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859화 (864/1,027)

< 859화 5. 개막전 (1) >

“후욱, 벌써 두 바퀴 다 돌아 가는데, 트로웰의 흔적인지 뭔지 아직 하나도 못 찾은 거 실화임?”

“그……러게요. 처음부터 퀘스트가 어려워 보이긴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으, 적어도 오늘 한 개 정돈 찾아야 이삼일 내로 끝날 거 아냐.”

“노엘아, 소환수 굴려서 빠르게 수색에도 좀 투자해 봐. 이안 형은 아무래도 수색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이안과 함께 ‘대지의 요람’ 맵 전역을 돌고 있는, 피올란과 쥬르칸, 그리고 카노엘.

새벽부터 시작된 그들의 사냥은, 이미 늦은 오후를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리어해야 하는 퀘스트의 진척도는 완벽한 제로.

뭔가 기획자의 농간이 느껴지는 현재의 상황에, 세 사람의 불안감은 극도로 고조되고 있었다.

이러다가 정말 이안의 말대로 열댓 바퀴를 돌 때까지도 여기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 도래할 것 같았으니 말이다.

“당연히 나도 열심히 수색 중이지.”

“그, 그래?”

“지금 소환수 절반은 이안 형 몰래 수색 보내 놨어.”

“…….”

“근데 진짜 뭐 쥐 털 만한 단서도 찾을 수가 없는 걸 어떡해?”

“크윽…….”

카노엘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한숨에, 쥬르칸은 절망적인 표정이 되었다.

또, 쥬르칸보다는 티를 덜 내고 있었지만, 피올란의 표정도 어둡기는 마찬가지였다.

‘오늘 밤 잠들기는 그른 것 같은데…….’

이미 시간은 늦었고, 기사대전의 개막전은 시작되었겠지만, 여기 있는 네 사람 만큼은 그 빅 이벤트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개막전에 본인들의 길드가 참전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만 세 사람의 관심사는 오로지 퀘스트 클리어였으며, 이안의 관심사는 오로지 사냥일 뿐이었다.

“다들 그쪽에서 뭐 하는 거야? 빨리 다음 캠프로 넘어가야지.”

“형, 근데 퀘스트는 안 깰 거야?”

“지금 깨는 중이잖아.”

“…….”

멀찍이서 들려오는 이안의 목소리.

이어지는 카노엘과 이안의 대화.

할 말을 잃어버린 세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차라리 뭔가 해보려는 의지를 버리고 그냥 이안이 시키는 대로 로봇처럼 움직이는 것이, 오히려 마음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그들이었다.

‘후우, 설마 사냥하다 쓰러지기라도 하겠어?’

‘저 형이 무식해 보여도, 진짜 한계치에 다다르면 귀신같이 사냥을 중단하는 사람이니까…….’

‘으, 난 모르겠다!’

하지만 이 절망적인 상황의 진실(?)을 만약 세 사람이 알았더라면, 이렇게 순종적일 수는 없을 것이었다.

사실 이안은 이미 첫 바퀴에서 트로웰의 세 가지 흔적을 모두 찾은 상태였고, 다만 그들을 더욱 하드하게 굴리기 위해서 그 사실을 은폐하는 중이었으니 말이었다.

‘흠, 아직 다들 쌩쌩하군. 첫 번째 흔적은 내일 오전쯤에 오픈하면 괜찮겠어.’

언제나 그랬지만 이안의 치밀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

그렇다면 이렇게 완벽한 은폐가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그 비밀은 바로, 퀘스트의 조건에 있었다.

퀘스트 조건 :

[A – 파티에 80레벨(초월)이상의, 정령술을 배운 ‘소환술사’클래스 유저가 포함되어 있어야 합니다.]

[B – 파티에 ‘용암’, ‘삭풍’, ‘빙혼’ 중 하나의 인정을 받은 유저가 포함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조건 중 두 번째 조건이 바로 트로웰의 흔적을 발견하기 위한 조건이었고, 파티원 넷 중에 조건 B를 충족하는 인물은 이안밖에 없었던 것.

그러니 이안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퀘스트 조건을 충족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특수한 상황을 바로 캐치하여 노가다에 써먹은 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일 터.

