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5화 3. 대지의 힘을 찾아서 (1) >
띠링-!
-‘호루스 특수임무기지 지원 (에픽)(히든)’ 퀘스트가 발동되었습니다.
-한정 퀘스트입니다. 성공하거나 실패할 시, 다시 발동하지 않는 퀘스트입니다.
-일시적으로 기계 군단의 직책을 획득합니다.
-‘호루스 수비대장’의 직책에 임명되었습니다.
……후략……
눈 앞에 연달아서 주르륵 하고 펼쳐지는, 시스템 메시지들.
그것들을 확인하는 이라한의 눈빛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였다.
‘흐흐, 대체 공헌도가 몇이냐 이거. 이 퀘만 성공적으로 클리어하면, 앞으로 기계 군단 메인 에픽 퀘스트는 전부 내가 쓸어 담을 수 있겠어.’
정령계에 여러 자연의 종족들이 있는 것처럼, 기계 문명에도 여러 학파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메인 에피소드와 관련된 대부분의 퀘스트들을 주도하는 학파가 바로 찰리스 학파였고.
그 때문에 찰리스 학파에서 쌓는 공헌도는, 기계 문명 콘텐츠 선점에 무척이나 중요한 요소였다.
이라한이 다른 최상위권 마족 랭커들에 비해 초월레벨이 딱히 높은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계 문명의 에픽 퀘스트를 선점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중간계 초창기부터 이라한이 가장 많은 콘텐츠를 클리어하며 공을 들인 차원계가, 바로 기계 문명의 땅 라카토리움이었으니 말이다.
-할 수 있겠는가, 이라한.
이라한의 귓전을 때리는, 기계음 섞인 찰리스의 목소리.
그에 이라한은 비장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반드시 정령계 놈들의 계획을 저지하고, 대지의 심장을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패기 하나는 마음에 드는군.
하지만 그런 이라한의 자신감 넘치는 대답에도, 찰리스는 완전히 흡족한 표정이 아니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이라한보다 더 믿음직스러웠던 류첸이 너무 쉽게 무너져 버렸으니, 어떤 결과를 보기 전까지는 이라한 또한 미덥지 못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혼자서 쉽지 않은 임무라면, 다른 동료와 함께해도 무방하다.
“동료라면…….”
-전쟁 경험이 풍부한 뛰어난 마족을 데려온다면 더 좋겠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생각지 못했던 찰리스의 이야기를 들은 이라한은, 살짝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그가 하는 이야기가 뭘 뜻하는지는 알지만, 퀘스트를 주는 NPC가 이런 조언을 하는 경우는 처음 보았으니 말이다.
‘퀘스트를 공유해서 다른 유저와 함께 진행해도 좋다는 얘기같은데…… 대체 NPC가 이런 이야기를 왜 하는 거지?’
물론 퀘스트를 공유하여 다른 랭커와 함께 진행한다면, 난이도 자체는 더 쉬워질 수 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 퀘스트로 얻게 되는 공헌도를 비롯한 보상들은, 함께 클리어한 유저들이 나눠 가지게 될 것.
이라한으로서는 그런 남 좋은 일(?)을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찰리스의 예상치 못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1시간 뒤에 워프 게이트가 열릴 것이다.
“균열로 이동하는 것이 더 빠르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균열 어딘가에, 정령계 놈들이 깔아 놓은 함정이 있는 것 같아서 말이지.
“그……렇군요.”
-막대한 에너지가 소모되겠지만,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하는 것 보다는 나을 터.
“모든 준비를 마치고, 1시간 내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그러도록 하라.
그리하여 찰리스와의 대화를 마친 이라한은, 찰리스의 집무실을 천천히 빠져나왔다.
그런데 그곳을 나서는 이라한은, 어쩐지 묘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정확히는 찰리스의 마지막 이야기를 듣는 동안,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균열에 정령계의 함정이 있다고……? 게다가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할 수 없다라…….’
찰리스의 대사에서 뭔가 기묘한(?) 찜찜함을 느낀 이라한.
이것은 분명히 과거에 느낀 적이 있는, 어쩐지 익숙한 불길한 느낌이었고, 이라한은 과거의 그가 아니었다.
이런 중요한 퀘스트를 앞두고 불안 요소에 대한 확인 정도는, 필수인 것이다.
‘마탑 내에서 이전 공격대에 포함되었던 NPC를 찾아봐야겠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해 봐야지.’
