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2화 (372/604)

사실 행정 관리원이 나서서 모두 거짓이었다고 해명하면 해결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자는 죽어 가던 테라리움이 활성화되자 욕심이 생겼던 모양이다.

사람이 몰리자 경제가 활성화되고 물자가 유통되며 거리엔 활기가 돌았다.

어차피 아무리 땅을 파 봤자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면 자연스레 논란은 종식될 테다.

그렇기에 몰려든 이들이 실망하고 모두 돌아가기 전, 행정 관리원은 이 특수를 노려 바짝 벌고 싶었던 것이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무리하게 가정집들을 여관, 주점, 상점 등으로 개조하고 우리 테라리움에선 사파이어가 생산된다며 대대적으로 홍보에 나섰다.

집에 도둑이 드는 큰일을 겪은 데다 논란의 중심이 되어 숱하게 귀걸이를 팔라는 제의에 시달렸던 우리 가족은 최대한 조용히 살고 싶었지만, 과수원은 우릴 가만 두지 않았다.

행정 관리원은 우리 엄마에게 제안했다.

가보기 때문에 절대 팔지 않겠다는 의견을 존중해서 팔라고 생떼를 부리진 않을 테니, 대신 가지고 있는 사파이어 귀걸이를 대외로 내보이며 홍보 인사로 나서 준다면 앞으로 먹고살 일은 걱정하지 않게 해 준다고.

물론 엄마는 요구에 맞춰 적당히 보물 사냥꾼들이 듣고 싶어 할 만한 달콤한 거짓말을 해야만 했다.

어느 날 광산 근처를 지나다 우연찮게 희귀한 푸른 보석을 두 개나 줍게 됐다고.

귀걸이다 보니 엄마가 가지고 있는 사파이어도 두 짝인지라, 아무리 다이아가 많아도 보기 힘들다는 보석이 둘씩이나 존재하니 파급이 엄청날 것이다.

엄마는 끝까지 거절했지만 끝내 행정 관리원이 제시한 카드에 굴복하고 말았다.

가장 첫 번째는 우리 가족의 안전에 대한 보장이었다.

어떠한 값을 내걸어도 팔지 않겠다는 엄마에 맞서 몇몇 이들이 귀걸이를 무력으로 뺏으려는 기미가 슬슬 보였다. 어쩌면 또 도둑이 들 수도 있고.

그러니 보안이 견고한 집과 안전을 지킬 경호 인력을 제공해 주겠다고 했다.

더욱이 그녀가 우리 세 자매에 대한 교육열이 대단하단 걸 어떻게 알아냈는지, 테라리움에 규모는 작으나 도서관을 설립하고 비록 일주일에 한 번뿐이지만 외부에서 초청 강사를 데려와 강의도 열어 주겠다고 했다.

엄마는 결국 자식들의 안전과 미래를 선택했다.

그 후 우리 가족은 광산 근처에 행운의 집이라 명명한 새 집을 받고, 엄마는 틈틈이 사파이어 귀걸이를 달고 테라리움을 돌아다니며 행운의 주인공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우린 울적한 표정을 하고 억지로 거리를 나서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더욱 이를 악물고 공부에 매진했다.

엄마의 고생에 보답하기 위해선 도서관의 모든 책들을 정독해도 모자랐다.

놀기 좋아하는 첫째 언니도 불평불만 없이 해가 질 때까지 도서관에서 살았다.

시간이 갈수록 보석을 드라이어드에게 선물하고 싶어 하는 드루이드는 물론, 보석 세공인을 잔뜩 대동한 이름난 보석상에 길드원들을 끌고 온 대형 길드까지 방문하자 테라리움은 점점 더 북적북적해졌다.

그리고 몇 해를 넘겼을 때,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기업이 광산의 소유권을 통째로 사들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시간이 갈수록 사파이어의 흔적조차도 발견한 사람이 없자 열기가 시들시들해질 무렵, 애가 탄 행정 관리원이 정체도 모르는 단체에 덜컥 소유권을 팔아 버린 것이다.

광산에서 거칠게 사람들을 내쫓는 모습을 보며 불안한 느낌을 받았을 때, 우린 떠났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할 수 없이 지금 테라리움보다 더욱 뒤 번대로 내려가게 되더라도 그곳을 떠났다면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텐데.