어찌되었든 그러한 고로, 이안 파티의 사냥은 그의 설계대로 잘 굴러가고 있었다.

* * *

“와아아아-!”

“대박이다!”

“역시 로터스야!”

“와 씨, 저 기사 대체 누구일까?”

“선두로 나와서, 벌써 세 명째 터뜨리고 있네.”

“크으, 이러니까 이안까지도 필요 없다는 건가!”

소르피스 내성 광장의 동쪽 콜로세움.

콜로세움의 내부는 이미 뜨거운 열기로 인해 터져 나갈 지경이었다.

지금 이곳에서는 로터스와 플로아스의 개막전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고, 경기는 관중들의 기대 이상으로 흥미진진하게 흘러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개막전이 시작된 지 30여 분 정도가 지난 지금.

로터스 대 플로아스의 스코어는 정확히 3대 0이었다.

-로터스 기사 유저의 방패막기 스킬 좀 보세요. 통상 전사 클래스 상성이 기사에 조금 떨어진다고는 하지만, 이정도로 공격을 모조리 막아 내는 건 사실 기량 차이라고 봐야죠!

-그렇습니다. 로터스, 기사대전 첫날 개막전부터 확실히 클래스를 입증하는군요!

콜로세움 내부에서 흥분해 있는 것은 비단 관중뿐만이 아니었다.

누구보다도 격양된 목소리로 콜로세움 전체에 목소리를 퍼뜨리는 이들은 관중들이 아닌 해설진이었으니 말이다.

개막전을 중개하는 해설진은 총 네 명이었고 각각 다른 국적의 해설자와 캐스터들이었지만, 카일란의 동시통역시스템으로 인해 어떤 국적을 가진 유저라도 전혀 무리 없이 해설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네 번째 일기토가 진행되기 전.

흥분을 가라앉힌 해설진들의, 침착한 해설이 다시 이어졌다.

-로터스가 대단하긴 하지만, 아직 승부가 결정됐다고 보기는 이릅니다.

-오호.

-이미 3대 0의 스코어에, 아직 선두로 나선 기사 유저의 생명력도 절반이나 남아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플로아스의 역전이 가능하다고 보시는 건가요?

유럽 서버 출신 캐스터의 이야기에, 나머지 세 캐스터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그의 이야기가 다시 이어졌다.

-사실 기사대전에 출전하는 최상위 티어의 길드들이라 하더라도, 길드원들 사이의 전투력은 천차만별입니다.

-그렇겠지요.

-때문에 각 길드에서는, 무척이나 고심해서 전략을 짤 수밖에 없습니다. 팀의 에이스를 선두에 내어 초장부터 박살을 낼지, 아니면 후위에 배치하여 승리에 대한 안정성을 높일지.

-아하, 일리 있는 이야기시네요.

-이미 보셔서 알고 계시겠지만, 저 로터스의 기사 유저가 착용한 장비들은 거의 전설 등급의 초월 장비들입니다.

-그렇습니다.

-반면에 플로아스 길드에서 선두에 낸 세 유저들의 장비들은, 거의 영웅 등급의 초월 장비들이었지요.

-듣고 보니 그렇군요.

다른 캐스터들의 동의에 더욱 힘을 얻은 그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마 플로아스 길드에서는, 에이스들을 후발 주자로 심어뒀을 확률이 높다고 봅니다. 반면에 로터스는, 기선 제압을 위해 에이스 하나를 선두로 내 놓은 듯 보이고요.

남자의 마무리에, 다른 해설진은 물론 관중도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하였다.

기사대전의 룰 상 참전 유저의 정보는 알 수 없었지만, 가면 외에 드러난 외형을 통해 대략 어떤 등급의 장비들을 착용한지는 알아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으음, 이거 더 재밌게 흘러가는데?”

“정말 저 해설자의 말대로라면, 7경기, 8경기부터가 꿀잼이겠어.”

그리고 정말 해당 캐스터의 이야기가 맞아 떨어진 것인지, 로터스의 기사 유저는 제4경기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앗, 정말 아슬아슬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환영술에 속아 움찔한 것이, 결정적인 패인이었어요!

