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685화 (695/1,027)

< 685화 5. 용들의 땅 (3) >

* * *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시공의 열쇠’를 사용하셨습니다.

-‘시공의 탑’에 입장하셨습니다.

우우웅-!

소르피스성 북쪽 중심가에 있는 높고 신비로운 형상의 석탑.

‘시공의 탑’에 들어선 이안은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창을 보며 흡족한 표정이 되었다.

‘그래, 이런 게 필요했다고.’

-이동하실 차원계를 선택해 주십시오.

-한 번이라도 입장해 본 차원계만 이동이 가능합니다.

-A – 인간계 (콜로나르 대륙)

-B – 마계 (마계 100구역)

-C – 명계 (에레보스)

-D – 정령계 (프뉴마 마을)

-E – 용천 (소천小天)

-F - ??? (입장 불가)

물론 그리퍼로부터 받은 차원의 구슬을 이용한다면, 이안은 어떤 차원계든 어렵지 않게 이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리퍼의 차원 구슬은 무한정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으니, 이안의 입장에서도 이러한 편리성 시스템이 좋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나저나 입장 불가 선택지가 있는 걸 보면 내가 아직 못 가 본 차원계도 있다는 거네.’

시공의 탑에서 이동할 수 있는 선택지들을 하나하나 살펴본 이안은 흥미로운 표정이 되었다.

어차피 목적지는 정해져 있었지만, 몰랐던 차원계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미가 동한 것이다.

‘자, 일단 루가릭스 녀석을 찾으러 가는 게 먼저니까…….’

기분 좋게 웃은 이안은 멀뚱한 표정으로 옆에 서 있던 엘을 향해 입을 열었다.

“엘아.”

“네, 아빠.”

“잃어버린 네 오빠 찾으러 한번 가 볼까?”

뜬금없는 이안의 말에 커다란 두 눈을 꿈뻑이던 엘카릭스는 잠시 후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굳이…… 찾아야 돼요?”

“그럼, 찾아야지. 엄청나게 쓸모가 많은 녀석인걸.”

“루 오빠는 쓸모가 많아요?”

“당연하지.”

“어떤 면에서요?”

“멋있다고 칭찬 한번 해 주면, 우쭐해서 정보를 술술 풀거든. 시키는 것도 척척 잘하고 말이야.”

“……!”

“아마 칭찬만 한 번씩 던져 주면, 엘이 심부름도 척척 해다 줄걸?”

이안의 설명에, 엘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뭔가 깨달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맞아요.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우리, 루가릭스 한번 찾으러 가 볼까?”

“좋아요! 빨리 오빠 찾아서 여왕놀이 해야겠어요.”

“여왕놀이……?”

“네!”

“네가 여왕이고, 루가릭스가 호위기사. 뭐 그런 콘셉트야?”

“아뇨. 루 오빠는 악룡이에요.”

“악……룡?”

“네. 왕국을 공격하는 악룡 ‘루’를 여왕 ‘엘’이 단칼에 처치하는 놀이거든요.”

“…….”

엘카릭스의 ‘여왕놀이’라는 것을 들은 이안은 루가릭스를 향해 애도했다.

‘미안, 루가릭스. 곧 널 데리러 갈게.’

이어서 망설임 없이, 용천으로 가는 선택지를 선택하였다.

그리자 다음 순간.

우우웅-!

추가로 떠오른 한 줄의 메시지와 함께 이안의 시야가 하얗게 물들기 시작하였다.

-‘E – 용천’을 선택하셨습니다.

-시공을 뛰어넘어 ‘용천’으로 이동합니다.

* * *

이안은 중간자가 되면서, 가신들을 중간계에 데려올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이안에게도 제법 큰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파이로 영지를 지키고 있는 영웅 등급 이하의 평범한 친구들(?)은 큰 의미 없었지만, 카이자르나 헬라임과 같은 신화 등급의 가신들은 어지간한 유저 이상으로 제 몫을 톡톡히 해 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일단 카이자르, 헬라임, 이 두 녀석만 먼저 데리고 다녀야겠어. 일단 이 둘부터 레벨을 올려 줘야지.’

사실 카이자르와 헬라임마저도 어느 정도 초월 레벨이 올라올 때까지는 큰 쓸모가 없을 것이다.

