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6화 1. 첫 번째 마법 융합 (3) >
* * *
모두의 기대 속에서, 기사 대전이라는 카일란 글로벌 축제의 마지막 장이 열렸다.
치열한 싸움과 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최후의 기사단원들.
전 세계 카일란 유저들의 이목은 전부 이곳에 모였고, 그것의 파장은 엄청났다.
게임에 대해 잘 모르고 평소에 관심도 없었던 사람들조차도, 오늘이 기사 대전 리그전의 개막식이라는 이야기는 한번쯤 들어 봤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거, 오늘 카일란에서 무슨 대회 한다던데.”
“맞아요, 아빠.”
“무슨 국가 대항전 같은 거니? 아빠 회사 직원들도 난리던데 말이야.”
“음. 축구로 치면 월드컵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고요.”
“오호?”
“야구로 치면 WBC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네요.”
“이야, 그거 아빠도 보면 이해할 수 있는 거냐?”
“음, 저희 학교 교감 선생님도 재밌게 보시던데. 이따가 저녁에 같이 봐요, 아빠.”
“그래, 저녁에 치킨이나 시켜 놓고 보자꾸나.”
카일란의 기사 대전은 LB사에서 기대했던 것 이상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어내었다.
카일란 유저들은 물론 범국민적인 관심까지도 끌어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심이 가능했던 이유는 딱 하나였다.
파고들면 이안 같은 게임덕후조차도 끝없이 연구할 요소들이 있는 복잡한 게임이 카일란이었지만.
반대로 그런 모든 것들을 전혀 모른 채 보아도, 충분히 이해하고 즐겁게 시청할 수 있는 게임이 또 카일란이었으니 말이다.
특히 기사 대전과 같은 대전 콘텐츠의 경우, 오히려 룰 자체는 일반적인 격투 경기보다도 쉬웠기 때문에.
게임을 잘 모르는 이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어떤 팀이 자국 게이머들로 이뤄진 팀인지만 알아도, 마치 월드컵 경기 시청하듯 즐겁게 시청이 가능했으니까.
“그냥 싸워서 이기는 쪽이 이기는 거잖아. 그치?”
“맞아. 명쾌하네.”
여하튼 이러한 관심 때문인지, 카일란의 커뮤니티는 날이 밝기가 무섭게 타오르고 있었고.
-님들, 대진표 언제 뜨는 거죠?
-오늘 여덟 시요.
-20시 아니고 8시 맞죠?
-그렇슴다.
-하, 대진표도 대진표지만, 길드별 정예 검투사 명단이나 빨리 떴으면 좋겠는데, 대체 왜 이렇게 숨기는 건지 모르겠네.
-그야 기대감을 끌어 올리기 위함 아닐까요?
-후우, 기대감이 끌어 오르다 못해, 현기증이 날 것 같으니까 그러죠.
-동감합니다.
-ㅋㅋㅋ
그 관심과 열기에 비례하여, LB사의 마케팅팀 또한 분주하기 그지없었다.
“다들 준비됐지?”
“넷, 팀장님! 이쪽은 마무리 끝났습니다!”
“여기도 문제없습니다!”
“자, 그럼 한 1분 정도 빨리 열자고. 1초라도 늦으면 전화기에 불날 것 같으니 말이야.”
“오케이, 알겠습니다!”
“옙!”
그리고 그렇게 오전 여덟 시가 되었을 때.
띠링-!
카일란을 플레이하던 모든 유저들의 눈앞에 글로벌 메시지가 두 줄 떠올랐다.
-카일란 기사 대전, 리그전이 오픈되었습니다.
-리그전의 일정, 조 편성과 세부 경기 방식에 대한 공지를 확인하세요!
* * *
패자부활전이 끝났던 바로 다음 날 아침.
리그전의 대략적인 룰은 이미 공개되었었다.
‘포르투나’라는 새로운 맵에 대한 정보와 함께, 어느 정도 경기 방식까지 다음과 같이 공개됐었으니 말이다.
