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8화 6. 반가운 재회 (2) >
* * *
이안은 드라코우가 쓸모없어서 판 것이 아니었다.
‘천룡’인 데다 초월 레벨 50의 전설 등급 소환수는 아무리 이안이라 하더라도 제법 아쉬울 정도의 전력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이 녀석을 팔기로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좀 더 큰 그림을 위해서였다.
차원코인의 가치가 최대로 비싸고 높은 초월 레벨 소환수의 가치가 가장 비싼 이 시점에, 장기적으로 봤을 때 큰 의미 없는 드라코우를 매도하여 이익을 극대화시키려던 것이다.
‘서너 달 정도만 더 지나도, 초월 50레벨 정도 소환수는 흔해지겠지.’
이안이 노리는 노림수는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바로 이안이 이 녀석까지도 과감하게 1차원 코인으로 등록한 이유.
여기에는 이안의 치밀한 심계가 숨어 있다.
‘초기 금액을 얼마로 올리든 어차피 가격은 제값 찾아가기 마련이고……. 1코인으로 등록해야 어중이떠중이들까지 죄다 입찰하면서, 차원코인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테니 말이야.’
결국 팔린 아이템들은 차원코인이 되어 이안의 주머니에 들어올 것이다.
때문에 차원코인의 가치가 올라갈수록 비싸게 파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될 테니, 이안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차원코인을 매입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이다.
일단 코인을 매입해서 입찰을 걸고 나면 경매가 끝날 때 까진 그 코인을 돌려받을 수 없으니, 상위 입찰가가 떴다고 해서 코인을 빼다가 다시 골드로 환전할 수도 없는 노릇.
때문에 이안이 올려 둔 상품들이 매력적일수록 코인의 가치는 천정부지로 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흐흐, 그리고 차원코인의 가치가 계속 오르는 것을 확인했으니, 입찰대금을 돌려받은 유저들도 쉽사리 골드로 다시 바꿀 생각을 하지 않겠지.’
그리고 그러한 이안의 치밀한 계획은 그야말로 대 성공을 거두었다.
그것은 지금 이안의 눈앞에 있는 몇 줄의 시스템 메시지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소환수 ‘드라코우(천룡)/Lv. 50(초월)’이 성공적으로 판매되었습니다.
-낙찰가 : 15,750차원코인
-수수료를 제외한 판매 대금은 14,962차원코인입니다.
-차원코인을 수령하시겠습니까?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에 순간적으로 멍해진 이안.
그는 그 메시지들을 너댓 번 정도 반복해서 읽고 나서야, 입을 뗄 수 있었다.
“이게……. 진짜라고?”
현재 차원코인의 시세는 1코인당 17,500골드 정도까지 치솟은 상태였다.
그 말인 즉, 드라코우의 판매 가격이 대략 2억 6천 골드가 넘는다는 것.
골드의 현금 시세가 그동안 많이 떨어졌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전설 등급의 소환수 한 마리를 억 단위가 넘는 거액에 팔아넘긴 셈이 된 것이다.
한국 서버에서 일반적인 신화 등급 소환수의 시세가 2~3억 골드이며 전설 등급 소환수가 1천만 골드 정도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이것은 이안으로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액수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초월 50레벨이라는 레벨 값이 있다고 해도 그렇지, 고작 전설 등급 소환수가 억 단위에 판매되다니…….”
소환수는 아이템과 달리 따로 ‘초월’등급이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드라코우는 초월 50레벨이라는 레벨 값만 제외한다면, 일반 전설 등급의 소환수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물론 ‘천룡’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평범한 전설 등급보다 좀 더 능력치가 뛰어나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러한 차이가 있다 할지라도 이안이 생각하기에 이 정도의 가격 차이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차이만으로 거의 수십 배 비싼 가격에 팔린 셈이니까.
예상치 못했던 거액에 놀란 이안은, 우선 돈부터 수령하였다.
-14,962 차원코인을 수령하셨습니다.
-최초로 1만 코인 이상의 차원코인을 보유하셨습니다!
-명성(초월)이 550만큼 상승합니다.
-‘거래소의 큰손 Ⅰ’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앞으로 거래소의 모든 수수료가 0.5퍼센트만큼 감소합니다.
이어서 곧바로, 입찰자를 한번 확인해 보았다.
“대체 이걸 누가 이렇게 비싸게 산 거야?”
그리고 눈앞에 떠오른 이름에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입찰자 유저 네임 : 왕 웨이
-서버 소재지 : 중국
“이름만 봐도 중국 사람이라는 건 알겠는데……. 혹시 노엘이보다 돈 많은 중국 갑부인 걸까?”
처음 들어 보는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린 이안은 나머지 아이템들의 입찰 대금도 전부 수령받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입찰자를 확인할 때마다 이안의 표정은 점점 더 묘해지기 시작하였다.
이안이 올린 품목들 중 80퍼센트 이상의 입찰자 네임에, ‘왕 웨이’라는 글귀가 박혀 있었으니 말이다.
‘대, 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중국 갑부 스토커?’
이안의 머릿속에 돈 많은 사생팬 정도로 자리 잡은 왕웨이라는 이름.
하지만 사실 왕 웨이라는 이름은, 이안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유명한 이름이었다.
중국 서버의 소환술사 통합 랭킹 1위의 유저 네임이 바로 왕 웨이였으니 말이다.
* * *
이안이 경매를 통해 벌어들인 코인은, 거의 4만에 육박하였다.