지상계의 레벨이 아무리 높다 하여도, 초월 레벨은 1부터 시작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 초월 35레벨인 이안에게 이 두 가신들이 유의미한 도움을 주려면, 적어도 30레벨에는 근접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이안은 그렇게 생각하고 두 사람을 용천으로 불러들였다.

“여, 오랜만이야. 그동안 잘 지냈나?”

오랜만에 가신들을 만난 이안은 반가움에 양팔을 활짝 펼치며 둘을 맞이했고, 카이자르와 헬라임 또한 반가운 눈치였다.

“국왕 놈아, 어째 왕성에는 코빼기도 안 비추는 거냐?”

“그간 별고 없으셨습니까, 폐하.”

너무도 상반되는 두 사람의 인사말에 피식 웃음 지은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동안 바빴다. 물론 앞으로도 바쁠 테지만 말이야.”

이어서 이안은, 카이자르에게 핀잔을 주었다.

오랜만에 듣는 카이자르의 구수한 호칭이 제법 거슬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카이자르, 너는 국왕 놈이 뭐냐. 주군이라고 부르랬지.”

“알겠다, 주군 놈아.”

“하…….”

카이자르의 확고한 캐릭터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이안은, 이번에는 헬라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헬라임, 왕성에는 별일 없지? 요즘은 영지전도 없는 것 같던데 말이야.”

헬라임은 이안의 가신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로터스 왕국의 기사단장을 역임하고 있었다.

때문에 어쩌면 헬라임만큼, 지상계의 동향을 잘 아는 인물도 없을 것이었다.

헬라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폐하. 감히 누가 있어 폐하의 로터스 왕국을 넘보겠나이까.”

“하긴, 그것도 그렇지.”

“만약 폐하께서 복귀하시어 군대를 일으키신다면, 제국을 선포하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입니다.”

“음……. 뭐, 그럴 수도 있겠네.”

헬라임의 말을 들은 이안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의 말처럼 지금 당장이라도 군대를 일으킨다면, 제국선포까지는 한 달 내로 해낼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왕국이 된 지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안을 비롯한 로터스 길드원들은 제국 선포를 하고 싶은 욕심이 별로 없었다.

제국을 건설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도 비용이었지만, 제국선포를 하는 순간 신경 쓸 게 배 이상으로 많아지기 때문이었다.

‘시간, 돈, 명성도 왕창 깨질 테고……. 아직까진 전쟁을 벌일 시간에 중간계 콘텐츠들을 선점하는 게 훨씬 득이 많을 테니까.’

만약 LB사에서 제국과 관련된 신규 콘텐츠라도 뭔가 발표한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 대부분의 랭커들은 중간계 콘텐츠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안은 쉽게 말하지만, 로터스나 타이탄 외에 제국 선포가 가능한 전력을 가진 길드도 사실상 없었고 말이다.

“여튼 중간계에 온 것을 환영해. 그동안 지상계에서 심심했을 텐데, 여긴 아마 재밌는 게 아주 많을 거야.”

이안의 말에, 카이자르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하였다.

“이곳에는 강자가 많은가? 지상계에는 내 일검을 받아 낼 수 있는 존재가 없었는데 말이지.”

“허세는……. 바로 옆에 헬라임도 있었잖아.”

“그런 건 모른 척해 줘도 되는 거다.”

못 본 사이 귀여워진(?) 카이자르를 보며 실소를 흘린 이안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헬라임, 카이자르.”

“예, 폐하.”

“음? 불안하게 왜 그러냐?”

잠시 뜸을 들인 이안이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딴 건 모르겠고, 너희 둘, 지금 너무 약해.”

“……!”

“뭐라?”

이안의 청천벽력 같은 말에, 세 사람 사이에 잠시 동안 흐르는 정적.

잠시 후 그 정적을 깨며, 이안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구르자.”

하지만 이안의 말에도 불구하고, 카이자르와 헬라임은 잠시 동안 입을 떼지 못하였다.

머리털 나고 처음 들어 본 ‘약하다’는 말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전 약하지 않습니다, 폐하!”

“내가 약하다니! 믿을 수 없다!”

