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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834화 (839/1,027)

< 834화 4. 고대 유적의 가디언들 (3) >

* * *

또각- 또각- 드르륵-!

릴슨의 연장(?)이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분주한 소리를 만들어 낸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세심하고 정교하기 그지없는 릴슨의 손놀림!

유적의 입구를 가리고 있는 결계는 현존 최상위 콘텐츠의 결계답게 복잡하였고 아마도 이 정도 수준의 결계를 해체해 낼 수 있는 탐험가는 글로벌 서버 기준으로도 열 손가락에 꼽을 것이었다.

하지만 릴슨은 한 번의 막힘도 없이 빠르게 결계를 풀어내었다.

물론 구경꾼의 잔소리가 없었더라면, 조금 더 빨랐을지도 모르지만 말이었다.

“형, 그 부분 좀 잘못한 것 같은데?”

빠직-!

“아, 이쪽부터 부쉈어야 조금 더 빨랐을 것 같은데.”

“시끄러!”

그 잔소리들 중 제법 맞는 말이 많다는 것이 더 기분 나빴지만, 어쨌든 릴슨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훌륭히 결계를 해체해 내었다.

이안의 잔소리들과 별개로, 그는 베테랑 탐험가였으니 말이다.

띠링-!

-마지막 기관을 파괴하였습니다!

-모든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결계가 해제됩니다.

구궁- 고오오오-!

결계 안쪽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공명음을 시작으로, 커다란 굉음이 사방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모든 결계를 해제하고 일어선 릴슨과 이안의 눈앞에 웅장한 유적의 입구가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쿵- 쿠쿠쿵-!

자연스럽게 암벽을 이루고 있던 바위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그 안에서 윤기가 번들거릴 정도로 시커먼 구조물이 나타난 것이다.

이안과 릴슨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고, 이안의 옆에 있던 미루가 감탄사를 터뜨리며 입을 열었다.

-와우, 악령의 유적이잖아?

고대의 요정이자 유적의 힘을 가진 정령답게, 대번에 악령의 유적을 알아보는 미루.

그런 그녀를 슬쩍 본 릴슨이, 궁금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이안에게 물었다.

“이안, 저 정령도 네가 소환한 정령이야?”

“아니. NPC에 가까운 녀석이야.”

“……?”

“그냥 유적에 대한 지식이 많은 고대의 NPC라고 생각해.”

“그, 그래.”

미루에 대해 설명하려면 성령의 유적부터 차근차근 이야기해야 했고, 이안에게 그것은 너무도 귀찮은 일이었다.

때문에 그녀에 대한 설명을 대충 얼버무린 이안은 성큼 성큼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성령의 유적과 마찬가지로 고대의 유적이니, 안으로 들어가려면 계속해서 결계를 뚫어야겠지.’

이안은 성령의 유적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곳 악령의 유적의 관문들을 예측해 보았다.

두 유적의 다른 점이라면, 컨트롤로 뚫어야 했던 성령의 유적과 달리 이곳의 결계는 기술(?)로 해체해야 했다는 점.

물론 앞으로 등장할 결계들까지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었지만 말이다.

‘성령의 유적에선 입구 결계 난이도가 헬이었고 안쪽이 쉬웠는데……. 여긴 입구를 쉽게 들어왔으니 내부 결계들이 어려우려나?’

약간의 오해(?)로 인해 이안의 추론은 산으로 가기 시작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의 걸음에는 거침이 없었다.

저벅- 저벅-

성큼성큼 옮겨 간 이안의 걸음이, 곧 어두운 유적의 입구 안쪽으로 들어섰다.

이어서 앞장선 이안을 따라 릴슨을 비롯한 이안의 일행이 지체 없이 유적 안쪽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모든 일행이 들어오자 열려 있던 던전의 입구는 다시 굉음을 내며 닫혀 버렸다.

그그긍- 쾅-!

그와 동시에 이안과 릴슨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악령의 유적에 최초로 입장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첫 번째 악령의 시험이 시작됩니다.

* * *

성령의 유적에서 이안은, 결계 페이즈를 너무도 쉽게 뚫었다.

기획자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퀘스트 진행으로 인해, 차르타의 컨트롤 숙련도가 달인의 경지에 다다른 상태로 페이즈들을 진행했으니 말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악령의 유적에선 차르타 라이딩 실력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계의 구성과 방식이, 성령의 유적과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으음…….”

‘악령의 시험’이라는 이름의 돌발 퀘스트의 등장과 그 안에 담겨 있는 신선한 내용의 시험.

이안과 릴슨은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박스를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악령의 유적, 첫 번째 시험 (히든)(돌발)

악령의 힘을 다룰 자격이 있는 자를 가려 내기 위한 첫 번째 시험이 시작되었다.

사방에서 몰려들 환영으로 만들어진 정령들을 물리치고, 정령들이 가진 유적의 파편을 모아 악신의 흉상을 완성하자.

흉상이 정상적으로 완성된다면 시험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퀘스트 난이도 : A+

퀘스트 조건 : 악령의 유적 입장

*흉상의 조각을 잘못 맞춘다면 조립한(획득한) 모든 파편이 소멸됩니다.

*‘정화의 목걸이’ 아이템 보유 시 퀘스트를 클리어하지 않아도 결계를 해체할 수 있습니다.

-보상 : 결계 해체

‘흉상을 맞추라고? 대체 이게 뭔 퀘스트지?’

퀘스트에 도가 텄음에도 불구하고, 이안의 머릿속에 쉽사리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다른 부분이야 그렇다 쳐도, 유적의 파편들을 모아 악신의 흉상을 완성하라는 말이 애매했던 것이다.

뭔가 조각을 맞추려면 틀 같은 게 있어야 하는데, 지금 이안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어둠밖에 보이지 않는 공터뿐.

