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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776화 (783/1,027)

< 776화 7. 라카토리움 입성 (2) >

* * *

남자의 행색은 무척이나 남루하였다.

까맣게 그을린 금속 투구에, 여기저기 뽀얀 먼지가 내려앉은 갑주.

거기에 구겨지고 찢어져 거의 누더기처럼 보이는 망토까지.

대체 어디서 얼마나 심하게 구르다 온 것인지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쓴 이방인은, 켄토의 호기심을 무척이나 자극하였다.

하여 켄토는, 남자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가 유저일 것이라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아직까지 기계 문명의 대도시 ‘루탄’에 올 수 있는 유저 자체가 무척이나 드물었으며, 올 수 있는 랭커들 또한 ‘마족’ 유저에 한정되어 있으니 말이었다.

투구에 가려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남자는 분명 인간종족이었고, 그렇다면 그가 유저일 리는 없었다.

간혹 고대 문명의 차원계인 ‘마우리아 제국’에서 넘어오는 용병들이 있는데, 켄토는 이 이방인이 그런 종류의 NPC일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고대 문명의 용병이라면 실력은 확실하겠지. 한번 친밀도를 쌓아 봐야겠어.’

남자는 루탄의 입구에서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고 있었고, 그의 앞에 다가간 켄토가 입을 열었다.

“이방인이신 듯한데, 혹시 용병 길드를 찾고 계신가요?”

그리고 켄토와 눈이 마주친 남자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그런 건 아니고, 좀 쉬고 있었는데요?”

“아, 그, 그렇군요.”

“파밍을 너무 많이 했더니, 허리가 빠질 것 같아서 말이지요.”

“파, 파밍요?”

“네. 서쪽에 있는 토울루 오염지대였던가……. 거기서 하루 종일 사냥하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허억……!”

켄토는 파밍이라는 단어를 몰랐다.

게임이라곤 카일란이 처음인 데다, 평범한 유저들과는 어떠한 왕래도 한 일이 없었으니 유저들끼리 사용하는 게임 용어를 전혀 몰랐던 것이다.

하여 켄토가 놀란 이유는 파밍이라는 단어 때문이 아니었다.

다만 그가 당황한 것은, ‘토울루 오염지대에서 하루 종일 사냥을 했다‘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싸우려면 적어도 상급 용병이어야 할 텐데……!’

그제야 켄토는 남자의 행색이 이해되기 시작하였다.

오염된 먼지바람이 부는 토울루에서 하루 종일 사냥을 했다면, 갑주와 망토까지 싹 다 누더기가 된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었다.

켄토는 자신도 모르게, 이방인의 손을 덥썩 잡아 올렸다.

“호, 혹시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제가 의뢰를 좀 해도 되겠습니까?”

“의뢰요?”

“옛! 보상은 넉넉히 해 드리겠습니다. 마침 그 토울루 오염지대에 들어갈 수 있는 용병을 찾고 있었거든요.”

* * *

처음 이안은 균열의 출구를 밟으면서, 눈앞에 펼쳐질 기계 문명의 대도시를 떠올렸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스템 메시지가 다음과 같이 떠올랐었으니 말이다.

-라카토리움의 대도시, ‘루탄’에 입장하였습니다.

하지만 처음 새로운 차원계의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을 때, 이안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나타난 것은 기계 문명이 아닌 황폐한 대지였기 때문이었다.

‘루탄’이라는 명칭을 가진 맵은 사실 대도시 루탄의 권역 안에 있는 모든 맵을 지칭하는 것이었고, 그리하여 이안이 처음 발을 디딘 곳은 도시와 멀찍이 떨어진 황폐한 땅이었던 것이다.

해서 이안은 루탄을 찾을 때까지 제법 고생을 해야만 했다.

황폐한 땅에는 강력한 각종 기계 몬스터들이 서식하고 있었고, 그들과 끊임없이 싸우며 지도를 밝혀야 했으니 말이다.

