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0화 6. 로터스의 천룡기사단 (3) >
* * *
지금 이안과 로터스의 용기사단이 진행 중인, ‘기계괴수 파라켄 처치’ 퀘스트.
산전수전 다 겪은 로터스의 랭커들이 불안에 떨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겠지만, 해당 퀘스트의 난이도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 퀘스트는 스토리 진행도 측면에서 봤을 때, ‘비터 스텔라’ 지역의 베이직 퀘스트 중 하나였다.
비터 스텔라에 숨겨져 있는 고대의 유적들.
그 유적들에 닿기 위한 단서를 제공하는, 베이스 퀘스트 중 하나였던 것이다.
퀘스트 정보 창에서 플레이어로 하여금 오염된 기계괴수가 갑자기 출몰하기 시작한 이유를 알아내라 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던 것.
하지만 이미 유적과 관련된 다른 퀘스트들을 상당 부분 진행한 이안은 퀘스트를 진행하기도 전에 이미 그 이유를 추론할 수 있었다.
‘내가 용암지대를 클리어하면서 샤이야 봉우리가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고, 그것을 시작으로 비터 스텔라 전역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어.’
기계문명과 오염된 괴수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정령계를 침범하고 오염시키는 것이 아니다.
정령계의 지역들이 가지고 있는 자연의 힘을 약탈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으니 말이다.
때문에 모든 자연의 힘이 꽁꽁 얼어 있던 비터 스텔라는, 지금껏 그들의 먹잇감이 될 수 없었다.
쉽게 말해 약탈할 거리가 없는 황무지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고대의 성역이라 불릴 정도로 엄청난 에너지를 갖고 있던 이 지역에 서서히 생기가 돌기 시작했으니, 기계 문명으로서는 이보다 먹음직스런 먹잇감도 없을 테니까.
‘아마 자생하는 정령들을 처치하고 영역을 확장해서, 광산 같은 것을 만들려고 하겠지.’
하여 이안은 나름대로의 추론과 가지고 있는 정보들을 동원하여 ‘호른’ 봉우리를 수색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추측이 맞다면 ‘파라켄’을 위시한 기계문명의 군대들은, 분명 채굴할 자원이 많은 정령석 광맥 인근에 주둔할 터.
이안은 자연의 기운이 밀집한 지역 위주로 수색한다면, 분명 기계군단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였다.
“마그번, 자연의 힘이 응집된 곳으로 데려다 줘.”
-자연의 힘도 종류가 많다, 주인.
“속성을 말하는 거야?”
-그렇다.
“속성은 상관없어. 어떤 힘이든 자연의 힘이 묻혀 있는 곳이면 돼.”
-알겠다, 주인. 찾아보도록 하지.
마그번과 블래스터는 빠르게 움직여 호른 봉우리의 초입부터 수색하시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20여 분 정도가 지났을까?
-찾았다, 주인.
“오호, 그래?”
-그런데 기분 나쁜 녀석들이 우리보다 먼저 와 있군.
“기분 나쁜 녀석들이라…….”
이안과 용기사단은, 기계문명의 군단과 어렵지 않게 마주할 수 있었다.
* * *
띠링-!
-‘파라켄의 군단’과 조우하였습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기계군단 섬멸(귀속)(돌발)’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후략……
긴장한 표정의 천룡기사단원들의 눈앞에 동시에 퀘스트 메시지가 생성된다.
그리고 단장인 이안은, 가장 먼저 그것을 빠르게 확인하고 판단하였다.
‘일단 시작은, 일반적인 범주의 전투 퀘스트라고 봐도 되겠군.’
퀘스트의 내용은 간단하였다.
눈앞에 맞닥뜨린 기계괴수들을 한 마리도 남김없이 섬멸하라는 것.
하지만 아무런 조건이나 특징 없는 단순 섬멸 퀘스트는 아니었다.
대략 초월 70~80레벨 정도인 눈앞의 기계괴수들은, 강력한 버프 효과를 받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안은 기계군단의 진영 안쪽에 보이는, 마치 ‘송전탑’처럼 생긴 구조물의 정보를 빠르게 확인해 보았다.
-전투 동력 증폭 장치
분류 : 구조물
등급 : 영웅 (초월)
티어 : 2티어
내구력 : 1,200,000/1,200,000
범위 내의 모든 ‘기계’ 속성의 아군들에게 강력한 에너지를 공급합니다.
반경 45m 이내의 모든 기계들의 ‘레벨’이 30퍼센트만큼 강화됩니다.
*60초에 1회 ‘기계’ 속성의 아군을 수리합니다.
수리된 기계는, 10초에 걸쳐 최대 내구도의 90퍼센트까지 회복됩니다.
*해당 동력장치의 범위 내에 있는 동안 모든 기계들의 티어가 일시적으로 상승합니다.
‘저걸 먼저 부수라는 말이지.’
험준한 협곡 안쪽에 펼쳐져 있는 아담한 크기의 공터.