<포르투나의 제1전장(검투장)>
-기사 대전의 최종 리그에 참전하는 열 개의 팀은 랜덤하게 두 개의 조에 편성됩니다.(A조 다섯, B조 다섯)
A조로 편성된 다섯 개의 길드는 오전 10시에 검투장에 입장하게 되며, B조로 편성된 다섯 개의 길드는 오후 3시에 검투장에 입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검투장’에서 조별로 생존 싸움을 펼치게 됩니다.
각 조별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두 개의 팀만이 포르투나의 제2전장인 ‘운명의 언덕’에 입장할 수 있습니다.
*각 길드는 검투장에 입장할 열 명의 ‘정예 검투사’를 먼저 선출해야 합니다.
*검투장이 열리면, 선별된 열 명의 검투사 중 하나를 20초 내로 입장시켜야 합니다.
*입장한 검투사가 사망할 시, 10초 내로 다음 검투사를 투입해야 합니다.(투입하지 못한다면, 해당 길드는 남아 있는 정예 검투사의 숫자에 상관없이 검투장에서 아웃됩니다.)
*다섯 번째 입장한 정예 검투사까지 패배하여 생존에 실패한다면, 해당 길드는 검투장에서 아웃됩니다.
*검투장에서의 모든 경기가 종료되면, 제2의 전장인 ‘운명의 언덕’에 대한 정보가 오픈됩니다.
하지만 공개된 이 룰 때문에, 유저들은 더욱 애가 탈 수밖에 없었다.
어떤 식으로 결투가 진행될지 머릿속으로 그리다 보면, 각 길드의 라인업을 알고 싶었고, 그것을 통해 대전이 어떻게 흘러갈지 계속해서 상상해 보고 싶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공지의 말미에 명시되어 있는 제2전장이라는 ‘운명의 언덕’.
이곳은 대체 또 어떤 콘셉트인지 더욱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오늘 올라온 각 길드별 라인업이 담긴 공지는 순식간에 조회 수가 폭발하듯 증가하고 있었다.
<리그전 참전 길드 목록>
*A조
1. 로터스
소속 국가 : 한국
진영 : 인간
길드 마스터 : 헤르스
2. 천웅
소속 국가 : 중국
진영 : 마족
길드 마스터 : 류첸
3. 발러
소속 국가 : 미국
진영 : 인간
길드 마스터 : 아르케인
4. 스콜피온
소속 국가 : 중국
진영 : 인간
길드 마스터 : 왕웨이
5. 호왕
소속 국가 : 한국
진영 : 마족
길드 마스터 : 마틴
*B조
1. 칼데라스
소속 국가 : 미국
진영 : 마족
길드 마스터 : 카이
2. 다크블러드
소속 국가 : 영국
진영 : 마족
길드 마스터 : 루칼
3. 세인트라이언
소속 국가 : 독일
진영 : 인간
길드 마스터 : 요나스
4. 타이탄
소속 국가 : 한국
진영 : 인간
길드 마스터 : 샤크란
5. 카이로스
소속 국가 : 영국
진영 : 인간
길드 마스터 : 앤토니어
우선 최상단의 게시물인 조 편성 공지 글에는 1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이미 수백 개의 댓글이 주르륵 달려 내려가기 시작하였으며.
-와, 조 편성 보소. 1조 지옥인데?
-저 두 개 조 중에, 어디가 더 지옥인지 판별이 가능한 거임?
-역시 로터스랑 칼데라스는 찢어 놨네.
-붙여 놓으면 노잼이지.
-A조 호구는 호왕이고, B조 호구는 카이로스인가?
-B조에서 타이탄이 올라가길 바라는 건 무리겠죠?
-칼데라스는 뭔 짓을 해도 못 이길 거고……. 다크블러드에 비벼 볼 수 있으려나요.
-A조보단 B조가 꿀잼이네.
-왜요?
-A조는 너무 뻔하잖아요, 지금.
-뻔하다구요?
-보나마나 로터스랑 천웅. 두 곳 올라가겠죠. 다른 변수가 없음.
-카잘알 인정합니다.
두 번째 게시물인 라인업 공지 글은 아예 내용을 확인하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트래픽이 마비되고 있었다.