특히나 가장 힘든 것은, 황폐한 평원 곳곳에 있는 ‘오염된 대지’라는 수식이 붙은 맵이었다.

맵 안에 불어오는 오염된 모래바람은 장비들의 내구도를 빠르게 소모시켰고,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맹독 속성의 지속피해도 계속 입혔으니 평소에 스페어로 가지고 다니던 서브 장비들을 가지고 사냥을 해야만 했다.

메인 장비들이 파괴되면 손실이 너무 크니 말이다.

하지만 며칠간 황야의 곳곳을 들쑤시고 다니는 동안 이안은 몸이 힘든 것과는 별개로 무척이나 흡족하였다.

기계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이 광활한 맵에 사냥 중인 유저는 이안 혼자뿐이었고, 사냥으로 인한 경험치와 드롭 아이템들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짭짤했으니 말이었다.

거기에 일부 필드의 경우에는 최초 발견 버프까지 받았으니, 경험치에서 꿀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흐으, 드롭률이 높진 않지만 설계도도 종종 드롭되고, 이거 아주 꿀 같은 사냥터잖아?’

하여 이안은 대도시 ‘루탄’을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시 탐방은 며칠 뒤로 미루었다.

스페어 장비들의 내구도가 싹 다 날아가서 파괴될 때까지, 사냥만 계속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 무렵.

띠링-!

-경험치가 가득 찼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70레벨(초월)이 되었습니다.

이안은 일차 목표 레벨이었던 70레벨을 생각보다 더 쉽게 달성할 수 있었다.

‘좋아, 최초 발견 버프도 다 끝났고, 이젠 저 도시에 들어가 봐야겠지?’

그리하여 이안은, 라카토리움의 대도시 ‘루탄’에 조심스레 접근해 보았다.

외형만 봐서는 호루스 기지와 같은 전투기지로 보이지 않았지만, 혹시나 전투가 벌어질 수 있으니 최대한 긴장한 채로 말이다.

하여 그렇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중, 이안은 웬 NPC(?)와 마주칠 수 있었다.

마족의 생김새에 기계 공학자 찰리스와 비슷한 복장을 한, 특이한 인물을 만나게 된 것이다.

‘오호, 뭐지? 돌발 퀘스트라도 주려는 건가?’

심지어 그 남자는 이안에게 다가와 먼저 말을 걸었다.

“이방인이신 듯한데…… 혹시 용병 길드를 찾고 계신가요?”

그리고 이안의 예상처럼, 이 특이한 NPC는 그에게 퀘스트를 주었다.

“호, 혹시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제가 의뢰를 좀 해도 되겠습니까?”

“의뢰요?”

“옛! 보상은 넉넉히 해 드리겠습니다. 마침 그 토울루 오염지대에 들어갈 수 있는 용병을 찾고 있었거든요.”

이 특이한 친구가 이야기한 ‘의뢰’라는 것은, 이안이 며칠 동안 탈탈 털어먹었던 ‘토울루 오염지대’의 기계 괴수를 처치해 달라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루칼로스’라는 에픽급 몬스터를 처치하고 사체를 가져다 달라는 의뢰였고, 그것은 이안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루칼로스의 전투력은 초월 80레벨 대의 거신족 장군들과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이안은 이미 여럿 처치해 본 경험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특별한 돌발 퀘스트를, 마다할 이안이 아니었다.

“뭐, 보상만 충분하다면 어렵지 않은 일이죠.”

“오오, 정말입니까?”

이안은 켄토의 행색을 아래위로 슬쩍 훑어보며, 은근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물론입니다. 뭐, 괜찮은 기계 로봇의 설계도라든가…….”

켄토의 외모는 영락없는 기계 공학자였고, 때문에 이안은 그가 찰리스처럼 설계도를 만들거나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짐작하였다.

하여 슬쩍 한번 운을 떼어 본 것이었다.

그런데 켄토의 반응은, 이안이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옷, 기계로봇 설계도라……. 어떤 로봇 설계도가 필요하신 겁니까?”

“……?”

