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8화 3. 이안과 엘던 (2) >
* * *
이안은 엘던의 뒤를 곧바로 따라 들어간 것이 아니었다.
그가 도서관에 자리 잡고 연구를 시작하는 것을 확인한 뒤, 먼저 협회에 가입부터 진행한 것이다.
그의 머릿속에 그려진 완벽한 설계(?)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일단 협회 소속의 연구가가 되는 것이 필수 조건이었으니 말이다.
“흠…… 이안. 그대는 협회에 가입하기 위해서, 아직 연성술의 수련이 조금 더 필요해 보이는군요.”
“하핫, 제가 아직 부족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지만 여기, 이 추천서를 보신다면 생각이 달라지실 겁니다.”
“음……?”
“세르비안 님께서 제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셔서 이렇게 추천서를 써 주셨거든요.”
세르비안의 추천서와 세 가지 마수 연성 레시피.
이안에게 그것들을 받아 든 협회 관리인은 사뭇 놀란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우선 그의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세르비안의 추천서.
“……!”
그는 세르비안을 잘 알고 있었고, 때문에 그가 이렇게까지 열정적으로(?) 추천서를 써 준 것이 놀라웠으니 말이다.
‘흐음, 연구밖에 모르는 노인네가 이렇게까지 말할 정도라니.’
게다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안이 그에게 건넨 세 장의 마수 연성 레시피들 또한, 관리인의 기대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다.
보통 협회에 처음 가입하는 새내기들의 레시피들은 대부분 협회에서 보유하고 있던 레시피인 경우가 많았는데.
이안이 가져온 세 가지는 어느 것 하나 겹치는 레시피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 때문에 관리인은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것은……!”
“왜 그러십니까?”
“정녕 이런 방식으로 연성이 가능하단 말입니까?”
“실제로 제가 성공하였고, 그랬으니 이렇게 레시피가 되어 있지 않겠습니까.”
“오, 오오……!”
“마음에 드십니까?”
사실 이안이 건넨 레시피들은 그렇게 가치가 높은 것들이 아니었다.
아마 이 레시피들을 유저에게 판매한다면, 1만 골드조차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수준이랄까?
하지만 그것은 유저들의 기준일 뿐이었고, 협회에서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랐다.
유저들에게 제일 중요한 가치는 해당 레시피로 연성된 마수가 ‘얼마나 높은 등급의, 얼마나 강력한 마수일 것이냐.’ 이겠지만.
협회에서 레시피를 볼 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바로 레시피의 창의성과 희귀도였으니 말이다.
협회는 전투와는 거리가 먼 단체였고, 때문에 연성될 마수의 전투력 같은 것은 두 번째 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안은 세르비안의 조언을 통해, 그러한 협회의 성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이것들이 정녕 그대가 직접 연구해 낸 레시피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완성한지는 좀 됐지만…… 특별한 레시피임에는 분명하다 생각합니다.”
“훌륭하군요. 어째서 세르비안이…… 그대를 이렇게까지 칭찬하였는지 알겠습니다.”
하여 이안은 아무런 무리 없이 마수 연성술 협회의 소속으로 등록될 수 있었다.
띠링-!
-관리자 ‘차브르’와의 친밀도가 +5만큼 상승합니다!
-‘차브르’가 당신의 실력을 신뢰하기 시작합니다.
-관리자 ‘차브르’의 승인이 떨어졌습니다.
-‘마수 연성술 협회’에 성공적으로 가입하셨습니다.
-‘마수 연성술 협회’의 공헌도를 7,520만큼 획득합니다.
……중략……
-이제부터 공헌도를 사용하여, ‘마수 연성술 협회’의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협회 소속이 되는 데 성공한 이안이 이어서 곧바로 진행한 스텝은 다름 아닌 ‘엘던’이라는 인물에 대한 정보 수집이었다.
이안이 예상하기로 엘던은 한동안 도서관에 박혀 있을 게 분명하였고, 때문에 조급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당장 그에게 다가가도 어느 정도 정보를 빼 낼 자신은 있었지만, 조금 더 완벽한 설계를 위해 정보를 수집하기로 한 것이다.
‘엘던의 성향을 알아내야 해. 구체적으로 지금 그가 필요로 하는 게 뭔지, 그것까지 알 수 있으면 더 좋겠고.’
