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4화 전장으로 (2) >
* * *
제단을 지키는 보스 몬스터 다카타루스.
녀석의 속성에 대한 힌트는, 총 두 가지였다.
첫째.
녀석이 등장한 필드에, 기계타입의 존재들을 무력화시키는 ‘자기장’이 흐른다는 점.
둘째.
이안과의 대화에서 다카타루스가, ‘악신’을 언급했다는 점.
이 두 가지 힌트를 통해 이안은 다카타루스의 속성이 데몬이라는 것을 알아내었고, 녀석을 공략할 방법을 하나씩 찾아내기 시작했다.
‘저 특이하게 생긴 장치가 분명, 자기장을 만들어 내는 구조물일 거야.’
이안이 처음 필드에서 발견한 것은, 사방으로 아지랑이 같은 것을 퍼뜨리는 커다란 원형 구조물이었다.
다카타로스의 뒤편에 위치한 이 구조물은 대충 봐도 자기장의 근원지였고.
때문에 일차적으로 이 구조물을, 파괴해 볼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려면 일단, 어그로를 끌어와야 할 것 같은데…….’
사실 표면적으로 봤을 때, 이안에게 자기장을 차단해야 할 이유는 딱히 없었다.
이안에게 딱히 기계 타입으로 만들어진 강력한 소환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자기장을 없앨 수 있다 하여도, 보스 공략에 있어 크게 달라질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안이 구조물을 공략해 보려는 이유는, 다른 하나의 가정 때문이었다.
‘보스 룸 구조상 저걸 파괴하라는 게 기획 의도인 것 같고…… 그렇다면 분명 저걸 파괴했을 때, 새로운 페이즈가 나타날 테지.’
커다란 구체의 형태를 가진 기계 덩어리는, 계속해서 회전하며 무형의 아지랑이를 만들어 내고 있었으며.
그 아지랑이들이 필드 전체에 퍼져 나가,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철조 구조물들을 끌어당기고 있다.
이안은 이 자기장이라는 것이, 비단 기계 타입을 무력화시키는 기능만을 하지 않는다는 가정을 세운 것이다.
‘일단 한번 두들겨 보자. 어차피 일반적인 방식으론, 승산이 희박하니까.’
판단을 마친 이안은, 다시 다카타루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어느새 이안에게 입은 피해를 전부 회복한 다카타루스가, 매서운 눈빛으로 이안을 노려보고 있었다.
-인간이 어찌 성령의 힘을 얻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크롸아아아-!
-그런 알량한 수준의 힘으론, 나를 상대할 수 없을 것이다!
캬아아오오!
다카타루스가 포효하기 시작하자, 자기장에 의해 두둥실 떠 있던 기계 파편들이 강하게 휘몰아쳤다.
이어서 날카롭게 쪼개진 그 쇠붙이들이, 이안을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쐐애애액-!
파파팟-!
거의 광역 공격 기술에 가까울 정도로 넓은 범위에, 촘촘히 날아드는 날카로운 쇠붙이들.
순차적으로 날아드는 그 쇠붙이들을, 이안은 침착하게 쳐 내고 피해내었다.
까강- 티잉-!
-무기 막기에 성공하였습니다!
-피해를 93%만큼 흡수합니다.
-무기 막기에 성공하였습니다!
-무기 막기에 성공하였습니다!
……후략……
이안은 이어서, 망연한 표정으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조나단을 향해 짧게 메시지를 보내었다.
-이안 : 조나단, 저 뒤에 쇳덩이를 좀 부탁해.
-조나단 : 파괴해 달란 건가?
-이안 : 맞아.
-조나단 : 의미가 있을까?
-이안 : 어차피 너, 보스한테 딜도 안 들어가잖아.
-조나단 : …….
아픈 곳을 찌르는 이안의 이야기에 잠시 움찔하는 조나단.
하지만 딱히 틀린 말도 없었기에, 조나단은 은밀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런 그의 움직임을 확인한 이안은, 일부러 다카타루스를 더욱 도발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알량한 공격으로 날 맞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
“머리통은 세 개나 달고 있으면서…… 생각을 좀 하라고, 생각을.”
-이……! 이, 하찮은 인간 따위가!
어차피 지금의 상황에서 다카타루스에게, 위협이 될 만한 존재는 이안 하나 뿐이었다.
때문에 이안이 도발까지 하며 다카타루스를 약 올린다면, 자연스레 조나단이나 다른 소환수들로부터 관심이 멀어질 수밖에 없을 터.
게다가 암살자 랭커인 조나단의 은신 실력은, 이안조차 감탄할 만한 수준이었고.
이안이 기관물 파괴를 조나단에게 맡긴 이유가, 바로 이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스륵-!
조나단의 신형이 완벽히 공간 안으로 녹아든 것을 확인한 이안은, 더욱 공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너, 이제부터, 어디 가서 악신이라는 이름 팔면 안 되겠다.”
