 푼으로는 살 수 없을 텐데?”
“시끄럽고, 빨리 좌판이나 깔아 봐. 나 돈 많으니까.”
“키힝? 너 너무 멋지다. 내 스타일이야.”
결국 잠깐 동안의 실랑이(?) 끝에, 고블린은 황금보따리를 풀어 하나둘 물건을 꺼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안은 녀석이 꺼내 놓은 물건들을, 하나씩 꼼꼼히 살펴보았다.
*투명 망토
착용한 영웅을 클로킹 상태로 만들어 주는 신기한 망토입니다. 착용한 뒤 10초가 지나야 투명 상태로 전환되며, 적을 공격하거나 조금이라도 데미지를 입으면, 그 즉시 투명 상태가 해제됩니다.
구매자의 계정에 귀속되는 계정귀속 아이템입니다.
가격 : 49,900차원코인
*강화된 마력 폭탄
설치한 뒤 일정 시간이 지나면 강력한 폭발을 일으키는 마력폭탄입니다.
반경 10미터 이내의 모든 구조물과 생명체에 피해를 입히며, 폭탄의 위치와 가까울수록 더욱 강력한 피해를 입힙니다.
건축물과 같은 ‘무생물’타입의 대상에게 더 많은 피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
가격 : 10,000차원코인
*소환수 소환 스크롤(영웅)
‘영웅’ 등급 이상의 랜덤한 소환수를 소환할 수 있는 스크롤입니다.
이 스크롤로 소환된 소환수는 용사의 협곡 전투가 끝날 때 까지 함께할 수 있으며, 죽거나 소환 해제될 시 다시 소환할 수 없습니다.
처음 소환된 소환수의 레벨은, 스크롤을 사용할 당시 유저의 레벨과 비례합니다.
가격 : 14,500차원코인
*황금빛 무기 상자
희귀 등급 이상의 무기 아이템이 들어 있는 황금빛 상자입니다.
무기 상자를 사용하여 획득한 장비는 계정에 귀속되며, 영웅의 협곡 전투가 끝날 때까지 사용할 수 있습니다.
운이 좋다면, 최대 영웅 등급의 무기까지 획득할 수 있습니다.
가격 : 29,500차원코인
*호화 요리 상자
맛있고 고급스러운 요리가 들어 있는 요리 상자입니다.
희귀 등급 이상의 랜덤한 요리가 들어 있으며…….
……후략……
제법 많은 종류의 아이템들을 하나씩 확인하던 이안은,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고블린이 장담했던 것처럼, 아이템들의 가격이 하나같이 고가였으니 말이었다.
‘어떻게 제일 싼 소모성 아이템이 1만 코인이나 되는 거야?’
하나같이 특별하고 유용한 아이템들의 성능을 감안하더라도, 결코 싸게 느껴지지는 않는 가격들.
‘투명 망토 옵션이 확실히 탐나기는 하는데, 거의 5만 코인이나 되는 돈을 지불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투명 망토의 성능은 사실, 5만 코인이라는 액수가 이해될 정도로 사기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만약 지금 이안이 대부분의 장비 아이템들을 맞춰 놓은 후반이었더라면, 아무리 비싸다고 해도 구입했을 정도로 충분히 매력 있는 아이템인 것.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안에게, 투명 망토는 포기할 수밖에 없는 아이템이었다.
지금 이안이 장비한 아이템 중 성능이 괜찮은 것은 희귀 등급의 서리단검 하나가 전부였기 때문에, 가능한 8만 코인 전부를 스펙 업에 사용하고 싶었으니 말이다.
‘투명 망토가 있다면 좀 더 수월하게 마군 진영을 농락할 수 있겠지만, 스펙을 올려서 아예 힘으로 찍어누르는 게 더 확실한 방법이겠지.’
마력 폭탄이나 요리 상자 등의 아이템도 충분히 매력적이었지만, 이안은 과감히 그것들을 건너뛰었다.
랜덤한 장비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는 황금 상자의 앞에서는 제법 오래 고민하였지만, 그조차도 패스하기로 하였다.
‘희귀~영웅 등급 획득 가능이면 거의 희귀등급 장비 나온다고 보는 게 맞으니까.’
이미 LB 사의 가챠 뽑기 시스템을 완벽히 파악하고 있는 이안!
결국 이안이 선택한 아이템은, 고블린의 좌판 마지막에 있던 두 개의 물건이었다.
그리고 일단 마음이 정해지자, 이안은 거침없이 결정하고 물건들을 집어 들었다.
“친구, 이거랑 이거. 두 개 살게.”
“오오. 정말? 이것들을 살 코인이 있는 거야?”
“그렇다니까. 마음 바뀌기 전에 얼른 팔아 그러니까.”
“키힝! 아, 알겠어! 너 진짜 통 큰 녀석이구나!”
고블린 보부상과의 대화를 마친 이안은, 곧바로 녀석에게 코인을 지불하였다.
그러자 그와 동시에, 이안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들이 주르륵 하고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띠링-!
-‘고블린 보부상’과의 거래에 성공하였습니다!
-‘67,500차원코인’을 지불하였습니다.
-‘MVM 탐지기’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15,000차원코인’을 지불하셨습니다.
-‘강화된 경험의 경단x3’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이안이 구입한 물건들은, ‘MVM 탐지기’라는 이름을 가진 팔찌 모양을 한 정체불명의 아이템과 마치 미트볼처럼 생긴 세 개의 둥그런 고기경단.
고기경단이야 처음 이안이 차원 상인으로부터 구입했던 경험의 경단과 비슷한 종류의 아이템이었지만, ‘MVM 탐지기’라는 이름을 가진 특이한 생김새의 팔찌는 겉으로 봐선 전혀 용도를 알 수 없어 보였다.
“키힝! 고마워, 친구. 다음에 또 보자고.”
“물론이지. 한 1시간 뒤에 볼 수 있으면 딱 좋을 것 같은데.”
이안과의 거래에 무척이나 흡족한 표정이 된 고블린은 신이 나서 허공으로 폴짝 하고 뛰어올랐다.
그러자 그 자리에 황금빛 포털이 열리면서, 녀석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이안은 아쉬운 표정이 되어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딱 2만 코인만 더 있었으면 경단 대신 장비 아이템 하나 정도는 더 사는 건데…….”
그런데 다음 순간, 이안의 눈앞에 그 아쉬움을 달래 줄 만한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두 줄 떠올랐다.
띠링-!
-‘고블린 보부상’이 거래에 만족하였습니다.
-‘고블린 보부상’을 만날 확률이 소폭 상승합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들을 확인한 이안은, 씨익 웃으며 기분 좋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좋아, 다음에 만날 때는, 사고 싶은 거 다 살 수 있을 만큼 코인을 모아 주겠어.”
착용한 팔찌를 조심스레 만지작거린 이안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눈을 반짝이며, 어디론가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MVM(Most Valuable Monster) 탐지기
사냥터에 숨겨져 있는는 ‘에픽 몬스터’의 위치를 탐지해 주는 팔찌입니다.
최대 ‘전설’등급까지의 에픽 몬스터를 탐지할 수 있으며, 발견한 에픽 몬스터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습니다.
반경 50미터까지 탐지가 가능합니다.
구매자의 계정에 귀속되는 계정 귀속 아이템입니다.
가격 : 67,500차원코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