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2화 (172/604)

당장의 큰일을 해결하고 나니 이젠 내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필드의 가디언이라 불리는 스페셜 등급 드라이어드들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 걸까? 설마 메스키트를 뽑았을 때처럼 무턱대고 열매를 골라다가 나올 때까지 뽑아야 하는 걸까?

하지만 메스키트가 말하길, 모두가 어느 곳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그렇다면 드라이어드의 종류에 대해선 알려 줄 수 없냐고 물었더니 만일을 위해서 서로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제약이 걸려 있다고 했다.

“가디언을 한자리에 모으는 건 세계수의 대리자가 되는 길이기도 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고대의 큰 힘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한답니다. 내 주인, 제이처럼 선한 존재가 그 힘을 얻는 것은 괜찮으나 만약 악한 존재에게 넘어간다면 세상의 멸망을 초래할 수도 있는 힘이에요.”

“세상의 멸망…?”

모처럼 내 드라이어드들이 오붓하게 한데 모여 있었다. 그들은 물론 길드원들까지 메스키트의 앞에 둥글게 몰려 앉았다.

“가디언들의 힘을 일깨우게 되면 필드의 힘을 자유자재로 누릴 수 있어요. 모든 가디언들의 힘을 일깨우게 된다면 세상에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땅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거랍니다.”

나를 비롯한 모두가 할 말을 잃고 멍하니 메스키트를 바라보았다.

“첫째, 해가 보이지 않는데 세상은 불 속에 있는 것처럼 뜨겁다…. 이다음 이야기에 대해선 알고 있죠, 제이? 그건 사실 단순히 묘목들을 겁주기 위한 괴담이 아니에요.”

엘더가 연금탑에서 알려 준 세계의 멸망 징후였다. 나는 계획을 짜기 위해 메모하고 여러 번 보고 외운 그것을 길드원들에게도 이야기해 주었다. 그중 몇 개는 길드원들이 직접 흉내 낸 일들이었다.

“아주 먼 옛날, 필드의 가디언들을 한데 모은 드루이드가 고대의 힘을 마구잡이로 사용하다 균형이 깨지고 결국 세상에 멸망이 도래했다는 전설이 선조로부터 내려오고 있답니다. 그만큼 순례자의 길을 걷는 건 세계의 운명을 맡기는 일과 같아요. 그러니 세계수는 또 한 번 일이 잘못되지 않게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했답니다. 그래서 가디언들 서로가 서로의 정체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규율을 만든 거예요.”

옛날에 이미 스페셜 등급 드라이어드 10그루를 모두 모은 드루이드가 있다니. 또한 그 드루이드가 세상을 한 번 멸망시켰다니.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갈수록 내가 받은 메인 퀘스트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어나더 레벨이라고 느껴졌다.

“모든 스페셜 등급 드라이어드가 전부 가디언은 아닐 거 아냐…?”

메스키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할 순 없다 하더라도 알아볼 순 있어요. 큰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해요. 하지만 제이가 순례자의 길을 걷기로 한 것을 세계수가 알게 된 이상… 세계수는 운명처럼 다른 가디언들이 있는 곳으로 제이를 이끌 거예요.”

자동 길 찾기…? 내가 딴 데로 새면 어쩌려고?

“그러나 그곳이 이미 불타 없어졌다고 전해지는 100번대의 테라리움이 될 수도… 아무도 가 보지 않은 미지의 지역이 될 수도 있어요. 그렇기에 제이는 더욱 강해져야만 한답니다. 제이의 힘이 될 수 있는 사람들도 많이 모아야 해요.”

레벨을 올려라 이거죠? 당연히 그래야죠. 길드도 열심히 크기를 키워야겠네요.

“그럼 제이 님, 다음 행선지는 정해지셨나요?”

쭉 듣고 있던 이리스가 불쑥 물어봤다. 아직까지 달리 생각이 없었기에 고개를 저었다.

“마스터님, 앞 번호의 테라리움에 정보를 얻으러 가는 건 어떨까요? 사람이 많이 모이고 대단한 드루이드들도 많으니 가디언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제퍼가 슬쩍 이야기를 꺼냈다. 앞 번호라는 것은 말로만 듣던 한 자릿수 테라리움을 말하는 거겠지? 엄청난 대형 길드도 있고 투기장도 있다는 이 세계의 대도시 수도 같은 곳 아냐?

“음… 저는 제퍼의 의견도 일리가 있다 생각하지만… 역시나 제이 님은 좀 더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이 님은 개인이 이루기 힘든 업적을 너무 많이 가지고 계세요. 다른 이들에게 노려질 확률이 너무 높아요. 인페르노도 그렇고….”

“그러면 차라리 앞 번호가 낫지 않은가 싶은디. 거긴 치안이 좋잖아. 인페르노의 수장도 앞 번호 테라리움의 눈치는 본다 했으니 더 안전할 거 같은디.”

헤르마가 웬일로 제퍼의 의견을 두둔했다.

“사실 그거에 대해서 정보를 좀 더 모으려고 불러 둔 사람이 있어요. 다들 회의실에서 했던 그거 다시 한번 해 줄 수 있어요?”

“그거요?”

파필리온이 알려 준 16번째 테라리움 내의 인페르노 조직원들을 정리하고 난 후 불러들인 사람이 있었다.

바로 칼롱이었다. 그에게 인페르노 조직에 대한 정보를 들으려고 했지만 계속 사정이 맞지 않았다. 파필리온 이전의 조직의 배신자이기에 16번째 테라리움으로 차마 올 수 없었다고 한 그. 이제 이곳은 완전히 정리됐으니 말벌을 통해 찾아오라고 한 터였다.