‘역시 해 봐야 알려나?’

그리고 고민하는 이안을 향해 릴슨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할래? 그냥 바로 정화의 목걸이 켜서 결계 해체 해 버릴까?”

릴슨의 물음에, 이안이 곧바로 되물었다.

“그 정화의 목걸이라는 거,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는 거야?”

“뭐, 소모성 아이템은 아닌데, 재사용 대기 시간이 좀 있어.”

“그래?”

“세 번 사용하고 나면 30분 동안 충전한 뒤에 다시 사용가능해.”

릴슨의 설명을 들은 이안은 잠시 고민하였다.

결계 해제 외에 딱히 보상이 있는 퀘스트는 아니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낮은 난이도의 퀘스트까지 굳이 피할 필요가 있나 싶었으니 말이다.

“음, 이번에는 목걸이 한 타임 아껴 보자.”

“굳이……?”

“난이도 A+밖에 안 되는 거, 그냥 깨 버리면 되니까.”

“…….”

이안의 말에, 또 다시 할 말을 잃은 릴슨.

‘아니, 초월 난이도 A+가 ‘밖에’라고?’

그리고 두 사람의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질 수 없었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퀘스트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띠링-!

-대기 시간이 전부 지났습니다.

-시험이 시작됩니다.

-악령의 힘을 가진 고대의 정령들이,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합니다.

우웅- 우우웅-!

간결한 시스템 메시지와 동시에, 사방에서 등장하기 시작하는 시커먼 정령들.

-키에엑-!

-캬아아오오!

그리고 녀석들을 발견한 이안과 릴슨의 반응은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었다.

“흐흐.”

“커헉!”

등장한 정령들의 초월 레벨은 60~70 사이였고, 그것은 누군가에겐 엄청나게 강력해 보이는 레벨이었지만, 누군가에겐 너무도 허접해 보이는 레벨이었으니 말이다.

“싹 다 쓸어 주갔어!”

신이 난 이안은, 등에 메고 있던 심판 검을 거칠게 뽑아 들었다.

스르릉- 철컥-!

성령의 유적들로 중무장한 지금의 이안에게 60레벨대밖에 되지 않는 데다 데몬 속성을 가진 눈앞의 정령들은, 귀여워 보일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스스스스-!

-기분 나쁜 힘을 가진 인간이다.

-저 인간부터 죽여라!

그리고 겁에 질린 릴슨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

타탓-!

심판검을 전면으로 치켜 든 이안은, 무더기로 생겨난 악령들을 향해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위, 위험해!”

현재 이안의 레벨이 몇인지 잠시 망각한 탓에 반사적으로 비명을 터뜨리는 릴슨.

하지만 그의 입에서 비명 대신 헛바람이 새어 나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쿵-

전장에 뛰어내린 이안이 그대로 검을 휘돌리며 몸을 회전시켰고…….

쐐애애액-!

그 순간 릴슨의 눈앞에 믿을 수 없는 시스템 메시지가 무더기로 떠올랐으니 말이다.

띠링-!

-파티원 ‘이안’이, 악마의 정령 ‘카르손’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카르손’의 생명력이 169,912만큼 감소합니다.

-‘카르손’의 생명력이 170,980만큼 감소합니다.

-‘카르손’의 생명력이 168,192만큼 감소합니다.

-‘카르손’이 소멸되었습니다.

-파티원 ‘이안’이, 악마의 정령 ‘카르손’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중략……

-‘카르손’이 소멸되었습니다.

-‘카르손’이 소멸되었습니다.

……후략……

순간적으로 휘돌린 검격 한 방에, 그대로 허공으로 증발하는 여섯 마리의 악마의 정령들.

“뭐……?”

릴슨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육성이 튀어나왔고,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카르손’이 소멸되었습니다.

-‘카르손’이 소멸되었습니다.

-‘흉상의 조각 C-3’을 획득하였습니다!

-‘흉상의 조각 B-16’을 획득하였습니다!

……후략……

이안이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처럼, 미친 듯이 정령들을 도륙해 대었으니 말이다.

결코 젠 속도가 느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씨가 말라 버린 악마의 정령들.

신이 난 이안은, 더욱 흥에 겨운 표정이 되어 입을 열었다.

“흉상의 조각인지 뭔지, 일단 열 개 이상 모아 보자고.”

“그, 그래.”

“역시 난이도가 낮아서 그런가, 너무 쉬운걸.”

“…….”

한편 미친 듯이 날뛰는 이안과 달리 릴슨은 거의 석상처럼 굳어 있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이안의 비정상적인 전투력에 당황한 것도 이유였지만, 그것과 별개로 정말 할 일 자체가 없었으니 말이다.

비전투 클래스 유저 치고는 전투력도 나쁘지 않은 릴슨이었으나, 정령 그림자조차 건드려 보기 힘들다는 것이 문제였던 것.

‘차라리 서포팅 스킬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전투클래스는 괜히 전사 클래스로 키워 놔서…….’

때문에 나름 근접 딜러였던 릴슨의 역할은 드롭된 조각들을 한자리에 모아 두는 것 정도로 전락하고 말았다.

“조각 드롭률이 그리 높진 않은 것 같은데……. 그래도 거의 스무 개 정도 모은 것 같아.”

“좋아. 이번에 나오는 놈들까지만 잡고, 이제 흉상인지 뭔지 만들어 보자고.”

“오케이!”

릴슨의 실직(?)과는 별개로, 차근차근 진행되는 듯 보이는 두 사람의 첫 번째 퀘스트.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알 수 없었다.

너무도 쉽게 클리어하고 넘어가 버릴 줄만 알았던 이 첫 번째 시험이, 그들에게 예상치 못했던 커다란 고통(?)을 주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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