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4화 1. 절대자 시험 (3) >
* * *
이안이 ‘셀라무스의 절대자’ 퀘스트를 했던 것은 처음 중간계 콘텐츠가 열렸던 그 시점쯤이었다.
그리고 이안은 그때 분명 절대자의 칭호를 얻었었다.
그렇다면 절대자의 칭호와 자격을 얻은 것과, 직위를 계승하는 것이 대체 어떻게 다른 것일까?
그 차이는 사실 간단했다.
절대자의 직위를 계승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 칭호를 획득하는 것이었으니까.
만약 절대자 퀘스트를 진행했던 당시에 이안이 ‘중간자’였더라면, 그때 바로 직위 계승 퀘스트까지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의 이안은 아직 중간자의 위격을 얻지 못했던 상태였고, 때문에 지금에야 이러한 퀘스트가 발동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셀라무스의 절대자 계승(히든)>
-셀라무스의 절대자 칭호를 가진 당신은 그 직위를 계승할 자격을 갖췄다. 하여 셀라무스 부족의 지도자인 ‘폴 크로네’로부터 ‘직위 계승’ 제의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당신이 성공적으로 직위를 계승한다면, 모든 셀라무스의 전사들은 기꺼이 당신의 명령에 복종할 것이다.
셀라무스의 절대자로서 그 용맹과 통솔력, 그리고 강인함을 인정받자. 전사들에게 당신의 능력을 보여 준다면, 비로소 진정한 셀라무스 일족의 절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의 조건을 충족할 시, 퀘스트가 완수됩니다.
A. 난이도 등급 3티어 이상의 첫 번째 출정에서, 전사들을 통솔하여 최소한의 희생으로 승리할 것.(병력 90% 이상 생존)
B. 셀라무스 부족의 전쟁 공헌도(전공)를 10만 이상 쌓을 것.
C. 난이도 등급 5티어 이상의 출정에서, S급 이상의 활약을 1회 이상 보여 줄 것.
-퀘스트 난이도 : SSS
-퀘스트 조건 : ‘셀라무스의 절대자’ 칭호를 가진 유저
-제한 시간 : 없음
*첫 출정에서 패배 시, 퀘스트에 실패하게 됩니다.(병력 90% 생존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더라도, 패배하지만 않는다면 다시 퀘스트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절대자를 계승하는 중에 총 3회 이상 패전할 시, 퀘스트에 실패하게 됩니다.
-보상 : 명성(초월) 20만, ‘셀라무스의 절대자’직위 획득, ‘절대자의 망토(신화)(초월)’ 장비 획득
그리고 퀘스트 창을 읽어 내려가는 이안의 두 눈에는 어느새 이채가 어려 있었다.
퀘스트의 내용부터가 흥미로웠을 뿐더러, 또 새로운 방식과 구조를 가진 퀘스트였으니 말이었다.
‘조건을 다 충족하면 퀘스트가 완수되는 건가 본데…….’
하지만 흥미로운 와중에도, 순간 이안의 두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조건들을 읽다 보니, 의문점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거 뭔가 퀘스트가 불친절하잖아? 난이도 등급 3티어는 또 뭐고, 출정이라는 개념은 또 뭐지? 퀘스트랑은 또 다른 건가?’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 퀘스트의 내용에 고개를 갸웃하는 이안.
그리고 그런 그의 의문을 듣기라도 했다는 듯 시스템 메시지가 연달아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띠링-!
-특수한 퀘스트 진행으로 인해 ‘부족(셀라무스) 시스템’ 카테고리가 임시로 개방됩니다.
-‘셀라무스의 절대자 계승(히든)’ 퀘스트에 성공할 시, 해당 카테고리가 메뉴에 정식으로 고정됩니다.
“……!”
메시지가 떠오름과 동시에, 이안 시야의 한쪽 구석에 새로운 아이콘이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셀라무스 전사의 문양이 그려진 화려한 모양의 아이콘.
이안은 지체 없이 그것을 오픈해 보았고, 곧이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아하, 이런 식이었군.’
