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27화 (427/604)

게임 속이 아닌 내 생활은 정해진 틀에 박혀 있었다. 강의, 과제, 논문, 자격증 시험 준비, 과외, 취업 준비 등등.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유롭게 모험을 떠났던 내 몸이 금세 적응이라도 해 버린 것인지 평범하게 단조로운 일상생활을 보내는 동안 비명을 질러 댔다. 단순히 하루를 보냈을 뿐인데도 말이다.

더구나 맑지 않은 공기는 끔찍하고 초록이라곤 겨우 가로수들이 전부인 세상 속에서 활력마저 메말라 버리는 기분이다. 불에 의한 위협 따윈 없는 평화로운 곳인데도 속은 답답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약한 두통이 날 괴롭혔다.

막 집에 돌아온 그날, 갑자기 게임 속 세상과 현실에 대한 괴리감 때문에 고민하다 당장은 정보 수색에서 손을 놓았다. 내 드라이어드들과 길드원들이 날 기다리고 있다는 게 걱정 되도 게임이라는 장벽이 날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게임 속에서 엄청난 전쟁을 벌여도, 수많은 NPC와 인연을 맺고 애틋함을 길러도, 짜릿한 전투를 즐겨도… 전부 장치를 끄면 끝이었다. 게임 속 삶은 그저 바깥의 삶에선 취미에 해당하는 영역이었다.

아무리 그곳에 돌아가고 싶다 하더라도 현실로 돌아온 순간부턴 현실에 충실해야 했다.

좋아하는 게임을 밤새도록 하고 싶어도 아침이 되면 강의에 출석해야 하고 과제는 쌓이며 일주일에 두 번 있는 스터디 그룹은 지각비를 받으니, 더욱이 게임에 할애할 시간 따위는 없어지는 거다. 곧 졸업반인 내게는 잠잘 시간도 사치였다.

어쩌면 난 강제적으로 게임을 끌 수 없는 상황에 내던져졌기에 더 열정적으로 즐길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런데 난 단지 게임을 즐겼던 것뿐일까? 내가 돌아가도 되는 걸까? 반드시 돌아가야 하는 걸까?

힘들게 이른 아침부터 잠에서 깨어나 등교를 해야 한다는 현실이 어지간히 힘든 탓인지 내가 느끼는 감정의 무게는 현실 쪽에 좀 더 치우쳐져 있었다.

“꽁제! 어제 강의 전부 자체 휴강했더라? 무슨 일 있었어?”

한 손엔 아메리카노를 든 채 활기찬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는 사람, 내 동기 혜리였다.

“그냥….”

“뭐, 별일 없었으면 됐고. 교수님들께는 너 그냥 아프다고 했어. 평소에 출석률 좋으니까 그냥 봐주셨어. 그나저나 너 원래 핸드폰은 어쩌고 그걸 쓰는 거야?”

혜리의 시선이 액정이 깨진 내 핸드폰을 향했다. 현재 쓰는 핸드폰 이전에 쓰던 것이었다. 지금 핸드폰은 맛이 갔으니 급한 대로 서랍 속에 잠들어 있던 걸 찾아다 유심만 바꿔 끼우고 사용 중이었다.

“전에 쓰던 건 고장 났어. 고칠 때까지 잠깐 쓰려고.”

“그걸 또 고쳐서 쓰려고? 그냥 새로 하나 사는 게 낫지 않아?”

혜리는 내 옆자리에 앉자마자 핸드폰을 꺼내 가로로 쥐었다. 그녀도 나처럼 모바일 게임을 즐겨했기에 동기 중 가장 친했다. 그녀의 화면에 뜬 게임은 나도 아는 게임이었다.

“아, 너 혹시 내가 자주 하던 게임 기억나? 어제도 나한테 아직도 그 게임 하냐고 징하다고 했잖아.”

혹시 혜리는 기억할까? 그녀는 내가 <무한 다이아>를 오랫동안 한다는 걸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내게 <테라리움 어드벤처>를 소개시켜 주고 사전 예약을 강요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뭐? 어떤 게임? 네가 자주 하던 게임이 한둘이 아니어야지.”

“그 막… 난쟁이들이 광산에서 다이아 캐고 그런 게임 있잖아.”

“글쎄…. 내 기억엔 없는 것 같은데. 뭐 새로운 게임 시작했어? 그거 재밌어?”

역시 모르는 건가. 혜리의 기억 속에서도 <무한 다이아>에 대한 존재는 완전히 사라졌나 보다. 지금처럼 수업 시작 전이면 혜리와 나란히 앉아 난 <무한 다이아>를, 그녀는 다른 게임을 하던 게 평범한 일상이었는데.

“아냐, 모르면 됐어. 그건 그렇고 네가 어제 말한 ‘테라리움 어드벤처’ 말인데….”

“아, 그거 사전 예약 취소됐더라. 출시 완전 밀렸나 봐.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것 봐.”

혜리는 하던 게임을 잠시 중단하고 문자 메시지 함을 열어 내게 어떤 문자를 보여 주었다.

아름다운 식물 RPG, <테라리움 어드벤처>를 사전 예약해 주신 드루이드님들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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