<각 길드별 정예 검투사 명단>
-로터스 : 이안, 레미르, 간지훈이, 유신…….
-칼데라스 : 카이, 알파인, 크리스, 메가론…….
-천웅 : 류첸, 타루르…….
-……중략…….
-타이탄 : 샤크란, 에밀리, 세이론, 알랑크라…….
-카이로스 : 앤토니어…….
하지만 첫 번째 게시물의 댓글 창이 혼탁(?)한 것과 달리, 두 번째 게시 글의 댓글 창은 완전히 상반된 분위기였다.
마치 산티아고에 성지순례 온 신도들처럼.
거의 같은 내용의 댓글이 도배되었으니 말이었다.
-이안갓……! 안멘…….
-이안갓! 이안갓이다!
-됐어. 여긴 첫 줄만 보고 나가도 되겠군.
-이안갓. 드디어 ㅠㅠ
-아, 아아…….
물론 댓글이 달린 커뮤니티가 한국 서버의 공식 커뮤니티였기는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하나도 빠짐없이 이안과 관련된 댓글이 이어진 것.
그만큼 한국 서버의 유저들은 이안의 출전에 목말라 있었고.
드디어 이안이 등장했음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것이다.
-이안, 레미르, 간지훈이…… 여기까지만 봐도 이미 게임 끝났군요.
-크……! 이제 팝콘각만 재면 되는 건가요.
-솔직히 이안 안 나왔어도 검투장이야 패스했겠지만, 2차 리그에서 칼데라스까지 이길 수 있을지는 확신 못 했었는데…….
-그런데요?
-하지만 이제 이안갓께서 강림하셨으니, 칼데라스가 너무 약하지 않기만을 바라는 중입니다.
-???
-너무 일방적인 경기는 재미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이러한 관심들 속에서 드디어 리그전의 첫 번째 경기가 시작되는 10시가 다가왔다.
* * *
기사 대전의 리그전을 위해.
오직 그 하나의 이벤트를 위해 만들어진 차원계, 포르투나.
포르투나는 중간계와 마찬가지로 세계 모든 유저가 접속이 가능한 글로벌 서버였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이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 리그전이 진행될 때에 한하여 한시적으로 열리는 한정 맵이라는 점.
둘째, 중간자의 위격이 없는 평범한 유저라 해도. 누구나 입장이 가능한 오픈 맵이라는 점.
그 때문에 지금 포르투나에는 정말 어마어마한 인원의 카일란 유저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지만, 놀랍게도 질서가 유지되고 있었다.
이벤트성 차원계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맵의 퀄리티와 서버 안정성이 뛰어났으니 말이었다.
맵의 구석구석을 구경하는 데에 정신이 팔려 곧바로 콜로세움으로 향하지 않을 정도로.
포르투나는 넓고 볼거리가 널려 있었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빨리 서두르자고. 조금 더 늦으면 입장 못 할지도 몰라.”
“앗!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시간은 좀 남았는데, 라이브 티켓은 금방 현장 매진 될 거라고.”
“헉, 그럼 안 되는데?”
“그러니까 구경은 나중에 하고, 일단 뛰자.”
“알았어, 마이클.”
그리고 그런 전 세계의 수많은 인파들 속을, 느긋한 표정으로 거니는 무리들이 있었다.
“과대 형, 우린 안 뛰어도 되요?”
“그러게. 다들 티켓팅 때문에 급해 보이는데, 우리 이러다가 입장 못 하는 거 아니에요?”
제각각 다양한 복장에 특이한 구성을 가진, 한 무리의 한국인들.
그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한국대학교의 가상현실과 1학년 학생들이었다.
“다들 왜 이렇게 쓸데없는 걱정이 많아?”
“쓸데없는 걱정이라뇨!”
“이게 어떻게 생긴 기회인데, 오늘 아니면 언제 정규 수업 시간에 라이브 경기 보러 오겠어요?”
“티켓 못 구하면 다 과대 오빠 때문이라고요.”
이안과 로터스가 참전하는 10시의 경기는 한국대학교의 2교시 수업 시간이었고.