생각을 정리한 이라한은, 총총걸음으로 어디론가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 * *
‘젠장, 당했다……!’
선택한 퀘스트의 정보를 확인한 이안은, 말 그대로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선택하기 전부터 세부 정보 창이 있었기에, 대략적인 퀘스트 내용은 알고 있었지만, 퀘스트를 수령하고 추가적으로 드러난 부분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변수를 발견했으니 말이었다.
‘흉상? 흉상이 여기서 또 왜 나오는데 대체? 유적 기획하는 놈이 혹시 퍼즐 성애자는 아니겠지?’
퀘스트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진심으로 분노하는 이안.
물론 유적이라는 것을 찾아봐야 구체적으로 어떤 퍼즐인지 알 수 있겠지만, 퍼즐에 이골이 난 이안의 머릿속에는 이미 대략적인 그림이 그려졌으니 말이다.
‘릴슨에게 정화의 목걸이를 빌려 가면 퍼즐을 스킵할 순 있겠지만, 분명 그렇게 하면 뭔가 보상이 줄어들겠지.’
악령의 유적에서도 사실 릴슨이 가진 목걸이를 사용하면, 퀘스트를 훨씬 더 수월하게 클리어했을 것이었다.
다만 그렇게 해서 유적을 돌파했다면, 가디언들을 손에 넣을 수 없었을 것.
퀘스트에서 조금의 손해도 용납할 수 없는 ‘결벽증’ 비슷한 것을 가진 이안에게, 이것은 고문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게임 더럽게 만드네 진짜!’
하지만 분노한다고 이미 선택한 퀘스트를 물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이안은 가까스로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이안이 연계 서브 퀘스트까지 선택을 마치자, 퀘스트는 다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자, 여기 있습니다, 숲의 대전사여.”
“이것이 대지의 눈?”
“그렇습니다. 트로웰 님의 힘을 되찾아 드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열쇠.”
우우웅-!
“이걸 가지고 ‘그락투스’일족의 부락으로 간다면, 그들은 기꺼이 ‘대지의 심장’을 내줄 것이에요.”
숲의 지도자 ‘솔루미엘’은 그녀가 보관하고 있던 대지의 눈을 기꺼이 내주었다.
그리고 조건이 충족되자, 곧바로 다음 연계 퀘스트가 생성되었다.
띠링-!
-‘그락투스 일족의 부락을 찾아서 (에픽)(연계)’ 퀘스트가 발동됩니다.
그리고 퀘스트의 내용을 확인한 이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는 다행히도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을 담은 퀘스트였으니 말이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제한도 따로 없는 퀘스트네. 조금 여유를 가져도 되겠어.’
단순히 그락투스 일족의 부락에 도착하기만 하면 되는, 오히려 첫 번째 퀘스트보다 단순한 연계 퀘스트.
‘퀘스트 난이도가 내용에 비해 높아 보이긴 하지만, 뭔가 이유가 있겠지, 뭐.’
이제는 퍼즐의 충격(?)을 딛고 완벽히 본래의 페이스를 찾은 이안이, 다시 솔루미엘을 향해 입을 열었다.
“솔루미엘 님.”
“말씀하세요, 대전사여.”
“그락투스 일족의 부락은, 어디쯤에 위치해 있나요?”
“그들 역시 저희 숲의 일족과 같은 사명을 가진 존재들.”
“……?”
“그들의 거점 또한, 이 비터스텔라의 안에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예요.”
솔루미엘의 대답에, 이안은 어이없는 표정이 되었다.
그 정도는 충분히 이안도 예상할 수 있는 정보였으니 말이었다.
“비, 비터스텔라가 좀 넓어야…….”
당황한 이안의 표정을 확인한 솔루미엘은, 빙긋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트로웰 님의 힘이 담긴 세 개의 신물들은, 정령계의 마지막 보루와도 같은 물건들이예요.”
“……?”
“때문에 트로웰 님은, 신물을 보관하는 부족들에게 절대적인 비밀 엄수를 명하셨죠. 같은 자연의 부족들에게까지도 말이죠.”
“아, 그래서…….”
그제야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솔루미엘의 이야기에 수긍하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령산의 대부분이 기계 문명의 군대에 의해 잠식되어 있던 상황이었으니.
신물이 숨겨진 장소를 철저하게 숨기기 위해서라도 이해할 수 있는 조치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락투스 일족에 대한 단서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솔루미엘의 옆에 있던 다른 엘프 전사가, 문득 입을 열었으니 말이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단서가 하나 있긴 합니다. 대전사님.”
