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7화 2. 용족과 거신족 (1) >
연속해서 여섯 번 동안 이어진 ‘언령 마법의 비밀’ 연계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동안 이안의 퀘스트 달성 등급과 추가 달성률은 점점 더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연계 퀘스트에서는 추가 달성을 아예 하지 못했었던 반면, 마지막 퀘스트에서는 거의 한계치까지 추가 달성 보상을 받아 낸 것이다.
피로도가 회복된 것도 아닌데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당연히 ‘차원 마력 저항력’이 급상승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퀘스트를 진행할 때에 이미 70이 넘는 차원 마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니 이안의 체감 난이도는 거의 반 토막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이안,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우리 거점으로 오길 기다릴게.”
“급한 일은 없으니 푹 쉬고 천천히 오도록 하시오. 내 장로님들께는 잘 말해 놓겠소이다.”
프림슨은 물론, 라페르 전사들의 수장으로 보이는 NPC인 클리튼까지.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하는 모습에, 이안은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 하핫,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다시 뵙도록 하지요.”
그리고 이들이 이렇게 자신에게 호의적인 이유를 이안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공헌도를 거의 5천 가깝게 쌓았으니까, 뭐…….’
어쩌다 보니 동맹 가문인 암천궁과의 공헌도보다도 이곳 라페르 일족에 쌓은 공헌도가 훨씬 더 높아진 것이다.
‘아마 일족의 시험을 다 통과하고 나면, 이 공헌도를 소모해서 뭔가 라페르 일족의 특산품(?) 같은 걸 매입할 수 있겠지. 그게 언령 마법 마법서였으면 좋겠는데…….’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상상을 떠올리며 행복한 꿈을 잠시 꾼 이안은, 라페르 일족의 거점 근처에서 일단 로그아웃을 하였다.
아무리 이안의 게임 체력이 괴물같이 튼튼하다고 하더라도, 이미 한계 이상의 플레이를 진행한 상황.
‘마음 같아서는 저항력 맥스 찍을 때까지 계속 창을 휘두르고 싶지만…….’
여기서 더 움직였다가는 정말 현실에서 병원에 실려 갈 수도 있을 것 같았기에, 이안은 로그아웃하고 캡슐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위이잉- 철컥-!
부드러운 기계음과 함께 편안하게 열리는 이안의 게임 캡슐.
오랜만에 현실과 마주한 이안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하린을 찾았다.
“하린이는 어디 갔지? 지금쯤이면 집에 있을 시간인데…….”
그리고 하린을 찾다 보니 그녀에게 맡겨 두었던 심부름도 머릿속에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렌이에게 계약서 보낸 건 어떻게 됐으려나? 어제나 그제쯤 방송 날짜 잡혔을 텐데.’
하지만 이안의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질 수 없었다.
침대에 몸을 누이자마자 정말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래 일단 좀 자고 생각…….’
그렇게 이안은, 머릿속에 떠오르던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스르르 잠에 빠지고 말았다.
* * *
라오렌이 비룡의 알 판매 방송을 시작한 시점은, 막 ‘비룡의 알’이라는 것에 대해 세계적인 관심이 쏟아지기 시작했을 때였다.
하여 라오렌은 이 홈쇼핑(?) 방송을 한국 서버에 한정시켜 진행하는 것이 너무 아쉽다는 생각을 하였다.
‘어차피 한국 서버에서만 진행되도 완판은 따 놓은 당상이겠지만……. 그래도 낙찰가를 올리려면 글로벌로 진행해야겠지?’
그렇다면 라오렌이 한국어 외에 세계 각국의 언어를 소화할 수 있는 실력이 되는 것일까?
그건 당연히 아니었다.
서울 토박이인 라오렌은 사실 언어 영역 점수도 바닥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공부는 못할지언정 잔머리 하나는 자부심이 있는 라오렌.
그가 생각해 낸 방법은, 각국 서버의 유저들을 하나씩 영입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경매는 카일란 안에서 진행할 것이었으니.
해외로 송출되는 영상을 해당 서버의 유저 시점에서 보는 영상으로 송출한다면, 따로 통역을 구하거나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동시통역이 되는 셈이었으니 말이다.
카일란의 동시통역 시스템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이용한 것.
이것은 계획을 듣던 하린까지도 감탄하게 만든 잔머리라 할 수 있었다.
“한번 열심히 팔아 보세요. 매출 잘 나오면, 제가 이안이한테 인센티브 좀 떼어 주라고 얘기해 줄 테니까요.”
“크윽…… 역시 형수님밖에 없습니닷!”
하린이 제시한 당근으로 인해 동기부여까지 확실하게 된 라오렌은, 본인이 갖고 있는 모든 인프라를 동원하여 방송 홍보에 나서기 시작하였다.
