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957화 (958/1,027)

< 957화 7. 어둠의 요새 (3) >

* * *

띠링-!

-복원된 고대의 기계 괴수, ‘기계 루카크’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강력한 보스 타입의 몬스터를 처치하셨습니다.

-처치 기여도 : 95.42%

……중략……

-‘블러드 기어(Blood Gear)’를 획득하였습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루카크의 밀실’로 통하는 게이트웨이를 작동시킬 수 있습니다.

익숙한 기계음과 함께, 눈앞에 주르륵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들.

하지만 하얀 빛으로 시스템 메시지가 반짝이고 있었음에도, 조나단의 눈에는 그것들이 전혀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허억, 허억…….”

지금 조나단은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모든 체력이 고갈된 상태였으니 말이었다.

“후우…… 해……냈다.”

이안이 30여 분 정도를 예상했던 것과 달리.

조나단이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거의 1시간에 수렴하였다.

이안이 자리를 뜰 때까지는 나름 순조롭게 공략이 진행되는 듯하였으나, 전투의 마지막 페이즈가 암살자에게 거의 지옥 같은 패턴이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클리어하긴 하였으나, 다시 한번 해보라면 할 자신이 없는 조나단.

심지어 마지막 순간에는 이안이 와서 막타(?)라도 쳐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정도였으니, 그의 전투가 얼마나 처절했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 미친놈은…… 막타는 지가 칠 거 라더니 왜 안 나타나는 거야?’

부들부들 떨리는 몸으로 한동안 숨을 고른 조나단은 겨우 기력(?)을 되찾고 드롭 아이템을 줍기 위해 기계 괴수의 사체를 향해 걸어갔다.

얼마나 체력이 떨어졌으면, 드롭된 장비들조차도 곧바로 회수하지 못한 것이다.

“후, 그래도 확실히 괜찮은 걸 많이 떨궜군.”

털썩-!

아이템을 회수한 뒤 구석에 걸터앉은 조나단은 천천히 숨을 고르며 빠르게 상태를 점검하였다.

이어서 턱밑까지 차오른 숨을 어느 정도 고르고 난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아보았다.

‘흠, 이놈…… 갑자기 사라지더니 왜 아직까지 안 보이는 거지?’

조나단의 입장에서 이안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행동만 보여주는 괴짜였다.

대체 그가 뭘 위해 움직이고 있는지 전혀 짐작이 안 되었으니 말이다.

‘내 퀘스트를 같이 클리어하면, 제법 괜찮은 보상을 받을 텐데…… 이걸 여기까지 도와 놓고, 그냥 자기 퀘스트를 하러 갔을 리는 없겠고.’

조나단은 알고 있었다.

보스 전투 자체는 거의 자신이 다 한 셈이었지만, 이안의 도움이 꽤나 큰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애초에 이안이 없었더라면 보스 룸에 도착하기까지도 수 배 이상의 시간이 걸렸을 테고, 보스전에서도 높은 확률로 패배했을 것을 아는 것이다.

철컥-!

때문에 조나단은 밀실의 열쇠인 ‘블러드 기어’를 들고 있던 손을 잠시 멈칫 하였다.

이안이 돌아오기 전에 혼자 밀실에 쏙 들어가 버리는 것은 조금 미안했으니 말이다.

‘흠, 한 10분 정도만 기다려 볼까.’

물론 완전한 호의로 이안을 기다리는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조나단은 이안에게 공유받기로 한 그의 퀘스트도 탐이 났으니 말이다.

다른 모든 이유들을 떠나, 카일란 게임 인생에 ‘측정 불가(Unknown)’ 난이도의 퀘스트는 처음 봤으니까.

‘게다가 그 정도 실력자라면…… 친분을 둬서 나쁠 것도 없겠고.’

하지만 이러한 조나단의 생각이 산산이 부서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조나단이 고개를 돌림과 동시에, 어느새 익숙해진 얄미운 목소리가 그의 귓전을 파고들었으니 말이었다.

