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6화 (216/604)

메스키트가 모감주나무에게 물었다.

“이곳에 덩굴형 드라이어드가 있나요? 허브가 아닌 당신도 있으니 덩굴 식물도 있을 법한데.”

“…저처럼 외부에서 섬으로 흘러 들어와 섬 가장자리에서 태어난 드라이어드가 있긴 합니다. 덩굴이라면 호자덩굴과 왕모람이 맞을 테니…. 불러올까요?”

메스키트를 대하는 모감주나무의 태도는 우리를 대할 때와 천지 차이였다. 기고만장하고 호전적인 성격을 꾹 누르고 아주 예의 바르게 메스키트를 대했다. 심지어 존댓말도 사용하잖아?

“둘뿐이라면 그 둘이 힘을 많이 내 줘야겠군요. 한시가 급하니 저곳으로 당장 와 달라고 전해 주세요.”

그 말에 모감주나무가 발레리안 아이들의 등을 걷어찼다.

“뭐 해? 당장 뛰지 않고?”

“아, 알았어!”

“호자덩굴이랑 왕모람을 찾아오면 되는 거지? 금방 갔다 올게!”

아이들은 부리나케 어디론가 뛰어갔다. 직접 갈 줄 알았더니. 정말 가까이하기 싫은 성격이다. 상황이 달랐다면 한 소리 하고 싶었다.

“그럼 우린 지도에 있는 섬을 찾아갈게. 하지만….”

모감주나무는 눈살을 찌푸리며 우릴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네 말처럼 우리에게 호의적이지 않을 수 있어. 전투를 해야 될 수도 있겠지. 그런데 우린 겪어 봐서 알겠지만 전투에 그렇게 강하지 않아. 만약 우리가 그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다면….”

“실패한다면?”

“섬에 돌아오지 않을 거야.”

“뭐?”

“모두 괴물의 저주 때문에 죽는다며? 괴물을 피해도 해일에 휩쓸린다며? 죽을 것이 뻔한데 뭐 하러 섬으로 돌아오겠어? 차라리 다른 터전을 찾겠어.”

“너흰 양심도 없니?”

“그게 뭔데?”

아니, 너무 모감주나무다운 말이라서 어이가 없었다. 하긴, 이곳의 드라이어드들은 마을 사람들과 유대감이 전혀 없어 보였다. 오히려 그들 중 드루이드가 태어나면 사냥을 했다고 하니 적대 관계에 가깝겠지.

그들에게 마지막까지 불을 막으며 버텼던 가막살나무 정도의 의리를 기대하기엔 어불성설이었다.

어쩌면 명답이긴 했다. 죽느니 차라리 돌아오지 않는다.

“시키는 대로 하긴 할 거야.”

하, 차라리 나나 시들링이 동행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괴물의 전력도 제대로 모르는데 로웰라까지 안전하게 구조하려면 우린 협력해야 했다.

차라리 애드너에게 미지의 섬을 찾는 일까지 부탁한다면….

잠깐, 그 배에 드라이어드와 말이 통하는 사람이 없잖아? 하마터면 드라이어드들만 덜렁 보내서 서로 의사소통도 안 된 채 시간만 허비할 뻔했다.

“지도 줘 봐.”

레몬밤이 신전에서 찾아냈다는 지도는 미지의 섬으로 추정되는 곳에 X 표시가 있고 은둔자의 정원에서부터 가는 길이 점선으로 이어져 있었다.

내가 애드너의 조타실에서 봤던 지도들에 비하면 매우 조악한 수준이었다. 애들이 만든 보물찾기 지도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이걸 보고 제대로 찾아갈 수나 있을까 싶었다.

“대체… 넌 이 지도를 보고 어떻게 찾아갈 마음이 든 거야?”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모감주나무는 씨앗을 감싼 잎을 띄워 온 바다를 떠돌며 기어코 싹을 피워 낼 땅을 찾아내는 나무야. 방향을 알고 그곳에 땅이 있다는 걸 안다면 무조건 도달할 수 있어. 이 녀석들도 그렇고.”

그녀는 제 뒤에 선 드라이어드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바다를 떠도는 씨앗이라…. 설명을 들으니 애드너처럼 선장의 복장을 한 모감주나무의 모습이 이해가 갔다. 성격만 더럽지 않았다면, 다른 상황에서 만났다면 항해와 모험을 하는 낭만적인 나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말하니 자기가 섬을 찾아 떠나겠다고 한 레몬밤이 참 대책 없이 느껴지잖니.”

내 말에 레몬밤이 울상이 되어 고개를 숙였다.

종이를 여러 장 꺼냈다. 그리고 지도의 뒷면을 펼쳤다. 이곳의 상황과 어떻게 행동해 주었으면 하는지 등등.

각각에 애드너에게 전할 말들을 빠르게 적었다. 정 필요하다면 28번째 테라리움의 행정 관리원인 내 지위를 이용해도 좋다는 말도 덧붙였다. 글을 끝마쳤을 때였다.

갑자기 아티팩트를 채운 왼팔이 희미하게 금색으로 빛났다. 깜짝 놀라 소매를 걷으니 나뭇가지 모양의 문신에서 빛이 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뭐야, 갑자기 왜 이래? 가드닝 스킬을 사용할 마음을 먹지도 않았는데? 애초에 여기서는 사용할 수도 없고.

문양은 팔에서 붕 떠올라 느리게 회전하더니 실타래처럼 한 가닥씩 돌돌 풀려서 내가 글을 적은 종이들로 날아갔다. 평범한 종이와 다를 바 없던 것들이 순식간에 금빛을 내며 모습을 탈바꿈했다.

나무줄기가 휘감긴 금빛 테두리가 생기고 하단엔 나무 문양의 마크가 찍혀 있었다. 그 안에 자리한 숫자 28.

그리고 내가 작성한 적 없는 문구가 각각 종이와 지도 뒷면에 추가되어 있었다.

세계수의 28번째 테라리움의 안위를 위하여, 귀하에게 28번째 테라리움의 행정 관리원 대리인 자격을 부여합니다.

지정 대상자: 애드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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