“4티어 이하의 로봇 설계도라면, 대부분 제가 만들어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켄토의 말을 들은 이안은, 두 귀를 의심하였다.

‘4티어 이하의 로봇 설계도를…… 그냥 만들어 준다고?’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켄토의 입장에서 수지타산이 맞지 않을 장사라고 생각한 것이다.

루칼로스가 에픽 몬스터라고는 하지만 녀석의 사체 하나 구해 오는 것이 설계도를 구하는 것보단 훨씬 쉬웠고, 심지어 4티어 이하의 설계도라고 하였다.

2티어나 3티어도 아니고 말이다.

이안은 두근거리는 표정으로 켄토에게 다시 물었다.

4티어의 설계도라면 아무 설계도나 받아도 한참 남는 장사였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궁금한 것이 하나 더 있었으니 말이다.

“혹시…… 생산 로봇 설계도도 가능하십니까?”

혹여나 NPC의 기분이 상하기라도 할까 싶어 조심스럽게 입을 여는 이안.

하지만 이안의 그러한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였다.

켄토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하였으니 말이다.

“물론이죠. 다만 생산 로봇 설계도는 아직 3티어까지밖에 제작이 불가능합니다.”

“……!”

이번에는 이안이, 켄토의 두 손을 덥석 잡았다.

기계 공학자 찰리스를 잡으러 온 마당에 다른 기계 공학자의 퀘스트를 진행하는 것도 뭔가 웃기지만,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지금쯤 아공간에서 쉬고 있을 뿍뿍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생산 로봇 설계도를 추가로 구할 수만 있다면 찰리스를 찾는 것은 조금 미뤄 둘 생각이었다.

‘생산 로봇 숫자가 많을수록 기계 공장의 발전 속도도 빨라지겠지. 이건 무조건 해야 하는 퀘스트야!’

그리고 이 켄토라는 NPC(?)와의 친밀도를 올리는 것이야말로, 기계 문명의 콘텐츠들을 섭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하였다.

“조, 좋습니다. 3티어의 생산 로봇 설계도라면, 어떤 설계도든 상관없습니다.”

“그럼 제 의뢰는……?”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3시간 내로 ‘루칼로스’의 사체를 갖고 오도록 하지요.”

“오옷!”

이안의 시원시원한 대답에, 켄토는 흡족한 표정이 되었다.

그는 만들고 싶은 게 있으면 당장 만들어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급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안의 의욕적인 태도가 무척 마음에 든 것이다.

“루칼로스의 사체를 구하신다면, ‘토라프’로 오십시오.”

“음……. 거긴 어디죠?”

“동남쪽에 있는 루탄의 위성도시입니다. 여기서 크게 멀지 않으니, 어렵지 않게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리하여 켄토와의 딜을 마친 이안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다시 황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이미 오랜 노가다로 인해 피로가 쌓여 있는 상태였지만, 생산 로봇 설계도를 생각하니 없던 힘도 솟아나는 기분이었다.

‘크으. 라카토리움은 시작부터 느낌이 좋은걸?’

하지만 아이언을 타고 토울루 오염지대를 향해 이동하던 이안은, 곧 뭔가 이상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잠깐. 그런데 생각해 보니…….”

분명 특별한 NPC에게 돌발 퀘스트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퀘스트 창이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뭐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퀘스트 창을 열어서 확인해 봤지만 새로 생성된 퀘스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이안은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뭐, 뭐지? 이거 신개념 퀘스트인가?”

하지만 잠시 당황했던 이안은, 다시 아이언의 고삐를 잡아당기며 목적지를 향해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퀘스트 창이 뜨지는 않았지만 느낌상 이건 퀘스트가 분명하였고, 뭔가 아직 경험해 본 적 없는 새로운 종류의 퀘스트 부여 방식이라고 이해해 버린 것이다.

“일단 가 보즈아! 뭐, 루칼로스 사체 구해서 토라프로 가 보면 알게 되겠지.”

그렇게 서로에게 퀘스트를 부여한 켄토와 이안은, 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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