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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983화 (983/1,027)

< 983화 전장으로 (1) >

기계 제단의 구조는 무척이나 복잡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 내부에서 움직일 때 느껴지는 복잡함일 뿐.

외부에서 거대한 제단의 모습을 본다면, 전체적인 구조는 오히려 단순한 편이었다.

기계로 만들어진 마름모꼴의 구조물이 층층이 쌓여, 마치 피라미드처럼 하늘 높이 뾰족하게 솟아 있는 모형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안이 제단의 꼭대기에 도착하여, 마지막 페이즈에 도달한 순간.

단순한 피라미드의 모형이었던 거대한 기계 제단이, 굉음을 내며 변형되기 시작하였다.

기잉- 기기깅-!

끼긱- 콰앙-!

마치 피라미드가 무너져 내리기라도 하듯 최상층부를 제외한 중상층부가 단계적으로 내려앉기 시작하더니, 푹 꺼진 피라미드의 중심부에, 마름모꼴의 거대한 대전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일련의 과정들을 이안은 긴장하면서 지켜보았다.

이 정도의 퍼포먼스라면 분명 보스 페이즈임이 틀림 없었으니.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전투가 시작될지, 긴장을 늦출 수가 없는 것이다.

이어서 모든 굉음이 잦아들고, 기계 제단의 움직임이 멈췄을 때, 이안은 살짝 의아한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저 안으로 들어가야 되나?’

보스 룸이라고 생각했던 톱니 모양의 철문 위치가 대전장의 바닥으로 이동되어 있었으며, 그 안에 발을 딛는 순간 지하로 떨어져 내릴 듯 보였으니, 다시 한번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이안의 고민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드르륵- 철컹-!

듣기 거북한 쇳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톱니가 다시 움직이며 철문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커다란 대전장의 중심에 거대한 원형을 그리며 천천히 벌어지는 철문.

이어서 이안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기계 제단의 기관이 작동하였습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제단의 가디언이 잠에서 깨어납니다.

-차원 마력의 영향으로, 거대한 자기장이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자기장의 영향으로, ‘기계’타입을 가진 모든 존재가 작동을 중지합니다.

……후략…….

메시지를 확인한 이안은 한 가지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이 거대한 공간이, 보스 룸으로 바뀐 거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또 한 가지의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자기장이라는 건…… 대체 의도가 뭐지?’

사실 이 기계 제단이라는 곳은 기계문명이 만들어 낸 기술의 집약체나 다름없었고, 심지어 이곳을 지키고 있던 거의 모든 NPC들이 기계로 만들어진 존재들이었는데.

모든 기계의 작동을 멈추는 자기장이 보스 페이지에 생성된다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 보스는 기계가 아니라는 건가?’

이안은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리면서도, 대전장의 가운데 벌어진 거대한 톱니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기계 톱니로 만들어진 거대한 홀(Hole) 아래에서부터 거대한 그림자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고.

-다카타루스(신화)(초월)/Lv.200(초월)

“……!”

그 존재를 확인한 이안은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뭐 이런, 미친……!’

마지막 보스 페이지를 지키는 녀석인 만큼 무식하게 강할 것이라는 예상은 했었지만, 그 예상조차도 훨씬 뛰어넘는 괴물 같은 녀석이 등장했으니 말이었다.

‘정령왕이랑 동급이라고?’

일단 신화 등급의 보스인 데다가, 레벨 또한 정령왕과 동등한 수준인 초월 200레벨.

마치 히드라처럼 세 개의 용두(龍頭)를 가진 녀석은 위협적인 눈빛을 띈 여섯 개의 눈으로 이안을 내려다보았다.

-나약한 인간이여…….

‘다카타루스’라는 처음 듣는 이름을 가진 거대한 괴수.

녀석과 눈이 마주친 이안은 점점 더 흥미로운 표정이 되었다.

녀석의 위용에 압도된 것과 별개로, 몇 가지 재밌는 사실들을 발견했으니 말이다.

‘혹시 이 녀석…… 귀룡의 진화 형태는 아닐까?’

일단 다카타루스라는 녀석은 당연하게도 기계가 아니었다.