마치 길드 영지의 ‘내정’ 콘텐츠처럼 짜여 있는 메뉴들을 보니, 퀘스트 내용이 곧바로 이해된 것이다.
‘내정’ 콘텐츠와 다른 점은 거의 대부분이 ‘전투’와 관련된 메뉴라는 정도.
길드의 내정에는 자원, 건설, 생산부터 시작하여 각종 카테고리가 존재했지만, 부족 시스템 안에는 전투와 관련된 메뉴들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안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생산과 관련된 내정들은 대부분 족장에게 권한이 있는 것이겠지.’
고개를 주억거린 이안은 하부 메뉴들 중 ‘출정’메뉴부터 오픈해 보았다.
애초에 다른 메뉴들 대부분이 비활성화되어 있기도 하였지만, 직위 계승 퀘스트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메뉴가 바로 이 ‘출정’ 메뉴였으니 말이다.
띠링-!
이어서 이안의 눈앞에 출정 가능한 전장의 목록이 주르륵 하고 펼쳐졌다.
<북서부 기계 광산 섬멸>
-난이도 등급 : 3티어(진행하는 유저에 관계없이 설정되는 절대 난이도입니다.)
-실질 난이도 : A-(진행하는 유저의 능력에 따라 달라지는 가변적인 등급입니다.)
-획득 가능 전쟁 공헌도 : 5,325~15,775
-전장 지역 : 샤이야 산맥(39840, 27710) 일대
-재출정 대기시간 : 3일
<오염된 대지 정화>
-난이도 등급 : 3티어
-실질 난이도 : B+
-획득 가능 전쟁 공헌도 : 4,720~16,900
-전장 지역 : 샤이야 산맥(8815, 19382) 일대
-재출정 대기시간 : 5일
……중략…….
<샤이야 산맥의 전투>
-난이도 등급 : 5티어
-실질 난이도 : S+
-획득 가능 전쟁 공헌도 : 54,720~112,700
-전장 지역 : 샤이야…….
-재출정 대기시간 : 2일
……후략…….
‘아하, 이런 식으로 전장이 나눠져 있고, 전장을 골라서 출정할 수 있는 거였네. 퀘스트랑은 조금 다른 느낌이군.’
이안의 얼굴에 어린 흥미로움이 더욱 짙어지기 시작하였다.
절대 난이도와 상대 난이도가 나뉘어 있다는 부분도 흥미로웠지만, 가장 재밌는 부분은 ‘재출정 대기 시간’이라는 부분이었다.
‘자, 그럼 여기서 나는 3티어 이상의 전장을 골라서 첫 승을 우선 거두면 되는 건가?’
절대자 직위 계승 퀘스트에서는 첫 승이 무척이나 중요하다.
첫 번째 전장에서 패전이라도 하면, 퀘스트 실패가 되어 버리니 말이다.
하여 이안은 비교적 안전한(?) 5티어 이하의 전장으로 고르려고 하였다.
처음 경험해 보는 콘텐츠에서 무리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하였으니 말이다.
‘그래 뭐, 5티어 가 봐야 S+ 정도인데. 이 정도는 충분히 해볼 만하지.’
그러나 그런 생각을 떠올린 것도 잠시.
“음……?”
전장 목록을 쭉 훑어 내려가던 이안의 두 눈이, 커다랗게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나열된 전장들 중 생각지도 못했던 특수한 전장을 발견했으니 말이었다.
<파괴의 군단 섬멸전>
-난이도 등급 : 8티어
-실질 난이도 : SSS+
-획득 가능 전쟁 공헌도 : 193,880~457,080
-전장 지역 : 마타야 협곡(17902, 66127) 일대.
-재출정 대기시간 : 없음
*1회 한정으로 출정 가능한 전장입니다.
*특수한 이벤트에 의해 생성된 기간 한정 전장입니다. (105 : 49 : 27) 이후에는 전장 목록에서 사라집니다.