“친구, 문 안 따고 뭐 하는 거야?”

“뭐? 대체 언제……!”

“휴우, 기다리다가 잠들 뻔했네. 빨리 문이나 따 봐. 할 일이 태산이니까 말이야.”

대체 언제 나타난 것인지, 어느새 바로 뒤에 서 하품을 쩍 쩍 하고 있는 이안.

‘대체 이놈은…….’

그와 눈이 마주친 조나단은 표정 관리를 위해 안면 근육에 힘을 줘야만 했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던 거냐.”

“한 30분 전?”

“그런데 그냥 구경만 했다고?”

“아니.”

“……?”

이안의 얄미운 대사가 적응되었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저 착각에 불과했던 것이다.

“저 구석에서 잠깐 잤는데.”

“누군 죽다 살아났는데, 그걸 말이라고.”

“흐아아암, 피곤해 죽겠네.”

“방금 전까지 퍼질러 잤으면서……?”

“퀘 한다고 거의 사흘 만에 잔거니까.”

“후, 또 허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조나단은 다시 벽면에 나타난 기계 표범의 입에 망설임 없이 블러드 기어를 꽂아 넣었다.

철컥- 드르륵-!

그러자 그 안쪽의 톱니바퀴가 매끄럽게 맞물리며, 굳건히 닫혀 있던 철문이 양쪽으로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긍- 그그긍-.

쿵-!

그리고 그 앞에서 잠시 티격태격하던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말을 멈추고 게이트의 안쪽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켰다.

철문의 안쪽에 있을 장소가 바로, 이 히든 퀘스트의 진정한 보상이나 다름없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우우우웅-!

어두컴컴한 어둠 속에 잠겨 있던 공간에, 문 밖의 빛이 천천히 스며 들어간다.

이어서 서서히 드러난 공간은 무척이나 특이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다.

성인 남성 둘이 동시에 걷기도 좁을 만큼 협소한 복도와, 그 안쪽에 만들어진 작은 육면체의 공간.

그 공간을 지켜보던 이안의 두 눈이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복도 너머의 어둠 안에서, 책장처럼 생긴 구조물을 희미하게 발견한 것이다.

‘자, 저 안 어딘가에…… 황금빛 고서(古書)가 있을 텐데.’

조나단이 가져온 퀘스트인 ‘고대 연성술의 비밀’퀘스트.

이 퀘스트를 완수하기 위해 필요한 마지막 퀘스트 아이템이 바로 이안이 언급한 황금빛 고서였고.

때문에 그것은 루카크의 밀실 안에 분명히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황금빛 고서라는 아이템을 찾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생긴 낡은 책장에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단 한 권의 책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으니 말이다.

저벅- 저벅-.

복도 안으로 들어가 서책을 발견한 이안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게 그 황금빛 고서라는 물건인가 보군.”

“아마도 그렇겠지.”

이어서 이안의 중얼거림에 대답한 조나단의 표정은 무척이나 상기되어 있었다.

이 서책을 손에 넣는 순간, 일단 퀘스트의 조건은 성립되는 셈이었으니 말이다.

‘이 퀘스트만 완료되면…… 드디어 신화 등급 초월 무기를 써 볼 수 있는 건가.’

물론 서책을 들고 무사히 이 요새를 빠져나가야 된다는 마지막 관문이 있긴 했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자신이 있었다.

몸 하나 빼내는 데에는 암살자만큼 유리한 클래스도 없었으며.

게다가 혼자도 아니고 이안과 함께라면, 크게 어렵지 않을 것 같았으니 말이다.

하여 책장의 앞에 다가선 조나단은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책의 표면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잠깐.”

그것을 집어 들려던 조나단은 멈칫 하고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돌연 이안이 무척이나 진지한 목소리로 그를 불러 세웠으니 말이다.

“잠깐 멈춰 봐, 친구.”

“음? 또 무슨 얘길하려는 거지?”