그리고 그 안에 나름대로 진지를 구축하고 있는 기계 괴수들.
그들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전투 동력 증폭 장치’ 주변에는 짙푸른 빛깔의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었고, 그 영향력 안에 들어와 있는 기계군단들의 머리 위에는 특이한 표식이 생성되어 있었다.
푸른 빛깔의 번개 모양의 반투명한 표식.
그리고 그 옆의 메시지 박스에는 다음과 같은 형식으로 대상의 정보가 노출되어 있었다.
-파머스(파라켄의 기계군단)(희귀) Lv. 92(71+21)
‘레벨 버프라니. 이건 좀 특이한 방식인걸?’
대략적인 전장의 상황을 빠르게 파악한 이안은, 흥미로운 표정이 되었다.
분명히 레벨에 따라 전투능력이 함께 버프될 것이고, 덕분에 90레벨대가 되어 버린 녀석들은 상당히 위협적으로 보였지만, 저런 희귀 등급의 잡졸(?)들이야 71레벨이건 92레벨이건 쓸어 버릴 자신이 있었으니 말이었다.
워밍업 수준의 첫 번째 전투라 그런지 흔한 에픽 몬스터 하나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안은 망설임 없이 검을 치켜들었다.
“자, 싹 다 쓸어버리자고!”
이안의 전략은 간단하였다.
기사단원들이 전면 대치하는 동안, 전장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전투 동력 증폭 장치’를 파괴하는 것.
유지력을 어마어마하게 강화시켜 주는 ‘성령의 유물’들과 함께라면, 충분히 가능한 전략이라 할 수 있었다.
“차핫!”
쐐애액-!
이안의 오더에 따라 기사단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발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기계 괴수들은 진영 안쪽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아마도 동력장치의 버프 안에서만 싸우도록, ai가 설정되어있는 모양이었다.
‘일단 한 놈……!’
기계군단의 진영 바로 앞까지 다가선 이안이, 성령의 심판검을 크게 치켜 올렸다.
전사클래스들이 사용하는 어지간한 대검보다도 거대한 심판검이었지만, 이안은 마치 나뭇가지 다루듯 가볍게 휘두르며 움직였다.
그것은 아이언의 패시브로 인해 증폭된 강력한 ‘힘’ 능력치 덕분이기도 하였으나, 더 큰 이유는 성령의 검과 망토에 붙어있는 옵션 때문이었다.
-착용한 모든 장비의 무게 감소 25퍼센트
두 부위에 붙어있는 이 특별한 옵션 덕에 장비의 무게는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그것이 곧 공격 속도와 민첩성의 향상으로 이어진 것.
콰아앙-!
이어서 첫 번째 기계괴수의 약점을 정확히 가격한 심판검이,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녀석의 흉부를 파괴하였다.
녀석이 휘두른 무식한 기계망치를 회피한 뒤 이어서 들어간 약점 공격이었기에, 성령의 검의 패시브 효과인 ‘성혼의 낙인’까지 깔끔하게 각인되었다.
-파라켄의 기계군단, ‘파머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파머스’의 내구도가 39,802만큼 감소합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파머스’에게 ‘성혼의 낙인’이 각인되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메시지를 확인한 이안의 입꼬리가 히죽 말려 올라갔다.
‘논none 스텍으로 4만 대미지 정도 들어갔으니, 풀 콤보 들어가면 그대로 다운되겠군.’
첫 타에 들어간 피해량을 확인한 것만으로 대략적인 킬 각이 머릿속에 그려진 것이다.
‘생각보다 방어력이 단단하긴 하지만…….’
그어어어-!
이안의 강력한 공격력에 당황한 ‘파머스’는 더욱 빠른 속도로 미친 듯이 망치를 휘둘렀지만, 그런 마구잡이식 공격에 맞아 줄 이안이 아니었다.
쿵- 쿵-!
다만 그 어설픈 공격들은, 이안에게 ‘성혼의 낙인’을 쌓기 좋은 환경만을 만들어 주었을 뿐이었다.
스륵.
또다시 녀석의 공격과 공격 사이로 깔끔하게 회피와 카운터의 연계를 성공시킨 이안의 검이 하얗게 빛나기 시작한다.
우우웅-!
-파라켄의 기계군단, ‘파머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성혼의 낙인으로 인해, 위력이 증폭됩니다.
-‘파머스’의 내구도가 119,584만큼 감소합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성혼의 낙인’이 각인되었습니다. (2Stack)
-‘파머스’의 내구도가 113,452만큼 감소합니다!
-‘성혼의 낙인’이 각인되었습니다. (3Stack)
콰콰쾅-!
성혼의 낙인 3스텍을 확인한 순간, 이안의 눈빛이 더욱 예리해졌다.
레벨 버프로 펌핑된 90레벨대답게, 강력한 맷집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었지만, 머리 위에 성혼의 낙인이 빛나고 있는 지금은 순식간에 녹여 버릴 수 있었으니 말이다.
타탓-!