광산을 통째로 소유한다고 한들 원래부터 없던 사파이어가 나올 리는 없었다.

인부들을 잠을 재우기는 하는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하루 내내 시끄러운 채광 소리가 울려 퍼졌으며, 광산을 점거한 이들은 시시때때로 테라리움을 돌아다니며 보이지 않는 성과 때문에 행패를 부렸다.

더구나 우리 가족들에게 틈만 나면 위협하며 진실을 말하라는 통에 최대한 집과 도서관 밖으로 나가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몇 대의 대형 마차가 줄줄이 광산에 당도하는 것을 발견했다.

의심스러운 통이 잔뜩 실려 있었으나 이미 테라리움 내에서 경제 주도권과 세력을 잡은 이들을 말릴 수 있는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미 과수원의 대부분을 매수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결국 그들은 투자한 비용의 본전이라도 회수하기 위해 몸이 달아 광산을 통째로 뒤엎으려는 무모한 계획을 실행에 옮겼고, 이 사실을 알아차렸을 땐 이미 늦었다.

콰쾅!

바로 옆에 천둥 번개가 내려치는 듯한 엄청난 굉음이 세상을 울렸고 무언가 강하게 내 귀를 내려쳤다.

그 뒤로 웅웅거리는 기이한 소음 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집 위로 거대한 바위가 떨어져 내렸고 순식간에 난 언니들과 함께 잔해 속에 매몰되었다.

쓰러지지 않은 기둥이 간신히 무너져 내리는 잔해를 받쳐 균형을 이뤄 준 덕에 즉사는 면할 수 있었다.

흐릿한 시야로 둘째 언니인 디케는 간신히 몸을 보전한 것이 보였지만… 그녀는 어쩐지 감은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뻐끔거리는 입은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고 있었으나 난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첫째 언니도 다행히 무사한 것이 보였다. 다만 그녀는 정신을 잃었는지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부모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와 달리 주방에 계셨고… 그 방향은 완전히 무너져 내려 본래의 형태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갑작스러운 사고에 슬픔을 느끼기 힘들 만큼 머릿속이 엉망이었다.

소음과 붕괴 다음은 엄청난 열기가 우릴 덮쳤다.

폭발의 여파로 근처에 큰 화재가 발생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당장 우리에게 숨이 붙어 있다 하더라도 몸을 피할 수 없었다.

둘째 언니가 눈을 감은 채 여기저기를 손으로 더듬더니 마침내 쓰러진 첫째 언니를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

그녀가 미친 듯이 흔들어 깨운 결과, 다행히 첫째 언니는 정신을 차렸다.

폭발 직후에 큰 타격을 받은 우리와 달리 언니는 당장 큰 부상은 보이지 않았고 상대적으로 괜찮아 보였다.

드드득.

피부에 오싹한 진동이 느껴져 위를 올려다보니 기둥이 만든 아슬아슬한 균형이 깨어지려는 것이 보였다.

기둥 하나로 집을 덮친 잔해의 무게를 버티기엔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곧 있으면 마지막 희망인 기둥마저 부러져 우리도 부모님을 따라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절망적인 순간, 첫째 언니는 나와 디케를 강하게 끌어안고 다급하게 손을 잡아당겼다.

그녀는 펼친 우리의 손에 각각 푸른빛을 띠는 작은 물건을 하나씩 올려 주었다.

이 일의 원흉, 모든 불행이 시작된 꼴도 보기 싫은 끔찍한 물건.

엄마가 소중히 여기던 사파이어 귀걸이가 한 짝씩 우리의 손에 놓였다.

요 며칠 엄마의 귀에 저것이 보이지 않는다 했더니…. 첫째 언니에게 물려주셨나 보다.

그녀는 우리를 똑바로 바라보며 무어라 소리쳤다.

하지만 난 제대로 들리지 않았고 이를 알아들은 디케는 강하게 반발하며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아마도 첫째 언니가 가당치도 않은 끔찍한 발언을 한 것이 분명했다.

우리를 품에서 놓은 그녀는 갑자기 기둥을 향해 달려가더니 팔을 뻗었다.

