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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887화 (891/1,027)

< 887화 6. 대지의 결의 (3) >

* * *

훈이가 완성해 낸 3차원 퍼즐은, 작은 탑 형태를 하고 있었다.

성인 남성의 허리를 조금 넘을 정도의 높이에, 마치 크리스털처럼 새파랗고 반투명한 재질을 가진 신비로운 탑.

그리고 퀘스트의 정보 창이나 시스템 메시지만 봐도 알 수 있겠지만, 그 탑이 곧 ‘고대의 정령 마법 유물’이었다.

“형.”

“으응?”

“잊지 마. 내 퀘스트도 한번 도와줘야 하는 거다?”

“물론이지!”

“‘무상’으로 도와줘야 하는 거 알지?”

“당연한 얘기를. 갓지훈이 님, 언제든 말씀하시죠.”

이안은 싱글벙글하며, 훈이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훈이는 지금까지도 대체로(?) 쓸모 있어 왔던 동생이었지만, 그 모든 쓸모를 다 합쳐도 결코 오늘만큼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이안은 단언할 수 있었다.

‘크, 훈이 덕에 최소 3일은 아낀 것 같은데. 릴슨 형이 도와줬다 해도 최소 이틀감이었어, 이건.’

이안의 계속되는 찬사에 우쭐한 표정이 된 훈이는, 잠시 그 뿌듯함을 더 즐긴 뒤 스크롤을 찢어 마을로 귀환하였다.

그 또한 원래 진행 중이던 퀘스트가 있었기 때문에, 다시 자신의 퀘스트를 하러 간 것이다.

그리고 훈이 덕에 스무스하게 서브 퀘스트를 완료한 이안 또한, 더 이상 퀘스트의 여운을 즐길 시간은 없었다.

아무리 보상이 좋아도 서브 퀘스트는 서브 퀘스트일 뿐.

가장 중요한 메인 퀘스트를 진행하기 위해, 다시 움직여야 했으니 말이다.

‘좋아. 이제 셀라무스의 흔적이라는 것을 찾아볼까?’

정령 수호자를 만나 유물을 건네주고 ‘고대의 정령술’을 습득하는 것은, 조금 뒤로 미루기로 하였다.

어차피 정령산 남부 유적에서 할 일이 전부 끝나면 프뉴마 마을에 들러야 할 것이고, 그때 친밀도 최상의 정령 수호자인 ‘샬론’을 만나면 될 테니 말이다.

하여 이안은 다시, ‘휘도르 마을의 유적’을 뒤적이기 시작하였다.

퍼즐 조각을 모은다고 노가다를 한 덕에, 이미 유적 곳곳을 훤히 꿰고 있었으니, 그의 움직임에 망설임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스슥-!

‘셀라무스와 관련된 문양이나 표식이라면, 나만큼 잘 알고 있는 사람도 없을 텐데…….’

이안은 두 눈을 크게 뜨고는, 유적을 찬찬히 살피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30여 분 정도가 더 지났을까?

‘찾았다……!’

뭔가를 발견한 이안이, 재빨리 그것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옴과 동시에, 이안의 눈앞에 기다렸던 시스템 메시지들이 주르륵 펼쳐지기 시작하였다.

-셀라무스 부족의 흔적을 발견하셨습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셀라무스 일족의 부락을 찾아서 (에픽)(연계)’ 퀘스트의 진행도가 15%만큼 상승합니다. (현재 20%)

-‘휘도르 마을의 흔적 (에픽)(선행)(연계)’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셨습니다!

-‘명성(초월)’을 18,000만큼 획득합니다.

-물의 정령왕 ‘엘리샤’와의 친밀도가 +3만큼 증가합니다.

-……후략……

* * *

휘도르 마을에 있던 셀라무스의 흔적은, 작은 동판 같은 것이었다.

유물들을 뒤지다 찾아낸 동판에는 정령왕의 심판 창날에 새겨진 것과 동일한 생김새의 비룡이 새겨져 있었고, 그것이 곧 셀라무스 전사들이 사용하는 표식이었던 것이다.

하여 이안은 곧바로 확신할 수 있었고, 곧장 그것을 집어들었다.

우우웅-!

이안의 손에 닿은 동판은 하얗게 빛나기 시작하였고, 곧 황금빛의 조각으로 형태가 변하였다.

-‘정령왕의 머리 장식 조각(1/4)’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이안이 기대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손쉽게 클리어된 첫 번째 선행 퀘스트.

‘이렇게 작은 걸 숨겨 놓다니. 운이 좋았어.’