-……?
“너랑 계약했다는 그 악신이, 얼마나 창피하겠어?”
-노옴……!
캬아아아-!
다카타루스의 덩치는 오히려 카그로스보다 더 거대했지만, 움직임은 최소 두 배 이상 날렵하였다.
그리고 이 육중한 몸이 이렇게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무지막지한 전투 스텟 덕분일 것이었다.
콰쾅- 콰콰쾅-!
다카타루스가 가진 세 개의 머리가 허공을 휘저으며 입을 쩍 벌리자, 세 줄기의 브레스가 이안을 향해 쏟아져 나왔다.
콰아아-!
그리고 마치 꽈배기처럼 뒤틀리며 뻗어 나오는 세 줄기의 용의 숨결을 확인한 이안은, 순간 조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브레스는 또 처음이네.’
이안조차도 세 개의 용머리가 동시에 쏘아 내는 브레스를 경험한 적은 없었으니.
순간 스텝이 꼬여 역동작에 걸려 버린 것이다.
하여 이안은 어쩔 수 없이, 아껴 두었던 공간 왜곡을 빠르게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공간 왜곡!”
우우웅-!
-고유 능력, ‘공간왜곡’을 사용하셨습니다.
-소환수 ‘빡빡이’와, 위치를 교환합니다.
-소환수 ‘빡빡이’의 고유 능력, ‘절대 방어’가 발동합니다.
……중략……
-소환수 ‘빡빡이’가 ‘다카타루스’의 고유 능력, ‘귀룡의 숨결’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무적’ 효과에 의해 모든 피해가 무효화됩니다.
-‘빡빡이’의 생명력이 0만큼 감소합니다.
-‘빡빡이’의 생명력이 0만큼 감소합니다.
……후략……
그리고 예정에 없던 공간 왜곡을 조금 빠르게 소모해 버리기는 하였지만, 이안은 여전히 침착히 움직이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타겟을 잃어버린 다카타루스의 후방을 재빨리 점하며, 성령의 심판검을 다시 뽑아 든 것이다.
쐐애액-!
예상치 못했던 패턴에 의해 하나의 보험을 소모해 버린 만큼.
그것이 아깝지 않도록 최선의 플레이를 실천하는 것.
브레스 계열의 고유 능력은 보통 숨결을 전부 토해 내기 전까지 다른 행동을 할 수 없는 채널링 타입의 스킬이었고.
완전히 무방비인 이 틈에 집어넣는 공격은, 같은 공격이라 해도 위력 자체가 달랐으니.
의도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딜을 넣기에 최적의 조건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번에는 좀 아플 거다.’
물론 핵심 목적은 조나단이 기관을 부수는 동안 시간을 끌어주는 것뿐이었지만.
그렇다 해서 이런 좋은 기회를 그냥 버릴 이안이 아니었다.
위잉-!
-고유 능력, ‘약점 포착’이 발동되었습니다.
-성령의 심판검의 고유 능력, ‘성령 흡수’를 발동합니다.
-이제부터 60초 동안, 대상에게 시온 속성의 피해를 입힐 때 마다, 현재 생명력의 5%만큼이 회복됩니다.
-성령의 힘이 감응하기 시작합니다.
-성령의 망토의 고유 능력, ‘성령의 보호’가 가동되기 시작합니다.
-이제부터 ‘시온(Zion)’속성의 공격을 할 때마다, 망토에 성령의 힘이 축적되어 실드로 전환됩니다.
-현재까지 축적된 실드 : 0
……후략……
다카타루스에게 파고들 틈이 생긴 만큼, 이안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녀석의 후방으로 뛰어 내렸다.
물론 이안이 아무리 완벽히 공격을 퍼붓는다 해도 녀석의 생명력을 1할조차 깎아 내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이안에게 입는 피해가 커질수록 녀석의 어그로 또한 강해질 테니.
이안이 최대한 공격을 퍼붓는다면, 조나단이 기관을 파괴하는 것이 훨씬 더 수월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다카타루스의 뒷덜미에 내려앉은 이안이, 그대로 심판검을 목덜미에 난도질하기 시작하였다.
-제단의 수호자 ‘다카타루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성혼의 낙인으로 인해, 위력이 증폭됩니다.
-‘다카타루스’의 생명력이 271,902만큼 감소합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성혼의 낙인’이 각인되었습니다. (2Stack)
-‘성혼의 낙인’이 각인되었습니다. (3Stack)
-낙인이 3회 이상 충첩되었으므로, 피해량이 350%만큼 증폭됩니다.
콰쾅-!
-‘다카타루스’의 생명력이 799,542만큼 감소합니다!
-‘성혼의 낙인’이 각인되었습니다. (4Stack)
-‘다카타루스’의 생명력이 801,724만큼 감소합니다!
