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977화 (978/1,027)

< 977화 6. 다시, 라카토리움 (2) >

* * *

기본적으로 중간계의 타이틀을 달고 있는 모든 차원계는 지상계보다 훨씬 더 방대한 크기를 가지고 있다.

콜로나르 대륙에서 북부 말라카 대륙으로 이어지는 지상계도 물론 광활한 넓이를 자랑하지만.

중간계의 각 차원계는 그 넓이의 최소 5~10배 정도의 규모를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맵이 거대할 수밖에 없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했다.

전 세계 각 서버의 모든 유저들이 모이는 곳이 중간계였으니, 맵의 크기가 지상계보다 훨씬 더 넓은 것이 정상인 것이다.

정령계에선 압도적으로 콘텐츠 진행도가 높은 이안조차도 정령계에 아직 알지 못하는 구역이 있을 정도였으니, 평범한(?) 중간계 입문자들의 입장에서는 정말 미지의 세계나 다름없는 수준인 것.

그리고 고인 물 중 고인 물인 이안에게도, 적대 진영의 중간계인 라카토리움은 미지의 영역일 수밖에 없었다.

이안이 경험해 본 라카토리움이라고 해 봐야, 대도시 루탄을 비롯한 그 인근의 위성도시가 전부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라카토리움’이라는 메시지가 떠오르자마자, 이안은 초긴장 상태가 되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적진 한복판에 뚝 떨어진 셈이었으니 말이다.

띠링-!

-‘라카토리움’으로 이동합니다.

-‘데브라 언덕’에 입장하였습니다.

휘이잉-!

게이트를 통과하자마자 불어오는 날카로운 바람에, 이안은 두 눈을 가늘게 뜬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데브라 언덕’이라는 생소한 이름보다도 그의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새로운 환경이었다.

‘내가 가 봤던 라카토리움이랑은 뭔가 분위기가 다른 느낌인데…….’

이안이 경험했던 루탄 인근의 라카토리움은 지상계로 치면 불모지의 필드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황폐한 사막과도 같은 대지에 솟아 있던 커다란 기계문명의 성(城).

하지만 지금 엘리샤의 게이트를 통해 도착한 곳은 분명히 다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마치 용암에 달궈지기라도 한 듯, 붉게 물든 적색의 바윗덩이들이.

바닥에서부터 하늘 높이까지 수없이 솟아 있는 특이한 지형이었으니 말이었다.

을씨년스런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등, 기존에 경험했던 루탄 인근의 필드와 비슷한 느낌도 분명히 있었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맵의 분위기에 압도될 정도로 위압감 넘치는 필드라는 것.

그리고 카일란뿐만 아니라 어떤 게임에서도 이런 위협적인(?)필드의 난이도가 낮은 경우는 잘 없었으니, 이안은 더욱 예리한 눈으로 필드 곳곳을 살피기 시작하였다.

‘필드 레벨이 어느 정도이려나…….’

그리고 그런 이안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어느새 다가온 엘리샤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곳 데브라 언덕은…… 라카토리움의 ‘수용소’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에요.

“수용소……요?”

-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라카토리움을 지배하고 있는 학파인 ‘찰리스’학파가 자신들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존재들을 가둬 두는 곳이라고 할 수 있죠.

“켁…… 진짜 수용소라는 말이 어울리는 곳이네요.”

-찰리스는 정말…… 잔인하고 파괴적인 인물이죠.

이안은 엘리샤의 설명을 들으면서, 미니맵의 구조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그러자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요소들이 맵 곳곳에 보이기 시작하였다.

‘맵의 좌우상하 구조가 완벽히 대칭형이야. 게다가 곳곳에 솟아 있는 바윗덩이들도…… 엄청나게 인위적이군.’

맵에 대한 정보를 들은 상태에서 다시 구조를 확인하자, 이안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맵의 중심부였다.

마치 커다란 운석이 떨어지기라도 한 듯, 크리에이터처럼 동그랗게 움푹 들어가 있는 데브라 언덕의 정중앙.

머릿속에서 정보들을 정리하고 있는 이안의 귓전으로, 다시 엘리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단 언덕의 꼭대기까지, 경비병들의 눈을 피해 무사히 도착해야 해요.