계획 변경으로 인해 방송 일정이 약간 미뤄졌지만,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글로벌 서버에 홍보가 시작되자, 그야말로 반응이 폭발적이었기 때문이다.
홈쇼핑 자체를 사기라고 단정 짓는 유저들부터 시작해서…….
-뭐라고? 비룡의 알을 경매로 판매하는 홈쇼핑이 등장했다고?
-그게 말이 돼? 지금 없어서 못 구하는 게 비룡인데, 어떤 사기꾼들이 그걸 판다는 거야 대체?
-에이, 사기꾼이라니. 비룡이 귀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경매장에 조금씩 풀리는 것 보면 홈쇼핑으로 팔아도 이상한 건 아니지.
-아니, 비룡이 아니고 비룡의 알이라잖아. 너 경매장에 비룡의 알 올라온 거 본 적 있어?
-뭐, 비룡이 있으니 당연히 알도 있겠지?
-하아……. 그럼 그건 그렇다 치고.
-……?
-친구, 너 판매 수량도 확인 안 해 봤지?
-으응?
-판매한다는 수량이 무려 백오십 개야, 백오십 개. 지금 경매장에 풀렸던 비룡 다 합해도 오십 개가 안 될 텐데, 세 배가 넘는 물량을 팔고 있는 거라고.
-허얼. 리얼리?
-그렇다니까.
-미쳤네. 어떤 어그로꾼이 또 사기 친 게 분명하구먼.
모든 비룡의 알을 전부 낙찰받고 말겠다는, 자칭 중국의 재벌 3세까지.
-후후. 비룡의 알 백오십 개라……. 이것만 전부 낙찰받는다면, 용기사단을 만드는 일도 꿈만은 아니겠어.
-님, 꿈꾸셈? 개당 낙찰가가 최소 3천만 골드는 될 텐데, 그럼 얼만지 알기나 함?
-생각보다 싸군. 50억 골드 정도 있으면 가능한 거잖아?
-???
-용돈 몇 달 모으면 되겠는데?
-후우……. 님들 여기 허언증 환자 하나 추가요.
그렇게 수많은 글로벌 유저들의 기대 속에서, 라오렌의 홈쇼핑이 드디어 막을 열기 시작하였다.
이안이 침대 위에서 기절해 있던, 바로 그 시각에 말이다.
* * *
“반갑습니다, 여러분. 유캐스트의 BJ이자, 로터스 길드 마스코트인 라오렌입니다.”
채널이 열리고 라오렌의 첫 인사가 떨어지자마자, 각국 서버의 채팅창은 또다시 폭주하기 시작하였다.
-오오, 로터스 길드라고? 거기 이안갓의 길드 아니야?
-맞네. 한국서버 유저라는 건 들었는데, 로터스일 줄이야. 이거 이러면 신뢰도가 더 올라가는데?
-됐고, 어서 비룡의 알을 보여 줘라!
-비룡의 알이라는 아이템이 있기는 한 거 맞냐?
-서론은 필요 없다! 빨리 비룡의 알을 보여 줘!
그리고 탑급 BJ답게 여유로운 표정으로 채팅 창들을 확인한 라오렌은, 웃으며 다시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후후, 역시나 여러분께선 몸이 많이 달아 있으시군요.”
이어서 단상에 미리 준비해 두었던, 비룡의 알을 향해 오른손을 내뻗었다.
하지만 아직 비룡의 알이 시청자들의 화면에 보이지는 않았다.
연출을 위해 알에는, 붉은 색의 실크가 올려져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 우선, 첫 번째 알부터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치며 조심스러운 손짓으로, 붉은 실크를 집어 들기 시작하는 라오렌.
하지만 금방 천을 벗겨 낼 것처럼 움직이던 라오렌은 잠시 멈칫하며 다시 시청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 공개하기에 앞서 지금 보여 드릴 이 알은 판매용이 아니니, 일단 입찰을 위해 송금하려고 하셨던 돈은 넣어 두시길 바랍니다.”
라오렌의 밀당에, 시청자들은 또다시 광분하기 시작하였다.
-공개해!
-뜸을 들이더라도 물건을 먼저 보여 준 다음에 하란 말이야!
-아오, 내가 저기 가서, 저 빨간 천 쪼가리 확 벗겨 버리고 싶네.
-빨리 경매나 시작하라고. 바쁜 사람들 모였으니까 말이야.
실시간으로 반응을 확인한 라오렌은 저도 모르게 씨익 웃음 지었다.
방송 체질의 BJ인 그로서는, 이런 시청자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때가 가장 뿌듯하고 재밌었으니 말이었다.
“아, 여러분. 일단 진정들 하시고…….”
마른침을 한차례 꿀꺽 삼킨 라오렌의 입이 천천히 다시 떨어졌다.