세 자매 중 월등히 키가 커서 옥수수란 별명으로 불렸던 그녀는, 마지막으로 키를 재었을 때 기둥의 3분의 2에 금을 그을 만큼 자라 있었다.

팔을 쭉 뻗으니 기둥의 높이에 비견했고 그녀는 스스로 기둥을 대신해 무너지려는 잔해를 떠받쳤다.

디케가 애타게 그녀를 부르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끝까지 첫째 언니는 우리를 돌아보지 않았다.

마침내 결심한 것인지 디케는 움직이기 힘든 날 부축한 채 탈출구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를 손으로 더듬기 시작했다.

나 역시 없는 힘을 쥐어 짜내 디케가 탈출구를 찾을 수 있도록 말과 몸짓으로 손짓으로 유도했다.

겨우 빠져나갈 만한 틈을 발견했지만, 아무리 틈이 커도 빠져나오기 위해선 무리를 해야만 했다.

날카로운 파편에 살갗이 사정없이 긁혔지만 오히려 고통이 아득해지려는 정신을 붙잡았다.

먼저 빠져나간 디케가 있는 힘껏 날 끌어당겨 간신히 무너져 내린 집에서 빠져나왔을 땐, 쌓인 돌무더기의 높이가 훌쩍 낮아져 버렸다.

첫째 언니는 끝내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게 우리 가족의 마지막이었다.

난 마지막을 고하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고 디케는 마지막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없었으며, 첫째 언니는 마지막 인사와 함께 다신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

“언니…. 첫째 언니….”

드디어 공기를 무겁게 내리누르던 침묵이 깨졌다.

나는 엘더를 놀리다 말고 화들짝 놀라 그에게서 떨어졌다.

진중한 분위기 속에 더 이상의 장난은 무리였다.

그런데… 방금 에이레네가 첫째 언니라고 했지? 디케를 향해 말한 것 같진 않은데.

“네? 저요?”

“에이레네….”

당황한 에우노미아와 디케의 목소리가 곧바로 따라왔다.

에이레네는 무거운 침묵 속에서 운을 떼는 데엔 성공했지만 쉽사리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더욱 생소해 보이는 에우노미아의 반응에 갈피를 잃은 걸지도 모른다.

나라도 누군가 갑자기 내게 첫째 언니라 부르면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런데… 왜 에우노미아를 그렇게 부르는 거지?

그렇다면 혹시….

“우리 기억나지 않아? 첫째 언니 에우노미아, 둘째 언니 디케랑 막내 에이레네, 이렇게 셋이 잘 지냈었는데.”

“…죄송하지만 사람을 착각한 게 아닐까요? 전…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아요. 제가 비록 기억을 잘 잃는다 하더라도… 어떻게 가족까지 잊겠어요?”

“하지만 세월이 흘러 모습이 변했다 하더라도 내 기억 속의 언니 모습 그대로인 데다… 이름까지 똑같잖아.”

힘들게 말을 잇던 에이레네가 품을 뒤지더니 무언가를 꺼냈다.

“이거 혹시 알아볼 수 있겠어?”

멀리서 그녀가 꺼낸 것을 제대로 확인하긴 힘들었지만 얼핏 푸른빛을 본 것 같다. 보석일까?

“디케에게도 나머지 한 짝이 있어.”

그 말에 디케 역시도 품을 뒤져 같은 것을 꺼내는 게 보였다.

“보석? 음… 모양으론 귀걸이 같은데.”

에우노미아는 흥미로운 얼굴로 두 자매가 함께 꺼낸 물건을 살펴봤다. 하지만 흥미, 그 외에 감정은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에 결국 에이레네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에우노미아의 반응은 그녀가 기대했던 것을 충족해 주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실망, 하지만 안도가 섞인 눈물이 서럽게 그녀의 볼을 적시고 있어서 더는 이곳에 머물러 있기 힘들었다.

눈치껏 자리를 비켜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드원들 역시 내 생각에 동의하는지 다들 황급히 자리를 치우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언니가 맞는 것 같아….”

가슴을 아프게 울리는 마지막 말을 뒤로하고 우린 방을 빠져나왔다.

아마도 그들의 이야기가 풀리는 데는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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