“언덕의 꼭대기에, 엘리샤 님이 봉인된 곳이 있는 건가요?”

-그건 아니에요. 제가 봉인된 곳은 이 데브라 언덕에서도 가장 깊숙한…… 무간옥(無間獄)이라는 이름을 가진 기계 감옥이죠.

“무슨 사후 세계의 무간지옥 같은 건가요?”

-뭐, 비슷해요. 제가 알기로는 끝없이 이어지는 감옥이라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들었어요.

“그럼 그 무간옥이라는 감옥이 저 데브라 언덕의 중앙에 있나 보네요.”

-바로 맞췄어요. 데브라 언덕의 꼭대기…… 그러니까 저 중앙 부분까지 무사히 도착하면, 뇌옥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무간옥’이라는 감옥의 이름을 들은 이안은 대충 어떤 느낌의 던전일지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하였다.

‘끝없이 이어진 감옥이라…… 왠지 프뉴마 마을의 무한 도장 같은 느낌일 것 같은데.’

인스턴트 형식으로 도장 깨기를 하듯, 끝없이 이어지는 던전의 그림이 이안의 머릿속에 그려진 것이다.

‘다 깨고 맨 끝까지 가면, 갇혀 있는 엘리샤의 본체를 만날 수 있는 건가?’

하지만 이안의 그러한 짐작은 반만 맞고 반은 틀린 것이었다.

“일단 그럼 움직여 보죠. 뭐가 됐든 저 언덕 꼭대기까지 가는 게 먼저일 테니 말입니다.”

-붉은 바위 탑이 여섯 개 모여 있는 위치를 조심하세요.

“넵?”

-그곳이 이곳 경비병들의 전투력을 증폭시켜 주는 마력 증폭기 같은 역할을 하니까요.

엘리샤의 안내를 따라 데브라 언덕의 경비병들을 돌파하고 도착한 던전인 ‘무간옥’은 놀랍게도 인스턴트 던전이 아니었던 것이다.

“조나단……! 측면 어그로좀 빼 줘!”

“루가릭스, 소울 스톰……!”

“엘리샤 님, 태초의 파도!”

무려 초월 150레벨대의 경비병들을 하나하나 돌파하고 도착한 무간옥의 입구.

고오오오-!

그곳은 데브라 언덕의 지하(地下)로 깊게 이어진, 데브라 언덕이라는 맵의 연장선에 있는 일반필드 형식의 맵이었던 것이다.

“허억, 허억……!”

그 때문에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무간옥의 아래를 내려다본 이안은 아찔한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 심연 같은 공간의 안쪽에서, 거대하고 위협적인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올랐으니 말이다.

그리고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입구가…… 안 보이는데요?”

-이곳이 입구예요, 이안 님.

“내려가는 계단이라든가, 사다리라든가…… 그런 건 없는 건가요?”

-당연하죠. 이곳은 감옥이고…… 찰리스는 이 안에 갇힌 누구도 밖으로 나오길 원하지 않으니까요.

“……!”

뇌옥의 입구라는 곳이 그저 지하로 뻥 뚫린 끝없는 절벽일 뿐이라는 점이었다.

하여 이안은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와, 이거 진짜 빡세겠는데.’

발 디딜 곳 하나 없어 보이는 이 뇌옥의 구조는, 필드의 난이도를 지옥처럼 올려 줄 게 분명했으니 말이었다.

‘여긴 대체 어떤 식으로 공략해야 하나…….’

물론 이안에게는 공중전을 할 수단이 많이 있었지만, 비행 가능한 소환수를 탑승한다고 해도 다른 문제가 남아 있는 것.

‘아이언을 타고 내려가는 순간, 사방에서 투사체들이 미친 듯이 날아들겠지.’

이안이 생각할 때 수적인 열세와 부족한 전력을 극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지형적 이점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한데 이 무간옥이라는 맵에서는 오히려 지형적 불리까지 극복해야 할 듯 보였으니.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혀 버린 것이다.

‘하, 레벨이라도 더 올리고 왔어야 했나?’

하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이안은 정신을 다시 바짝 차렸다.

초월 99레벨이 된 이후로는 경험치가 이상할 정도로 오르지 않던 상황이었으니.

