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만났네요!”
“어, 안녕하세요?”
나는 본론부터 꺼냈다. 이 가게 실적 좀 채우게 그녀가 대뜸 갖고 싶어 하던 장갑을 사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대가 없는 친절이라 그들은 거절했다. 많은 테라리움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사건을 봐 왔기 때문에 무턱대고 친절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까 포션 상점에서 조언해 주고 도와줘서 고맙다며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며 열심히 장갑을 선물하기 위해 어필했다.
“그래도… 장비들은 포션보다 가격대가 있는데….”
“아뇨, 이 정도야, 뭐. 기분입니다! 하나 골라 보세요! 아니 장갑 말고 다른 걸 고르셔도 돼요.”
“나도 너랑 체격이 똑같았으면 공짜 신발 생기는 건데…. 그냥 하나 골라 봐. 포션 상점에서 보니까 테라리움 행정 관리원 같던데. 행정 관리원은 다 부자잖아.”
“조용히 해! 염치도 없니, 넌?”
그렇게 말하면서도 못내 아쉬운지 그녀는 열심히 만지작거렸던 장갑을 골랐다. 그러더니 다시 내려놓았다.
“정말 좋은 기회긴 해도… 역시 일하지 않고 보상을 받는 건 저희 팀의 이치에 맞지 않네요.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라면 그냥 골랐다.”
“닥쳐.”
보통 사람들은 공짜 좋아하지 않아?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속담이 있는데…. 아쉽네. 실적을 어떻게 채워 드리지.
“저…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상점 주인이 오히려 날 말렸다. 가만…. 사 놓고 이거 내 인벤토리에 저장하지 않고 다른 곳에 쟁여 둔다면…?
“혹시 저희 테라리움과 거래하지 않으실래요? 저희 테라리움이 물품이 많이 부족한 상태라 이런 장비들을 다량 구비해 두면 좋을 것 같은데.”
“…네?”
“품질도 좋고 무엇보다 초보 드루이드들한테 정말 좋잖아요!”
그러네. 이거 전부 사다가 테라리움에 놓고 초보들 오면 제공해 주면 되겠네! 그럼 당장 세계수 가지가 열매를 맺지 않아 열매로 후킹은 못 해도 무료 장비 지원이면 혹할 거 아냐? 이 정도면 엄청난 홍보가 될 거 같은데.
“계약하실래요? 여기 있는 장비들 전부 28번째 테라리움에서 구매할게요! 여기 계약은 상점 주인이랑만 하면 되나요? 아니면 행정 관리원이 껴야 되나요?”
“테라리움 간 교역은 행정 관리원님과 이야기를 하셔야 합니다.”
퍼스널 쇼퍼가 답해 주었다. 그렇단 말이지? 그럼 쇼핑이 끝나면 과수원에 방문해 이야기할 논제가 늘었네.
“와… 저 사람 진짜 장난 아니게 부자인가 봐. 여기 물건을 전부 다 사겠대.”
“야, 잠깐 조용해 봐…. 의뢰의 냄새가 나는데. 저기요…! 행정 관리원님!”
“네? 혹시 생각이 바뀌셨나요?”
“아뇨. 장갑을 그냥 받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것보다 혹시 이 상점과 계약하여 물품들을 전부 구매하시면 어떻게 옮기실 건가요?”
오… 그건 생각 못 했다. 장비들은 아티팩트 가구들과 달라서 내 테라리움 아티팩트를 통해 직통으로 보낼 수 없었다. 18번째 테라리움에서 28번째 테라리움까지 운반해야 되는 것이었다. 이건 생각도 못 했는데….
“호송해야 될 드루이드들을 찾는다면 저흰 어떠신가요? 저희는 이런 호송 의뢰도 몇 번 맡아본 적 있어서 잘할 수 있어요!”
“와 너 머리 잘 굴러간다. 어차피 뒤 번호대로 내려가려고 했는데 겸사겸사 호송 의뢰도 해서 돈도 벌겠다는 거지?”
“닥쳐. 눈치 좀 챙겨. 그렇게 노골적으로 말하면 내가 뭐가 되니?”
“오! 몇 번대 테라리움까지 내려가시는데요?”
“거봐, 다 들었잖아! 나를 속물이라 생각할 거야…!”
“아뇨, 마침 저도 뒤 번호의 테라리움에 볼일이 있어서. 혹시 59번째 테라리움은 안 거치시나요?”
“저흰 40번대 테라리움에 볼일이 있긴 한데, 기간만 상관없으시다면 의뢰로 59번까진 갈 수 있어요!”
이거 잘 만하면 루프의 일도 잘 풀릴 것 같은데?
“와… 그럼 당신들을 고용할게요! 의뢰하려면 어떤 절차가 필요한가요? 뭐 또 찾아가야 할 게 있나?”
“굳이 절차가 필요한가요? 당신이 행정 관리원이시니 마음대로 기간, 의뢰 내용, 완수 조건, 보상만 적어서 배포해 주시면 된답니다.”
내가 직접 퀘스트를 배포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보니 26번째 테라리움 행정 관리원도 나한테 퀘스트를 줬어. 이거 꼭 퀘스트 주는 NPC가 된 기분이다. 최곤데?
계속 상점 내에서 이야기하긴 그래서 장비 값을 치른 후 차후 계약 건이 완료되면 다시 보자고 상점 주인과 약속하고 장비 상점을 나왔다.