-‘성혼의 낙인’이 각인되었습니다. (5Stack)
-‘성혼의 낙인’이 최대치까지 중첩되었습니다.
-‘성혼의 힘’이 폭발하였습니다.
-시전자의 생명력에 비례한 고정 피해가 발생됩니다.
-‘다카타루스’의 생명력이 2,071,290만큼 감소하였습니다!
사실 성혼의 낙인을 활용한 검격은, 처음 다카타루스를 상대할 때부터 이안이 시도했던 공격법이었다.
하지만 무방비 상태에서 모든 연계 공격이 완벽히 들어가자, 나타난 위력은 완전히 다른 수준이었다.
전혀 줄어들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던 다카타루스의 생명력 게이지가, 확연히 줄어드는 게 보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캬아아악-! 건방진 노옴……!
하지만 이것이 이안의 회심의 일격이었다면.
이번에는 다카타루스의 반격이 이어졌다.
-제단의 수호자 ‘다카타루스’가, ‘악령의 비늘’ 고유 능력을 발동하였습니다.
고유 능력이 발동되었다는 짧은 메시지와 함께, 다카타루스의 전신에 시꺼멓고 날카로운 비늘이 돋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고슴도치처럼 변한, 다카타루스의 모습.
“……!”
심지어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악령의 비늘을 타고, 강력한 자기장이 몰아치기 시작합니다.
-자기장의 영향으로, 이동속도가 35%만큼 감소합니다.
-자기장의 영향으로, 이동이 제한됩니다!
그 까맣고 날카로운 비늘들에 자기장이 휘감기기 시작하더니, 이안을 비롯한 주변의 모든 물체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미친……!’
저 뾰족한 가시에 닿는다면 지속적인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항할 수 없는 인장력에 조금씩 빨려 들어가는 이안!
마치 떡대의 어비스 홀 같은 다카타루스의 고유 능력에, 이안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어야 했다.
지금 다카타루스가 시전한 공격방식은, 공간왜곡이 있었다면 쉽게 벗어날 수 있는 페이즈였으니 말이었다.
‘으, 역시 공간 왜곡을 너무 쉽게 소모했나?’
하지만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일 뿐.
이안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야만 했다.
‘악령의 비늘이니 분명 데몬 속성의 공격일 거고……. 그럼 보호막으로 어떻게든 버텨 볼 수 있지 않을까?’
‘성령의 망토’의 고유 능력이자, 시온 속성의 보호막인 성령의 보호 고유 능력부터 시작해서, 공격 시마다 생명력을 회복시킬 수 있는 ‘성령흡수’ 고유 능력까지 활용하여.
어떻게든 날카로운 비늘의 지속 피해를 버텨 내면서, 맞딜을 퍼부어 보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 누가 이기나 한번 해 보자……!”
하여 오히려 인장력의 힘을 이용해 다시 빠르게 다카타루스의 등에 올라선 이안은.
악령의 비늘로 인한 피해를 무시한 채,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기 시작하였다.
스릉-!
퍼펑- 퍼퍼펑-!
-‘악령의 비늘’로부터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생명력이 81,920만큼 감소합니다!
-생명력이 91,911만큼 감소합니다!
-생명력이 119,520만큼 감소합니다!
……중략……
-고유 능력 ‘성령 흡수’가 발동합니다!
-생명력을 298,100만큼 회복하였습니다!
-생명력을 281,092만큼 회복하였습니다!
……후략……
처음에는 성령 흡수와 보호막으로 버티려는 이안의 계획이, 어느 정도 먹혀 들어가는 듯 보였다.
악령의 비늘로 인한 피해량보다 성령 흡수로 인한 회복량이, 조금 더 많은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악령의 맹독에 중독되어, 데몬 속성에 대한 저항력이 3%만큼 감소합니다.
-악령의 맹독에 중독되어, 데몬 속성에 대한 저항력이 2.7%만큼 감소합니다.
‘젠장, 점점 더 강해지잖아?!’
저항력이 떨어진다는 메시지와 함께, 비늘로 인한 지속피해가 점점 더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 고유 능력을 지속시키는 동안 이안의 공격을 피할 수 없는 다카타루스의 생명력도, 계속해서 감소하고는 있었지만.
이안의 생명력 수치와 다카타루스의 생명력 수치는, 최소 수십 배 정도의 차이가 나는 것이 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악령의 비늘’로부터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생명력이 150,921만큼 감소합니다!
-생명력이 189,284만큼 감소합니다!
‘젠장, 무슨 방법이 없을까?’
야금야금 떨어져 절반 이하까지 내려온 생명력 게이지에, 이안은 초조한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악령의 비늘의 지속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5분 정도를 버텼을 즈음.
콰아앙-!
커다란 굉음이 전장 전체에 울려 퍼지더니.
이안을 강하게 잡아당기던 비늘의 강력한 자기장이, 천천히 풀리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