“제가 지금부터 뭘 하려는지 들으신다면, 지금 당장 경매를 시작하지 않아도 충분히 흥미를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그게 대체 뭔데?
-뭐든 좋으니 빨리 해 봐라.
말을 마친 라오렌은 손가락을 퉁기며 어디론가 신호를 보내었다.
그러자 그와 동시에…….
촤르륵-!
라오렌의 옆에 있던 단상의 빨간 천이 벗겨지는 대신 그 앞쪽에 있던 푸른 천이 벗겨지며, 다섯 개의 알이 시청자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황금빛의 바탕에, 하얀빛으로 비룡의 문양이 양각되어 있는 신비로운 생김새의 커다란 알들.
거의 모든 시청자들이 오늘 이 알을 처음 보는 것이었지만, 그들은 직감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보고 싶어 했던 비룡의 알이라는 것을 말이다.
-와……!
-미친, 진짜 비룡의 알이야?
-가짜로 모형 만들어 놓은 건 아니겠지?
-아오, 게임 속이 아니라서 확인해 볼 방법도 없고. 이거 진짜 답답하네.
다시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는 시청자들의 채팅을 슬쩍 확인하면서 의미심장한 표정이 된 라오렌이 다시 홈쇼핑을 진행하기 시작하였다.
“자, 일단 이 알들을 여러분께 경매하기 이전에…… 먼저 이것들이 진품이라는 것부터 확인시켜 드려야겠지요?”
-당연하지!
-두말하면 잔소리!
“하여 저 라오렌은, 지금 여러분의 눈앞에 있는 이 다섯 개의 알을 까 보려고 합니다.”
라오렌의 파격적인 제안에, 채팅 창은 더더욱 달아오를 수밖에 없었다.
단지 비룡의 알을 경매하는 줄만 알았던 홈쇼핑 인터넷 방송에서, 갑자기 알을 까는 장면까지 생방송으로 보여 주겠다고 하니 흥미가 배가되었음은 당연한 수순인 것이다.
-키야, 역시 라오렌 클래스! 수천만 원짜리 알을 다섯 개나 까겠다는 거야?
-그래 얼른 까 보자! 난 비룡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아직 제대로 못 봤다고!
하지만 시청자들을 흥분시킬 요소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라오렌이 홈쇼핑을 준비하며 짜 놓은 콘텐츠들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으니 말이다.
“이 다섯 개의 비룡의 알을 까기 전에, 이 알들의 주인을 먼저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알들의 앞에 가까이 다가간 라오렌은 가장 오른쪽에 있던 알을 쓰다듬으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경매가 시작되기 전 이벤트성 판매이다 보니, 알들의 가격은 일괄 3천만 골드로 통일하도록 하겠습니다. 입금되는 선착순으로 알의 주인을 정해 드리도록 하지요.”
3천만 골드라는 가격을 부른 라오렌은 침을 꿀꺽 삼키며 카일란 계좌를 오픈하였다.
2~3천만 골드가 비룡의 시세라고는 하지만, 이 큰 가격을 선뜻 입금할 사람들이 과연 있을지 본인조차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입금 안 하면 이거 진행이 우스워지는데…….’
하지만 그의 걱정이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은, 금방 증명되었다.
띠링-!
-중국 서버 유저 XXXX로부터, ‘30,000,000골드’가 입금되었습니다.
-미국 서버 유저 XXXX로부터, ‘30,000,000골드’가 입금되었습니다.
……후략……
순식간에 십수 명이 넘는 유저들이 라오렌의 계좌에 3천만 골드를 꽂았기 때문이다.
당황한 라오렌은 선착순 다섯 명을 제외한 나머지 유저들의 송금을 반환하고는, 다시 방송을 진행하였다.
“하하, 시작하자마자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여 주시는군요.”
라오렌은 다섯 개의 알들을 쭉 가리켰다.
“이제 이 다섯 개 알들의 주인은 전부 정해졌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라오렌의 이야기는, 시청하던 모든 유저들을 극도로 흥분 상태에 빠뜨렸다.
라오렌이 비룡의 알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하나 공개하였고, 그 정보로 인해 비룡의 알에 대한 가치가 몇 배는 훌쩍 뛰어 버렸으니 말이었다.
“그리고 이 다섯 개의 알들 중에서 비천룡이 태어나는 알도 하나쯤 나와 줬으면 좋겠군요.”
라오렌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시청자들의 눈앞에 공개된 ‘비룡의 알’에 대한 정보.
*용족 ‘비룡’이 잉태되어 있는 알입니다. 낮은 확률로 ‘비천룡’이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공개된 순간, 유캐스트 서버가 터져 나갈 정도로 트래픽이 폭주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