그리고 이안은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저도 모르게 ‘파괴의 군단 섬멸전’을 선택하고 말았다.
띠링-!
-‘파괴의 군단 섬멸전’ 전장을 선택하셨습니다.
-해당 전장으로 출정하시겠습니까?
“응.”
-전열을 정비하기 위해, 30분의 대기시간이 주어집니다.
-출정하기 위해, 부대를 편성해야 합니다.
……후략…….
* * *
크로네는 당황하고 말았다.
새롭게 직위 계승을 시작한 이안이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행보를 시작했으니 말이다.
“대, 대전사님……!”
“예?”
“혹시 실수하신 건 아닌지요……?”
“무슨 실수요?”
“첫 출정에서 패전하시면, 절대자의 자격을 잃으시게 될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처음부터 그런 죽음의 전장을 선택하신 건지…….”
크로네가 경악한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그가 보기에 ‘파괴의 군단 섬멸전’은 모든 전장 중 가장 난이도 높은 전장이었으니 말이다.
만약 직위 계승 퀘스트 중이 아니었다면, 새로운 절대자의 용맹에 감탄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이안이 출정하는 첫 번째 전장은 절대로 패배해서는 안 되는 특수한 전장.
이곳에서 8티어 난이도의 섬멸전을 골랐다는 것은 크로네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배짱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이안은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이기면 되지 않습니까?”
“그, 그야…….”
“설마, 제가 패전할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씨익 웃어 보이는 이안을 보며, 크로네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자신감인지 자만인지는 전장에 나가 보면 알게 될 테지만, 일단 어느 방향이든 놀라운 것은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이, 이것이 절대자의 그릇……!’
하지만 이 순간에도 크로네가 알지 못한 사실이 있었으니, 이안의 계획은 눈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거창한 것이었다는 점이었다.
‘이 정도면 거의 꿩 먹고 알 먹고. 아니, 일타사피 정도는 되는 효율이잖아?’
지금 이안의 계획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이 전장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직위 계승을 위해 필요한 모든 조건을 한 방에 채우려는 것이다.
승리는 물론 90% 이상의 전사들을 생존시키고, 거기에 10만 이상의 전공과 더불어 S등급의 활약까지 충족시키는.
문자 그대로 ‘완벽한 승리’가 이안의 목표였으니 말이다.
‘거기에 트로웰을 만나러 가는 메인 퀘스트까지 진행되는 셈이니, 이거보다 효율적일 수가 없는 거지.’
트리플S라는 난이도에 대한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부담감이 남들만큼은 아니었다.
이안은 이미 그 비슷한 난이도의 퀘스트를 수없이 성공시켜 봤으니 말이었다.
난이도 A급만 떠도 움찔하는 평범한 유저들과는 사고방식 자체가 다른 이안이었다.
“시간이 많지 않군요.”
“예, 대전사님.”
“부대를 편성해야겠습니다. 크로네 님께서 도와주세요.”
“물론입니다.”
이안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부족의 전력에 대한 크로네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어서 그 설명이 끝난 순간 이안의 눈앞에 ‘부대 편성’ 정보 창이 생성되었고.
띠링-!
-‘파괴의 군단 섬멸전’에 편성 가능한 최대 인원은 150명입니다.
-유저 ‘이안’ 님의 ‘통솔력’ 능력치가 반영되어, 최대 편성 인원이 325명으로 상향 조정됩니다.
-총 인원에 ‘십인장’급 전사 스무 명과 ‘백인장’급 전사 세 명을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후략…….
그렇게, 이안이 지휘하는 첫 번째 셀라무스의 부대가 완성되었다.
띠링-!
-부대 편성이 완료되었습니다.
-‘마타야 협곡’으로 출정을 시작합니다.
뿌우우우-!
커다란 뿔피리 소리와 함께 커다란 전고 소리가 울려 퍼졌으며.
둥- 둥- 둥-!
이어서 심판 검을 번쩍 치켜든 이안이 셀라무스의 전사들을 향해 출정을 선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