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3화
(293/604)
29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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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 밑에 쭈그려 앉아 무릎 위에 책을 올렸다.
바닥은 허옇게 눌러 붙은 흙 발자국과 무거운 것이 질질 끌려 검게 남은 스크래치로 더러웠지만, 구석진 이곳이 사람들이 몰려 앉은 책상보단 조용했다.
책 커버를 손가락으로 조심히 쓸어내리니 길게 자국이 남았다.
반면 장갑 위엔 하얀 먼지가 선명하게 콕 찍혔다.
“에이 씨… 더러워….”
책이 오래되어 색이 바랜 줄 알았더니 먼지가 쌓여 있었던 거구나….
커버를 넘기니 뜨드득, 하고 뭔가 뜯기는 소리가 나기에 깜짝 놀랐다.
올록볼록 습기를 먹은 종이가 발버둥을 친 흔적이 역력한 첫 페이지엔 저자의 말이 담겨 있었다.
이 책은 내 딸이 보고 전해 준 내용을 토대로 탄생했다.
가출을 결심하고 집을 나가 오랫동안 실종 상태였던 내 어린 딸은 여러 날이 지난 후에야 겨우 집으로 돌아왔는데,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장소에서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 한다.
딸은 심신이 피로한 상태였기에 보고 겪은 상황에 완벽하게 진실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놀라운 상상력만큼은 허투루 흘려보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