레벨을 더 올리고 온다는 선택지는 애초에 불가능했던 것이다.

경험치 게이지 차는 속도로 미루어 봤을 때, 이안의 사냥속도로도 앞으로 1주일 이상 꼬박 사냥해야 겨우 100레벨일 것이었고.

그렇게 시간을 버리고(?) 나면 정령계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넌 뒤일 확률이 높았으니 말이다.

하여 이안은 인벤토리를 뒤지기 시작하였다.

‘내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전력을…… 전부 다 동원해서 공략해 봐야겠어.’

모든 소환수들을 전부 불러 모으는 것은 물론.

지금쯤 균열에서 차원 전쟁을 돕고 있을 가신들까지도 싹 다 그의 앞으로 불러 모으려는 것이다.

띠링-!

-‘군주의 소환서’ 아이템을 사용합니다.

-사용할 시 소멸되는, 1회성 아이템입니다.

-정말 ‘군주의 소환서’를 사용하시겠습니까?

모든 가신을 자신이 있는 곳으로 소환해 낼 수 있는 마법 주문서인 ‘군주의 소환서’를 사용한 것.

우우웅-!

물론 지상계에 있는 가신들까지는 불러올릴 수 없었지만, 적어도 같은 중간계에 있는 가신들까진 소환할 수 있었으니.

그것은 이안의 전력에, 무척이나 큰 힘이 될 것이었다.

카이자르와 헬라임의 합류는 어지간한 랭커가 합류한 것 이상의 전력 보강이었으니 말이다.

쿠구궁-!

“무슨 일이냐, 주인.”

스하아아-!

“부르셨습니까, 폐하!”

각각 자신들의 이미지에 맞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등장한 카이자르와 헬라임.

그 둘을 확인한 이안이,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긴.”

“……?”

“보고 싶어서 불렀지.”

“커헉!”

그의 생각지도 못했던 대사에 두 가신들은 기겁한 표정이 되었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안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자, 그럼 이제 한번 내려가 보자고. 무간옥인지 무간지옥인지…… 뭐, 어떻게든 되겠지.”

비행 가능한 모든 소환수를 전부 소환한 이안은 가벼운 몸짓으로 아이언의 등 위에 올라탔다.

이어서 파티에서 유일한 뚜벅이(?)인 조나단을 불용이의 등에 태워 주었다.

그리고 이안의 파티가 무간옥에 진입하기 직전, 두둥실 이안의 옆으로 다가온 엘리샤가, 무간옥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강철쇠뇌를 조심하세요, 이안 님.

“강철쇠뇌라면……?”

-뇌옥의 곳곳에 설치된 강력한 무기예요.

“그렇군요.”

-한 발만 잘못 맞아도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으니…… 쇠뇌가 보이면 그것부터 파괴하세요.

“또 다른 주의 사항은 없나요?”

-일단 ‘지저갱’까지 도착하는 게 중요해요.

“그건 또 뭐죠?”

-이 무간옥의 바닥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

엘리샤의 이야기를 들은 이안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무간옥의 바닥에 도착하면 그곳에 엘리샤의 봉인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는데, 엘리샤는 마치 그곳이 중간 지점인 것처럼 이야기했으니 말이다.

-무간옥의 바닥을 밟는 게, 공략의 시작이라고 보시면 돼요. 거기부터가 진짜, 지옥의 시작이니까요.

“…….”

엘리샤의 설명에,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어버린 이안.

하지만 의욕을 팍팍 꺾을 법한, 무간옥에 대한 엘리샤의 설명에도 이안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젠장, 뭐 어떻게든 답은 나오겠지.’

던전이 어렵다고 해서 공략하지 않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거니와, 그에게는 엘리샤라는 강력한 치트키가 있었으니 말이었다.

‘정령왕까지 계약시켜 준 이유를 이제 알겠군.’

하여 모든 정비를 마친 이안 일행은 천천히 지저를 향해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어떻게든 이 무간옥 안에서 엘리샤의 봉인을 해제하고, 차원 전쟁을 승리로 이끌리라 다짐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무간옥에 들어서는 이 시점.

이안이 알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 무간옥 안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존재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 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