이것이야 ‘자기장’의 존재를 알게 된 시점부터, 너무 당연히 예상되었던 부분이고 말이다.

다만 이안이 발견한 ‘재밌는 부분’이라는 것은 녀석의 외형에서 발견한 몇 가지 특이점이었다.

‘저 문양…… 분명 카그루스의 등껍질에 새겨져 있던 그 문양이야.’

이 무간옥에 처음 들어서면서 이안 일행이 가장 처음 만났던 간수장인 ‘기계 카그루스’.

녀석은 빡빡이와 비슷한 형태를 가진 분명한 ‘귀룡’이었는데, 이 ‘다카타루스’라는 녀석의 몸체에 카그루스의 등껍질에서 봤던 문양이 새겨져 있었으니, 연관성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약간은 비약일지도 몰랐지만 충분히 의심해 봄 직한 부분인 것.

그리고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다카타루스가 카그루스의 진화 형태일지도 모른다는 가정에 점점 더 힘이 실리기 시작하였다.

등껍질이 없고 머리의 숫자가 세 개 라는 부분 때문에 첫인상이 다른 종(種)으로 인식되었을 뿐.

자세히 보면 볼수록 몸체 곳곳에서, 귀룡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비늘처럼 뾰족하게 돋아난 돌기들도 그렇고, 방패처럼 여기저기 붙어 있는 갑각(甲殼)까지…… 이거 재밌잖아?’

이안이 다카타루스의 형태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귀룡의 진화 형태인 듯 보이는 녀석 자체가 탐나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만약 이안의 짐작대로 녀석이 카그루스의 진화 형태라 하더라도.

진화 전 단계일 카그루스조차도 어디서 어떻게 구할 수 있는지 알아낼 방법이 없었으니 말이다.

다만 이안이 다카타루스에 관심 갖는 이유는 오랜 시간 이안의 파티에서 묵묵히 탱커 역할을 해 주고 있는 ‘빡빡이’ 때문이었다.

카그루스가 빡빡이와 같은 귀룡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했으니.

카그루스가 진화할 수 있다면 빡빡이도 진화할 수 있다는 가정이 성립되는 것이니 말이다.

게다가 빡빡이는 ‘완전체’도 아니었다.

물론 ‘진화 불가’ 꼬리표가 붙어 있기는 하였지만, ‘완전체’가 상위 개체가 존재하지 않음을 뜻한다면, ‘진화 불가’는 상위 개체는 존재하나 진화시킬 수 없음을 뜻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조금이라도 희망적인(?) 사실이었다.

‘이 녀석을 처치하면, 어떤 단서라도 얻을 수 있으려나?’

찰나의 시간 동안 수많은 생각들을 떠올린 이안은 다시 심판 검을 고쳐 쥐고 다카타루스를 올려다보았다.

“네가 이 제단을 지키는 가디언인가?”

-가디언이라…… 그런 하찮은 단어로 나를 칭하다니.

“……?”

-나는 다만 악신(惡神)과의 계약에 의해 잠시 이곳을 지킬 뿐.

“음……? 그게 무슨 말이지?”

-네놈이 궁금하다 한들, 더 이야기해 줄 이유는 없다.

“좀 얘기해 주면 안 됨?”

-어차피 곧 죽을 놈에게, 쓸데없이 길게 얘기하고 싶지 않군.

고오오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다카타루스는 허공을 향해 머리를 치켜들고 포효하였다.

그리고 그런 녀석의 반응에, 이안은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평소처럼 화술(?)을 이용해 정보를 좀 빼내 볼 생각이었는데, 씨알도 먹히지 않았으니 말이다.

‘까칠한 놈 같으니라고.’

다만 녀석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이안 또한 본격적으로 전투 준비를 시작하였다.

‘쉽지 않은 싸움이 되겠어.’

그리고 그렇게, 무간옥에서의 마지막 전투가 시작되었다.

* * *

카일란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요소들은 전부 제각각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

특히 던전이나 퀘스트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은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이유 없이 존재하는 경우가 잘 없다는 이야기다.