아이언의 등 위로 도약한 이안이 거대한 심판검을 역수로 거머쥔 채 녀석의 머리 위로 뛰어올랐다.
아이언에게서 떨어진 시점으로부터 10초 이상이 지나면 탑승 버프가 사라지지만, 그쯤은 이미 머릿속에 계산해 둔 이안이었다.
‘10초면 충분하지.’
이안은 정확히 3타 안쪽으로, 녀석을 고철덩어리로 만들어버릴 자신이 있었으니 말이다.
쏴아아-!
심판검의 검신에 휘감긴 강력한 시온속성의 기파로 인해, 이안의 주변으로 백색의 파동이 휘몰아친다.
이대로 심판검의 검극이 떨어져 내린다면, ‘파머스’의 정수리는 그대로 분쇄되어 버릴 터.
허공에 도약한 순간 수많은 투사체들이 이안을 향해 쏟아져 날아왔지만, 그 또한 생각지 못한 부분이 아니었다.
-파라켄의 기계군단 ‘카럭스’로부터 피해를 입었습니다!
-생명력이 9,812만큼 감소합니다.
-파라켄의 기계군단, ‘방어포탑’으로부터 확산 피해를 입었습니다!
-생명력이 10,992만큼 감소합니다.
-생명력이 5,795만큼 감소합니다.
-생명력이 8,879만큼 감소합니다.
……후략……
성령의 유물들을 얻은 뒤 이안의 세팅은 이제까지와 완전히 다른 콘셉트였으니 말이다.
‘으흐흐, 간지럽다, 이놈들아!’
순식간에 수만이 깎여 내려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10퍼센트도 채 닳지 않은 이안의 생명력 게이지.
항상 민첩성과 공격력에 모든 옵션을 몰빵했던 이안이, 이번에는 ‘딜탱’ 콘셉트로 세팅을 바꿨던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석적인 탱커들처럼 방어력까지 챙긴 것은 아니었고, 오로지 생명력 옵션만 극한으로 끌어온 것.
그리고 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콰아앙-!
-파라켄의 기계군단, ‘파머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성혼의 낙인으로 인해, 위력이 증폭됩니다.
-‘파머스’의 내구도가 119,584만큼 감소합니다!
-‘성혼의 낙인’이 각인되었습니다. (4Stack)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성령의 힘이 폭발합니다.
-‘파머스’에게 ‘시온’ 속성의 추가 피해를 195,122만큼 입혔습니다.
-‘파머스’에게 ‘시온’ 속성의 추가 피해를 195,122만큼 입혔습니다. -‘파머스’에게 ‘시온’ 속성의 추가 피해를 195,122만큼 입혔습니다.
성혼의 낙인이 3스텍 이상 쌓였을 때만 발동하는, 시온 속성의 고정 추가 대미지.
시전자의 생명력에 비례하는 이 공격의 위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이안이 민첩성과 공격력을 어느 정도 포기하면서 생명력을 극대화시켰던 것이다.
게다가 심판검의 다른 고유 능력이 ‘성령 흡수’와 망토의 고유 능력인 ‘성령의 보호’까지 발동되자 이안의 세팅은 극한의 효율을 만들어 내기 시작하였다.
-‘성령의 심판검’의 고유 능력, ‘성령 흡수’를 발동하였습니다.
-생명력이 5퍼센트(48,780)만큼 회복됩니다.
-생명력이 5퍼센트(48,780)만큼 회복됩니다.
……중략……
-‘성령의 망토’의 고유능력, ‘성령의 보호’가 발동합니다.
-‘성령의 보호막’이 97,090만큼 충전됩니다.
-‘성령의 보호막’이 79,423만큼 충전됩니다.
……중략……
-‘성령의 보호막’이 최대치(341,460)(35퍼센트)까지 충전되었습니다!
-더 이상 보호막을 충전할 수 없습니다.
투사체로 인해 입은 피해량을 전부 회복한 것은 물론, 어느새 최대 생명력의 35퍼센트에 달하는 추가 실드까지 만들어 내었으니 말이었다.
실드까지 합한다면, 현재 이안의 맷집은 무려 130만에 육박할 정도.
물론 톱클래스 사제인 레비아의 생명력 버프가 포함된 수치였지만, 그것을 감안하도 어마어마한 양의 탱킹 능력이라 할 수 있었다.
생명력만 따져 보자면, 초월 68레벨의 기사인 쥬르칸보다도 더 높은 수치였으니 말이다.
쿠우웅-!
-파라켄의 기계군단, ‘파머스’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였습니다!
그리고 한발 뒤에서 이안의 활약을 본 다른 기사단원들은, 역시나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떻게 저게 가능한 거지?”
“이안 형 피통 왜 저래?”
“딜은 또 무슨 딜이야?”
어느 정도 예상은 하였지만, 시작부터 말도 안 되는 장면을 이안이 만들어 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모두가 이안의 전투력에 놀라던 그 순간.
이안은 뭔가 다른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는지, 두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오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