잠시 뒤, 여관 직원이 나를 찾는 사람을 미리 일러둔 대로 빈방으로 안내해 놨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내가 묵는 방처럼 큰 방의 응접실에 칼롱이 앉아 있었다. 사람들을 우르르 끌고 들어가니 그가 바짝 긴장한 것이 보였다. 길드원들은 내 부탁대로 인상을 한껏 쓰고 마치 조직원들처럼 뒤를 섰다.

칼롱은 내 존재를 오해하고 있었다. 내게 보스가 있다는 둥 내 뒤로 엄청 큰 조직이 있다는 둥. 계속 오해하게 내버려 두는 것이 좋을 거라 생각했다.

시들링의 역할은 따로 있었다. 얼굴은 최대한 가리고 그의 위협적인 몸집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넌 내가 말 걸면 고개만 끄덕여.”

급하게 공수해 온 커다란 로브를 입고 후드까지 쓰니 시들링은 매우 위험하고 수상한 사람처럼 보였다.

“인페르노에 대해 아는 정보를 모두 불어. 내 보스께서 그 조직의 괴멸을 원하신다. 그놈들은 우릴 잘못 건드렸어.”

하지만 그 역시도 말단에 불과했다. 파필리온 이상의 정보를 내놓진 못했다. 오히려 우리 쪽이 아는 정보가 더 많았다. 그러나 의외의 정보를 얻어 냈다.

“괴멸을 원하신다면 자금책을 망쳐 놓는 것도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혹시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에 대해 아십니까?”

“파라다이스 테라리움?”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의 계획도 차질이 생겼지.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겠지?”

문득 연금탑에서 크레아시온이 어닝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지상 낙원이라 불리는 곳입니다. 하지만 암암리에 회원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아는 사람만 아는 곳입니다. 그곳엔 온갖 희귀한 꽃들과 드라이어드들이 있어 관람을 즐길 수 있고 드라이어드들이 벌이는 다양한 쇼가 있어서 볼거리가 가득하다고 합니다. 다이아가 많은 사람들이라면 기꺼이 많은 다이아를 지불하고 방문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팸플릿 하나를 꺼내 내게 주었다. 그림 하나 없는 검은 배경의 팸플릿엔 붉게 빛나는 글씨로 ‘지상 최대의 낙원, 아름다운 볼거리가 가득한 식물원, 최고의 휴양지로 당신을 초대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설마… 드라이어드들을 대상으로 한 동물원 같은 느낌인가? 이 조직은 대체 어디까지 선을 넘을 작정이지?

이리스를 슬쩍 바라보았다. 들어본 적 있냐는 눈짓에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많은 여행을 다닌 이리스조차 모르는 곳이라….

“장소는?”

“상당히 번호가 큰 뒤 번대 테라리움이라고만 알고 있습니다. 이미 불타 없어졌다고 전해지는 곳입니다.”

“테라리움에서 이런 일을 버젓이 벌이고 있다고?”

“이미 전소된 테라리움은 더 이상 앞 번대 테라리움의 주시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칼롱은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에 대한 정보의 대가로 많은 다이아를 받고 떠났다.

난 그가 남긴 팸플릿을 들고 고민했다. 제퍼와 헤르마의 의견처럼 앞 번대 테라리움을 방문할 것인가? 아니면 인페르노의 세력을 줄이기 위해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을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을 찾아 떠날 것인가?

“번호가 크다고 했죠? 심지어 이미 불타 없어졌다는 뜻은 70, 80번대 이상까지 내려가야 할 수도 있어요.”

이리스가 내심 반대 의견을 피력하며 말했다.

“드라이어드를 관람하고 드라이어드로 쇼를 벌이는 곳이라뇨. 드라이어드는 관광 상품 같은 것이 아닙니다!”

제퍼가 드물게 흥분하며 소리쳤다. 그의 말엔 동의한다.

하지만 단순히 정의감에 불타서 목표로 삼기엔 내겐 너무 난도가 높은 곳이었다. 당장 내가 그곳을 방문해도 어떻게 망쳐 놓을 건데?

그러고 보니 인페르노 수장은 스케어크로우를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에 이용하려고 했지. 왜 그녀일까?

28번째 테라리움과 스케어크로우를 노리려던 이유, 그것이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에 있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조직의 간부급인 파필리온에게 이에 대해 물었었다. 하지만 크레아시온과 다르게 그는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그의 영역이 아니기에 존재만 알지 자세한 사항에 대해선 모른다고 했다.

도움이 안 되는 놈이라 야근령을 내렸다. 밤새워서 직무를 처리해라. 내가 16번째 테라리움을 떠나기 전 안정화된 모습은 보고 떠나야 하지 않겠느냐.

앞 번호와 뒤 번호 테라리움을 두고 고민한 다음 행선지에 대한 결과는 의외의 곳에서 얻을 수 있었다.

내가 갈 곳을 운명처럼 세계수가 이끌 거란 메스키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친히 꿈을 내려 줬기 때문이다.

꿈에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름 모를 드라이어드들이 나왔다. 그들이 뜻하는 의미는 명확했다.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으로 가야 한다.

단순히 그들을 구해 달라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온갖 희귀한 꽃과 드라이어드들이 있는 곳이라고 했다. 설마 가디언 드라이어드가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닐까?

결국 다음 날 행선지를 알리자 길드원들은 무척이나 걱정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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