퍼스널 쇼퍼에게 부탁하여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만한 곳을 추천받았다. 그녀는 방금 근처 디저트 가게에 예약을 걸어 뒀으며 바로 이동하면 된다고 하였다. 따로 시키지 않아도 척척 수행하는 것이 너무 대단해 보였다.
쇼핑 스토어를 좀 더 걸으니 사람들이 줄을 빼곡히 선 디저트 가게가 보였다. 와 여기 디저트 완전 유명한가 봐, 이거 우리도 줄 서서 들어가야 하는 거 아냐? 그렇게 걱정할 때였다.
“이쪽입니다.”
퍼스널 쇼퍼는 우리를 맨 앞줄로 안내했다. 아무리 VVIP 대접을 받고 있어도 새치기는 양심에 찔린다는 생각을 하려는 찰나. 보통 손님들이 이용하는 입구와 다른 입구로 안내되었다.
“드루이드 여섯 분 맞으시죠? 따로 자리를 마련해뒀습니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입구부터 점원이 나와 우리를 맞아 주었다. 특별 고객들에게 따로 마련된 입구와 전용 룸이라며 퍼스널 쇼퍼가 설명해 주었다. VVIP 짜릿해. 최고야!
디저트는 뭘 시켜야 될지 몰라서 메뉴판 전체를 주문했다. 사람도 많고 내겐 잘 먹는 데이지가 있으니 어떻게든 될 거야. 내 행동에 입을 쩍 벌린 남성이 옆의 여성을 툭툭 쳤다.
“야, 아직 저녁 아니니까 이건 먹어도 되지?”
“좀 닥쳐.”
자리에 앉아 드루이드 파티와 의뢰 이야기를 계속했다. 느낌상 월렛을 사용하면 될 것 같아서 핸드폰을 꺼내 깨웠다. 그러자 그들이 동시에 월렛을 꺼내는 것이 보였다.
아니, 저기요. 제가 아직 익숙지 않아서 곧바로는 못하고…. 너무 성급하신데.
행정 관리 모드로 슬라이드하여 열심히 의뢰와 관련된 조작을 찾았다. 그들은 내가 조작법을 몰라 헤매는 것을 다른 의미로 해석한 것 같았다.
“혹시 맡길 의뢰가 많으신가요?”
글쎄, 뭐가 있을까? 일단 18번째 테라리움에서 28번째 테라리움까지 물품들을 운반하는 것을 호위해 주고 59번째 테라리움에서 루프 가족들의 이사를 호송해 주고. 만약 필라가 가족들과 이야기가 잘된다면 42번째 테라리움에서 그의 가족들의 이사를 호송해 줘야 하기도 한다.
뒤 번호의 테라리움으로 가는 것이라면 엘더의 나비가 그쪽을 향하고 있으니 겸사겸사 엘더 플라워 야생종에 대한 소문도 수집해 달라고 할까? 더 나아가서 우리 테라리움에 거주할 거주민 모집 홍보도 하고….
내가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으며 맡길 만한 의뢰들을 추리고 있는데 드루이드 파티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맡기실 것이 많다면… 그게 뒤 번호대의 테라리움에 많다면… 혹시 저희를 전속으로 고용하는 건 어떠세요? 28번째라고 하셨죠? 세계수의 28번째 테라리움 전속으로 고용해서 저희가 단독으로 의뢰를 전부 수령하면 어떨까요?”
“헐, 그런 것도 가능해요?”
“그럼요! 혹시 길드에 대해서 아세요?”
길드? 아주 잘 알지. 게임에서 유저들끼리 모여서 길드를 이루잖아. 여기서 이렇게 반가운 단어를 듣게 되다니.
아니 혹시 몰라. 나비나 벌처럼 이곳 게임에선 길드가 다른 의미로 쓰이면 어떡해?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알긴 아는데….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네요! 행정 관리원님도 드루이드시니 저희와 길드를 만들어요! 그리고 길드 마스터가 되어 저희한테 의뢰를 전부 넘기시는 거예요! 더구나 행정 관리원이 길드 마스터이면 28번째 전속 길드가 되는 거라 길드 집결지도 자동으로 28번째 테라리움으로 정해지고 저흰 28번째 테라리움이 보증하는 드루이드가 되는 거라 이동도 더욱 자유로워질 거예요!”
“길드 마스터가 길드 설립 자금 전부 내야 하는 거잖아. 너 그거 노린 거지?”
“닥쳐. 눈치 좀 챙겨. 그렇게 노골적으로 말하면 내가 뭐가 되니?”
“행정 관리원이 길드 마스터라… 너무 쉽게 특권을 누리려는 거 같은디…. 이 사실이 퍼지면 우리 말고 유능한 드루이드들이 죄다 몰릴 건디…?”
남자는 오늘 닥치고 눈치 좀 챙기라는 말을 두 번이나 들었다. 하지만 전혀 눈치를 챙길 생각이 없어 보이니 조만간 또 들을 것으로 보였다. 그나저나 길드는 내가 생각하는 그 길드가 맞는 것 같고, 행정 관리원이 만든 길드는 더 특별한가 보다! 많이 배우고 있었다.
“저희도 유능해요! 아, 세상에! 이게 먼저인데! 저희 팀 소개를 해드릴게요! 월렛을 보시면 저희 팀 정보를 전부 오픈해 놨어요!”
난데없이 손목의 테라리움 아티팩트가 진동했다. 그리고 들고 있던 핸드폰의 화면이 휙 바뀌었다. 검은 화면에 붉은 글씨가 크게 박혀 반짝거리고 있었다. 이전에 한 번 경험해 본 적 있었다.
월렛 모드 변경. 스톤헨지 모드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