-크! 이 마지막 공격만 피했더라면 로터스에서 4승을 가져갈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게 되어버렸어요.

덕분에 플로아스 길드의 반격을 예상했던 해설자의 목소리에는 힘이 잔뜩 들어갔다.

이제 로터스의 에이스 하나가 다운되었으니, 플로아스의 연승이 시작될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아마도 로터스의 남은 에이스들은, 이제 후위에 몰려있을 겁니다.

-왜 그렇죠?

-첫 번째 에이스가 기선을 제압해 주면, 나머지 에이스들은 승리를 굳혀 주는 역할을 해야 할 테니까요.

-아하, 그럼 이제 몇 경기 정도는, 플로아스의 우세를 점치시는 건가요?

-글쎄요. 우세까지는 아니더라도, 방금처럼 일방적으로 밀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번에도 남자의 말에, 다른 해설자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충분히 일리 있는 추측이었고, 그들 또한 공감이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음 경기가 시작되었을 때.

-……!

해설진들은 전부 말을 잃고 말았다.

-이, 이런……!

-이럴 수가!

경기의 방향이, 그들이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한 것이다.

* * *

로터스 기사단의 첫 번째 출전자 말콤프.

전투가 끝나고 로터스 진영으로 들어오는 그를 향해, 길드원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이야, 말콤프 형, 수고하셨어요!”

“크, 삼연승이라니! 시작부터 좋네요.”

“하하, 운이 좋았어. 플로아스에서 쭉정이들만 처음에 깔아놓은 것 같아.”

“에이, 그래도 회복 금지 대전에서 세 명 잡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형.”

“아니야. 장비발도 내가 훨씬 더 좋았고…….”

“아무튼 콤프 형 겸손은…….”

로터스 길드의 진영은 시작부터 축제 분위기였다.

시작부터 3연승을 한 데다, 네 번째 유저마저 빈사 상태로 만들어 버렸으니 이미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해설진들의 예상과 달리 첫 번째 출전자인 말콤프는 10인 중 약체인 편이었고, 때문에 길드원들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었던 것.

게다가 두 번째 출전자는 열 명의 출전자 중에서도 확실한 에이스였으니…….

“크, 이안 님 없어서 조금은 걱정했는데,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잖아?”

“저희 두 번째 출전자가 누구였죠?”

“출전 목록에 두 번째 출전이 마법사…….”

“앗, 레미르 님 차례네요?”

“뭐? 레미르 님이 벌써 나오신다고?”

로터스 길드원들의 기대감은 벌써부터 폭발하기 시작하였다.

“다들 길드 채팅으로 레미르 님 응원이라도 해 드리죠.”

“그래요, 대기실에서 긴장하고 계실 텐데.”

길드원들의 이야기에, 말콤프가 피식 웃으며 대꾸하였다.

“긴장은 무슨, 레미르 지금 빨리 나가고 싶어서 아주 안달이 났던데?”

“하하, 그런가요?”

“원래 레미르 걔, 출전 순서 일곱 번짼가 그랬어. 자기 차례까지 안 올 것 같다고 우겨서 앞으로 나간 거야.”

“…….”

“만약 남은 플로아스 길드원들 수준이 앞에 네놈이랑 비슷하다면, 레미르 선에서 게임 끝날지도 모르겠는데?”

말콤프는 로터스 기사단원들 중 최고 연장자였다.

또, 레미르와 제법 친분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와는 예전에 말을 놓은 상태였다.

“와씨, 이거 기대되는데? 어떻게 전개될지 아주 흥미진진해.”

“흐흐, 레미르 누나 엊그제 새로운 9클래스 화염 마법도 배웠다던데, 어떤 마법일지 궁금한걸?”

그리고 그렇게 5분 정도가 지났을까.

“오, 시작이다!”

길드원들을 비롯한 모든 관중의 기대 속에, 로터스 대기실의 철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긍- 그그긍-!

그리고 어두운 대기실 안에서 시뻘건 불길을 뿜어내며 천천히 걸어 나오는 한 여인.

“레미르, 레미르 누나다!”

그녀의 등장에, 콜로세움 전체가 술렁이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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