해당 수업 시간을 맡은 이진욱 주임교수가, 대체 수업을 허락해 준 것이다.
그 때문에 가상현실과의 신입생들은 극도의 흥분 상태였던 것.
하지만 그렇게 안달 난 학생들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과대는 무척이나 태연해 보였다.
“하, 이 친구들. 너희 설마, 우리 직속 선배님이 누구신지 모르는 거야?”
“그걸 아니까 지금 이러잖아요. 빨리 선배님들 알현하러 가야 되는데 지금……!”
“현기증 날 것 같아요, 형.”
동기 동생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을 보며, 씨익 웃어 보이는 1학년의 과대.
그의 여유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었다.
“이미 유현 선배님께서, RR석 좌석 티켓 싹 다 보내 주셨다고.”
“저, 정말요?”
“그런 얘긴 못 들었는데!”
“당연히 못 들었겠지.”
“……?”
“방금 게임 내에서, 메시지 전송으로 쏴 주셨으니 말이야.”
“크, 대박!”
“멋있어…….”
이진욱 교수의 배려와 화려한 선배들의 라인업(?) 덕에 수천만 원을 줘도 구하기 힘들다는 로열석의 티켓을 이미 확보했던 것이다.
“자, 이쪽으로……!”
하여 의기양양해진 과대 오상혁은 신입생들을 인솔하여 여유롭게 콜로세움 안쪽으로 입장하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줄이 매표소 앞에 늘어서 있었지만, 그것을 확인한 가상현실과의 학생들은 승리자의 표정일 뿐이었다.
“역시, 삼수하길 잘했어.”
“이 학교 입학한 이후, 지금 제일 뿌듯한 거 알아?”
“크으……!”
그리고 경기 시작까지 15분 정도가 남았을 무렵.
배정된 로열석 중에서도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오상혁은 두 눈을 반짝이며 경기장을 내려다보기 시작하였다.
‘오늘 저 경기장에, 진성 선배님이 나오신다는 거지.’
아직 얼굴은 실제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신기루(?) 같은 존재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상현실과에 입학한 이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이름.
항상 화면에서만 보던 선배를 직접 영접할 생각에 상혁은 감개가 무량하였다.
‘진성 선배가 몇 번째로 등장할까? 에이스니까 당연히 마지막이겠지? 아니면, 혹시 처음부터 나와서 다 쓸어 버리시려나?’
곧 시작될 전투에 대한 상상으로, 점점 더 흥분하기 시작하는 상혁.
그리고 이어서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에, 상혁을 비롯한 모든 인원들의 시선이 콜로세움 경기장을 향해 고정되었다.
-포트투나 제1전장, ‘검투장’ 경기의 시간이 10분 남았습니다.
-이제부터 관중들의 모든 추가 입장이 제한됩니다.
-잠시 후, A조로 편성된 다섯 팀의, 첫 번째 ‘정예 검투사’가 입장합니다.
“드, 드디어……!”
“오옷!”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의 시선이 고정된 곳은 로터스 길드의 출전 진영.
“혹시 유현 선배님이 선발로 나오시려나?”
“바보냐. 유현 선배님은 아예 엔트리에 들어가지도 않았어.”
“그, 그래?”
“그냥 처음부터 진성 선배 나왔으면 좋겠다.”
“나도.”
“난 왠지 간지훈이가 선봉일 것 같은데.”
로터스의 랭커들은 줄줄이 다 꿰고 있었으니, 누가 먼저 나올지 너무도 궁금한 것이다.
하지만 다음 순간.
우우웅-!
로터스의 진영 앞에 만들어진 소환진을 확인한 학생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어, 누구지?”
“뭐야?”
모든 라인업을 꿰고 있음에도, 등장한 인물의 정체를 알 수 없었으니 말이다.
“레미르랑 훈이 말고, 라인업에 마법사가 또 있었어?”
특이한 복장에 화려한 초록빛 지팡이를 들고 있는 마법사의 실루엣.
이 콜로세움에 모인 관중들 중에, 그의 정체를 눈치챌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