조나단과 눈이 마주친 이안이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지금 너에게, 한 가지 선택권을 주려 하거든.”

“선택……권?”

그의 반문에 이안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걸 집어 들고 여길 나가는 순간, 너는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신화 등급의 초월 무기를 얻을 수 있겠지.”

“뭐, 퀘스트 보상이니, 당연하겠지.”

이안의 목소리에는 아직도 약간의 장난기가 어려 있었지만, 그것은 이전처럼 가벼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만약 그걸 포기하고 내게 넘긴다면, 내게 더 큰걸 얻어 갈 수도 있을 거야.”

“……?”

“네가 저 무식한 고철 덩어리랑 싸우는 동안, 나는 저 황금고서(黃金古書)의 비밀을 알아냈거든.”

“그러니까 이 퀘스트 템을 너한테 넘기라고?”

“그렇지.”

“내 퀘스트를 포기하고?”

“빙고!”

조나단은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경거망동할 수는 없었다.

지금껏 이안이 보여 준 범상치 않은 행동들과 전에 없던 그의 진지한 목소리가, 뭔가 그의 직감을 건드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 선택.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건가?”

조나단의 물음에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였다.

“물론. 그렇지 않았더라면 지금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겠지?”

“이유는?”

“그 책을 네가 집어 드는 순간, 그건 더 이상 퀘스트 템 이상의 가치를 가질 수 없게 되니까.”

“……!”

조나단과 다시 눈이 마주친 이안이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만약 네가 그 책을 들고 나가야겠다면…… 뭐 아쉬운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약속대로 도와는 줄 거야.”

“으음…….”

“그 책 하나 정도 포기하는 건, 전체를 보면 아주 큰 것도 아니거든.”

이안의 말을 듣던 조나단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그로서는 이해할 방법이 전혀 없었으니 말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안이 지금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척-.

어느새 이안의 왼손에 낯익은 물건이 들려 있었으니 말이었다.

‘이건…… 밀실의 열쇠잖아?’

조나단이 기계 표범으로부터 얻었으며, 이 밀실에 들어오기 위해 사용했던 열쇠인 블러드 기어.

그것과 거의 비슷한 생김새에 푸른빛을 띤 톱니바퀴가, 이안의 손에 들려 있었던 것이다.

‘젠장, 도박을 한번 해 봐?’

그리고 그런 그의 심경 변화를 느낀 것인지, 이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이상은 더 얘기해 줄 수 없어, 친구. 네가 나와 함께하지 않을 거라면, 말해 줄 수 없는 정보거든.”

“…….”

“대신 한 가지 약속할 수 있는 건…….”

조나단을 향해 이야기하던 이안은 돌연 말을 흐리며 오른손을 자신의 투구에 가져다 대었다.

이어서 얼굴을 가리고 있던 황금빛 투구를, 천천히 들어 올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을 걸고, 포기한 퀘스트의 보상보다 훨씬 큰 걸 줄 수 있다는 정도?”

그리고 이안의 말이 끝난 순간, 장내에는 정적이 흐를 수밖에 없었다.

땀과 먼지로 인해 조금 꾀죄죄하기는 했지만, 조나단이 이안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을 리 없으니 말이었다.

이안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조나단은 완전히 굳어 버린 것.

“……!”

그런 그를 향해, 이안이 씨익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거, 흔치 않은 기회라고, 친구.”

“이럴…… 수가.”

“나랑 같이 퀘스트해서, 지금까지 손해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거든.”

그리고 그것으로 조나단은 더 이상 고민할 수 없었다.

‘이안’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지금껏 그가 떠들어 댔던 허세스러운 대사들이 전부 진실이 되어 버리니 말이었다.

척-.

이어서 황금빛 서책 대신 이안이 내민 손을 맞잡은 조나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좋아. 그 말…… 한번 믿어 보도록 하지.”

그리고 이안의 얼굴을 다시 한번 확인한 조나단은 자신이 결정에 후회가 없을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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