“오, 그게 뭔가요?”
“그락투스 일족이 가진 그들만의 특별한 ‘힘’을 생각하면, 유추해 볼 수 있지요.”
“특별한 힘이라면…….”
다시 의아한 표정이 된 이안을 향해, 엘프 전사의 말이 이어졌다.
“그들은 생명력을 가지지 않은 자연물에 한해, 그것과 동화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그것을 자신의 신체 일부로 만들 수 있는 능력도 지니고 있지요.”
“오호?”
“지상계에 존재하는 ‘골렘’이라 불리는 존재들이, 그락투스 일족의 후예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하, 그렇군요.”
엘프 전사의 이야기에 대번에 이미지를 떠올린 이안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골렘이라는 단어 한마디면,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질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그를 향해, 이번에는 솔루미엘이 다시 입을 열었다.
“마타야와 루판 봉우리를 연결하는 ‘비자르’ 협곡으로 한번 들어가 보세요. 비터스텔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기암괴석으로 만들어진 협곡이니까요.”
솔루미엘의 말을 들은 이안은, 곧바로 지도를 열어 보았다.
그녀의 설명만으로 이미 대략적인 위치를 떠올리기는 하였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좌표를 찾은 이안은, 살짝 놀란 표정이 되었다.
‘비자르’라는 지명이 어째서 생소한지, 지도를 보자마자 알 수 있었으니 말이다.
‘여긴 사실상 호루스 본거지잖아?’
단순한 퀘스트임에도 난이도가 어째서 높은 것인지, 비로소 이해되는 이안이었다.
* * *
찰리스 학파의 마탑을 부지런히 돌아다닌 끝에, 이라한은 원했던 NPC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균열에서 있었다는 의문의 전투에, 최전방 돌격대로 참전했던 NPC를 찾아낸 것이다.
참전 병력의 대부분이 말이 안 통하는 기계들이었던 데다 최전방에 있었던 병력들은 거의 전멸 당했기에, 적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NPC를 찾아내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었던 것.
하지만 이라한은, 힘들게 NPC를 찾아낸 보람을 톡톡히 느끼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 술술 흘러나오는 정보들이, 상상 이상의(?) 내용들을 담고 있었으니 말이었다.
“그러니까 휴론. 균열 안의 통로들을, 왠 드래곤들이 지키고 있었다는 말이지?”
“그, 그렇습니다. 수비대장님. 정말 어마어마한 녀석들이었지요.”
“드래곤 말고는 없었어?”
“왜 없었겠습니까.”
“……?”
“거대한 대검을 휘두르는 광전사도 있었고, 시커먼 페가수스 같은 걸 타고 다니는 기사도 있었지요. 게다가 어비스 드래곤이 나타났을 땐…… 진짜 충격과 공포였습니다.”
“……!”
기계 군단의 돌격대원이었던, 인간형 기계 NPC 휴론.
그의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이라한의 등판은 더욱 축축해질 수 밖에 없었다.
정보들이 하나하나 추가될수록, 그 모든 것은 이라한이 알고 있는 단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었으니 말이다.
‘미친 찰리스! 이 새끼, 날 지옥으로 보내려고 했던 거잖아?’
단순히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시작했던 정보 수집이었지만, 막상 이렇게 되자 이라한은 혼돈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미 티켓팅(?)이 끝난 상황이었지만, 지옥행 익스프레스에 제 발로 탑승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말이다.
‘이안 놈이 균열에 있었다는 건, 그놈도 분명 정령계 진영 에픽 퀘를 진행 중이라는 이야긴데…….’
이라한의 미간에 골이 점점 더 깊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냥 티켓팅 비용만 날리면 되는 상황이었으면 쿨하게 포기할 텐데, 열차에 타지 않으면 손해배상까지 해 줘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여기서 만약 퀘스트를 포기한다면, 찰리스에게 찍혀도 제대로 찍힐 것이었으니까.
‘제기랄, 이거 어쩐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찰리스가 정해 준 ‘1시간’이 다 되어 갈수록, 점점 더 조급해지는 이라한.
그리고 그렇게 10분 정도가 더 지났을까?
‘잠깐! 이런 방법이 있었잖아?’
다 죽어 가던 이라한의 표정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졌다.
쥐가 날 정도로 머리를 굴리던 중, 생각지 못했던 돌파구를 발견해 냈으니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