하여 이안은 협회에 상주하는 NPC들을 하나씩 공략(?) 하기 시작하였다.
NPC들을 상대하는 데에는 이미 도가 튼 이안이었기에, 그들로부터 정보를 이끌어 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엘던? 아, 고대 연성술에 대해 탐구하던 그 젊은 친구를 말하는가 보군.”
“아, 아시는군요?”
“그 친구에 대해서는 왜 묻는 거지?”
“저도 고대의 연성술에 관심이 엄청 많거든요.”
“오호, 잊힌 고대의 연성술을 연구하는 친구가 하나 더 늘다니. 협회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되겠군!”
“혹시 지크 님은 고대의 연성술에 관심이 없으신가요?”
“하하, 나야 관심은 있지만, 당장 연구 중인 레시피가 많아서 말이지.”
“엘던이 연구하던 레시피도 흥미로워 보이던데…….”
“아아, 맞네. 다크 발록이라고 했던가? 그가 연구하던 레시피…… 확실히 대단한 레시피이긴 했었지.”
이안이 정보를 수집하는 데 쓴 시간은 대략 30여 분 정도였다.
그 정도면 협회 내의 NPC들에게, 한 번씩 말을 거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얻은 정보들을 토대로, 이안은 정확히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후후, 이 정도면 충분해. 이제 엘던인지 하는 그 친구를 구워삶는 일만 남았군.’
머릿속을 빠르게 정리한 이안은 다시 협회 2층으로 돌아가 도서관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역시나 엘던은 그때까지도 책장을 넘기는 데 집중하고 있었고, 그가 가까이 다가갈 때까지도 그의 존재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였다.
하여 이안은 일부러 인기척을 내며 그의 맞은편 의자에 내려 앉았다.
“흠, 흠. 여기 쌓여 있는 책들을 보니…… 당신, 고대의 연성술에 무척이나 관심이 많은가 보군요?”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안이 그려 놓은 ‘설계’의 시작이라 할 수 있었다.
* * *
처음 엘던의 존재를 인지했을 때, 사실 이안은 구체적인 목적을 곧바로 떠올리지 못하였었다.
다만 그가 고대의 연성술을 연구 중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뭔가 관련된 정보들을 뜯어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던 것일 뿐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나자, 이안은 명확한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그에게서 뜯어낼 수 있는(?) 부분이 생각보다 광범위함을 깨달은 것이다.
일단 가장 핵심적인 정보는 바로, 엘던이 아직 ‘고대의 마수 연성술’을 배우지 못한 연성술사이며.
그와 동시에 ‘고대의 마수’를 연성하고 싶어 하는 연성술사라는 점이었다.
엘던에게 가장 필요한 ‘고대의 마수 연성술’ 스킬 북이 지금 이안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이다.
‘후후, 생각보다 더 일이 쉬워지겠는걸?’
이것이야말로 거래에 완벽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최상의 카드인 것!
물론 어둠의 요새에서 얻은 고대의 연성술은 이안도 알다시피 ‘고유’콘텐츠였다.
즉, 이안이 이 스킬 북으로 고대의 연성술을 습득하는 순간, 스킬 북은 완전히 무용한 물건이 되는 것이다.
또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안은 고유 콘텐츠를 엘던에게 넘길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이안이 생각한 것은 바로, 엘던이 연성하려는 그 ‘고대의 다크 발록’이라는 마수를 ‘대리 연성’ 해 주는 것이었다.
‘흐흐, 내가 생각해도 너무 사악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이안의 계획은 간단했다.
먼저 엘던에게 자신이 고대의 연성술을 사용할 줄 아는 연성술사라고 블러핑을 한 뒤, 그로부터 연성술 숙련도를 올리기 위한 마수들과 연성 재료들을 대량으로 요구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뜯어 낸(?) 재료들을 사용하여 단기간에 빠르게 연성술의 숙련도를 올려서, 얼마 남지 않은 ‘마스터’의 숙련도를 달성하는 것이다.
연성술이 마스터에 도달하면 고대의 연성술 스킬 북을 습득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엘던이 원하는 다크 발록을 충분히 대리 연성해 줄 수 있을 테니, 결과적으로 엘던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은 것(?)이 되는 셈 아닌가!
물론 여기서 한 가지.