그 때문에 이안은 이 보스 페이즈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자기장’이라는 요소를 가볍게 흘려 버릴 수 없었다.

‘분명히 어떤 이유가 있을 거야. 보스 페이즈에 자기장 이라는 걸 깔아 놓은 이유.’

자기장이 흐르는 필드에서는 모든 기계들이 동작을 멈추게 된다.

정확히는 거의 동작 중지와 다름 없을 정도로, 강력한 디버프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을 바탕으로 이안은 한 가지 가정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

‘자기장을 깔아 기계 타입의 접근을 막았다는 건, 이 보스의 약점이 기계 타입일 확률이 높다는 거겠지. 이게 분명 공략법과도 연관이 있을 테고 말이야.’

초월 200레벨의 신화 등급 보스가 가진 스펙은 지금 이안의 전력으로도 상대하기 힘든 수준이라 할 수 있었다.

200이라는 레벨에서 오는 무식한 기본 스텟이 ‘보스’라는 타입에서 한 번, ‘신화’라는 등급에서 한 번 증폭되니, 사실상 일반 몬스터 기준으로는 300레벨이 넘는 수준의 스펙이라 봐도 무방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안은 처음부터 정공법으로 상대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이런 괴물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처치하라고 만들어 두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초월 100레벨 이상이 찍기 쉬운 구조면 모르겠지만 말이야.’

하여 이안은 자신의 가정을 확인하기 위해, 빠르게 탐색전을 시작하였다.

다카타루스에게 피해를 입히려는 목적보다는 녀석의 정보를 최대한 수집하려는 목적으로 전투를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안은 어렵지 않게, 자신이 세운 가정에 대한 확신을 얻어 낼 수 있었다.

-파티원 ‘조나단’이 ‘어둠의 학살자’ 고유 능력을 발동시켰습니다.

-제단의 수호자 ‘다카타루스’가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다카타루스’의 생명력이 172만큼 감소합니다.

-‘다카타루스’의 생명력이 119만큼 감소합니다.

-‘다카타루스’의 생명력이 163만큼 감소합니다.

……후략…….

단일 대상을 상대로는 수십만 단위의 딜을 쉽게 뽑아내는 조나단의 공격이 녀석에게 기스조차 내지 못했으며.

“이런 미친……!”

-제단의 수호자 ‘다카타루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성혼의 낙인으로 인해, 위력이 증폭됩니다.

-‘다카타루스’의 내구도가 165,423만큼 감소합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성혼의 낙인’이 각인되었습니다. (2Stack)

-‘다카타루스’의 내구도가 273,240만큼 감소합니다!

-‘성혼의 낙인’이 각인되었습니다. (3Stack)

반대로 ‘시온’속성을 가진 성령의 심판 검은 녀석의 비늘을 쉽게 뚫고 들어갔으니 말이었다.

-크아아……! 인간이 어찌 성령의 힘을……!

물론 몇 십만 정도의 공격으로 200레벨급의 보스 생명력이 눈에 띄게 깎여 나가진 않았지만, 그래도 확실한 대미지가 들어간다는 점은 확인이 된 것.

‘휴, 예상이 맞아서 다행이긴 한데…….’

하지만 시온 속성의 공격이 약점이라는 것을 찾았다고 해서 녀석을 쉽게 공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녀석은 시온 속성 외에 거의 모든 속성에 대한 저항력을 엄청나게 가지고 있었으며, 이안에게 시온 속성으로 녀석을 공략할 수 있는 수단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었으니까.

성령의 심판 검을 들고 일대일로 녀석을 처치할 수 있을 만큼, 녹록한 상대도 아니었고 말이다.

하여 이안은 한 가지 다른 생각을 떠올려 보았다.

‘혹시 이 필드에 깔려 있는 자기장이라는 걸, 없앨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보통의 유저라면 기계 타입이 아닌 이상 ‘시온’속성의 공격 수단을 가지고 있기 힘든 것이 사실이었으니, 일반적인 유저의 관점에서 공략법을 다시 떠올려 보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을 떠올리기가 무섭게.

뭔가를 발견한 이안의 두 눈에 살짝 이채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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