마치 쌍둥이처럼, 이구동성으로 이안에 반발하는 헬라임과 카이자르.

하지만 이안은 두 사람의 반응에 개의치 않고, 하려던 말을 이어 갔다.

“저기 저쪽에 드락스들 보이지?”

이안은 능선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그리고 헬라임과 카이자르의 시선은 자연스레 이안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으로 향했다.

뭔가를 발견한 카이자르가 퉁명스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작고 못생긴 도마뱀들을 말하는 거라면, 보이는 것 같다, 주군.”

드락스는 용천에서 가장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가장 허약한 몬스터들이었다.

초월 레벨이 낮게는 7에서 높게는 10정도 되는, 나름 중간계 입문용(?) 몬스터들.

하지만 초월 1레벨에 불과한 카이자르와 헬라임에겐 7레벨짜리 도마뱀들도 결코 쉽지 않으리라.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카이자르와 헬라임인데……. 설마 잡몹 잡다가 비명횡사하지는 않겠지.’

승부욕 강한 카이자르와 헬라임에게, 레벨 업에 대한 동기부여를 하기 위한 이안의 계략!

강제로 레벨 업을 종용하는 주입식 교육보다는, 자발적 레벨 업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잘 아는 이안이었다.

“일단 둘이 저쪽으로 가서, 딱 한 놈만 처치하고 와 봐. 그럼 약하지 않다고 인정해 줄게.”

그리고 두 사람의 성향을 거의 완벽히 파악하고 있는 이안의 설계는, 먹히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이미 카이자르는 씩씩거리고 있었고, 헬라임은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 말이었다.

“좋다, 내가 저기 있는 놈들 싹 쓸어 버리고 돌아오도록 하지.”

“한 놈이 아니라 전부 베어 버리고 오겠습니다!”

이어서 호기롭게 이안을 향해 대답한 두 사람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능선을 따라 뛰어 내려갔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향해, 이안이 한마디 조언을 덧붙였다.

“혼자 잡으려 하지 말고 같이 잡아, 이 친구들아. 둘이서 하나만 잡아도 인정해 줄 테니까.”

하지만 이미 의욕이 활활 불타오른 둘에게 그런 이안의 말이 들릴 턱이 없었다.

“걱정 마십시오, 폐하! 카이자르가 건드린 녀석은 쳐다도 안 볼 겁니다!”

“헬라임 너, 여기 기준으로 왼쪽에 있는 녀석들은 눈독들이지 마라. 다 내 거니까.”

“내가 할 소리!”

그런 두 가신들을 보며 어이없는 표정이 된 이안은, 아그비와 함께 화염시를 소환하였다.

화르륵-!

저 불도저 같은 두 가신들이 위험에 처한다면, 화살을 날려 구해 줄 생각으로 말이었다.

10레벨도 안 되는 잡몹들 정도는 화살 한 발당 한 마리씩 처치할 자신이 있었으니까.

‘어휴, 저 바보들. 초월 레벨이 1인 건 대체 왜 생각을 못 하는 거야?’

마치 물가에 나간 어린아이를 지켜보듯 불안한 표정으로 두 가신들을 지켜보는 이안.

하지만 잠시 후, 이안의 그 불안한 표정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하였다.

먼저 뛰어간 카이자르가 드락스의 등짝에 대검을 내리꽂는 순간, 믿을 수 없는 메시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가신 ‘카이자르’가 몬스터 ‘드락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드락스’의 생명력이 297만큼 감소합니다!

‘뭐……라고?’

카이자르의 초월 레벨은 분명 1레벨이다.

그런데 지금 이안의 눈앞에 떠오른 대미지 수치는, 절대로 1레벨의 스펙을 가지고 만들어 낼 수 없는 숫자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안의 경악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가신 ‘카이자르’의 고유 능력 ‘폭뢰검’이 발동합니다.

-‘드락스’의 생명력이 507만큼 감소합니다!

-‘드락스’의 생명력이 622만큼 감소합니다!

-몬스터 ‘드락스’의 생명력이 전부 소진되었습니다.

-가신 ‘카이자르’가 몬스터 ‘드락스’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였습니다!

-가신 ‘카이자르’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혼란에 빠진 이안의 동공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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