이안이 꼭 해내야만 하는 과제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엘던에게 자신이 유저임을 들키지 않는 것.
아무리 다크발록을 당장 연성하고 싶은 엘던이라 하더라도, 유저에게 자신의 레시피를 공유해 줄 리는 없었다.
하지만 이안이 NPC라고 생각하는 상황이라면 대리 연성을 부탁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으니.
여기까지 완벽히 해 내야 이안의 설계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다크발록의 연성에 집착중인 엘던은, 이안의 의도적인 접근에도 그 어떤 의심조차 할 수가 없었다.
“아, 제 소개를 먼저 해야겠군요. 난 이번에 새로 협회에 가입한 ‘이안느’라고 합니다.”
“아, 반갑습니다, 이안느 님. 저는 협회 소속의 연구가인 엘던이라고 합니다.”
“그렇군요. 반갑습니다.”
“혹시…… 여기 쌓아 놓은 책들을 보고 오신 건가요?”
“그렇습니다, 엘던 님. 고대의 연성술은…… 무척이나 매력적인 학문이죠.”
미리 엘던에 대한 정보들을 수집해 둔 이안은 청산유수처럼 그와의 대화를 이어 나갔다.
자연스러운 대화 안에서 떡밥을 한 번씩 풀어 주는 것도, 잊지 않으면서 말이다.
“저도 벌써 고대의 연성술을 꽤나 오래 사용하고 있지만, 정말인지 심오한 학문입니다.”
“허억! 고대의 마수 연성술을…… 사용하실 줄 아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엘던. 그러니 고대의 연성술을 연구하고 있지요. 엘던 님도 고대의 마수 연성술사 아니셨습니까?”
거짓말을 하는 것이 조금 죄책감이 들기는 했지만, 이안은 애써 자기합리화를 시전하였다.
‘어쨌든 엘던이 원하는 걸 들어주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 결국 중요한 건 결과물이니까.’
그리고 그런 그의 내면 상태와 별개로, 엘던은 두 눈을 반짝이며 이안의 예상대로 끌려오기 시작하였다.
“전 아직 고대의 연성술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 단서를 찾기 위해 이렇게 공부 중인 것이었고요.”
“하핫, 그렇군요!”
끌어내고자 했던 정확히 그 질문을 순식간에 엘던으로부터 끌어낸 것이었다.
“이안느 님이라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엘던.”
“혹시 저를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인간은 본능적으로, ‘의심’이라는 것을 하는 동물이다.
그리고 그 의심이라는 것은 아무런 이유 없이 먼저 접근해온 사람이 대상일수록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것.
지금의 상황에서 먼저 접근해 온 것은 이안이고, 때문에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는 엘던의 의심을 살 수도 있었다.
해서 이안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엘던이 먼저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가 먼저 꺼낸 이야기라면, 엘던은 어떤 의심도 하기 힘들 테니 말이다.
“흐음…….”
이안이 잠시 뜸을 들이자, 엘던은 더욱 조급한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향해, 이안이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떤 도움이 필요하신지요?”
“마수 연성술을 배우고 싶습니다……!”
“흠, 그것은 저로서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 그렇습니까?”
“저 또한 우연한 기회에 습득할 수 있었을 뿐, 누굴 가르치거나 할 실력이 되진 않거든요.”
“아아…….”
“죄송합니다. 저도 엘던 님께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이안이 말 끝을 흐리자, 엘던은 우울한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여기까지도, 완벽히 이안이 예상했던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 이제 다음 부탁을 해, 엘던! 네가 직접 고대의 연성술을 배워야만 고대의 마수를 연성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풀 죽은 표정이 된 엘던을 슬쩍 응시하며, 이안은 두 눈을 반짝였다.
그리고 잠시 후, 엘던은 결국 이안이 원했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였다.
“그럼 이안느 님.”
“말씀하세요.”
“제게 연성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다면…… 혹시 저 대신 연성을 하나 해 주실 수는 없을까요?”
“연성이라면, 어떤……?”
“제가 꼭 만들어 내고 싶은 마수가 하나 있는데, 그것이 고대의 마수여서 말이지요.”
“아하.”
“고대의 연성술을 사용하시는 이안느 님이라면, 연성이 가능하실 것 같은데…….”
엘던의 이야기를 듣던 이안은 히죽 새어 나오려던 웃음을 겨우 참아 내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하나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