하지만 문제는 역시, 퀘스트가 한 개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퓌라 마을의 흔적 (에픽)(선행)(연계)’ 퀘스트가 활성화되었습니다.

퀘스트를 클리어하자마자 같은 형태의 새로운 퀘스트가 떠올랐고, 이안의 퀘스트 창이 반짝이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이 머리 장식 조각을 네 개 다 모아야 하는 건가 보네.’

그리고 퀘스트에 한에, 눈치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빠른 이안은, 곧바로 몇 가지 사실들을 유추해 낼 수 있었다.

‘정령산 남부에 있는 세 곳의 유적지들이, 전부 고대 정령 마을의 유적이었어. 아마 유적지마다, 각각 다른 속성의 정령 성소가 존재하겠지.’

정령왕의 머리 장식 조각이 네 조각이라는 사실만으로, 퀘스트가 굴러가는 방향을 짐작해 버린 것이다.

조각은 네 조각이고 유적은 세 곳에 불과했지만, 이안은 그 이유까지도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나머지 한 조각은 프뉴마 마을 안에 있겠네.’

아직까지 유일하게 남아 있는 정령 마을인, 프뉴마 마을을 곧바로 떠올렸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퀘스트를 진행하는 이안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일사천리였다.

우선 휘도르 유적에서 가장 가까운 ‘퓌라’ 마을의 유적에 먼저 도착하여 셀라무스의 두 번째 흔적을 찾아내었으며.

띠링-!

-셀라무스 부족의 흔적을 발견하셨습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셀라무스 일족의 부락을 찾아서 (에픽)(연계)’ 퀘스트의 진행도가 15%만큼 상승합니다. (현재 35%)

-‘퓌라 마을의 흔적 (에픽)(선행)(연계)’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셨습니다!

-……후략……

곧장 마지막 유적지인 ‘페돈’ 마을의 유적까지 도착했으니 말이었다.

‘첫 번째 유적은 동판이었고, 두 번째 유적은 팔찌 모양이었으니……. 마지막 유적도 장신구 형태이려나?’

빠른 퀘스트 진행에 의기양양한 표정이 된 이안은, 페돈 마을의 유적을 의욕적으로 탐색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렇게 우쭐했던 표정도 잠시.

“젠장, 여긴 쓸데없이 왜 이렇게 복잡해?”

유적에서 길을 잃은 이안의 입에서, 한숨이 푹 하고 새어 나왔다.

‘페돈 유적의 흔적’ 퀘스트는, 마지막 선행 퀘스트 답게 그리 만만하지 않았던 것이다.

* * *

카일란 최고의 소환술사 ‘이안’의 나라답게, 전 세계 모든 서버 중 가장 소환술사가 많은 서버가 바로 카일란 한국 서버였다.

이안으로 인해 일찍이, 소환술사 열풍이 분 적이 있었으니 말이었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겠지만, 한국 서버에는 단지 소환술사의 숫자만 많은 것도 아니었다.

글로벌 기준으로 소환술사 랭킹 100위권 안에, 거의 30퍼센트 이상이 한국 서버 출신이었으니 말이다.

현재 타이탄 길드 소속의 소환술사인 ‘제니스’ 또한, 그러한 소환술사 랭커들 중 하나였다.

그녀의 소환술사 글로벌 랭킹은 무려 13위.

초월 70레벨에 가까운 그녀는, 타이탄 길드에서도 중요한 인재라고 할 수 있었다.

‘후후, 이번 퀘스트만 클리어하면, 10위권 안으로 치고 올라갈 수 있을 거야.’

한국 서버 소환술사 랭킹으로 치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그녀는, 랭킹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유저였다.

애초에 그녀의 스타일이 솔로 플레이를 지향해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녀가 ‘후발 주자’이기 때문이었다.

카일란 자체를 시작한 것은 초창기에 가까웠지만, 그녀의 랭킹이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녀가 이렇게 대기만성형이 된 것은, 다름 아닌 ‘클래스’와 연관이 있었다.

그녀의 클래스는 무려 3티어의 히든 클래스였는데, 그녀가 이 클래스를 얻은 것은 고작 1년 반 전의 일이었으니 말이었다.

히든 클래스를 얻고 난 뒤 급성장하여, 이렇게 어엿한 랭커가 될 수 있었던 것.

이렇게 그녀를 랭커로 만들어 준 히든 클래스는 바로, ‘셀라무스의 소환술사’라는 클래스였다.