그리고 입찰된 내역들을 확인해 보면 왕웨이 한 사람 때문에 벌어진 일만은 아닌 듯 보였다.
대부분의 아이템들이 이안이 기대했던 가격의 10배 가까운 액수로 판매되었으며, 마지막까지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기록했으니 말이었다.
“크, 역시 세계 시장은 한국 시장과 규모 자체가 다르다는 건가.”
인벤토리에 들어와 있는 막대한 차원코인을 보며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하는 이안.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거액을 손에 쥔 이안이 이 돈으로 뭘 했을까?
처음 경매장에 아이템들을 올릴 때만 해도, 이안은 골드로 환전해서 짭짤한 용돈 벌이(?) 정도를 할 계획이었다.
애초에 그것을 위해서 차원코인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설계를 했던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큰돈이 들어왔으니, 목표를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골드를 버는 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이만한 코인이 생겼다면 내성의 콘텐츠들을 선점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이득일 테니 말이었다.
끼이익-!
소르피스 내성 깊숙한 곳 어딘가에 위치한 허름한 건물의 문을 밀고 들어간 이안이 두리번거리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영업 하시나요?”
“오호, 오랜만의 방문객이로군. 영업이야 당연히 하지. 손님이 없어서 문제지만 말일세.”
그리고 다음 순간, 이안의 눈앞에는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소르피스 성, ‘토지 거래소’에 입장하셨습니다.
이안이 들어온 곳은 다름 아닌 내성의 토지들을 관리하는 토지 거래소.
토지 거래소의 관리인 듯 보이는 NPC ‘찰리’는 무척이나 심드렁한 표정으로 이안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자네, 여긴 뭐 하러 온 건가?”
그가 심드렁한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껏 이곳에 온 손님 중 토지를 매입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었다.
평당 1만 코인이나 하는 땅값이 워낙 비싼 것도 이유였지만, 이곳 땅을 매입할 최소 자격 요건이 ‘중간자의 위격을 가진 자’였으니, 사실 이안 말고는 땅을 살 수 있는 사람 자체가 없다고 봐도 무방한 것이다.
하지만 이안의 다음 말을 들은 찰리의 표정은 바뀔 수밖에 없었다.
“뭐 하러 오다니요? 당연히 땅 사러 온 거죠.”
“……!”
“엊그제 제일 먼저 와서 가격 여쭤봤었는데, 기억 안 나세요?”
이안의 물음에 의자에 앉아 있던 찰리는, 쓰고 있던 돋보기안경을 살짝 내리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맞아. 그랬었지. 그러고 보니 자네, 첫 손님이었군.”
“후후, 기억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어서 잠시 뜸을 들인 찰리는 이안의 면면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때 들었다면 토지 가격이 얼마 정도인지는 알고 왔을 테고…….”
“당연하죠.”
“그 사이에 없던 코인을 모아 오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에 이안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그때 평당 1만 코인이라고 하셨었는데……. 맞나요?”
“그렇다네. 현재 소르피스 내성의 모든 토지는 평당 1만 코인으로, 전부 균일가로 책정되어 있지.”
“앞으로 가격 변동은 없는 건가요?”
“지금이야 분양 가격이니 일괄로 책정되어 있지만, 분양이 전부 끝나고 지주들끼리의 거래가 시작되면 입지에 따라서 시세가 달라지지 않겠는가.”
찰리의 말에 이안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하였다.
대략적인 시스템의 구조는 이미 감을 잡은 터였다.
“그럼 제일 위치 좋은 곳으로다가 네 평 매입할게요.”
그리고 이안의 말을 들은 찰리의 표정은, 묘하게 변하였다.
대체 네 평밖에 안 되는 작은 면적의 땅을 매입해서 뭘 하려는 건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소르피스 성 토지거래소의 첫 번째 손님을 홀대할 수는 없는 노릇.
이안에게 정말 4만 코인이라는 돈이 있는 것을 확인한 찰리는, 친절하게 콘텐츠에 대해 설명해 주기 시작하였다.
찰리는 얇고 기다란 막대기를 꺼내어 벽에 붙어 있는 지도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내 생각엔 말이야. 이쪽, 메인 광장을 두르고 있는 땅들이 앞으로 가장 비싸질 것이라네.”
“아무래도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그쪽이 비쌀 수밖에 없겠지요.”
“그렇다네. 이쪽은 추후에 어떤 점포를 연다고 해도, 잘될 수밖에 없는 입지라고 할 수 있지.”
찰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이안은, 천천히 지도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광장 주변에 있는 노른자위 땅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여기, 여기, 여기. 마지막으로 여기. 이렇게 네 군데에 한 평씩 매입할게요.”
이안의 말을 들은 찰리는, 적잖이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네 평을 한 군데 모아서 면적을 합해도 얼마 되지 않는데, 동서남북에 한 평씩 사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찰리는 참지 못하고 이안에게 물어보았다.
“아니, 자네, 대체 이런 식으로 매입하는 이유가 뭔가? 한 평씩 떨어져 있는 땅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야.”
너무 당황해서인지, 말까지도 더듬는 찰리.
그런 찰리를 향해, 이안은 친철히 설명을 시작하였다.
“아저씨.”
“……?”
“혹시, ‘알박기’라고 들어는 보셨나요.”
“알……박기? 그게 뭔데?”
잠시 뜸을 들인 이안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음, 쉽게 설명하면 영역 표시 해 놓은 거라고 할 수 있죠.”
“으응?”
찰리의 반문에, 이안은 씨익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앞으로 여기부터 여기까지 쭈욱 제가 다 살 예정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