‘그때 전 재산 탈탈 털어서라도 전직서를 샀던 게, 내 겜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었지.’

그녀는 ‘셀라무스의 소환술사’ 전직서를 당시 돈으로 무려 1억 3천 골드에 매입했지만, 그것을 후회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랭커가 된 이후 벌어들인 돈만 해도 그 몇 배는 훌쩍 넘을뿐더러, 무엇보다 이 클래스에 너무도 만족하고 있었으니 말이었다.

소환술사임에도 불구하고, 여느 전사 클래스 못지않게 강력한 전투 능력을 가진 ‘셀라무스의 소환술사’ 클래스.

항상 이안의 전투 능력을 동경해 왔던 그녀에게, 셀라무스의 소환술사만큼 완벽한 클래스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후우, 그런 의미에서 빨리 티어를 올려야겠어. 4티어만 찍으면 정말 이안처럼 강해질지도 모를 일이지.”

그리고 지금 제니스가 진행 중인 퀘스트가 바로, 이 히든 클래스의 티어를 올리는 직업 퀘스트였다.

처음 2티어 히든 클래스였던 셀라무스의 소환술사 클래스의 티어를 차곡차곡 올려, 어느새 4티어를 목전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리그전이 시작되기 전에 무조건 퀘스트를 클리어 해야 해. 이번에는 꼭 나도 참전하고 말겠어.’

기사 대전을 떠올린 제니스는, 더욱 의욕을 불태우며 던전을 수색하기 시작하였다.

이곳 ‘페돈’ 유적에서 ‘정령왕의 머리 장식’ 마지막 조각만 찾아낸다면, 드디어 셀라무스 부족의 부락을 찾을 수 있을 테니 말이었다.

이미 모든 재료와 조건을 갖춰 놓은 그녀는, 셀라무스 부족의 부락에 있을 ‘에오스’라는 NPC만 찾아가면 퀘스트를 완수할 수 있는 것.

그 때문에 그녀는, 무척이나 흥분하고 들뜬 표정이었다.

3티어의 히든 클래스인 지금도 충분히 막강한데, 티어가 한 단계 더 오르면 어떤 느낌일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자, 이쪽도 수색이 다 끝난 것 같고…… 이제 북서쪽 지하 유적만 수색하면 되는 건가?’

미니맵을 펼쳐 놓고 꼼꼼히 살피면서도, 격양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그녀.

그런데 바로 그때.

다시 움직이려던 그녀는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뒤쪽에서 갑자기,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으니 말이었다.

“저, 저기요……!”

“엄마야!”

“여기 길 좀 물어도 될까요?”

* * *

사실 페돈 유적은, 초월 30~40레벨 정도의 몬스터들이 등장하는 사냥터였다.

하지만 난이도에 비해 경험치와 보상이 무척이나 짠 편에 속했기에, 사실상 죽은 사냥터나 다름없었다.

프뉴마 마을에서 가깝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찾지 않는 사냥터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이, 제니스가 놀랄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자신 말고 이 안에 누군가 다른 유저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아예 해 본 적조차 없었으니 말이다.

“기, 길을 묻는다고요?”

“네. 아무래도 제가 길을 잃어버린 것 같거든요.”

제니스는 조심스레 남자의 행색을 살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놀란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뭐지? 생각보다 고레벨인 것 같은데?’

온통 먼지를 뒤집어쓴 탓에 일견 남루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자세히 보면 장비들이 하나같이 고급스러운 것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면 혹시 금수저인가?’

결론이 어찌 되었든, 일단 제니스는 반가운 표정이 되었다.

남자가 나타난 위치로 미루어 보았을 때,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으니 말이었다.

‘보아하니 북쪽 입구로 들어온 것 같은데, 잘하면 유적의 위치를 찾는 데 도움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제니스는 황금빛 투구 사이로 보이는 남자의 눈을 슬쩍 응시하였다.

그리고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험험, 뭘 하다가 길을 잃으셨는데요?”

“아, 그게…….”

“오해는 하지 마세요. 목적지를 알아야 길을 알려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 물은 거니까요.”

하지만 잠시 후, 제니스는 남자의 목소리가 처음 들렸을 때보다도 더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퀘스트를 하고 있었어요.”

“퀘스트요?”

남자의 대답이, 그녀로서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었으니 말이다.

“‘셀라무스의 흔적’이라는 것을 찾고 있었는데…….”

“……?”

토끼처럼 커다랗게 확대된 제니스의 두 동공이, 그야말로 지진이라도 난 듯 떨리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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